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는 SNS 등을 통해 등장한 "가상의 식사 모임"을 일종의 저항으로 여기고 이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가상의 식사모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등장했다. '먹방'이라는 것"이라며 "먹방은 웹캠을 켠 채로 밥을 먹어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행위다. 한국인 박서연은 끼니마다 수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밥을 먹는다.(225쪽)"고 소개한다.
"미국인은 하루에 1시간2분 정도를 식탁에서 보낸다. 중국인은 1시간 36분, 인도인은 1시간19분동안 식탁에 앉는다. 북유럽사람(스웨덴 1시간 13분, 핀란드 1시간21분)은 남유럽 사람(2시간 2~5분)의 절반에 불과하다."
음식의 품질을 가장 무시하는 국가들이 가장 많은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반면 문화적 정체성은 상실했다. 반대로 음식을 좋아하고 식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국가는 노동도 덜 하고 경제성장도 덜 한다. 반면 문화적 정체성은 더 잘 보전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몇몇 국가가 이에 해당한다.(235쪽)
저자는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하는 일도 드물어졌다"며 "20세기 후반 구애의 꽃이었던 마주앉아 즐기는 저녁식사도 먼 이야기가 됐다.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상대를 유혹한다"고 탄식한다.
나아가 "토론할 기회인 식사가 사라지면서 공통의 개념을 만드는 게 훨씬 더 어려워졌다"며 "식탁에서 하는 식사의 종말은 소비사회의 최고의 동맹(205쪽)"이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더 많은 소비를 위해 더 혼자가 됐다. 소비하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중략) 사람들은 점점 더 빨리 먹고 점점 더 나쁜 음식을 먹으며 점점 더 많은 가공식품을 먹었다. 또한 먹는데 돈을 점점 덜 쓰게 됐다. (173쪽)
저자는 나아가 "19세기말 미국에서는 맛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는 것, 맛이 없거나 배가 부르게 하는 음식을 더 빨리 먹어서 식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게 하는 것에 모든 초점이 맞춰졌다(179쪽)"며, 이로 인해 식사시간이 줄어들었고 그 줄어든 시간은 노동과 재충전, 쇼핑 등의 자본주의적 활동으로 대체됐다고 일견 다소 음모론적으로 들릴 법한 주장도 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