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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게 무슨 냄새야?
    인용 2023. 10. 10. 15:55

    1-1. "(...) 여섯 달 동안 나는 빈집을 점거하여 지내면서 1만 2000제곱미터의 땅에 야채를 심어 먹고 살았다."

    1-2. "에릭: (...) 우리 집안에서 대학에 간 것은 내가 처음이었고, 고등교육의 목적에 대해 지독하게 순진했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면 지금껏 보지 못한 기회의 전망이 열릴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 전망 대신 내게 주어진 것은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 KPMG 등의 회사에서 실시하는 대졸자 직업훈련 과정이었다. 나는 그곳에 가지 않고 실업수당을 받으면서 졸업생 자격으로 프랑스와 러시아 소설을 읽으며 여섯 달을 보냈는데, 그러다가 실업수당 센터에서 구직 면담을 받으라고 강요했고, 슬프게도 취직하게 되었다."


    2-1. 이 이야기에서 놀라운 점은 에릭의 일자리를 꿈의 직업이라고 여길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 왜 그랬을까? 에릭은 노동계급 출신(공장노동자의 자녀 정도)의 젊은이였고 대학을 갓 졸업했으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갑자기 '현실 세계'와 충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 에릭을 더욱 미치게 한 것은 자신의 직업이 어떤 목적에 기여하는지 해석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도 없었다. 아직 가족이 없었으니까. 그가 자란 배경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들고 유지하고 수리하는 데서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에, 에릭은 대학에 가고 직업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그런 일을 더 키우고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할 거라고 추측했다.

    (...) 안티 에릭은 그 일자리를 징검다리로 여겼을 것이고, 직업적 발전이라는 프로젝트는 그에게 목적의식을 부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태도나 성향이 자연스럽게 생기지는 않는다. 전문직 집안의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생각하도록 교육받는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배우지 않은 에릭은 그렇게 처신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에릭은 빈 주택을 점거하고 토마토를 기르며 살았다.


    2-2. 레이철: "수많은 사람들이 평생 쥐꼬리만 한 돈을 벌기 위해 지루하고 등골이 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네가 무슨 특별한 사람이라고 지루한 사무 일을 1년도 못 하겠다는 거야?" 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지막 말은 자기 분수를 아는 밀레니엄 세대에게는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공포다. 페이스북을 돌아다니면 우리 세대의 특권 의식과 빌어먹을 일상 노동을 꺼리는 성향을 훈계하는 설교조의 글을 피할 수가 없다, 젠장! "받아들일 만한" 직업을 고르는 내 기준이 합리적인 탓인지, 아니면 어리석은 눈송이 세대같은 "특권 있는 멍청이들"(할머니가 잘 하시는 말이다.) 때문에 생긴 결과인지는 헤아리기 어렵다.

    말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이것은 유독 영국적인(비록 유럽 전역으로 점점 더 번지고 있기는 하지만) 권리-책망의 한 종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국가 보호 정책과 함께 성장한 연장자들은 젊은 층이 자기들도 같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조롱한다.


    2-3. 사도마조히즘적인 권력 역학은 자주 등장한다. (사실 목적 없는 하향식 상황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 것이 등장하지 못하게 하는 명시적인 노력이 행해지지 않는 한, 또는 그런 노력이 행해지더라도 말이다.) 내가 그 결과를 "정신적 폭력"이라 부른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이 폭력은 우리의 문화와 감수성에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젊은이들이 그런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전 세계의 점점 더 많은 젊은 층이 쓸모없는 직업을 할 심리적 준비가 되어 있고, 일하는 시늉을 하는 것에 훈련되어, 다양한 수단에 의해 거의 누구도 의미 있는 목적에 봉사한다고 믿지 않는 직업으로 인도된다.


