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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다쓰루 롱 인터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0. 2. 17:03
무도가이자 사상가, 이 우치다 다쓰루의 ‘총색인’을 만들어 준 진노 아키토(神野壮人) 씨가 고베 개풍관까지 찾아와, 장시간 인터뷰를 하고 갔다.
2시간에 걸친 인터뷰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전체 내용은 게재가 어려우겠으므로, 이 자리에서 ‘예고편’ 조로 첫머리를 소개해 드린다.
전체를 읽고 싶은 분은 조만간 ‘총색인’ 사이트에 URL이 공개될 것이므로, 이를 기다려 주시기를 바란다.
── 저는 우치다 선생님의 연구자가 아닌, 전도사가 되려고 합니다.
우치다 그런 포지션에 계시는 게 백번 낫습니다.
── 그러므로 이 기회에 여러모로 미숙한 신진으로서, 우치다 선생님께 야단맞을 각오로 논하는 동시에, 또한 팬이 되어 우치다 다쓰루를 전도하고자 합니다.
우치다 연구자와 전도사는 각기 다른 개념입니다. 어설프게 알고 있어도 전도사만큼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쓴 글을 한 줄만 읽고서, ‘이 사람은 이런 걸 말하고 싶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바로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 바를 전도하는 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때 갖고 있는 지식의 양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부디 전도를 이어 나가십시오.
── 감사합니다.
우치다 총색인 작업 하신 것 보니까 엄청나네요. 이거, 한 사람이 할 게 아니라, 모처럼이니만큼 많은 사람들과 협업으로, 인터넷에 위키처럼 했더라면 고생을 덜 하셨을 거란 생각은 드네요.
── 저도 마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까지는 동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우치다 도와줄 만한 인물로는 박동섭 선생 정도가 있겠는데요.
── 맞습니다. 총색인의 상정 독자로는, 대학 시절의 은사님, 우치다 선생님, 박 선생님 이렇게 세 명입니다. 그저 계속해 나가면서 조금이라도 독자가 늘어난다면 그게 제 기쁨입니다.
우치다 아무도 이런 걸 시도할 생각을 못 했으니만큼, 이런 기획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도와드릴게요’ 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거든요.
── 좀 서두르는 감이 있지만, 오늘의 주제로 들어가 볼까 합니다. 우치다 선생님께서는 ‘우치다 다쓰루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선생님 당신을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으실는지요? 이해하기 힘든 질문이라서 죄송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00년 후의 미래로 이동했다고 가정해 주십시오. 우치다 선생님의 눈앞에는, 중고등학생쯤으로 생각되는 미래인이 한 명 있습니다. 이 미래인은 과거에서 온 우치다 선생님이 쓰시는 언어를 이해하는 듯 보입니다. 중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이 있다는 것 역시 판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우치다 선생님은, 미래인에게 선생님의 내력을 밝힐 수 없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내력을 다 털어놓을 경우, 우치다 선생님의 존재 자체가 소멸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미래인에게 ‘우치다 다쓰루’가 쓴 서적을 읽게 하도록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치다 선생님은 어떤 방식으로, 눈앞의 미래인에게 ‘우치다 다쓰루’를 소개하시겠습니까?
우치다 이거 참 까다롭구먼요. 언론 활동을 시작한 게 2001년 정도니까, 20년 좀 넘은 활동입니다. 말인즉 그 이전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야기할 거리가 없다는 겁니다. 일본의 사상사나 언론 역사의 작은 항목으로서 내 이름이 남게 된다면, 아마 몇 줄로 끝맺게 될 겁니다. 어디 보자…. 21세기 초엽에 등장한 저자이며, 전문 분야는 20세기 프랑스의 철학과 문학.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만은 않았으며, 자신이 얻은 지견을 될 수 있는 한 이해하기 쉽게 일반분들에게 설명하는 일을 지극히 우선시해 왔다. 설명하는 사람, 설명가. 이런 느낌일까요?
