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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나는 알고 있다
    인용 2025. 2. 3. 09:15

    어릴 적에 나는 이런 변화가 없는 생활이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까 상상하고, 깊은 절망감에 허우적댄 적이 있다. 렌코인(蓮光院)이란 절이 통학로에 있었는데, 초등학교 1학년 때 절의 대나무 울타리를 손가락으로 세어가면서 학교에 갔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 이 대나무 울타리를 힐끔힐끔 볼 때쯤이면 5학년이 되어 있겠지? 그때 가서 '아, 맞다, 1학년 때 그런 생각을 했지' 하는 생각이 나서 웃을 거야...."

     

    어느 날 대나무 울타리를 손가락으로 세어가면서 학교에 갈 때 '아, 아직 2학년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시간이 그렇게 느리게 흘러가는 것이 기절할 만큼 어질어질했다. 주관적으로는 10년쯤 초등학교에 다녔지만, 실제로는 겨우 1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어린아이에게 시간은 절망적으로 길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은 사라져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는 '돌이킬 수 없음'이라는 감각을 인지한 것은 열여섯 살 때였다. 스키를 배우느라 정신이 온통 팔려 있었다. 방에 스키 판을 깔아놓고 스톡을 휘두르면서 상상으로 베데른(Wedeln)을 하고 있을 때, 불현듯 '앞으로 몇 시즌이나 스키를 탈 수 있을까?'란 생각에 미쳤다. 손가락을 꼽아보니 최대한으로 잡아도 50시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키를 탈 수 있는 겨울이 1년이 지날 때마다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방 한가운데에서 스키 판을 꾹 밟은 채 아연해졌던 것을 기억한다. 아마도 그 순간, 나는 '어린애'에서 '청년'으로 껍질을 훌떡 벗고 변태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이쿠,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라는 말이 그날 이후 내 입에서 몇 번이나 흘러나왔다.

     

    집단 따돌림을 당해 자살하는 아이들에게 교실에서 지내는 하루의 주관적인 길이는 어른의 몇 주일이나 몇 개월과 맞먹을 것이다. 나는 일찍이 초등학교 시절 1년이나 교사와 급우들에게 조직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절망적인 시간의 길이를 뼛속 깊이 기억하고 있다.

     

    시간을 '거꾸로 헤아리는(compter à rebours)' 것이 불가능한 아이들에게 자살은 유혹적인 선택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자신들이 '시간적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고 요사이 줄기차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미지성(未知性) 속에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한 치 앞의 세계는 예측 불가능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사회적 기능을 담당할 것인지에 대해 주체는 말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것이 레비나스 스승님의 가르침이다.

     

    내게는 그 가르침이 여러 각도에서 볼 때 현대 일본 사회에 가장 시급한 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시간의 본래적 미지성이 소중하단 사실을 말할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매스컴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나는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한다.

     

    '짐작하는 범위 안에 있다(想定内です)'는 유행어는 그런 무시간 모델로 살아가는 인간의 정신을 잘 나타낸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원초적 사실 안에 인간의 인간성을 보증해주는 모든 것이 깃들어 있다는 점을 깨닫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정말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와 같다.

     

     

    ✳︎

     

     

    대학을 졸업한 나는 바로 무직자가 되어 한동안 친구인 히라카와 가쓰미 군과 회사를 만들어 경영자가 되었다. 일은 유쾌했고 월급도 쏠쏠히 받았지만, 3년 만에 난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 거기에서 자신이 승진해가는 경로가 너무 뻔히 보였기 때문에 김이 새버렸던 것이다.

     

    우리의 노동의욕을 담보하는 것은 반드시 '미래에 대한 보장'은 아니다.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일할 의욕이 솟는 젊은이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 점을 누군가가 발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써 둔다. (우치다 타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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