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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럽게 움직이기인용 2023. 10. 1. 08:11
쇠파이프를 들고 헬멧을 쓰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토의했던 학생들은 빈부 격차나 실업에 분노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부모에게 학비를 받아 학창 생활을 즐겼던,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꽤 괜찮은 신분의 학생들이었던 것입니다. 적어도 먹고사는 데 곤란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의 저는 재일 한국인이라는 데서 오는 핸디캡과 울적(鬱積)함으로 고민의 밑바닥에 있었으므로 다소 각성된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차치한다고 해도 저는 학생 반란과는 거리를 두고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반신은 미국 문화에 푹 담그고 있으면서 머리로만 혁명을 부르짖는 학생들. 얼마 후 그들은 썰물 빠지듯 물러나 그토록 비판해 마지않았던 사회로 살길을 찾아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도카니 남겨진 것처럼 당시의 저는 직장도 잡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대학원에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씁쓸한 기억이 있습니다.
(100~101쪽)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한시라도 빨리 '일등국' 대열에 들어설 것을 바라고, 사실 맹렬한 서구화 정책 덕분에 불과 수십 년 사이에 그렇게 되고 있어 다들 들뜬 채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유독 소세키만은 흥을 깨듯이 정신을 차리고 '이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대로 나아갔다가는 큰일 난다"며 위장에 구멍이 날 만큼 세상을 쏘아보았던 것입니다.
불평 무사 계급의 후예나 사회주의자 등을 빼면 당시 일본에서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 문명비평가의 눈으로 소세키를 바라보면,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고등유민'이 무척 마음에 걸립니다. (...) 교육은 받았지만 일정한 직업 없이 호사가(딜레탕트)로서 따분한 나날을 보내는 그들 (...) 그런데도 소세키는 왜 그런 사람들만 주인공으로 삼았을까요. 게다가 당시에는 그들 같은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고도 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이것은 역시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없다'고 주장한 소세키의 말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당시의 국가에 대한 비판 정신, 즉 나는 너희들의 가치관에 부합된 것은 쓰지 않는다, 너희들을 기쁘게 할 만큼 쩨쩨하지 않다는 반골 정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 세상을 둘러보면 실제로 이처럼 지성이 있으며 세상에 대한 비평안도 있고 뜻도 있는데도 집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것 역시 소세키의 선견지명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67~68쪽. 강상중 저 <속 고민하는 힘>)
"한 사회의 사회 경제적 구조는 그 구성원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게끔 그들의 사회적 성격을 형성한다. 그와 동시에 사회적 성격은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구조에 더 확고한 안정성을 부여하는 시멘트로서 작용하든가, 아니면 특별한 경우에는 사회구조를 때려부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이너마이트로서 작용한다."
(에리히 프롬)
"일찍이 하시모토 오사무는 '현명한 사람은 비밀스럽게 움직인다'고 갈파한 적이 있는데, 정말로 그렇습니다."
(우치다 타츠루 <로컬리즘 선언>)
"가장 굳센 두뇌의 소유자라든가 가장 총명한 발명가라든가 사상을 가장 정확하게 인식하는 자는 무명인들, 삼가는 사람들,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que les têtes les plus fortes, les inventeurs les plus sagaces, les connaisseurs le plus exactement de la pensée devaient être des inconnus, des avares, des hommes qui meurent sans avouer.)
(폴 발레리 <테스트 씨와의 하룻밤>. 다치바나 다카시 <뇌를 단련하다>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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