내가 전문적 지견을 가진 영역은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20세기 프랑스 철학과 문학이에요. 그 다음엔 무도인데, 합기도(이하 아이키도 - 옮긴이)에 거의 한정되는 거기는 하네요. 그다음으로는 오랫동안 교편을 잡고 있었으니만큼, 교육에 관해서는 경험을 바탕으로 논의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여러분과 다를 바 없어요. 한 명의 시민으로서, 가정인으로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부모로서 한, 그런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서는 ‘개인적’이란 한정 조건을 달아 얘기할 수 있습니다.
딱 그 정도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설명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뭔가 좀 모양새 빠질는지도 모르겠지만, 설명을 탁월하게 한다는 건 나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 20세기 프랑스 현대사상이란 게 굉장히 고약합니다. 물론 상당히 고난도의 학문을 다루는 것이니 어려운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걸 학계에서 논하는 글 역시 원체 어렵습니다. 일본에 사는 평범한 고등학생 가운데 예외적으로 지적 향상심이 높은 이가 있다손 쳐도, 그 친구로서는 이건 완전히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인 겁니다. 구사하는 어휘가 너무나 어렵고, 논리가 막 꼬여있으니까요. 내 작업은, 학계와 고등학생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진짜 어렵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는데요, 이걸 꼭꼭 씹어 보면, 결국 이러이러한 말인 거예요.’라는 식입니다. ‘꼭꼭 씹어요 선생님’ 이겠네요.
그래도, ‘꼭꼭 씹어서 떠먹여 준다’는 것과 ‘말을 간단히 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입니다. ‘아~ 그랬던 거구나’라는 식으로 간단히 이해하고 끝내버리면 제 입장에선 당혹스럽습니다. 말을 간단히 만들어 고등학생한테 ‘아는 체’하게 해버릴 목적이 아닙니다. 확실히 어떻게든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끔 또르르 굴러떨어질 말하기 방식입니다만, 애써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알아먹었다’는 식으로 얘기를 끝내버리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내 말을 계기로 그들 가운데 잠재해 있는 ‘배움’이 비롯되어, ‘더욱 알고 싶다’ 하는 기분을 들게 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다리를 놓는 겁니다. 고등학생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한 거나 다름없는 정신의 활동이란 게 이 세상에는 있기 마련입니다. 이때, 그들이 ‘이건 듣도 보도 못한 개념이니까’ 하고 등을 돌리는 일은 정말 바라지 않습니다. 대신에 ‘요거, 우리 학생한테도 무척 상관있을 얘긴데’ 하고 소매를 붙잡으며, 그렇게 다리를 놓는 겁니다. 아무리 어려운 어휘라 하더라도, 막 엉켜있는 논리라고 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여 이해할 수 있는 ‘배움의 주체’로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일은 가능하다는 게, 내 신념입니다. 제발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죠. 몸에 좋은 것이니 먹어 주길 바라는, 그런 교사 기질은 못 버렸습니다. 간절한 마음이 담긴 내 설명에 반응을 보인다 싶으면, 그들을 이끌고 가줍니다. 즉 그들의 지적인 향상심을 자극하고, 현상과 사물의 관점을 넓혀주어, 한 사람 한 사람씩 그들의 지적, 감정적 성숙을 지원합니다. 죽었다 깨나 교육자인 거예요. 도장에서는 합기도 문인을 가르치고, 학교에서는 학생을 가르쳤으며, 책을 쓰는 활동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기회 될 때마다 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꼭꼭 씹어 떠먹여 주듯 설명하는 사람’이자 ‘다리 놓는 사람’이며 ‘교육자’인 겁니다.
