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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췌독) 꼭 맞춰 놓은 듯한 우리 사이
    인용 2024. 6. 5. 17:21

    『논어(論語)』에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하지 않다”고 했고, 또한 “이름이란 실상의 드러남()이다”라고 했다. (…) 아아 양국이 ‘동()’자를 사용한 것이 부절(符節)과 같은데, 어찌 하늘이 일찍이 합방의 근본을 정하고 양국 인사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동합방론』 66~69.

     

     

    늘 그렇듯이, 우리는 일상의 경제적 거래들이 어떤 식으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지만, 알고 있는 것만을 근거로 할 때, 작은 규모의 거래에도 주화가 쓰인 것은 대부분 이방인들과의 거래였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중국 현지의 가게 주인들과 상인들은 신용을 확장했다. 대부분의 회계는 부절(符節)이라는 막대기로 이뤄졌던 것 같다. 영국에서 사용된 것과 놀랄 정도로 비슷했다. 개암나무가 아니고 대나무였다는 것만 달랐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채권자가 액수를 새긴 부절의 반쪽을 갖고, 채무자가 다른 반쪽을 가졌다. 그러다 나중에 상환할 때 두 개의 반쪽을 서로 맞추었다. 부채 상환이 이뤄진 뒤에 보통 부절을 파기했다. 부절은 어느 범위까지 양도가 가능했을까?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잘 모른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정보는 다른 것들에 관한 텍스트에서, 말하자면 일화나 풍자, 시 등에서 얻은 단편적인 것뿐이다. 한나라 때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도교의 지혜를 담은 위대한 저술인 『열자』(列子)에 이런 내용이 보인다.

     

    길을 걷다가 부절 반쪽을 주운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그걸 집에 갖고 가 잘 보관하면서 갈라진 면에 자국이 몇 개 새겨져 있는지 남몰래 세어 보았다. 그런 다음에 그는 이웃에게 “난 언젠가 부자가 될 거야.” 라고 말했다.

     

    이 사람은 열쇠를 주워 놓고 “이것과 맞는 자물쇠를 찾기만 하면 부자가 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과 비슷하다. 또 다른 이야기는 술을 좋아하던 지방 장수로 장래 한나라를 세우게 될 유방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밤새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아 주막에 외상을 엄청나게 많이 달아 놓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서 주막에 쓰러져 있는 동안에 주막집 주인이 그의 머리 위에 용이 맴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건 그가 장래에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암시였다. 그 순간 주막집 주인은 즉각 “부절을 부숴버리고” 그의 외상을 모두 탕감해주었다.

     

    부절이 융자에만 쓰였던 것은 아니다. 온갖 종류의 계약에 두루 쓰였다. 초기에 종이 계약서를 반으로 찢어 양 당사자가 반쪽씩 소지했던 것도 부절과 다르지 않다. 종이 계약서의 경우에 채권자가 가진 반쪽이 차용 증서의 역할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양도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중국 불교가 전성기를 누리던 A.D. 806년에 차()를 남쪽 끝 지역에서 수도로 수송하던 상인들과 세금으로 거둔 돈을 수도로 옮기던 관리들은 장거리 이동에 따르는 위험을 걱정하며 수도의 금융가들에게 돈을 예금하면서 어음을 발행하는 시스템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이때 어음은 “비전”(飛錢)이라 불렸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부절처럼 반으로 나뉘어졌으며, 은행의 지방 지점에 가면 현금으로 바꿀 수 있었다.

