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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물) 유적 존재, 타임스팬, 그리고 인플루언서
    인용 2025. 1. 19. 22:18

    인류의 역사는 진화지향과 퇴화지향이 서로 길항하는 과정입니다. 이 두 유형으로 저마다 갈라져 인류는 진화해 왔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둘을 화해시킬 방도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진화해 온 것이지요. 그러므로 퇴화지향 역시, 진화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인간에게는 지성이나 덕성이 거의 표준 장착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니까요.

     

    오늘날의 세상을 보면서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퇴화지향은 주기적으로 인류를 엄습합니다. 지금, 인류의 여명 이래 꼽아보아도 수십 번쯤 (아마 더 될 겁니다) 이미 왔었던 ‘퇴화의 계절’을 우리는 맞고 있습니다. 선인들은 이러한 퇴화 압력에 대항하여 “인간은 지성과 덕성에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몸소 일생의 궤적을 통해 증명했습니다.

     

     

    ‘우파’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형용문으로서 그 쓰임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퇴화 지향’이라는 말이 적절하겠지요?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옛날에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로 돌아가자’는 거니까요.

     

    너무나 복잡해진 현실, 바뀐 현실을 받아들이며 해석기제의 프레임워크를 고쳐 써 나가야 하는 그런 지적 부하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택하는 길입니다.

     

    저는 이와는 반대의 길을 가는 사람을 ‘진화 지향’이라 부릅니다. 잘 보면, 인류는 그런 식의 두뇌용적 증량을 통해 유적 존재(Gattungswesen) 진화해 왔기 때문입니다.


    @chejusaran 옆나라에서 ‘극우 유튜버’가 그렇게 문제라는데, 마찬가지로 학술계의 인플루언서를 자처하는 무리들의 폐해 역시 심각합니다. 자극적인 언사에 장기가 있으면 언론의 주목을 받고 미디어 노출이 늘며 책도 잘 팔립니다.

     

    저희 대학원생들을 가만히 보면, 그들은 그런 치들을 뭔가 참신한 그리고 진실미 있는 존재랍시고 졸래졸래 따라다닙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는 그런 것들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세상없어도 대학원 시절에는 응당 자기 내실을 다져나가며 동시에 비판 능력을 길러야 하는데, 이걸 게을리한다는 거죠.

     

    (…) 옛날에도 물론 스타 학자들은 있었지만, 그런 ‘소수의 예외’가 SNS 시대를 맞아 다수를 점하는지도 혹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해, 꽤 그럴싸하게 재주를 부리는 사람들이 각광받는 사회라는 것이죠. , 그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내버려두면 되는데, 상담을 하다 보면 우리 대학원생들이 이런 세태 속에서 곧잘 조바심을 낸다는 겁니다.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levinassien 저도 사실 젊었을 때 제 또래 되는 연구자들이 속속 언론의 조명을 받는 걸 지켜보며 내심 초조해했었어요.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보니까요, 편집자들 중에 보는 눈이 있는 사람들이 간혹 존재하더랍니다. 그들은 유망주가 어디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있거든요. 저한테도 마치 ‘우리 둘이서 천하를 한번 평정해 봅시다’ 하는 식으로 제안한 편집자가 몇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밑바닥에서 고생만 들입다 하는 아티스트 ー 업계 내부의 권토중래를 노리는 프로듀서’와 같은 관계성이 있었습니다.

     

    그리 나쁘지 않은 관계성이었습니다. 상대방은 아무리 기획안을 내도 출판사에서 통과시켜 주지 않는 편집자였고, 저는 아무리 논문을 많이 써내도 세상 빛을 못 보는 연구자였거든요. ‘내가 미친 건지 세상이 미친 건지 한번 두고 보자’ 하고 대거리를 하고는 했었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명 시절이 있었던 게 결국 약이 되었어요. 50세 이전까지는 자녀 양육에 전념해야 했거든요. 딱 그때 제 글을 알아본 편집자가 나타난 겁니다.

     

    따라서, 이제나저제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대학원생 분들에게는 ‘언제 당신의 『레인메이커』와 조우할 수 있을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니 망연자실하지 마세요, 그리고 동시에 죽어라 정진하세요’라고 조언해 주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무엇이나 다 정한 때가 있다.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나 다 때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제 때에 알맞게 맞아 들어가도록 만드셨더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마음을 주셨지만,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을 시작하여 어떻게 일을 끝내실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가 한결같아서 누가 보탤 수도 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람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다만 그의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음을 나는 깨달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일은 전에 있던 일이요, 앞으로 있을 어떤 일도 전에 있던 일이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마냥 그 일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질서 없는 세계, 즉 선이 승리할 수 없는 세계에서 희생자의 위치에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수난이다.

    그러한 상황만이 구원을 위해 현현하기를 단념하고 모든 책임을 한 몸에 떠맡는 인간의 완전한 성숙을 바라는 신을 우리에게 열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