── 우치다 선생님을 설명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우치다 다쓰루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람’에게,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설명하면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치다 된통 혼났지요? 나 역시 누가 ‘레비나스는 어떤 사람인지 5분 이내로 설명하시오’ 하라면 못 합니다. 레비나스가 되었든, 다다 히로시 선생님이 되었든, 혹은 알베르 카뮈라든가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사람들이 되었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열렬한 팬이면서, 동시에 전도까지 하고 있음에도 막상 설명해 보라고 하면 잘 안됩니다. 정형적인 말로 때려 맞출 수가 없으니까요. 잘 설명이 안 된다는 것 자체로, 자기가 그 사람들의 제자라든가, 전도사인 이유니까 그렇습니다.
따라서, 말문이 막히는 것 자체는 그다지 문제 될 게 없습니다. 단편적인 사항 정도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이고, 저런 일을 한 사람인데…, 하지만, 이런 설명으로는 이해하시기 어렵겠네요. 죄송합니다’ 정도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바랄 건 없습니다.
위대한 스승을 5분 동안 다 설명할 수는 없는 법 아닌가요? 내가 갖고 있는 ‘판단 척도’로는 그 위대함을 다 잴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사람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 나는 그 사람을 ‘스승’으로 우러르고 있는걸요.
예전에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아이키도 무도가와 수련한 뒤에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이가 직설적으로 내게 ‘우치다 씨는 어떻게 레비나스를 따르는 제자가 된 거죠? 일본인인데도 불구하고요’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대답할 거리가 궁했어요. 일본에는 정말로 그렇게 내놓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거든요. 일본 내의 프랑스 문학 관계자한테 ‘레비나스를 연구하고 있소이다’라고 말하면 ‘아, 레비나스요. 정말 어려운 분야에 계시군요’ 정도로 얘기가 끝납니다. 그 이유는 일본 학계 내부에서 레비나스의 철학사적 자리매김이 대체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문가와 마주했을 때 ‘왜 당신은 레비나스를 연구하는가?’와 같은 개인적인 질문이 오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평소에 질문받았던 적이 없었던, 그것도 이탈리아 사람에게 별안간 ‘일본인이자 비 유대교도인 당신이, 어째서 레비나스 연구를 하기로 작정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으니만큼 말문이 막힌 겁니다. 진짜로 설명할 수 없었어요. ‘60년대 일본 고등학생은 대개 프랑스 문화를 사모했었지요’ 같은 말로 서두를 뗐지만서도, 애당초 그게 레비나스와 어떻게 연결된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프랑스어로 대화가 이루어졌으므로 잘 표현할 말이 안 떠올랐겠거니 했습니다만, 상대가 일본어로 물어봤어도 마찬가지였으리란 걸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 대답이 잘 안 나와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쉬이 설명할 수는 없어도, 어찌 됐든 이 사람을 스승으로 우러러, 평생 따르기로 결심한’ 거니까요. 다다 선생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령 아까 그 이탈리아 사람이 아이키도인으로서 ‘어쩌다 다다 선생님 도장에 입문하셨소?’라고 물어도 대꾸할 수 없었을 겁니다. ‘어느 저물녘 맥주 마시러 나와서 걸어가다가, 지유가오카 역 남쪽 출구에 있는 유도 도장과 마주쳤는데….’ 라고 말머리를 꺼낼 수는 있을지언정, 아무래도 ‘어째서 그게 다다 선생님이었는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해줄 수 없었을 겁니다.
── 우치다 선생님께서는, 고 하시모토 오사무 소설가를 설명의 천재로 드신 바 있습니다. 또한, 하시모토 오사무로부터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로, ‘개성은 설명을 통해 발현된다’는 탁견 역시 말씀하셨습니다. 우치다 선생님께서는, 하시모토 오사무라는 설명가를 설명해야 한다는 곤란한 작업에 착수하셨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우치다 다쓰루라는 설명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치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일 것입니다. 그건 솔직히 말해서 내가 ‘내용물 없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용기[うつわ]’와 같은 사람입니다. 일종의 ‘타파웨어’입니다. 어쩌면 ‘히트 파이프’입니다. 안쪽에 뭔가가 흘러 다니는 ‘수도관’ 같은 인간인 겁니다. 여기 레비나스라는 위대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단한 생각을 읊고 있다는 사실을 내 몫의 파이프를 통해 흐르도록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기 다다 선생님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의 무도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나는 선생님의 경지에는 죽었다깨나도 미치지 못하지만, 선생님의 가르침이라는 샘을 내가 가진 ‘표주박’으로 길어 올리는 딱 그만큼만 전할 따름입니다. 나는 ‘지나는 길’입니다. ‘술이부작(쓰되 짓지 아니함)’이라는 말을 내가 종종 하는데, 바로 그겁니다.
