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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치다 타츠루는 대체 누구 지지자냐?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 31. 23:58

    우치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리버럴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언론에서 우치다 선생님을 ‘리버럴 지식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십 년 이상 선생님이 쓰신 거의 모든 저작을 홀린 듯이 읽었을 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 인터넷 언론 등의 매체에 기고하셨던 문장을 읽고, 또한 선생님께서 출연하신 라디오 방송 등을 듣고 있는 자 된 처지에서, 우치다 선생님을 ‘리버럴 지식인’으로 간단히 못 박는 건 좀 잘못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를테면 선생님의 ‘교육론’ 등에서 “학교 교육은 타성이 강한 제도이며, 사회 변화에 즉각 대응해서는 안 된다.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사회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라는 식의 구절을 곧잘 마주치게 됩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교육’에 관한 지견은 명백히 ‘보수적인’ 사고방식이지요.

     

    그런 문제의식을 품던 중에 요 며칠 전 나카지마 다케시 씨가 쓴 『「리버럴 보수」 선언』 이라는 책을 열독하였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우치다 선생님은 어쩌면 ‘리버럴 보수 지식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에서 ‘리버럴 보수’란,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가지는 욕구나 욕망을 배려하는 것뿐만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사회적 경험지’와 “관습이나 사회제도를 매개로 해서 전해져 온 역사의 『잠재적 영지』”(33)에도 귀를 기울인다는 지견과 조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저번에 ‘도쿄 도나리마치가배’에서 열렸던 만화가 야스히코 요시카즈 씨와 선생님 사이의 대담을 원격으로 보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는 거기서 “나는 일본 열도에서 나가고 싶지 않고, 신토불이 먹거리가 없으면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으며, 평소 스스로를 『천황 주의자』로 대고 다니거니와, 『곤도 세이쿄 론』도 최근에 쓰고 있으니 명백한 우익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서 놀라는 동시에 조금 혼동이 왔습니다.

     

    우치다 선생님이 평소에 말씀하셨던, ‘어른’은 시스템 차원에서 최적 선택을 하기 위해 ‘나’를 결코 고정화하지 않는다는 지견을 염두에 두고는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선생님께서는 몸소 ‘군자표변’*을 실천하시기 위해 그런 행보를 보여주시는 것은 아닌지요?

    (* “표변”이라는 단어의 출전은 ‘주역(周易)’의 혁괘(革卦). 표범의 무늬가 가을이 되면 아름다워진다는 데서 비롯함.- 옮긴이)

     

    현대의 많은 한국인(일본인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봅니다만)은 ‘리버럴’이나 ‘보수’ 그리고 ‘우익’이나 ‘좌익’ 같은 말의 진짜 의미를 잘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한국이나 일본의 TV 같은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정치 세계를 언제나 ‘보수 vs 리버럴’ 사이의 싸움이라고 굳게 믿는 것 같습니다.

     

    이 기회에 우치다 선생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리버럴’, ‘보수’, ‘리버럴 보수’ 그리고 ‘우익’ 등의 정의를 한국 독자에게 전해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도 일본에서는 어지간해서 받기 힘든 질문이군요. 저는 과연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인 걸까요?

     

    그건 사실 저조차도 잘 모르는 겁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익이니 좌익이니 하는 건 프랑스 혁명 때 헌법제정 국민 의회에서의 의석 배치에서 유래합니다. 옛 질서 유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의장석에서 봤을 때 오른쪽 자리에, 체제를 혁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왼쪽 자리를 점한 데서 비롯된 용어입니다. 이후 그때그때 체제에 따라 현상유지파가 우익, 현상 혁신파가 좌익으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시대마다 ‘현상’이나 ‘체제’는 바뀌므로, 그것을 유지하는 사람, 쇄신하려는 사람 머릿속 내용도 바뀝니다. 결국,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분류는 어떤 특정한 사회를 얘기할 때만 분류 지표로 기능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20세기 초반에, 인습적인 좌익・우익 구분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극우’와 ‘극좌’가 서로 동맹을 맺겠다는 정치적인 움직임입니다. 프랑스의 세르클 프루동(Cercle Proudhon)이 그 대표 사례입니다. 정치적 입장이 어떻든, ‘싸우는 자/싸우지 않는 자’ 사이에 본질적인 대립이 존재한다는 새로운 정치사상입니다. 애초에 정치 사상이 우익이든 좌익이든, 진짜 애국자라면 국력 증대・국운 흥륭(興隆)・국민 행복을 그 목표로 할 것이 분명하다는 겁니다. 그 목표가 같기만 하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이나 운동을 어떤 정치적 사상에 기초지을지는 각자 자유로이 하라는 식의 사고방식입니다.