    3-1. 재산도, 사회적 위신도 변변치 못한 사람에게는 가정이 개인적 위신의 원천이었다. 가정에서 개인은 '대단한 인물'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와 자식을 복종시키고 무대의 중앙을 차지하고 순진하게도 자신의 역할을 자연스러운 권리로 받아들였다.

    사회적 관계에서는 보잘것없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집안에서는 왕이었다. 가정 이외에서는 민족적 자부심(유럽에서는 흔히 계급적인 자부심)도 그에게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 개인이 하찮은 인물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집단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3-2. 이처럼 재산, 명성, 권력의 경쟁에서 패한 자에게는 가정이나 국가, 계급과 같은 '상상의 공동체'가 자아를 보전해 주는 역할을 맡는다. 자아를 상실한 인물에게 자아를 보충하는 장소로 가정이 쓰인다면 그곳은 괴롭힘이 만연하는 위험한 장소가 된다.
    (...) '도덕적 괴롭힘(Moral Harassment)'이라는,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정신적인 괴롭힘에 의한 폭력도 위험성이 높다(...)


    3-3. 부권제 사회에서는 집이 여자의 장소이며 남자는 밖에서 일한다는 구도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집을 지배하기 쉬운 것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자신의 가정을 배우자에게 지배당하며 '도덕적 괴롭힘'을 받고 있는 남성이 집 밖에서 어떤 괴롭힘을 받는다면 괴롭힘의 협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4-1. 어머니는 언제라도 '얼토당토않은 사태'에 대비합니다. '사자에게 습격당해서 잡아먹히는 것'과 같은 사태가 우리 아이에게 일어나는 것을 언제나 걱정합니다. 그럴 때 어쨌든 살아남아 주기를 바랍니다.


    4-2. 1980년대 이후 일본 사회에서는 어머니들까지도 아버지형 '경쟁 우위' 전략을 지향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너무나도 윤택하고 안전한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더 이상 '파국적 상황에서 살아남는'것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도 삶과 죽음에 대한 걱정이 없는 사회라면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 권력을 집중하는 편이 효율적입니다.

    자원은 남아돌고, 굶어죽을 걱정도 없고, 육식 동물에게 잡아먹힐 걱정도 없는 세상. 이제 얼마나 자기 이익을 증대시킬 것인가 하는 쟁탈전만이 부모와 아이의 주요한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쟁사회, 격차사회가 출현한 것입니다. 경쟁사회, 격차사회가 출현한다는 것은 요컨대 윤택하고 안전하기 때문이지요. 가난하거나 위험할 때 사람은, 아니 생물은 경쟁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서로 돕고 협력해서 파국의 도래를 막으려고 하지요.


    4-3. (...) 일단 그렇게 되면 가정은 '공장'이 되고, 아이는 거기서 만들어 내는 '제품'이 됩니다. 각 공장은 생산 공정을 적절히 관리하고 좋은 소재와 우수한 직원을 모아 자신의 공장 제품을 보다 양질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게다가 그것을 시장에 내놓아 높은 가격이 매겨지면 그 공장은 질 높은 제품을 제조하는 우량 브랜드로서 사회적 승인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발상은 설비 투자와 인건비를 신속하게 회수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지요.

    가끔씩 '프레지던트 패밀리'라든지 '닛케이 키즈 플러스'같은 잡지에서 취재하러 오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잡지 어떠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런 잡지는 곧바로 폐간하세요"라고 말합니다(웃음). 이런 잡지들은 '아이를 이용한 비즈니스'를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만을 생각하지요. 어떻게 아이에게 효율적으로 투자해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회수할 것인가만 생각하다가는 역으로 아이들이 여러분을 죽일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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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1. 데이비드 그레이버, 『불쉿 잡 :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 김병화 옮김, 민음사

    2. 야스토미 아유미, 『단단한 경제학 공부 : '선택의 자유'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박동섭 옮김, 유유

    3. 우치다 다쓰루, 『배움엔 끝이 없다 : 우치다 선생의 마지막 강의』, 박동섭 옮김,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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