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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왜 그렇게 가증스럽게 변하는 것일까?
    인용 2025. 4. 7. 19:06

    그 젊은이가 "저는 그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무엇을 더 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다시 묻자 예수께서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하셨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풀이 죽어 떠나갔다. - 『마태 복음』

     

     

    Metallica의 노래 중 〈The Unforgiven〉에서 이런 가사가 나온다.

     

     

     

    What I’ve felt 내가 느꼈던 모든 것들이

     

    What I’ve known 내가 알았던 모든 것들이

     

    never shined through in what I’ve shown 나의 행동 속에서는 전혀 나타나질 않았다니.

     

    never free (나는) 전혀 자유롭지 않다

     

    never me (나는) 전혀 내가 아니다

     

    He’s battled constantly 그는 끊임없이 싸워 왔지만

     

    This fight he cannot win 이길 수 없는 싸움.

     

    A tired man they see no longer cares 지친 몸으로 이제는 싸움을 포기하고

     

    The old man then prepares 그렇게 나이 든 채

     

    to die regretfully 후회 속에 죽을 준비만 한다.

     

    That old man here is me 그 늙은이가 바로 나….

     

     

     

    나는 그렇게 살기 싫다. 내가 1020대에 제일 싫어한 사람들이 4050대의 꼰대(아저씨)들이었다. 내 눈에는 모두 위선자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그 꼰대 계층에 속한다. 나는 내가 젊었을 때 혐오하였던 능글능글한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 왔다. 내가 싫어했던 꼰대 모습이 싫어서인지 배가 조금만 나와도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나는 내가 20대에 좋아했던 것을 아직도 좋아하고 그때 싫어한 것들은 여전히 싫어한다.

     

    이 글을 읽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네가 침 뱉는 대상이 미래의 너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살아가라. 젊었을 때 최루탄 가스를 맡아 가며 기성세대에 분노하였던 새끼들도, 4.19 세대들이건 6.29 선언 세대들이건 간에, 세월이 지나 40, 50대가 되면 똑같이 똥개가 되어 버리기 일쑤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똥개 변신에는 그 어떤 학벌이나 학력도 백신 역할을 하지 않는다. 서울대, 연대, 고대 나왔다고, 고시에 합격하였다고 똥개가 안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왜 그렇게 가증스럽게 변하는 것일까? 바로 돈 때문이다. 그러므로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소비생활을 통제하고 몸값을 높여 나가라. 그 길만이 네가 지금 혐오하는 대상으로 변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 『세이노의 가르침』

     

     

    우치다: (…) 세상을 둘러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 사십대, 오십대가 되었지만 성숙할 기회를 놓쳐버린 남자들. 그럭저럭 사회적 지위도 있고 돈도 어느 정도 갖고 있어서 자신을 성공한 어른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정서적으로는 중학생 수준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 그런 ‘곤란한 아저씨’들이 지금 일본에서는 다수를 형성하고 있어서 그들이 ‘여론’을 만들고 있어.

     

    뭔가 착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른이라는 것은 그런 존재가 아니잖아. 성숙이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단적으로 ‘좀 더 복잡한 생명체가 되는 것’이니까. 아이 때 긴급피난의 감각으로 조형한 ‘자기다움’ 같은 것에 매달려 있으면 복잡하게 될 수가 없는 거잖아.

     

    히라카와: 최근에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끌려서 긴자의 클럽에 간 적이 있었어. 거기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호스티스 언니들이 넌더리가 나 있다고 하더군. 왜 넌더리가 나 있는가 하면 손님들이 모두 자기 자랑만 한다는 거야.

     

    말하자면, 세상에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도 ‘자신을 존경해주었으면 한다’는 마음이 강해. 아직 자신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다, 자신은 당연히 받아야 할 칭찬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자기 자랑을 계속하는 거야. 그것이 그들에게는 일종의 치유로 작용하는 거지. 그런데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 자체가 아이이기 때문인 거겠지.

     

    우치다: 듣고 보니 그렇군.

     

    히라카와: 세상의 자신에 대한 평가가 충분하지 않다, 자신은 좀 더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야. 거기에 호스티스들이 넌더리를 내는 거지. 그래서 내가 ‘호스티스는 그런 멍청이들을 상대할 수 있으니까 대단하네’라고 말했더니 내 인기가 올라가더라고(웃음).

     

    우치다: (웃음)

     

    히라카와: 그 정도로 모두 자기 자랑을 하고 있다는 거지.

     

    우치다: 재미있네. 그 정도로 자신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완전하지 않다는 느낌이 있다는 거로군.

