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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물) 1987년생 김주혜가 MZ세대에게
    인용 2024. 10. 14. 20:24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뉘며, 대다수는 그중 첫 번째 범주에 속한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이 현재의 상태에서 성공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 그러고 나면 자신의 삶에 주어진 운명을 합리화하고 그 자리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는 시점은 놀랍도록 일러서, 대체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도달한다. 교육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 또한 서른에서 마흔 살 사이에는 같은 결론에 이른다. 일부 사람들은 출생 환경이나 그 자신의 야망, 그리고 재능에 힘입어 대략 쉰 전후에 비슷한 깨달음을 얻는데, 그 정도 나이에 이르면 이러한 소강도 그렇게 끔찍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모두가 꿈을 꾸지만, 그중 몽상가는 일부에 불과하다. 몽상가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보이는 대로 세상을 본다. 달, 강, 기차역, 빗소리, 따스한 죽 한 그릇처럼 평범하고 소박한 것들도, 몽상가들은 여러 겹의 의미를 지닌 신비로운 무엇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세상은 사건이라기보단 유화여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바깥쪽에 있는 색깔만을 바라볼 때 이들은 영원히 그 아래 감춰진 색깔을 바라본다. 몽상가가 아닌 사람이 유리를 통해 보는 풍경을, 몽상가들은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셈이다.
     
    이는 결코 지능이나 열정의 차이로 결정되는 자질이 아니다. 이 두 가지는 몽상가의 타고난 자질과 가장 자주 혼동되는 것들이다. 옥희가 아는 가장 지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인 단이의 경우, 그의 시야는 그의 태도와 원칙만큼이나 또렷하고 날카로웠다. 단이는 가능한 한 최대한의 우아함과 침착성을 발휘하여 세상의 불순을 바로잡는 것에만 집중할 뿐, 그 아래 묻혀 있을지도 모를 차마 형언할 수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것들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면 옥희는 달랐다. 무용과 연기를 그만두자마자 자신의 삶에서 모든 색채가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이제 몽상가가 아닌 사람들의 세상에 있었고, 그곳은 낯설고 매 순간 숨이 막히는 장소였다. 인생에서 이처럼 외로워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단이는 옥희가 어서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라고 믿는 듯했다.
     
    “불경기 때문이야.” 어느 날 아침 단이가 돋보기안경을 끼고 신문을 훑어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영화관에 다니면서 쓸 만한 돈이 없는 거지. 요즘 폐업하는 식당들도 많다면서. 네 탓으로 돌릴 것 없어.”
     
    “하지만 이모, 이제 막 개봉한 <홍길동전>은 엄청나게 잘나가잖아요. 지난가을에 새로 나온 <운수 좋은 날>도 그랬고요. 원작이 나온지 6년밖에 안 된 걸 굳이 영화로 다시 만들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옥희가 아침 식사로 나온 잣죽을 깨작대며 말했다. “그거, 거의 반년 내내 매진이었대요.”
     
    “발성영화라 그렇지. 다들 새로운 것이라면 뭐든 열광하잖아. 너희 제작사도 그런 선견지명을 가져야 할 텐데. 관계자들한테 네가 좀 말해볼 수는 없니?”
     
    단이는 신문을 반으로 접고 그 이상 간단한 해결책도 없다는 듯 (…)
     
     
    『작은 땅의 야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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