     

     

    (484~485)

     

     

    중세의 화폐가 그처럼 추상적이고 가상적인 형태(수표, 부절, 종이돈)를 취했다는 사실은 이런 질문들(“화폐가 상징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이 그 시대 철학적 이슈들의 핵심을 이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같은 사실이 “상징”(symbol)이라는 단어 자체의 역사에서만큼 확실히 드러나는 곳은 없다. 여기서 아주 놀라운 유사점들이 확인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화는 단순히 사회적 관습이라고 주장했을 때, 그가 사용한 단어는 ‘심볼론’(symbolon)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symbol’을 낳은 단어이다. 그리스어 단어 ‘심볼론’은 원래 ‘부절’(符節)을 뜻하는 단어였다. 계약이나 합의 사항, 또는 부채를 기록한 뒤 반으로 쪼개서 쌍방이 한쪽씩 가졌다는 그 부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단어 ‘심볼’은 거꾸로 부채 계약을 기록하기 위해 반으로 쪼갠 그 물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다. 그러나 정말로 놀라운 것은 “상징”을 뜻하는 현대의 중국어 단어 ‘符’ 또는 ‘符號’도 그리스어와 거의 똑같은 기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어 단어 ‘심볼론’부터 보도록 하자. 두 친구가 함께 식사를 즐기다가 어떤 물건을, 이를 테면 반지나 동물의 뼈, 도자기 조각 같은 것을 반으로 쪼개는 경우에 하나의 심볼론을 창조할 수 있다. 그러다가 미래의 어느 때라도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들은 언제라도 우정을 상기시키는 증표로 그 반쪽을 갖고 올 수 있었다. 인류학자들은 아테네에서 이런 종류의 우정의 증표를 수백 점 발굴했다. 점토로 만든 것이 많았다. 훗날 그것이 계약을 보증하는 방법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심볼론은 계약의 목격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 단어는 또한 모든 종류의 증거에도 쓰였다. 아테네의 배심원들에게 표결에 참여할 자격을 부여한다는 뜻의 증거물이나 극장 입장권에도 그런 표현을 썼다. 또한 돈을 뜻하는 단어로도 쓰였다. 문서를 뜻하는 의미로 쓰일 때, ‘심볼론’은 여권, 계약서, 영수증 등에 쓰였다. 이를 확대하면, ‘심볼론’은 예시, 조짐, 징후,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상징을 의미할 수 있다.

     

    그 단어는 두 갈래로 변천을 계속하다가 최종적으로 상징을 의미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 모든 것이 부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부절이 어떤 물건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이라곤 반으로 쪼갤 수 있는 물건인가 하는 점뿐이었다. 언어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단어들은 우리가 어떤 대상이나 사상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는 음성이다. 그러나 음성과 그 대상 또는 사상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어느 동물을 일컫기 위해 굳이 ‘dog’, 신을 일컫기 위해 ‘god’을 선택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전혀 없다. 다른 음성으로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유일한 이유는 사회적 관습이다. 어떤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 물건은 이런 소리로 부르자는 식의 동의가 중요할 뿐이라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모든 단어들은 동의를 거친 자의적인 상징들이다. 물론 돈도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우리가 어떤 금액만큼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다루자고 동의한 무가치한 동전들뿐만 아니라 모든 화폐, 심지어 금까지도 하나의 심볼론, 즉 사회적 관습일 뿐이었다.

     

    (…)

     

    앞에서 설명한 그리스어 사전의 내용과 중국어 사전을 비교해 보자.

     

    符’: 동의하다, 부절을 새기다. 부절의 두 반쪽.

     증거; 신분 증명서, 자격 증명서

     약속을 이행하다, 말을 지키다

     화해하다

     천명(天命)과 인간사 사이의 상호 일치

     부절, 수표

     황제의 인장

     면허장, 위임장, 신임장

     딱 들어맞는 부절의 두 반쪽 같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상징, 신호 …

     