     

    실제로 1920~30년대 대전간기 프랑스에는 왕당파라는 극우 정치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극에는 공산당에서 뛰쳐나온 좌익 과격파가 있었습니다. 이들 사이에 ‘동맹’이 실현된 것이지요. 이들 모두 기성 우익이나 좌익에서 파생된 ‘분파(dissident)’ 자들이었습니다. 집단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분파가 꼭 필요하다’라고, 당시 왕당파에서 분파해 나온 모리스 블랑쇼라는 사람이 필사적으로 주장했습니다.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왕년에 석사 논문을 모리스 블랑쇼 문학 이론에 관해 썼습니다. 동시에, 블랑쇼의 정치사상에도 줄곧 흥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주장했던 ‘분파’ 주의에도 깊이 공감했습니다. ‘분파’는 그 자체로 그가 개진했던 문학 이론과 동형적인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말해주는 통견(洞見)* 처럼 제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 환히 내다보는 것. 또는, 속까지 꿰뚫어 보는 것. - 옮긴이)

     

    그래서 제 정치적 입장을 정녕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저는 ‘분파’라고 대답하고자 합니다.

     

    저는 마르크스에 관한 글을 정말 많이 썼습니다. 그래서 저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이를테면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는 모두 다섯 권 시리즈인데,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부터 『자본론』에 이르기까지 그 문헌을 해독(解讀)해서, 젊은 독자들 보고 ‘제발 마르크스 좀 읽어 주십사’ 간청하려는 취지로 쓴 책입니다. 이 책을 함께 쓴 이시카와 야스히로 교수는 마르크스를 정통적인 방식으로 연구하는 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하거니와, 현실 일본공산당에서도 브레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르크스주의자(Marxiste)가 아닙니다. 마르크스가 담지하고 있는 사상이나 사고방식, 수사법에는 깊은 경의를 품고 있지만,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닙니다. 일찍이 제 스승이신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 유대인 리투아니아계 프랑스 철학자 - 역주)께서는 “마르크스 사상을 마르크스의 용어로 말하는 자가 마르크시스트(Marxiste)이지, 마르크스의 사상을 자신의 어휘로 말하는 자는 마르크시앙(Marxien)이라고 해야 마땅하다”라는 독특한 정의를 내리셨던 적이 있습니다. 이 정의를 따른다면, 저는 ‘마르크시앙’입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정통’적 관점에서 보면 영락없는 ‘이단’이며, ‘분파’겠지요.

     

     

    저는 일본을 대표하는 우익 논객이자, 이제는 돌아가신 스즈키 구니오 씨와 친분이 있었으며, 대담도 했고, 책도 두 권이나 같이 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겟칸닛폰』이라는 우익 잡지에도 자주 기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우익’으로 인정해주는 사람은 기성 일본 우익 중에서는 아마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야, 저는 천황제와 입헌민주주의라는 그야말로 빙탄 불상용(氷炭不相容)* 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통치 원리가 갈등하는 게, 일본인이 정치적 성숙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출전은 『초사』라고도 하고 『한비자』라고도 한다 – 옮긴이)

     

    그 이로(理路)에 대해서는 『마치바(街場)의 천황론』에도 상술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와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은 좌익에도 우익에도 아마 전혀 없겠죠.

     

    일본 좌익은 천황제를 ‘원리적으로 말해서, 폐지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우익은 입헌민주주의를 ‘원리적으로 말해서, 폐지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양측 어느 쪽에도 찬동하지 않습니다. 저는 ‘원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조건으로서 일본에 천황제와 입헌민주주의가 동시에 주어진 이상, ‘주어진 (곤란한 - 옮긴이) 역사적 환경 속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할 따름입니다. 저는 그런 프래그매틱*한 입장입니다. ‘천황제와 입헌민주주의를 공생시키기’란 건, 일본의 특수한 정치 과제입니다. 당연하게도 일본인을 대신해 ‘이렇게 하면 돼’라는 식의 처방을 내려주는 사람은 이 세상을 샅샅이 뒤져봐도 없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일본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의 좌익과 우익 가운데 그 누구도 이러한 ‘일본의 특수한 정치 과제’를 놓고서 목숨 걸고 씨름하려는 기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제가 하는 수밖에 없잖겠습니까? 이게 제 생각입니다.

