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우치다 다쓰루의 기적 같은 프랑스어
    인용 2023. 12. 14. 13:28

    고베여학원대학에서는 프랑스어, 프랑스문화론, 프랑스문학을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흐르고 보니 '무엇을 하든 질책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철학, 기호론, 영화론 등으로 가르치는 분야를 점점 넓혀갔고, 급기야는 합기도나 지팡이를 쓰는 무술[杖道; 봉술 - 인용자]을 정규 과목으로 가르치는 '체육 선생'까지 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도쿄도립대학에서 조교로 일할 때는 가나가와(神奈川)의 대학과 고엔지(高円寺)의 입시 전문학교에 시간강사로 나가 프랑스어를 가르쳤습니다.

     

    특히 입시 전문학교에서 대학 입시를 위한 프랑스어를 가르친 경험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당시 대다수 대학의 외국어 입시 과목으로는 영어 이외에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자동으로 같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사립 중고등학교 중에는 프랑스어를 6년간 가르친 곳도 있기 때문에 영어보다 프랑스어를 더 잘하는 수험생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이고, 대다수는 편입 수험생이었습니다.

     

    대학의 학부나 학과를 바꾸기 위한 편입 시험 과목은 대개 소논문과 외국어뿐입니다. 편입생이란 야간 대학에 입학했지만 2학년부터는 주간 대학으로 옮기고 싶은 대학생입니다.

    영어 시험을 치면 좋겠지만, 웬일인지 자기들이 영어를 병적으로 못한다는 의식이 있는 그들은 프랑스어를 선택합니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프랑스어를 잘할 리 없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문법 규칙은 영어와 프랑스어가 거의 비슷하고, 발음과 철자는 프랑스어가 좀 더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중1부터 고3까지 6년 동안 영어를 공부하고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학생들에게 4월부터 1월까지 10개월동안 ABC부터 시작해 시험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이끌어갈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습니다. 참말입니다.

    외국어 학습은 본래 천천히 반복해 외워서 익혀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시간이 없으면 그렇게 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 급히 서둘러 문법 기초만 가르치고 여름방학부터 입시 문제를 풀어가는 '속성 프랑스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보니 순조롭게 잘 풀렸습니다.

    합격자가 속속 나오다 보니 입시 전문학교에서는 2, 3년 후부터 내 수업에 '우치다 다쓰루의 기적 같은 프랑스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결국 입시 전문학교에서는 10년이나 가르쳤는데, 마지막에는 도쿄대학 합격자까지 나오더군요.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수업 방식을 무척이나 연구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때 단지 문법 규칙이나 단어를 통째로 외우게 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이고, 언어의 본질을 본격적이고 학술적으로 설명하는 편이 학생들의 빠른 이해를 돕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관사란 어떤 세계관의 산물인가?', '상(相, aspect; 전통 문법에서 동사가 지닌 동작의 양태나 특질 등을 나타내는 문법 범주의 하나. 동작의 완료를 나타내는 완료상, 동작의 진행을 나타내는 진행상 등이 있다. - 역주)'이란 어떤 시간 의식이 있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가? 하는 언어의 근원부터 설명하면 학생들이 빨리 이해해줍니다.

     

    겨우 10개월 만에 특훈으로 '중학교 시절부터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학생들이 프랑스어로는 긴 문장을 읽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그들이 원래 어학 능력에 문제가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어도 적절한 방식으로 가르친다면 실력이 우수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학교는 공부를 강요함으로써 '영어라면 질색하는 사람'을 만들어냅니다. 이 같은 현실을 전문 입시학교에서 깨달았습니다.

     

    - 우치다 다쓰루, 『어떻게든 되겠지』, 김경원 옮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23, 116~119쪽.

     

     

    「예를 들면 덜 익은 과실은 성숙을 향해 나아간다. 이러한 성숙의 과정에서 과실은 스스로가 아직 한 번도 되어본 적이 없는 존재로서 완전히 성숙한 과실에 이어 붙는 것은 단연코 아니다. 과실 자신이 성숙에 이르는 것이고 게다가 그렇게 성숙에 이르는 것이 과실로서의 그 존재를 규정짓는다. (...) 계속 성숙하는 과실은 자기 자신의 타자인 미숙에 대해서 관계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계속 성숙하면서 미숙한 채로 있다.」

    현존재는 성숙하면서 미숙하다. 성숙을 목표로 하는 한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미숙하며 결코 완숙에 다다를 수 없다. 현존재는 "현존재가 존재하는 한 그때마다 이미 자신의 미완료"다.