    그리스와 중국어를 보면 두 단어가 진화해온 과정이 거의 일치한다. 심볼론처럼, ‘符’도 부절, 계약, 공식 인장, 면허장, 여권 또는 신임장이 될 수 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두 단어는 동의, 부채 계약, 심지어 봉건 시대 봉신의 관계까지 뜻할 수 있었다. 훗날 국가들이 더욱 중앙 집권적인 형태로 바뀜에 따라, 관리들에게 지시 사항을 하달하는 수단으로 부절을 건네는 예가 많아졌다. 황제가 중요한 명령을 전하기를 원하는 경우에, 사자(使者)에게 부절의 오른쪽 반쪽을 함께 보내 그 명령을 받는 관리로 하여금 그것이 진짜 황제의 뜻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 식으로 반으로 쪼갰다가 나중에 서로 붙이는 부채 계약의 종이 버전에서 종이 화폐가 탄생한 과정은 앞에서 이미 살핀 바 있다. 당연히, 중국 이론가들에게도 돈은 단순히 사회적 관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급진적으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돈이 될 수 있었다. 여기서도 ‘符’가 “천명과 인간사의 상호 일치”를 뜻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관리들이 황제에 의해 임명되는 것과 똑같이, 황제는 종국적으로 보다 높은 권력에 의해 임명되었으며 또 그 권력의 명령을 따르는 한에서만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상서로운 징조가 ‘符’로 불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늘이 통치자를 승인했다는 신호였다. 이것은 자연 재해가 통치자가 타락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 것과 똑같다.

     

    여기서 중국의 사상이 기독교 사상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러나 우주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에 결정적인 차이가 한 가지 있었다. 중국의 사상에 현재의 세계와 그 너머의 세계 사이에 절대적인 심연(深淵) 같은 것이 있다는 내용이 전혀 없기 때문에, 신들과의 계약적 관계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중세 도교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거기서는 수도자들이 천상과의 계약을 상징하는 종이를 반으로 찢는 의식을 거치게 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 공부를 한 사람이 스승으로부터 받는, ‘符’라는 부적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은 글자 그대로 부적이었다.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한쪽을 갖고, 다른 반쪽은 신들이 갖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부적에는 도형이 그려지고, 신들만 이해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천상의 글이 적혔다. 이 신들이 부적을 소지한 사람을 돕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부적들은 또한 디오니시우스의 심볼론처럼, 명상의 대상이 된다. 명상을 통해 사람의 정신은 우리의 세상 그 너머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게 된다.

     

    중세 중국에서 나온 시각적 상징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음양의 상징이다. 음양의 상징들을 보면 쉽게 왼쪽과 오른쪽이 부절의 반쪽으로 상상된다.

     

     

    부절은 증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두 짝이 딱 들어맞으면, 누구나 두 계약 당사자 사이에 합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것을 단어들을 빌려 설명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단어 A가 개념 B에 해당한다면, 거기엔 우리 모두 A라는 단어를 B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있기 때문이다. 부절에 관한 놀라운 점 한 가지는 비록 그것이 우정과 유대의 증표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거의 모든 예들에서 양 당사자가 실제로 창조하기로 동의한 것은 불평등한 관계였다는 점이다. 부절을 통해 부채나 의무, 또는 다른 존재의 명령에 대한 복종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물질 세계와 그 물질 세계에 최종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더욱 막강한 세계의 관계를 설명하는 비유로 부절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두 쪽은 동등하다. 그럼에도 그 조각들이 창조하는 것은 절대적 차이이다. 따라서 중세의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에게 상징들은, 중세의 중국 마술사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천국의 조각들일 수 있었다. 비록 상징들이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에겐 인간과 소통이 불가능한 어떤 존재를 이해하는 언어가 되고, 중국인 마술사들에겐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가진 존재들과 상호 교류하고 심지어 계약까지 맺는 길을 열어주었을지라도 말이다.

     

    어떤 차원에서 보면, 이것은 우리가 부채를 통해 세상을 다시 상상하려고 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딜레마의 또 다른 버전이다. 그 딜레마는 바로 동등한 두 사람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는데, 그 후로는 두 사람이 다시 동등해질 때까지 절대로 동등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그 문제는 경제가 ‘영성화한’ 중세에 특이한 모습을 띠었다. 금과 은이 성소(聖所)로 옮겨짐에 따라, 일상의 거래들은 주로 신용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불가피하게, ()와 시장에 관한 논쟁은 부채와 도덕에 관한 논쟁이 되었으며, 부채와 도덕에 관한 논쟁은 이 우주에서 우리가 서 있는 위치의 본질에 관한 논쟁이 되었다.

     

    (533~539)

     

     

    (이상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부채, 5, 000년의 역사 : 인류학자가 고쳐 쓴 경제의 역사』,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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