따라서, 나에 대한 설명이 어려운 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우치다만의 오리지널한 아이디어’ 같은 건 없으니까요. 내가 쓰는 글은 전부 ‘대리점 위탁 판매’입니다. 나는 있죠, 거대한 지자(知者)의 말을 소분해서, ‘여러분 이거 잘 써주세요’ 하고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랍니다. 그러한 의미에서의 전도사입니다. 팔찌 같은 사람이라구요.
고리 된 자로서 가장 중요한 건, 스승의 거대한 예지를 자기 사이즈로, 쌈지 구멍 조이는 것처럼 줄여버리지 않는 겁니다. 통의 직경에는 한도가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부단히 노력해 실물 크기의 통로가 되고 싶어도, 반드시 스승의 가르침을 토막 친다든지, 감축시키는 사태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무슨 무슨 ‘론’을 논하지 않기로 정해두었습니다. ‘론’이 되고 보면, 숫제 내 오리지널한 생각이 되어버리니까 말입니다. 정녕 그렇게 해야지만 연구 실적에 끼워주기 마련이니까요. ‘조술[祖述]’ 따위는 아무리 많이 써내도 학술 논문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는 여실히 ‘조술자’일 뿐, ‘연구자’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레비나스에 관해서는 이제까지 책을 세 권 썼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은 ‘레비나스 론’이 아닙니다. 레비나스 선생님이란 분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가르치려 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개인적인 레비나스 이해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레비나스 텍스트를 번역한 것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번역 또한 역시, 어지간한 부분까지는 번역자의 해석입니다. 옮긴이란 ‘의미를 알 수 있는 곳’은 옮길 수 있어도, ‘의미를 모르는 곳’은 옮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번역 또한 감축 행위입니다. 옮긴이의 국량에 따라 번역문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나의 ‘레비나스론’은 그런 의미에서 번역과도 같은 것입니다. 레비나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마 그게 맞을 겁니다, 아닐지도 모르지만요. 이런 식입니다.
따라서, 내가 레비나스를 주제로 쓴 글에는 학문적인 독창성이 존재치 않습니다. 굳이 레비나스를 연구한다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우치다라는 인물에 대해 인터뷰해 보아도, 아마 다들 그렇게 말할 겁니다. ‘우치다 씨의 번역만큼은 선구적인 업적이지만, 정작 레비나스에 관해선 독자적인 학설이란 걸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 양반은 노상 침이 마르도록 레비나스를 찬양하는 이에 불과하니까요’라고들 할 겁니다.
레비나스 연구자는 전 세계에 모르긴 몰라도 수천 명이 있지만,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쓴 책을 읽지 않습니다. 일본어로 쓰여 있으니 당연하지요. 한국어가 있긴 하네요. 근데 영어나 불어로는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지구상에 있는 레비나스 연구자 거의 대다수는 내가 쓴 책을 읽지도 않으며, 심지어 내 이름조차 모를 겁니다.
일본의 ‘레비나시앙’을 놓고 보더라도 내 번역이나 레비나스책을 읽고서 레비나스에 흥미를 느끼게 된 사람은 있을지언정, 내 레비나스 ‘론’에 학술적 흥미를 품은 사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그 사람 책은 으레 초심자들이 보는 입문서라서’ 같은 평가밖에 없을걸요? (이어짐)
(2024-09-18 12:36)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한 걸음 뒤의 세상』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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