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Twice Born
    인용 2023. 10. 1. 10:02

    "요즘 학생들 보면 이렇게들 패기가 없어서야 참 걱정이다 싶을 때가 있어. 세세한 스펙 따위 별 상관도 없으니 거기에 목숨 걸고 그러지 말고 큰 꿈을 가져봐."
    "그런데 왜 청년들한테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하는 거죠?"
    내 물음에 H그룹 과장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늙은이들더러 도전 정신을 가지라고 하겠니?"
    (...)
    "저는요, 젊은이들더러 도전하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착취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뭣 모르고 잘 속는 어린애들한테 이것저것 시켜 봐서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보고 되는 분야에는 기성세대들도 뛰어들겠다는 거 아닌가요? 도전이라는 게 그렇게 수지맞는 장사라면 왜 그 일을 청년의 특권이라면서 양보합니까? 척 보기에도 승률이 희박해 보이니까 자기들은 안 하고 청년의 패기 운운 하는 거잖아요."
    "이름이 뭐랬지? 넌 우리 회사 오면 안 되겠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빈정대는 말투로 한마디 내뱉었다.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26~27쪽)

    마지막 이야기는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94학번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 딱 한 그룹만 골라 감사의 말을 전하라면 그 대상은 대학 동기들이다.
    소설을 쓰는 동안 대학 시절을 자주 돌이켜보게 됐는데, 그러면서 과 동기들이 나를 얼마나 잘 대해주고 너그럽게 감싸줬는지 깨달았다. 덕분에 퍽 불쾌한 인간이었던 나는 이제 좀 덜 불쾌한 인간이 됐다.
    (343쪽 작가의 말. 이상 장강명 장편소설 <표백>)


    그러고 보면, 필자가 젊었을 때의 키워드는 '앙가주망'이었다. 굉장히 난폭한 논리이지만 어쨌든, 그 무렵에는 그런 식이었다. 따라서, 필자도 '벌여 봐. 말해 봐. 어떻게 될 지 모르잖아. 이 판국에 잴 게 뭐가 남아 있어, 네놈은. 반론하지 마' 와 같은 무책임한 말을 상당히 거칠 것 없이 학내 이곳저곳에서 했는데, 많은 동창생들 입장에서 필자는 '트라우마 유발자[traumatiser]'였던 것이다(미안해, 사과가 너무 늦어졌는데 괜찮을까). #

    필자는 자신이 ‘싫은 놈’이었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십대가 끝날 무렵부터, 일부러 그렇게 처신해 왔으니 당연하다. 학과에서는 ‘반(反) 우치다 그룹’이란 게 조직되어서, 정기적으로 모여 필자의 험담이 비등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대학 시절에 반 친구로부터 절절한 한숨이 섞인 ‘우치다는 정말 왜 저러고 사는지 모르겠어’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말한 이는 온후하고, 여간한 일로는 남의 험담을 하지 않는 친구였다. 그는 100퍼센트 정직하게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말한 것이다. 필자가 쇼크를 받은 것은, 그때 그의 평언(評言)에 ‘연민’의 뉘앙스가 내포되어 있었던 점이다. #


    수피즘은, 실패밖에는 거듭하지 않아 절망감이 든 상태에서, 그럼에도 알라에 의해 다시금 살아나게 된 '지금'을 받아들여, 자기 인생 가운데 조금이라도 올바름이 있기를 바라는 인간에게 열려 있다. 자신의 내면에서 길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나 넉넉함같은 게 아무것도 없으므로, 누군가를 향해 도(道)를 구하는 것이다.

    특정한 책을 읽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문구로 기도를 올리고, 특정한 수행을 하는 것, 그것만이 수피즘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 그러기는커녕 신을 잊는 것, 의무를 게을리하는 것, 잘못이나 죄를 범하는 것 역시, 이 모든 게 평생을 거쳐 닦아야 할 수피즘의 수도(修道; 수르크)입니다.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