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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카의 장학관 대상 강연에 초빙되었다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9. 28. 12:27

    오사카 시교육 위원회로부터 강연 의뢰를 받았다. 교원들만 모인 단체로부터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강연에 초청받았지만, 교육위원회 측에서 먼저 제안해 주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오사카의 지방 교육 행정을 가차 없이 비판해 왔던 필자에게 위원회가 찾아와 읍하며 강연 의뢰를 청했다는 말인즉, 오사카 시가 이제까지 펼쳐 왔던 교육 정책에 학교 현장이 거부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징후인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교육론이란 달리 무척이나 반체제적인 것만은 아니다.

     

    학교의 기능은 학생들의 심사나 평가가 아니라, 그들의 시민적 성숙을 지원하는 것이다, 하는 지극히 온당한 주장이 그것이다. 따라서, 교원들이 학생들을 향해 꼭 해야 할 말은 ‘내가 너희들을 환대하고, 너희들을 지키며, 너희들의 성숙을 지원하겠노라’ 이외의 것이 될 수 없다. 학생들을 환대하고, 보호하며, 지원하는 것이 학교의 소임이다. 필자는 그리 믿고 있다.

     

    많은 교원들이 필자의 말에 동의해 주고 있다. 하지만, 교육 행정의 요직에 있는 분들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학교라는 것이 ‘학생들을 심사하고, 평가하며, 능력은 있으나 임금은 저렴하고, 말 잘 듣는 인재를 만들어내기’ 위한 공장 같은 것과 같이 여기고 있다. 이러한 정황은, ‘PDCA 사이클 원활화’라든가 ‘대학 졸업장의 품질 보증’, ‘포트폴리오’ 등과 같이 그들이 편애하는 공학적 비유에서도 알 수 있다.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공정관리다. 소위 맞춤형 인재라는 것을 ‘붕어빵’*과도 같이 허겁지겁 배출해 내는 게 최우선인 셈이다. 여기에는 학생들의 내면 속 숨어 있는 무수한 잠재 가능성에 대한 존경심과 상상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 원문은 도쿄 특산품 ‘얼굴 모양 빵人形焼き’ – 옮긴이)

     

    학생들은 공업제품이 아니다. 싱싱한 생물이다. 그 잠재적인 자질이 언제, 어떠한 계기로 꽃필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여기에 공정관리는 발붙일 여지가 없다. 학생은 통조림이나 자동차가 아니다.

     

    교원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참을성 깊게 그리고 낙관적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는 일이다. 어떠한 교과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어떠한 지식이나 기능을 습득시킬 것인가는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배울 의욕에 시동이 걸리면, 학생들은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과 같이 자학자습한다. 그리고, 배울 의욕이 언제 어떠한 계기로 기동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런저런 ‘출발 신호’를 준비해 두어, 학생들 앞에 늘어놓는 것 이상은 교원에게 불가능하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잘 안 맞는 총도 계속 쏘다 보면 언젠가는 맞는다’는 접근 방식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이라는 게 과거 이백 년 공교육 역사로부터 도출된 경험지이다.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왔다. (일본 농업 신문, 830)

     

    (2024-08-31 07:1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한 걸음 뒤의 세상』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보충자료】

     

    그렇다면 학교관리자는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승진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적어도 10년 이상 소요되는 승진 준비기간 동안 승진 점수를 쌓기 위해서는 학교장의 부당한 명령에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로서 교육적으로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는 민주적이고 협력적인 교육과정 운영의 경험을 쌓기가 힘들어진다. 학교장의 압박에 시달리고 승진 점수를 채우는 데 치중하다보니 교직원 간 동료성을 발휘하고 학부모민원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을 키울 기회도 적어진다. 이런 교사들이 학교관리자가 되고 그런 관리자 밑에서 승진 준비를 한 교사들에게서 문제해결과 갈등조정 역량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2010년 이전에는 학교 관리자의 역할이 크지 않고 독단적인 판단을 하는 관리자의 해악 때문에 “무두일이 좋다”는 말도 나왔지만, 지금은 학교관리자가 꼭 필요한 시기이다. 학교 관리자는 회사의 CEO같은 경영자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학교관리자’다.

     

     

    이상우 교사: 교장과 교감은 학교에서 필요한가? 202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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