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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인간이라면…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인용 2024. 1. 16. 22:54
“적어도 인간이라면…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선 삶이란 공허할 뿐이야. 살아 있으면서 왜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는 거지? 학은 왜 날아오를까? 아기들은 왜 태어날까? 별은 왜 하늘에서 빛날까? 그들은 왜 살아있는 걸까? … 나는 알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의미가 사라져 버릴 테니까. 바람에 나부끼는 먼지처럼!”
인간의 태반은 예견도 회록(回錄)도 하지 않고 순간적인 생활을 보낼 따름이다. 당장의 육체적 필요가 인간의 마음 전체를 점령하는 것이며, 그 점 동물과 별차가 없다. 보통의 인간이 개나 고양이와 다른 점은 주로 개나 고양이보다 미래의 일에 눈을 돌린다는 데 있다. 그러나 ‘원죄’ 설에 의하면 인간이 비전 능력을 상실한 것은 실생활을 걱정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여 버리기 때문이다. 적어도 위대한 종교가들이 해석하는 원죄설이란 그런 것이다. 예수는 유태인에게 말했다. “벌어 쓰는 데 너무 시간을 소비하지 말고 들에 피는 백합꽃을 보도록 하라”고.
나는 무엇일까? 이것이 아웃사이더의 마지막 문제다. 인간이란 정녕 무엇일까? 인간이란 부르주아적 타협물이다. 다시 말하면 중도의 여인숙이란 뜻이다. 그러면 어디로 향하는 중도의 여인숙일까? 초인이 그 목적지일까? 초인은 결코 니체의 기상(奇想)이 낳은 괴물이 아니라 성자나 정신개혁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과 같은 욕구에서 발현된 정당한 시적 개념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위대한 인간은 자기의 이상을 연출하는 사람이며, 훌륭하게 연출하려면 자기가 연출할 역할을 확실히 파악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똘스또이의 단편에 나오는 광인이 마차 속에서 악몽에 신음하다가 잠을 깨어 “나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느끼게 되었을 때, 그때는 초인 혹은 성자나 천재 예술가에의 길이 일시적으로 차단된다. 실체라는 문제가 길 앞에 가로놓였던 것이다.
“저는 출세를 못한 평범한 남자입니다. 군대를 관뒀지만 별 다를 바가 없군요. 그래도… 일을 하려고 합니다. 평생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해보고 싶습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의식을 잃고 침대에 쓰러지는 거죠. 아… 노동자란 이토록 푹 잠드는 존재구나.”
그러면 지능이 할 일이 무엇이냐고 하면, 그것은 끊임없이 종합하는 일이다. 아웃사이더는 대부분의 인간을 실패자로 보고 있다. 아니 지금까지 태어난 모든 인간은 남김없이 실패자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반형의 인간은 “자기를 실패자라 보지 않게 살려면 어찌할 것인가” 하는 의문에 전 지능을 다 쏟는다. 이와 같이 높은 수준을 마련한 결과 날마다 이 문제에 마음이 사로잡혀 티끌만한 여가도 없어져 박차가 마음을 치갈기는 듯한 끊임없는 긴장감과 절박감에 신경이 조각조각나 버린다. 그는 기준을 찾아 더듬는다. 그는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저 사람을 실패자라고 부르자면 성공이란 무엇인가를 내가 알고 있어야만 한다.”
가령 고도(孤島)에 큰 섬이 있어서 거기엔 탈출할 수 없는 지하옥이 있다고 하자. 간수는 수인(囚人)의 탈옥을 막기 위한 모든 장치를 갖춘 연후, 가장 중요한 최후의 예방책을 마련한다. 즉 수인들에게 최면술을 걸어서 그들과 감옥은 일체(一體)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수인 하나가 자기가 자유를 원하고 있음을 깨달아 그것을 딴 수인에게 말하자, 모두들 놀라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말인가? 우리는 곧 이 섬이 아닌가 말이다”고 말한다. 이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아웃사이더가 깨달은 것은 바로 자기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다. 성내를 두루 조사하여 그 약점이 되는 곳을 추측하고 혼자서 탈출 계획을 짜내야 한다. 따라서 최면 상태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수인이 최초로 풀어야 할 의문은 당연히 “나는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다.
(…) 그러나 사고(思考)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간수의 최면술에 걸려 꼼짝못하는 사고이기 때문이다. (…) 표도르 도스또옙스끼의 생애에는 전기(轉機)라 할 만한 급격한 체험이 여러 번 있었다.
(* 이상 콜린 윌슨 <아웃사이더>)
(** 이탤릭체는 안톤 체호프-하마구치 류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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