     

    천황제를 애틋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체면도 세워주고, 입헌민주주의를 애틋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심정도 배려해 주면서, 뭔가 중간 지대가 될 만한 지점을 찾자는 겁니다.

    (* pragmatic: 형용사 ➀《칭찬하여》 실리[실용, 실제]적인. ②〔철학〕 실용[실리]주의의. ③ 국정의, 내정의. ④〈사람이〉 분주한; 활동적인. ⑤ 간섭하는, 참견하는; 독단적인; 완고한; 자만한. - 옮긴이)

     

     

    제가 드린 말씀이 너무 어렵게 다가오나요? 제가 미국이란 나라를 얘기할 때 마르고 닳도록 소개해 드리는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가지 대립하는 통치 원리가 갈등하는 가운데 250년을 지내왔습니다. 건국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왔습니다. 페더럴리스트(연방정부 권력집중)와 안티-페더럴리스트(주洲정부 권력분립)가 대립하면서 비롯한 남북전쟁을 거쳐서, 오늘날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양당 대립에 이르기까지, 대립의 구조는 항상 똑같았습니다. 자유냐 평등이냐, 란 말이죠.

     

    시민적 자유에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는 길을 택하면 강자가 독식을 하고, 약자는 비참한 죽음에 이르는 무자비한 경쟁사회가 됩니다. 사회적 격차는 그저 확대되는데 사회적 유동성은 잃게 되면서, 국력은 쇠미(衰微)합니다.

     

    평등을 택하면 공권력이 시민의 사유 재산 일부를 거둬들이는데, 삶의 방식에 이래저래 간섭을 하게 됩니다.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동질적인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데, 이에 능력 있는 인간이나 독창적인 인간 모두 설 자리를 잃게 되면서, 국력은 쇠미(衰微)합니다.

     

    따라서 한쪽만 택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자유냐 평등이냐’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 모두’라는 곤란한 공생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곤란한 과제를 떠안으면서 미국은 국력을 키워나갔고, 결국 세계에서 제일가는 초 패권국가 자리에 등극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미국이 쇠운(衰運)하는 까닭은, 대다수 미국 시민이 이런 곤란한 과제를 능히 떠안을 만한 시민적 성숙을 차차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날 미국이 범국민적 차원으로 분단되어 있는 까닭은, 미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 원리 가운데 한쪽에만 서로서로 각자 목을 매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원리를 그럼에도 모두 존립시킬 방도를 찾으려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미국은 국력이 쇠미하면서 글로벌 리더를 자처하던 그 지위에서 나가떨어지겠지요.

     

     

    저는 일본인이 ‘천황제’와 ‘입헌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통치 원리가 자아내는 갈등을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황제’ 단일 원리 측 사람이 보면 저는 (자기네들 친구가 아니니까) ‘좌익’으로 보일 거고, ‘입헌민주주의’ 단일 원리 측 사람이 보면 (역시 자기네들 친구가 아니니까) ‘우익’으로 보일 겁니다.

     

    저한테 정치적인 표 딱지를 붙이려고 드는 사람들은 제 정치적 입장을 애써 설명해 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자기네들이 고집하고 있는 정치적 입장이 바로 이것이라오 하고 고백(告白)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좌익’으로 불리든, ‘우익’으로 불리든 전혀 상관 안 합니다. 각자 갖고들 계신 고정된 입장에 따라 그렇게 보일 따름이니, 제가 뭘 어떻게 해드릴 도리가 없는 법이지요. 열심히들 떠들어보세요. 입만 아플 겁니다.

     

    야스히코 씨한테 제가 ‘우익이다’라고 말했던 건 도발적인 의도로 말씀드렸던 겁니다. 저는 천황제 존속을 지지하는 입장이고, 일본 전통 무예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하라이’ 의식과 폭포 수행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매일 저희 집 아래층에 있는 도장으로 내려가 어디 신사 같은 데서 들을 법한 주문을 외고, 약 백년 전 일본 극우 사상가 곤도 세이쿄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이러니 좌익 관점에서는 ‘완전한 우익’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완전한 우익’임에 틀림없는데도, 맑스를 절찬하는 책을 쓰고, 선거 때마다 일본공산당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지원하기도 하며, 상호지원 상호부조 공동체를 재건코자 하는 아나키즘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익’은 일본 어디에도 없습니다.

