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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 레터) ‘야키니쿠집’ 아들 오길비 군인용 2025. 4. 7. 19:58
히라카와: 요시모토의 키워드 중 하나로서 ‘대중의 원상(原像)’이라는 것이 있어. 이것에 관해서는 ‘뭐야 그게?’ 하고 딱히 와닿지 않는 사람도 많을 거야. 하지만 말이야 나는 바로 이해가 가거든. ‘안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로 공감할 수 있다는 의미야.
요시모토의 아버지는 배 만드는 목수였어. 목수이긴 했지만, 배를 제작하는 회사를 경영했지. 그런데 그 회사가 꽤 번창했어. 사람들도 고용하고 부르주아였지. 단, 한편으로 배 목수, 즉 장인이기도 했단 말이지. 그 장인의 아들이 대학은 도쿄공업대학을 갔어. 그런 요시모토의 체험이라든지 생활 같은 것이 내 자신의 것과 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
내 경우는,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본가의 동네 공장에 일하고 있던 직원들로부터는 ‘대학 같은 곳 가는 게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어. ‘머리만 커져서는 안 된다’ ‘기술을 배워’라고. 그런 말에 대해서 나는 ‘아니 나는 대학에 갈 거야’ 하고 실제로 대학에 갔지. 즉 반지성주의의 아성 같은 곳에서 태어나서 거기서부터 지성의 세계로 나간 거야. 그것은 단지 부자가 된다든지 관료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상승 지향이었어. 지성적으로 상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어.
그래서 당연히 바닥에서 고생을 해서 안정된 생활을 쌓아온 사람들의 감각과는 떨어지게 되었지. 그 분열된 상태를 다시 한번 새롭게 바라보는 형태로 통속적이고 현장적이기도 한 생활자의 시점과 학자의 감각을 가진 지식인의 시점을 함께 가진 문체로 써나가는 것, 이것이 요시모토가 한 일이야.
‘지(知)’가 무엇인지에 관한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가장 훌륭한 분석은 「카를 마르크스」에 쓰여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즉, 지식을 쌓아서 지적으로 점점 상승해 가는 것은 이른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수험 공부처럼 하면 상승한다고 본 거야. 그런데 그렇게 획득한 지식을 현실 세계에 갖고(원문은 "갔고" - 인용) 왔을 때 그것이 과연 판단력이라든지 방향감각과 연결되는가, 요시모토는 그것을 묻고 있지. 그것이야말로 어부 아저씨와 채소 가게 아저씨와 같은 저자거리(이른바 街場 ‘마치바’ - 인용자)에 사는 사람들과 한편으로 지식을 쌓아온 사람들이 판단력과 인간력이라는 점에서는 등가라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한 거야.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는 책에 쫙쫙 줄을 그었어. ‘말 그대로다’라고 생각했어. ‘지식 같은 것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는 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것은 한편으로는 ‘지식을 끌어 내리는’ 행위이기도 해. 즉 일부러 대학을 간다든지 지식을 몸에 익히려고 한 자신의 행위를 부정하는 게 돼. ‘지식을 부정한다’는 것은 동시에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으로 연결되지.
지적으로 상승한다는 것은 일그러진 입신출세주의 같은 거야. 일본 근대화의 역사 속에서 지식인이라면 거의 전원이 입신출세주의형의 상승 지향을 갖고 있었는데, 요시모토는 그것을 부정한 거야. 그 연장선상에서 지식을 익히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야. 이런 말에 확 마음이 끌린 거야.
아마도, 요시모토의 배경에 있었던 것은 신란(親鸞)일 거야. 신란이 말한 ‘왕상(往相), 환상(還相)’을 요시모토 식으로 표현한 결과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러한 사상 그 자체가 요시모토 문체에도 나타나 있어.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어. 그런 것에 당시의 나는 굉장한 반응을 보인 거지.
…
우치다: 요시모토처럼 전시하에 자기를 형성한 사람들에게 1945년 8월 15일은 갑자기 ‘지금까지 자네들의 인생에는 의미가 없었다’는 말을 들은 것과 마찬가지야.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어. 하지만, 요시모토는 ‘아니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지. 자기 자신의 전시중의 경험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 자신이 호흡한 군국 일본 안에도 일종의 진실이 있었다고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
1억의 일본인이 총단결해서 전쟁을 완수하려고 했던 그런 일종의 광신주의 시대라도, 그런 시대밖에는 존재할 수 없는 종류의 아름다움이 있고, 믿는 데 부족함이 없는 것이 있고, 인간적인 존경이 있었지. 이것을 전부 부정당하면 믿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져 버려. 이러한 감각이 「전향론」의 원점에 있다고 생각해.
태어날 때부터 쭉 격리병동에서 지내온 아이들이 갑자기 ‘이 격리병동에서 이루어진 치료 방침은 잘못되었기 때문에 오늘부터 이 병동은 폐쇄합니다. 모두 퇴원하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될까. 설령 ‘잘못된 치료 방침’으로 운영되었던 병동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서 10년이든 15년을 보낸 아이들에게는 사계의 변화를 느끼거나 책을 읽거나 이 세상의 구조에 관해서 생각했을 때의 베이스가 되는 것은 그 병동 안에서의 경험밖에 없는 거지. 자신의 사상이라든지 감수성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그 병동 안에서 형성되었는데 ‘그것을 없었던 거로 하자’라는 말을 들으면 곤란할 수밖에. 요시모토에게 일어난 것은 이와 비슷한 일이었을 거야.
- 『침묵하는 지성』
오길비: 이 책, 흡인력이 대단합니다. 한번 들면 손에서 뗄 수가 없을 지경이에요. 유튜브보다 낫습니다. 서커스출판상회는 양서를 많이 내는 곳입니다. 여러분 많이 팔아주세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913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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