     

    이를테면, 프랑스어에는 복합과거와 반과거라는 두 가지 과거 시제가 있습니다만, 이 뉘앙스의 차이를 일본어 화자가 이해하기에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과거시제가 두 가지 있다는 것은, 프랑스어 화자가 시간의 흐름을 '완료'와 '미완료'의 두 가지 상(相)으로 이해하는 특이한 시간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관사 'un'은 이어지는 명사가 구체적인 속성을 갖고 그것이 주지되는 것을 가리킨다. 반면에 'le'는 그렇지 않다. 이 총칭적 정관사는 이른바 거기에 이어지는 명사에 '그물을 치는' 작용을 한다. 던진 그물 안에 잡힐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잡어와 새우가 걸리는 것처럼, 총칭적 정관사가 붙은 명사 안에는 숙지된 것 그리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도 포함된다. un pain은 눈앞에 있는 어떤 구체적인 '한개의 빵'이지만 le pain은 그냥 '빵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지상에 존재한 모든 빵, 앞으로 존재할 모든 빵, 내가 본 적도 만진 적도 먹은 적도 없는 빵도 포함되어 있다.

     

    - 우치다 다쓰루, 『우치다 다쓰루의 레비나스 시간론』, 박동섭 옮김, 갈라파고스, 2023.


    그 무렵부터도 교수에게 좋은 점수를 받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이 제기한 문제의식에 스스로 수긍할 수 있는 답을 얻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따라서 모르는 대목을 '아는 척 한다든지' 어려운 대목은 건너뛰고 아는 곳만 이어붙이는 등 '옹졸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

    졸업논문 점수는 나쁘지 않았는데 프랑스어 실력이 좋지 못해 도쿄대학 대학원에 떨어졌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고마바 캠퍼스에서 지낸 3년 동안(1년은 휴학했습니다) 거의 강의를 듣지 않고 오로지 학생운동과 아르바이트, 그리고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밤을 새워 놀았기 때문에 성적이 좋을 리 없습니다.

    불문과에 진학하고 나서 겨우 책상에 앉아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같은 학년 학생들에 비하면 2년이나 뒤떨어졌습니다. [도쿄대의 학부는 고마바가 예과, 나머지 2년은 본과 생활 - 인용자] 초급 문법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문학작품을 읽으려고 했으니까,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원의 시험 과목은 프랑스어 독해와 작문, 문법, 문학사입니다. 특히 문학사 문제는 실로 편집증적이었는데,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어느 대화를 턱 내놓고는 "이 말을 해석하라" 합니다. 문제에 나온 소설 내용을 외우고 있고, 그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와 주제를 둘러싼 논쟁에 관한 지식이 없다면 한 줄도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사 다 그렇듯 호된 입시 문제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참고서가 나와 있습니다.

    바로 귀스타브 랑송(Gustave Lanson, 1857~1934)의 『프랑스 문학사(Histoire de la littérature française)』(1894년)라는 1,300페이지 분량의 책입니다. 중세부터 현대까지 모든 작가의 대표적 작품을 총망라해 소개하고, 개별 작품의 줄거리, 읽어야 할 곳, 역사적 의의 등을 훌륭한 프랑스어로 기술해놓았습니다.

    랑송 책을 읽고 있으면 원본 텍스트를 읽지 않아도 논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원 수험생이 울며 기뻐하는 참고서였습니다.

    랑송은 명문장가이므로 랑송을 읽고 '중요한 문장'을 뽑아 노트에 베껴 암기하면 문학사 공부와 장문 독해 공부와 작문 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자나 깨나 랑송을 읽고 써서 베끼고 암기하며 2년 동안 시험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도 기초 실력의 부족을 메우기 힘들었기에 1975년, 1976년, 1977년 대학원 입시에 3회 연속으로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습니다.

    그동안은 쉼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했습니다. 가정교사도 하고 번역 [주로 기술번역을 일컫는다. - 인용자] 도 해서 간신히 생활비를 벌고, 나머지 시간에는 오직 방에 틀어박혀 랑송을 공부한 2년이라는 시간!

    옆에서 보면 괴로울 것 같겠지만, 본인은 매우 유쾌하게 지냈습니다.

