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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무지의 괴로움인용 2025. 4. 6. 10:52
움베르토 에코는 박학다식하고 재기 발랄하면서 통찰력을 갖춘 몇 안 되는 학자의 반열에 든다. (3만 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큰 서재를 갖고 있는 그는 방문자를 두 부류로 나눈다고 한다. 첫째 부류는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와, 시뇨레 에코 박사님! 정말 대단한 서재군요. 그런데 이 중에서 몇 권이나 읽으셨나요?” 두 번째 부류는 매우 적은데, 개인 서재란 혼자 우쭐하는 장식물이 아니라 연구를 위한 도구임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맞다. 이미 읽은 책은 아직 읽지 않은 책보다 한참 가치가 떨어지는 법이다. 재력이 있든 없든, 장기 대출 이자율이 오르든 말든, 최근 부동산 시장이 어려워지든 말든, 서재에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과 관련된 책을 채워야 한다. 나이를 먹으면 지식이 쌓이고 읽은 책도 높이 쌓이지만, 서가의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점점 늘어나 겁을 먹게 한다. 진정 알면 알수록 읽지 않은 책이 줄줄이 늘어나는 법이다. 읽지 않은 책이 늘어선 대열, 이것을 반서재라 부르기로 하자.
우리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개인 자산으로 취급하여 지키고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때 지식은 사회적 서열을 표시하는 장식물이다. 이런 지식관은 이미 알려진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서재에 대한 에코의 관점과 상반되며, 우리의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편견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라. 자신이 배우지 않은 것, 경험하지 않은 것을 적은 ‘반(反)이력서’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다(이것은 그의 경쟁자들이나 할 일이다). 그러나 반이력서를 제출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서재에 대한 생각을 거꾸로 뒤집어 본 것처럼, 우리는 현존 지식도 거꾸로 뒤집어 보려 한다. 우리가 돌발 사태의 가능성과 읽지 않은 책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할 때 검은 백조가 나타난다. 이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여기, 아직 읽지 않은 책에 주목하고 자신의 지식을 대단한 자산이나 소유물 혹은 자존심 향상을 위한 도구로 여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반(反)학자다. 이 반학자를 회의적 경험주의자라고 부르기로 한다. (…)

1960년대에 쿠바에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서자 “며칠 있으면 돌아가겠지” 하며 트렁크를 반도 채우지 않고 마이애미로 피난 왔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1978년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터졌을 때 파리와 런던으로 피난 온 이란인들은 ‘짧은 휴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이란 망명자들의 일부는 아직도 돌아갈 날을 꼽고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터졌을 때 베를린으로 망명한 러시아인들도 머지않아 귀국하게 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평생을 임시 거처에서 방탕과 사치의 나날을 보내다가 제네바 호숫가에 있는 몽트뢰 팰리스 호텔에서 숨을 거뒀다.
이런 오류는 자신의 희망을 사고의 근거로 삼는 오류, 즉 희망에 눈먼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지만, 여기에는 지식의 문제도 개재되어 있다. 말하자면 레바논 분쟁은 워낙 역동적이어서 쉽게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할 수 없었는데도 사람들이 사태를 바라보는 방식이 항상 고정되었다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사건들이 매일 일어나는데도 그들은 그 사건들이 예상 밖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과거의 추세에 비춰 보면 새로 일어난 사건들이 전혀 뜻밖의 것임을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일단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그 뒤에는 그것이 뜻밖의 것이 아닌 듯이 보이게 된다. ‘소급적 개연성’이라는 것이 작용해서 그것을 희귀한 사건이 아니라 있을 법했던 사건으로 이해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뒷날 나는 비즈니스에서의 성공이나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서도 이와 똑같은 망상이 작용하는 것을 목격했다. (…)
남을 ‘공격’하거나 충돌을 빚는 일을 조금도 꺼리지 않고 나의 의견을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은 이처럼 뚜렷한 이득이 있다. 당시 나는 분노에 휩싸여 부모님(그리고 조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이 일로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나를 두려워하셨고, 나는 더욱더 물러서지 않았으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가 시위대에 공공연히 가담하는 대신 (다른 친구들처럼) 몰래 숨어 있다가 들켰다면 분명히 나는 말썽꾼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눈에 띄는 복장으로 겉으로만 권위에 도전하기는 쉽지만(사회과학자나 경제학자들은 이를 ‘값싼 신호’라 부른다), 신념을 기꺼이 행동으로 보이기는 어려운 법이다.
내가 체포당했던 사건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내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은 십대의 반항심에 빠지지 않게 된 것이었다. 자신의 의지를 말로 하는 것 이상으로 보여 주려면 ‘합리적인’ 호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남들의 예상을 완전히 깨고ー동시에 정당성을 인정받으면서ー어떤 사람을 고소하거나 적에게 한 방 먹이거나, 최소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입증할 수 있음을 과시할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여유롭게 주변에 마음을 열어 두고 느긋하면서도 용기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 나심 탈레브, 『블랙 스완』
더보기"The writer Umberto Eco belongs to that small class of scholars who are encyclopedic, insightful, and nondull. He is the owner of a large personal library (containing thirty thousand books), and separates visitors into two categories: those who react with “Wow! Signore, professore dottore Eco, what a library you have ! How many of these books have you read?” and the others - a very small minority - who get the point that a private library is not an ego-boosting appendage but a research tool. Read books are far less valuable than unread ones. The library should contain as much of what you don’t know as your financial means, mortgage rates and the currently tight real-estate market allows you to put there. You will accumulate more knowledge and more books as you grow older, and the growing number of unread books on the shelves will look at you menancingly. Indeed, the more you know, the larger the rows of unread books. Let us call this collection of unread books an antilibrary."
"You can afford to be compassionate, lax, and courteous if, once in a while, when it is least expected of you, but completely justified, you sue someone, or savage an enemy, just to show that you can walk the w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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