     

    히라카와: ‘자신에 대한 평가가 부당하게 낮다’는 의식이 매우 강한 거지. ‘이미 나에 대한 평가는 충분히 받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로 적어. ‘, 돈’ 하고 외치는 것도 단순히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있겠지만 역시 ‘돈=평가’라는 의식을 갖고 ‘좀 더 평가받고 싶다’는 마음의 발로인 거지. 그런데 그것을 끊어버리지 않으면 어른은 될 수 없어. 긴자에서 놀고 있는 아저씨들도 사회에 나가면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잖아. 그런 사람들이 자기 자랑만 늘어놔서는 곤란하지.

     

     

    히라카와: 예를 들면 에마뉘엘 토드 같은 지식인은 이번 데모에 대해서도 ‘이런 움직임은 곤란하다’고 경종을 울렸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그의 발언은 거의 외부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아. 이것은 역시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돼’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우치다: 그렇다고 생각해.

     

    히라카와: 뭐라고 해야 할까, 이런 상황은 상당히 곤란하지 않을까. 데모를 하고, 표면적으로는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그 무대 뒤에서는 울적한 감정이 아주 충만해지고 있기 때문이지. 곧바로 연상되는 것은 전쟁으로 향할 때의 대중적 열광이라는 게 다름 아닌 이런 것이 아닐까. 무솔리니가 등장했을 때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굉장하더군. 무기를 만드는 금속이 부족해지자 부인들이 앞을 다투어 반지와 목걸이를 내놓았고 러브레터까지 썼지.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하는데 무솔리니의 경우는 단숨에 폭발했다는 느낌이었어. 무솔리니는 섹슈얼한 매력도 있어서 그것을 이용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똑같은 이탈리아인들이 밀라노 광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무솔리니의 시체에 돌을 던졌다는 거야. 물론 그 당시의 파시즘과 이번의 데모가 결코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동질적인 면은 있는 것 같아.

     

    우치다: 9.11 후의 미국과 분위기가 약간 비슷하네.

     

    히라카와: 100명 정도가 참가하고 있는 내가 주최하는 공부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9.11 후에 ‘지금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내가 말한 적이 있어. 그러자 현지에 있던 비즈니스맨들이 불같이 화를 냈어. ‘내 지인이 몇 사람이나 거기서 죽었는데 너희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하고 말이야. 그 분노에 나도 모르게 멈칫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자신의 지인이 살해당한 것과 이번 소동에는 역시 조금 거리가 있지 않을까. 이번 소동의 발단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사람은 아니야. 발행 부수 3만 정도의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작은 출판사잖아. 그 사건에 이만큼이나 되는 사람들이 연대한 거지. 거기에는 역시 특별한 뭔가가 느껴져.

     

    데모 자체의 특징을 보면 그다지 폭력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아. 데모는 본질적으로는 시위 행동이기 때문에 메시지를 전할 상대방이 있고 그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전해지면 무리해서 폭력적으로 될 필요도 없긴 하지만.

     

    우치다: 이번 데모는 중국과 구소련에서 있었던 ‘관제 데모’와 어느 정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고 느껴져. 토드는 거기에서 공포를 느꼈던 게 아닐까. 그런데 말이지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 때 잠자코 있는 것은 프랑스 지식인의 하나의 전통이라고도 할 수 있어. 685월의 혁명이 있었을 때 레몽 아롱은 ‘시위대가 거리를 행진할 때 거리의 열기로부터 떨어진 베란다로부터 잠자코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나는 이 ‘좀 떨어져서 바라보는(detachment)’ 자세도 지식인의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

     

    시위대에 참가하지도 않고 시위대에 덤벼들지도 않고 단지 냉정한 눈으로 베란다로부터 밑을 다니는 대중을 응시하고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기술하고 분석해서 그 역사적 의미를 해명하는 것, 보수계의 지식인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사명이라고 아롱은 말하고 있는데 나는 그의 편을 들고 싶어. - 『침묵하는 지성』

     

     

    박노자: 지금 팔레스타인과의 연대의 열기는,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매우 뜨겁습니다. 대단히 좋은 일이죠. , 제가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외치시는 분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제발 연대를 하면서 "공부"도 좀 하시라는 것입니다. "연대"는 연대 대상에 대한 동감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지식 등도 함의합니다. 공부하면서, 한 때에 전세계 좌파의 기대를 모았던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그리고 그 안에서의 최대 주주이었던 파타당이 어떻게 해서 극도로 부패한 권위주의 관리 시스템으로 변질되었는지 "이해"를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비판적 "이해"야말로 진정한 연대의 전제 조건이죠. 동시에 하마스의 사회-경제적인 역할이 무엇인지,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국내외의 (관료)자본과의 관계가 무엇인지 구조적으로 파악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파악 없이는 맑스주의에 기반한 비판적 연대는 힘들 겁니다. 그리고 이 연대가 일회성으로 끝날 것이 아니고 수년간, 수십년간의 지속성을 가져 제대로 제도화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좌파가 좌파답게 지속성을 가지고 연대 대상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