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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인용 2024. 10. 14. 18:02

    보이스는 간단히 말하자면 ‘사소한 계기로 말이 무한하게 배출되는 장치’이다. 말을 바꾸면 입력과 출력이 1대 100과 같은 이상한 비율로 작동하는 언어 생성 장치를 의미한다.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53쪽)
     
     
    얼마 안 되는 글자 수로 강렬한 코멘트를 하는 것도 작가에게 필요한 기술 중 하나이긴 하지만 ‘그것만’을 특기로 내세우는 것도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다.
     
    촌철살인이라는 격언에서 알 수 있듯이 강렬한 코멘트는 파괴적인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일도양단하는 코멘트는 글쓴이를 실제보다 150퍼센트 정도 똑똑하게 보이게 한다. 그러니 일도양단 코멘트의 명인에게 그 주제로 5천 자 정도 더 깊이 있게 써 달라고 의뢰해도 나오는 것은 무참한 결과물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쓰면 “지금 장난치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는 비판이 곧바로 나올 것 같은데 앞서 말한 이유로 ‘5천 자 이하의 비판은 자동으로 거부’하니까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을 그런 일에 낭비하지 말기를 바란다.
     
    물론 촌철살인형 코멘트도 물리적으로 길게 쓸 수 있다(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읽는 쪽이 금세 질린다. 길게 쓰고 질리지 않게 하려면 ‘안쪽으로 파고드는’ 나선형 사고와 에크리튀르가 필요하다. 또한 전언 철회가 필요하다. 자신이 이전에 쓴 것에 관해 ‘그것만으로는 이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는 한계를 고지해야만 한다. 자기 지성을 점검하고 신고하고 수정하는 일을 해야 한다. (460~462쪽)
     
     
    ‘문장이 짧아지는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다나카 연구실에 있는 다치카와 유카 씨가 2005년 대학생들 문자메시지 약 400건을 분석해 보니 한 건당 평균 문자수는 약 30자로 5년 전 조사 결과의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 흥미로운 통계다. 확실히 휴대폰 문자 메시지는 복잡하고 논리적인 정보를 보내는 데에는 맞지 않는 도구이다. 논리의 흐름은 감정의 흐름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313쪽)
     
    사전을 척척 찾는 작업도 중요한 신체 훈련이었던 것 같다. 거의 똑같은 문자 구성의 단어가 종이 위에 가득 펼쳐진 가운데 마지막 글자 한 자만으로 뜻이 다른 단어를 순식간에 발견하는 능력을 쌓았으니 말이다. 그런 능력이 대체 어디에 도움이 되는가? 그런 질문을 받으면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겠지만 전혀 관계없는 국면에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은 있다(잘 모르겠지만). (317쪽)
     
     
    ‘수직으로 파내려 가는’ 것은 똑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쓰면서 나선형으로 점점 깊이 파고드는 작업이다. 트위터에서는 자신의 직전 트윗이 곧바로 시야에서 사라진다. 누군가의 트윗이 중간에 끼면 자신의 아이디어의 ‘등’은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아이디어의 등’은 꽤 중요하다. 조금 전까지 자신의 머릿속을 가로지르던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앗”하고 돌아보면 이미 모퉁이를 돌아서 등만 살짝 보인다. 그런 것이다.
     
    긴 문장을 쓸 때는 그 ‘등’이 꽤 의지가 된다. 자신이 진행하는 길에 더 이상 전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맞아, 그때 그 아이디어를 따라갈걸’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뒤돌아보고 다시 뛰어가서 ‘아이디어의 소매’를 꽉 붙잡는다. 그리고 함께 모퉁이를 돈다. 긴 글을 쓰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긴다. 정말이다.
     
    언어학에는 패러다임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말을 쓰면 그 말에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어군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원리적으로는 거기에 연결되어도 문법적으로 파탄이 나지 않는 모든 말이 떠오른다(그렇게 되어 있다). 예를 들면 ‘매화 향기가’라고 쓰고 난 후에는 ‘난다’, ‘퍼진다’, ‘들린다’ 등 여러 말들이 다음에 올 후보군으로서 배열된다. 우리는 그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런데 ‘매화 향기가 난다’ 또는 ‘매화 향기가 퍼진다’를 고르면 그다음에 계속될 문장 전체의 톤이 바뀐다. 톤은 물론이거니와 콘텐츠까지 바뀐다. 자칫하면 문장 전체의 결론까지 바뀐다.
     
    그런 것이다.
     
    이 패러다임적 선택을 우리는 문장을 쓰면서 1초 동안 수십 번씩 수행한다. 그때 선택에서 누락된 것이 있다. 그 말을 선택한 후에 이어서 계속되었을지도 모를 문장과 거기서 도출되었을지도 모를 결론이 일순 머릿속을 스쳤지만 잊어버린 아이디어이다.
     
    이것을 얼마큼 많이 소급적으로 열거할 수 있는가. 이는 사실 사고의 생산성과 깊게 관련이 있다. 자신의 사고가 마치 일직선으로 진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돌아보면 확실히 일직선으로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는 무수한 전환점이 있고 무수한 분기점이 있고 각각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추론 과정과 거기서 도출될 수 있었던 결론이 있다. 분기점으로 돌아가서 다른 과정을 거쳐 심화된 아이디어의 ‘등’을 쫓는 것은 사고하는 데 중요한 일이다.
     
    “왜 어떤 사태는 일어나고 그렇지 않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는가?” 이것은 계보학적 사고의 기본이다.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만 일어나지 않은 사태’의 목록을 생각해낼 수 있는 한 길게 뽑는 것은 지성에 중요한 훈련이다.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를 추론하는 것은 ‘일어난 일이 일어난 이유’를 추론하는 것과는 다른 뇌의 부위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478~4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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