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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적 참배자 또는 연인의 정신 상태
    인용 2024. 1. 6. 20:01

    1975년 무렵 도쿄대학 본 캠퍼스의 은행나무 길을 걸을 때 친구로부터 “우치다, 앞으로 일본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앞으로 일본은 무도와 종교 시대가 될 거야”라고 대답한 기억이 납니다. (우치다 다쓰루, 『배움엔 끝이 없다: 우치다 선생의 마지막 강의』, 박동섭 옮김, 358.)

     

     

    〔그가 수도 없이 읽고 또 읽고 또한 되풀이하여 되뇌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는 구절이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과학의 신전에는 수많은 저택이 들어서 있다. . . . 그리고 그 저택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은 진실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며, 그들이 이곳에 거주하게 된 동기 또한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이 뛰어난 지적 능력에 대한 희열감 때문에 과학을 선택한다. 그들에게 과학이란 그들 자신의 특별한 오락물로, 생생한 체험과 야망의 만족을 위해 그들은 이 오락물에 눈길을 준다. 한편, 다른 부류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이 신전에서 발견되기도 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을 이 신전의 제단에 바치되 순전히 실리적인 목적을 위해 그렇게 한다. 만일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이 두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을 몽땅 신전 밖으로 쫓아낸다면, 신전은 눈에 띄게 텅 빈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몇몇 사람들이, 현재의 사람들과 과거의 사람들 몇몇이 신전 안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 . . 만일 방금 추방했던 부류의 사람들이 신전에 있던 유일한 사람들이라면, 신전은 결코 존재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마치 나무가 없이 오로지 곤충들만으로 이루어진 숲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 . . 천사가 호감을 보이는 사람들은 . . . 다소 묘한 구석이 있고, 좀처럼 말이 없으며, 고독한 친구들이다. 천사에게 거부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비슷한 것과는 달리, 그들에게서는 서로 비슷한 구석을 정말로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이 그들을 신전으로 인도했는가에 대해서는 . . . 간단하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 . . 고통스러울 정도로 조악하고 절망적일 정도로 따분한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한 사람들도 있고, 자신의 변덕스러운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한 사람들도 있다. 섬세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시끄럽고 북적대는 환경에서 벗어나 고산 지대의 정적에 파묻히고자 하여 과학의 신전을 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고요하고 맑은 대기 속으로 자유롭게 눈길을 주기도 하고, 또 애정의 마음을 가득 지닌 채 명백히 영겁을 견디도록 세워진 것이 틀림없는 평화로운 산의 자태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이 구절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을 지닌 독일의 젊은 과학자가 1918년에 행한 연설에 나오는 대목이다.

     

    (…)

     

    이런 종류의 일을 하도록 어느 한 인간을 유도하는 정신 상태란 종교적 참배자 또는 연인의 정신 상태와 유사한 것이다. 나날의 노력은 그 어떤 고의적 의도나 프로그램에서 나오지 않는다. 다만 마음에서 곧바로 나올 뿐이다.

     

    (…)

     

     

    〔가설을 세우는 과정은 과학적 방법의 전 과정에서 가장 의문스러운 과정이다. 가설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어딘가에 앉아서 자신의 일에 몰두해 있다고 하자. 그러다가 갑자기 번개처럼 이제까지 이해하지 못하던 무언가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자. 가설은 테스트를 거치기 전에는 진실이 아니다. 하지만 이 경우가 암시하듯 테스트가 그 출처는 아니다. 가설의 출처는 다른 어딘가에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에 맞춰 세계를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그림으로 바꿔놓으려 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린 이 같은 우주를 체험의 세계와 어느 정도 대체함으로써 체험의 세계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다. . . . 그는 이 우주와 이 우주를 세우는 일을 자신이 영위하는 정서적 삶의 중심축으로 만드는데, 이는 개인적 체험이라는 가파른 소용돌이 속에서 발견할 수 없는 평화와 고요를 찾기 위한 것이다. . . . 최대의 과제는 . . . 순수한 연역을 통해 자신의 우주를 세울 때 이에 필요한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법칙에 도달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법칙에 이르는 그 어떤 논리적 길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직관ー체험에 대한 교감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싹트는 이 직관ー을 통해서만 그러한 법칙에 이를 수 있을 뿐이다. . . .

     

     

    〔직관이라니? 교감이라니? 과학적 지식의 근원을 설명하기 위한 말이라고 보기에는 수상한 것들이 아닌가.

     

    아인슈타인에 비해 급이 떨어지는 과학자라면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지식은 자연에서 온다. 자연이 가설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자연이 가설을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연은 단지 실험 데이터만을 제공할 뿐이다.

     

    급이 떨어지는 과학자라면 또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그런가? 그렇다면 가설을 제공하는 것은 인간이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 또한 부정한다. “이 문제에 정말로 심각하게 부딪혀 본 사람이라면, 비록 현상과 이론적 원리 사이를 연결해주는 가교(架橋)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현상 세계가 고유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론적 체계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

     

     

    〔과학적 방법의 목적이 무수한 가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다면, 하지만 실험 방법이 다룰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가설의 숫자가 증가한다면, 명백히 모든 가설을 다 테스트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만일 모든 가설을 다 테스트할 수 없다면, 어떤 실험의 결과도 잠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학적 방법 전체가 증명이 완료된 지식을 확립하려는 자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진화 과정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어느 한순간을 기준으로 해서 보든, 상정 가능한 수많은 잠재적 구성물 가운데 어느 하나가 나머지 다른 것들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함을 항상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더 문제 삼지 말자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입장이다. 하지만 파이드로스가 보기에 그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허약한 답변이었다. “어느 한순간을 기준으로 해서 보든”이라는 구절이 그에게 정말로 대단한 충격을 주었다. 정말로 아인슈타인이 진리는 시간의 함수(函數) 가운데 하나라는 뜻에서 그런 진술을 한 것일까? 만일 그런 뜻으로 진술했다면, 이는 모든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인 시간을 초월한 진리에 대한 믿음 자체를 무효화할 수도 있다!

     

     

     

    로버트 피어시그,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가치에 대한 탐구』, 장경렬 옮김, 202~208.

    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 An Inquiry into Values by Robert M. Pirsig (1974)

     

    (* 이 장章에서 인용되고 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글은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60회 생일을 기념하여 1918년 베를린에서 행한 연설문인 「과학 연구의 원리Principles of Research」에서 나온 것임. - 원주)

    (** 인용자는 윗글에서 부득불, 로버트 피어시그의 내레이션을 꺾쇠괄호 안에 두었음. 방점으로 표기된 대목을 볼드체로 하였음.)

     

     

    (*** 『선과 모터사이클~』은 제가 십수 년 전 트위터에서 어떤 분으로부터 소개받았다는 사연이 있습니다. 그런 만큼 아무쪼록, 이분의 신간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AI 시대에 인간의 의미 찾기』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 오길비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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