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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가 제국으로 분할되는 날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5. 22. 14:00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 씨와 오랜만에 대담했다. 그와 나는 ‘호언장담’을 무척 좋아한다. 막부 말기 유세가도 과연 이럴까 싶을 정도의 치국평천하를 논하게 되었다. 난상 토의, 참으로 통쾌하였다.

     

    시라이 씨와 같은 언론인은 드물다. 정치학자는 이미 일어난 일을 해설할 때는 말을 잘 하지만, 미래 예측에 대해서는 억제적이다. 하물며 집단적인 환상이나 서사의 현실변성력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허나, 인간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개 환상이 현실보다 현실적이다. 필자는 뼛속까지 실용을 중시하는 인간이기에, 항상 ‘현실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다. 환상이 현실적이라면 환상을 주의깊게 음미한다.

     

    현재 미국 대통령이 목표하는 것은 미국의 ‘국익’을 최대화하는 게 아니라, (그가 그것을 ‘국익’이라고 믿고 있는) ‘타국에 굴욕감을 안겨줄 권리’를 최대화하는 것이라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미국인이 지금 국민적으로 앓고 있는 정치적 환상이란 게 있다면, 그것은 미사일이나 전함의 수, GDP 수치나 AI 기술 진보 등과 똑같은 정도로 ‘현실적인 것’으로서 취급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시라이 씨와의 대담에서, 앞으로 세상이 여러 ‘제국’으로 분할된다는 미래예측 측면으로 의견이 일치했다. 근대의 발명인 ‘국민국가’를 정치 단위로 하는 정치 모델로는 국제 사회의 안정이 유지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사람들은 ‘아련한 제국 모델’로 회귀하려 하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세계를 9개 문명권으로 분할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문명권은 그대로 중화제국, 러시아 제국, 무굴 제국(인도), 오스만 제국(터키), 신성 로마 제국(유럽연합)과 신흥 미제국으로 분할될 것이다. 아프리카, 중남미, 일본이 각기 다른 단위의 문화권 즉 제국을 형성할 수 있다는 헌팅턴의 1996년 시점 예측은 아무래도 빗나갔다. 적어도 일본에는 그럴만한 국력이 이제 없다.

     

    세상이 여러 제국으로 분할되는 흐름 속에 일본이 살아남을 길은 어디에 있을까. 시라이 씨와 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지면 사정상 다음 연재 때 계속하겠다.

     

     

    지금까지의 국제정치는 지구를 ‘하나의 마을’로 간주했었다. 유엔 193개 가입국이 ‘마을 사람’, 유엔이 ‘마을 의회’, 유엔군이 ‘마을 경찰’이라는 모델이었다. 근대 시민 사회를 세계구급 규모로 확대해놓은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정치 사이즈를 확대해 놓은 것 말고는 국제 정치를 구상할 수 없었던 셈이다.

     

    1945년 시점에서는 ‘차기 전쟁’이 핵전쟁이 될 것이고, 그때 비로소 인류는 파멸하리라는 미래 예측이 거의 실존을 좌우하다시피 했다. 국민 국가가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툰다면 그것이야말로 ‘만국의 만국에 대한 투쟁’이다. 힘 있는 나라는 힘 없는 나라를 지배하고 수탈하여 망하게 할 수 있다. ‘힘의 지배’를 노리는 나라가 핵무기를 들고 나오면 인류는 멸망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잡지를 읽을만한 주된 독자층이 어렸을 적인 1950년대부터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른바 ‘최후 심판의 날 시계’는 항상 1158(세계 종말 때까지 2분 남았다는 뜻)을 가리키고 있었다. 원폭과 수소폭탄 실험을 미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 할 것 없이 밥 먹듯 했으며, 그때 어린이들은 ‘방사능 비’에 노출된 채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비를 맞으면 터럭이 빠진다는 도시전설을 어린이들은 반쯤 믿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좀 있으면 사라진다’는 의식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다.

