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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물) 좋은 나라 운동 본부
    인용 2024. 10. 7. 22:52

    이제 와서 새삼 무엇을 감추겠는가. 나는 수험생으로서는 아주 요령이 좋았다. 현대국어 문제 같은 것은 출제자가 “어떤 대답을 쓰면 좋아할지”를 바로 읽어내서 술술 쓱쓱 마음에도 없는 것을 써서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열일곱 살밖에 안 되는 아이에게 마음을 읽히는 출제자를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바보’가 출제하는 교과만큼은 나는 높은 점수를 얻었다.

     

    수험공부를 통해서 내가 배운 것은 ‘평가’형 지적 능력 트레이닝은 ‘어떻게 대답하면 누가 어떤 식으로 기뻐할까?’를 꿰뚫어보는 능력의 함양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일을 ‘지성’이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 생활부터 샐러리맨의 영업 활동까지 이 세상 대부분의 장면이 이런 유형의 능력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고등학생인 나의 상상력이 미치지 못했다).

     

    그런 굴절된(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에 나는 ‘설문과 대답’ 형식에서 생각하거나 나의 대답을 누군가에게 ‘평가’ 받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닭살이 돋게 되었다(그래서 결혼 생활에도 실패했고 연구자로서의 업적도 ‘평가받기 힘든’ 연구만 했다).

     

    『망설임의 윤리학』 152.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많이 읽고 잘 듣는 사람이 성공했다. 이들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배경과 맥락, 목적, 취지, 의도를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이 공부를 잘한다. 우등생이 된다. 사회에 나가서도 상사 ‘말씀’을 잘 듣는다. 의도를 잘 파악해 시키지 않은 일도 알아서 척척 한다. ‘블랙리스트’란 말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그것을 만들라는 소리라는 걸 안다. 승진이 빠르고 출세한다.

     

    물론 이들의 공도 크다. 산업화 시대에 압축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고 들은 결과 모방 능력이 탁월해졌다. 그 덕분에 잘 베끼고 잘 쫓아간다. 그 힘으로 세계 제 11위 경제대국이 되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재벌 기업도 나왔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이제부터는 앞장서 나아가야 한다. 더 이상 모방할 게 없는 상황에서는 없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읽고 들은 것만으로는 내 것, 내 생각을 만들어낼 수 없다. 내 것을 창조하려면 말하고 써야 한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이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모난 돌이 되어 정 맞기 일쑤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한 분들이 그랬다. 그 탓에 3대가 힘들게 살았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함부로 말하면 잡혀갔다. 유신헌법이 잘못됐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 죄로 징역을 살아야 했다.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나대면 나만 손해 본다는 사실을. 이유를 묻지 말고, 호기심이나 궁금증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 갖기 시작하면 자신만 괴롭다.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른 체하며 자기 앞에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해야 한다. 옆에 사람이 죽어 나가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우리 모두 사이코패스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를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말과 글이 살아나야 한다. 말과 글이 살아 있는 사회가 열린사회다. 부정부패는 열린사회에서 설 땅을 잃는다. 부정, 부패, 비리, 농단은 말 없는 사회를 좋아한다. 말과 글이 죽은 사회는 그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다. 아무도 그것에 시비걸지 않고 문제 제기하지 않는다. 보고도 모른 체한다. 고발자는 배신자가 되고 이의를 제기하면 충성심이 부족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

     

    서로 협력하는 사회적 기풍을 만들기 위해서도 그렇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는 말과 글이 필요 없다.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일사불란, 효율성 증대를 위해서는 조용한 게 좋다. 지시와 명령, 통제로 돌아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경쟁 일변도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글만 잘 쓰는 사람, 생각만 많은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생각도 있으면서 그것을 글로 옮길 수 있고, 그 글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강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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