     

     

    Reading

     

    No aspiring author should content himself with a mere acquisition of technical rules. As Mrs. Renshaw remarked in the preceding article, “Impression should ever precede and be stronger than expression.” All attempts at gaining literary polish must begin with judicious reading, and the learner must never cease to hold this phase uppermost. In many cases, the usage of good authors will be found a more effective guide than any amount of precept. A page of Addison or of Irving will teach more of style than a whole manual of rules, whilst a story of Poe’s will impress upon the mind a more vivid notion of powerful and correct description and narration than will ten dry chapters of a bulky textbook. Let every student read unceasingly the best writers, guided by the admirable Reading Table which has adorned the UNITED AMATEUR during the past two years.

    It is also important that cheaper types of reading, if hitherto followed, be dropped. Popular magazines inculcate a careless and deplorable style which is hard to unlearn, and which impedes the acquisition of a purer style. If such things must be read, let them be skimmed over as lightly as possible. An excellent habit to cultivate is the analytical study of the King James Bible. For simple yet rich and forceful English, this masterly production is hard to equal; and even though its Saxon vocabulary and poetic rhythm be unsuited to general composition, it is an invaluable model for writers on quaint or imaginative themes. Lord Dunsany, perhaps the greatest living prose artist, derived nearly all of his stylistic tendencies from the Scriptures; and the contemporary critic Boyd points out very acutely the loss sustained by most Catholic Irish writers through their unfamiliarity with the historic volume and its traditions.

    Vocabulary

    One superlatively important effect of wide reading is the enlargement of vocabulary which always accompanies it. The average student is gravely impeded by the narrow range of words from which he must choose, and he soon discovers that in long compositions he cannot avoid monotony. In reading, the novice should note the varied mode of expression practiced by good authors, and should keep in his mind for future use the many appropriate synonymes he encounters. Never should an unfamiliar word be passed over without elucidation; for with a little conscientious research we may each day add to our conquests in the realm of philology, and become more and more ready for graceful independent expression.

    But in enlarging the vocabulary, we must beware lest we misuse our new possessions. We must remember that there are fine distinctions betwixt apparently similar words, and that language must ever be selected with intelligent care. As the learned Dr. Blair points out in his Lectures, “Hardly in any language are there two words that convey precisely the same idea; a person thoroughly conversant in the propriety of language will always be able to observe something that distinguishes them.”

    “Literary Composition” by H.P. Lovecraft (First published in the January, 1920 issue of The United Amateur)

    https://biblioklept.org/2013/01/02/h-p-lovecrafts-advice-to-young-writers/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모국어를 습득할 때 경험한 것을 조금 더 작은 규모로 추체험하는 것입니다.

    모국어를 습득할 때 우리는 그 언어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언어'라는 개념조차도 없는 채로) 공기의 파동을 기호로 나누고 빛의 파동을 문자로 파악합니다. 제로에서 세계상을 형성하는 과정이지요. 언어 습득은 기적에 가까운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러나 지금 일본에서 외국어 습득은 오로지 모국어로 분절된 세계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 수평 방향으로 확대하기 위해 유용한 화법으로만 동기를 지우고 있습니다. '토익 점수가 몇 점 이상이면 좋은 일이 생긴다' 같은 공리적 동기로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제가 생각하는 언어 습득법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물론 좋은 일은 많이 있겠지요. 그런데 그것은 외국어 습득이 가져오는 최대의 기쁨과는 다릅니다.

    이십 대의 제가 프랑스어를 학습한 목적은 단적으로 일본어 화자 중에는 그런 논리와 개념을 이용해서 사고하는 사람이 없는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려면 자신의 사고 틀을 일단 괄호 안에 넣어야 합니다.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유아 시절 일본어를 습득한 방법을 매뉴얼로 만들어 두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고생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실용 프랑스어 구사 능력에서는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만 프랑스어 텍스트를 정독하면서 사고 틀을 바꾸었다는 점에서는 깊은 확신이 있습니다. 그 성과는 수치로 이만큼 바뀌었다고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애당초 그런 변화에 볼일이 있는 사람은 저 혼자 뿐이라서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사실 '타 문화 이해'라는 말에는 조금 저항감이 있습니다. 외국어 습득이 가져오는 최고의 지적 달성은 '자국의 문화를 타 문화로 이해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목표 문화'라는 말은 반드시 어떤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의 '국민 문화'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의 원전은 고대 히브라이어와 아랍어와 코이네로 쓰여 있지만 그런 말들을 모국어로 하는 화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영성의 본질을 이해할 사람이 이제 아무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아무도 모국어로 쓰지 않는 언어에도 고유한 문화가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318~322쪽 "타 문화 이해와 외국어 교육-프랑스어 교육 심포지엄 초록")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