     

    저는 ‘우익’이니 ‘좌익’이니 하는 고정적 정치 원리를 ‘고집하는’ 것 자체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이게 ‘분파’를 표명한 제 의지입니다.

     

    분파자(‘주의’가 아님에 유의 - 옮긴이)라는 건, ‘나는 좌익도 우익도 아닌걸’ 하고 내빼는 게 아닙니다. 잘 알아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정반대입니다. 나는 동시에 좌익이면서, 또한 우익이기도 하다’입니다. ‘나는 동시에 천황주의자이며, 입헌민주주의자이다’라는 말입니다. 압니다. 복잡하고도 곤란한 정치적 과제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인이 정치적으로 성숙하려거든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독자로서는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울 이야기라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회가 된다면, 차후에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2024-01-14 10:41)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정당을 바꾸는 사람은 배신자, 변절자, 최악에는 배교자가 된다(과거에 종교를 버린 자는 죽임을 당했다). - 나심 탈레브

     

     

    가령 공정 무역 커피를 주문하고 동성애자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나가는 꽃마차를 후원하는 사람 좋은 자유주의자도 실제로는 권력 구조와 세상의 부정의에 어떤 중요한 방식으로도 도전하지 않고, 결국은 다른 차원에서 그런 것을 재생산할 뿐이다. (…) 성인인 척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짜증스러운 존재이니 이 점을 상기시켜 줘야 한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 <불쉿 잡>, 332~333, 강조는 인용자.

     

     

    그러다 4학년이 되면 머리를 짧게 깎고 미쓰비시 상사니 TBS니 IBM이니 후지 은행이니 하는 좋은 기업에 들어가서는 마르크스 같은 거 읽어 보지도 않은 귀여운 마누라를 얻어서 아이한테 폼 나는 이름을 지어 주는 거야. - 무라카미 하루키

     

     

    제가 아는 한 일단 유대의 결점을 찾으려는 연구자는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을 순수한 마음으로 칭송만 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뭔가를 ‘긍정적’으로 논하는 경우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다음이 있습니다. ‘이 이후에 얼토당토않은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파헤치는 데 자신의 일생을 걸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유대에 관한 연구를 하다 보면 언젠가 보상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연구를 하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는다’는 확신과 같은 마음가짐은 다른 영역의 연구자에게서는 별로 볼 수가 없습니다.

     

    자연과학의 최첨단에는 때때로 있습니다. 일본유대학회 연구자를 보고 있으면 뭔가 그것에 가깝다는 것을 느낍니다. 모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지요. 그리고 아주 상냥하고 따뜻합니다, 유대학회 사람들은.

     

    학회가 정말로 연구 공동체라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눈앞이 아득해질 정도로 엄청나게 넓은 연구 대상이 실제로 눈앞에 있으면 모두 역할 분담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술 발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있으면 무엇이든지 사용하자고 (…) 자신이 식음을 전폐하고 평생 연구해도 끝까지 규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 이 들 만큼 연구 대상의 깊이를 실감하고 있다면 연구공동체는 온화함이 넘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 우치다 다쓰루, <배움엔 끝이 없다>, 363~367.

     

     

    나는 열일곱 살때, 휴가 중 알게 된 한 젊은 벨기에인 사회주의자ー그는 지금 벨기에의 대사가 되어 외국에 주재하고 있다ー를 통해 처음으로 마르크스주의에 접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책을 읽는 것이 내 마음을 무척이나 사로잡았기에, 나는 그 위대한 사상을 통해 칸트로부터 헤겔에 이르는 철학의 조류에 처음으로 접촉하게 되었다.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그 모습을 온통 드러내었다. 그때 이래로 나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으며,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나 『정치경제학 비판』의 한두 페이지를 먼저 다시 읽음으로써 나의 사고에 활기를 부여받고 나서야, 사회학이나 인류학의 문제를 해결하려 들고는 한다.

     

    내게는 마르크스가 어떠어떠한 역사적 발전을 바로 예견하였는지 못했는지를 아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 루소에 이어 결정적으로 보이는 형태로 마르크스가 내게 가르쳐주었던 것은, 물리학이 감각의 여건에서부터 출발하여 체계를 세운 것이 아닌 것처럼 사회과학도 사건들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회과학의 목적은 하나의 모델을 설정하여 그것의 특성과 그것이 실험실에서의 테스트에 반응하는 갖가지 방식을 검토한 후, 이어서 그 관찰 결과를 경험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석ー예견했던 바와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ー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170~171. (박옥줄 역 2012년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