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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독) 수불석권, 위편삼절, 남아수독 오거서인용 2024. 5. 29. 23:58
예를 들면 책을 읽지 않으면서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심한 근시이기 때문에 책을 얼굴 근처까지 가져오지 않으면 글자를 읽을 수 없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입으로 밥을 운반하는 젓가락과 책이 부딪친다. 어쩔 수 없이 책을 잠시 멀리 두고 음식을 입안으로 집어넣은 다음 황급히 책을 끌어당긴다. 1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견딜 수 없이 긴 무위의 시간이다.
화장실에서도 반드시 책을 읽는다. 화장실 문을 열고 화장실에 비치해 둔 ‘전용 책’을 힐끗 보고 ‘앗 이거 아까 다 읽었는데’라는 생각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른다. 그러면 황급히 책장으로 달려가서 화장실 안에서 읽어야 할 책을 찾는다. 그런데 나는 참지 못하기 직전까지 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화장실 문을 연 시점에서 항문 주변은 이미 긴급사태를 맞이하여 “10초 뒤면 이 배는 폭파됩니다. 9, 8, 7……”의 카운트다운 상태에 들어간다. 그 긴박한 상황에도 책장에 가서 화장실에서 읽어야 할 책을 찾는다. 마치 영화 『에이리언』에서 셔틀 탈출 직전에 우주선으로 돌아가서 고양이를 찾는 리플리의 심경과 같다. 적합한 책을 손에 넣으면 그대로 도망치는 토끼처럼 화장실로 달려간다. 무사히 배설과 독서를 마치고(소요 시간 30초) 다시 책상으로 돌아간다. 읽어야 할 책이 없는 30초가 나에게는 무한한 무위의 시간이다.
전철에서도 반드시 책을 읽는다. 도중에 다 읽어 버렸을 때의 절망감을 고려해서 잊지 않고 예비용 책도 한 권 챙긴다. 역에 도착하고 나서 가방 안에 읽을 책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절부절못하다가 약속 시간에 늦을 각오로 근처 서점으로 뛰어 들어가 ‘전철에서 읽을 책’을 구입한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때 책에 몰입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느긋할 수 있다면 빈핍하다고 부르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원고도 쓴다. 종종 책 읽기를 멈추고 책을 손에 든 채로 입을 반쯤 벌리고 허공을 응시한다. 몇 분이나 응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책에 나오는 한 줄의 내용에서 촉발된 굉굉히 소용돌이치는 망상이 뇌 안의 텍스트 파일에 기록되는 상태이다.
-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서가의 앞뒤 이중으로 책을 넣고 복층 계단 밑과 화장실 입구에도 서가를 만들었지만 그래도 책이 마루와 책상 위를 다 덮어 버립니다. 택배가 오면 책을 발로 차면서 계단을 내려가고, 손님이 오면 책 위에 쟁반을 얹어서 차를 대접합니다. 이 지경이다 보니 점점 책에 대한 경의가 사라져 가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대하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학원에 다니고 조교를 했던 무렵에는 제 소유 서가를 둘러보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운이 좋지 않으면 책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화가 나고, 당장 급하게 찾아야 하는 내용이 든 책이면 너무 초조해져서 그만 인터넷 서점에서 사 버립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책을 발견하곤 아까워서 발을 동동 구릅니다. 때때로 집을 방문한 손님이 서가를 올려다보며 책이 도대체 몇 권이냐고 묻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서가에 있는 책 중 80~90퍼센트는 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다들 놀랍니다.
자신이 읽지 않은 책은 ‘가시화된 자신의 무지’이기 때문이죠. 나이도 들고 어느 정도 사회적 위신을 얻은 사람은 그만 자기 평가가 물러집니다. 자신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겸허함이 사라집니다. 새로운 것을 배울 의욕도 감퇴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귀찮아집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 ‘남들이 싫어하는 녀석’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구조적인 일이므로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마도 그 좋지 않은 점을 훈계하기 위해 문득 올려다본 곳에 읽은 적 없는 많은 책의 겉표지가 눈에 들어오는 ‘장치’가 고안된 것이 아닐까요. 읽지 않은 책은 우리에게 이렇게 고합니다. “너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저자의 이름도 모른다. 이러한 지적・예술적 영역이 있는 것조차 모른다. 급기야 알지도 못한 채 죽을 것이다. 네 무지를 부끄러워해라.”
-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처음 듣는 이야기』 (강조는 인용자)
어원: 일본어 츤도쿠는 “물건을 쌓아두다”라는 뜻의 츤데오쿠(積んで置く), “읽다”라는 뜻의 도쿠(讀)의 한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다. 이 혼합어가 19세기 후반 처음으로 인쇄물에 등장했을 때는 일종의 운율을 사용한 말장난 정도였고, “읽을 거리를 사놓고 쌓아둔다.”고 느슨하게 번역된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읽을수록 자신들의 무지를 인식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들의 책장을 단순히 트로피 진열장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미들마치」가 존 디디온이 어디선가 추천했으나 여전히 책등이 빳빳한 책 세 권과 더불어 안 읽은 책을 내려다보게 하라. 언젠가 그들의 때가 올 것이다. 레바논계 미국인 학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말하지 않았나. “서재는 재력만큼 자신의 무지도 담고 있다. 그러니 그곳에 놓아두는 걸 허하라.”
츤도쿠는 무지할 자유를 내포하기에 즐거운 말이다. 독서를 과제가 아닌 길 없는 숲을 지나는 여정으로 여긴다. 그래서 운이 좋으면 우리는 이번 생에서 여러 자아를 갖고, 단순히 기쁨만이 아닌 많은 감정을 가장 깊은 곳까지 경험할 것이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은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수필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읽지 않은 책 컬렉션을 “반(反) 서재”라고 말한다. 그는 「블랙 스완」에서 이렇게 썼다. “알면 알수록 읽지 않은 책이 많아진다.”
- Asher Ross, 「삶 속의 단어: 츤도쿠」, 『킨포크』 32호, 디자인이음, pp. 20.
同春堂 宋先生 書籍 借人 人或還之 而紙不生毛 則必責其不讀 更與之 其人 不得不讀之.
동춘당 송선생(송준길)이 서적을 남에게 빌려줌에 남이 혹시 그것을 돌려주었으나 종이에 보풀이 생기지 않았으면 반드시 그가 읽지 않음을 꾸짖고 다시 그것을 주었으니 그 사람이 그것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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