     

    이때 ‘법의 지배’를 바탕으로 세상에 질서를 가져다줄 방도로써 ‘마을 의회’가 ‘마을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계쟁의 시비를 밝혀, 죄를 지은 ‘마을 사람’은 ‘마을 경찰’이 진압한다는 모델 이외의 그 어떤 것을 사람들은 떠올리지 못했다. 일본국 헌법 제 92항은 이러한 ‘마을’ 사람 한 명이 ‘나는 그리 넉넉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도의적으로 살아가겠소’ 하고 선언한 셈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국제정치가 예상대로 추이하는 일은 없었다. 세계는 80년 후 또다시 ‘힘의 지배’를 원리 삼는 전근대로 퇴행하려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느 제국의 속국이 되어 종주국에게 이사(頤使; 턱으로 부리듯 제멋대로 다룬다는 뜻 - 역주)당하고 수탈의 대상이 되는 꼴을 면치 못할 것인가, 아니면 홀로 우뚝 선〔単立の〕 ‘국민 국가’로서 살아남을 길을 찾을 것인가?

     

    이번에도 지면 사정으로 인해, 다음번에 계속 논하도록 하겠다.

     

     

    세계가 제국으로 분할되는 때, 일본은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이야기한 참이다. 이번 시간은 그 끝맺음이다.

     

    선택지가 여럿 있다. 하나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제국 둘 중 하나의 변방 속국으로서 종주국에 ‘조공’하여 살아남는 길이다.

     

    일본은 전후 80년 미국의 속국으로 살아왔으므로 속국민 마인드라는 게 일본의 정치가와 외교관들 거의 대부분에게 깊이 내면화되어 있다. 따라서, 아메리카 제국의 서쪽 변경으로 살기를 그만두고, 중화제국의 동쪽 변경이 되는 길을 택하는 데 일본인은 그렇게 특단의 심리적 저항을 느끼지 않을 것으로 본다. ‘친위() 왜왕’으로 봉해졌던 비칭에서 ‘일본국왕’ 아시카가 쇼군, ‘일본국 대군’ 도쿠가와 쇼군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지배자들은 중화 황제로부터 형식적으로 관위를 책봉 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만약 ‘중화 황제’가 속국 일본에 천황제와 민주주의 체제의 지속을 허가한다면(그러지 않을 것이라 본다만), 일본인의 대다수는 ‘종주국’을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꾸는 데 엄청난 심리적 저항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일본의 지배층은 ‘강자에게 종속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는 길’이라고 마음 속 깊이 믿고 있기에, 이제까지 친미파였던 사람들은 이번에는 앞다투어 중국 공산당에 입당할 것이다. (그럴 것이라 확신을 가지고 단언한다.)

     

    방책으로써 또한 일한 동맹이 있다. 미군이 철수한 뒤 두 나라가 동맹을 맺는 것이다. 인구 18천만, GDP 6조 달러, 독일을 제치고 세계 제 3위 경제권이 된다. 군사력은 양국을 합하면 인도를 제치고서 세계 4.

     

    이러한 일한동맹은 미중 양제국과 등거리 외교를 전개한다. 미군이 괌까지 물러나고, 중국이 해양 진출에 억제적으로 나오면, 동맹을 중심으로 서태평양에 광대한 중립지대가 형성된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안정을 국제사회는 환영할 것이다.

     

    3의 길은 헌법 제 92항의 기치를 높이 올려 ‘동양의 스위스’ 비슷한 영세 중립국이 되는 것이다. 일본은 틀림없이 의료와 교육, 관광・엔터테인먼트에서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 그렇게 전 세계에 ‘될 수 있으면 일본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안전보장을 위한 ‘자산’이 되어준다. 스위스 은행에 개인 계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를 포함해) ‘스위스 침공’에 반대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일본인은 과연 어떠한 길을 택할 것인가?

     

    (AERA 318~416)

     

    (2025-05-01 06:16)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커먼의 재생』 『무도적 사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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