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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세의 전환
    인용 2023. 9. 29. 21:02

    그러다 일본이 윤택해지면서 모두 경쟁하고 자기 이익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지요. 다른 사람의 사정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고 나 혼자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 몰인정한 시대가 된 것은 경쟁에서 져서 사회의 하층으로 떨어진 사람이라도 어떻게든 먹고살 수는 있다는 보증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경쟁에서 뒤처지더라도 목숨까지 빼앗기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리스크 헤지도 생각하지 않고 모든 판돈을 승부에 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중에 있는 돈이 빠듯해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승부를 다투는 거지요. 그런 시대가 쭉 계속되었습니다.
    (...)
    자살률에 관해서는 세계 모든 나라에 해당하는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 중일 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람을 죽이는 일에 바쁠 때는 자신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시에는 어떤 나라도 자살률이 격감합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자살자와 정신질환자가 격감합니다. 전쟁 중에는 정신과 병동도 한산합니다. 상당히 상태가 안 좋은 사람도 전쟁이 시작되면 나아 버리는 모양입니다. (...) 뭔가 희한한 이야기인데요, 자살률이 전시에 내려간다는 것은 평화로운 시대가 되면 사람들은 자살을 하게 된다는 의미지요.
    (...)
    그런데 지금 사회의 정세가 바뀌었습니다. 승부에서 진 사람에게는 더 이상 치고 올라올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닌가, 자칫하면 길거리로 내몰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예외적으로 윤택하고 안전했던 시대가 끝이 났습니다. '무한경쟁(rat race)'은 이긴 자가 모두 갖는 시스템으로, 진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 규칙으로 운영되다 보니 정말로 굶어 죽을 가능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규칙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
    지금 20세의 아이들은 앞으로 60년 정도 살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텐데, 이 아이들은 앞으로 일본이 지금보다 윤택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 않을 겁니다. (2010년 이야기 - 인용자) 하물며 거품경제가 다시 올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일본은 천천히 가난해지고, 활기가 없는 나라가 되어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남겨진 유한한 자원을 어떻게 모두에게 공정하게 분배하고 효율적으로 돌려쓸 수 있을까 쪽으로 지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요. 그것을 저는 조금 전에 '형세의 변화'라고 불렀습니다.
    자원이 빈약한 환경에서 서로 버팀목이 되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생활 원리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를 가능한 한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것이지요. 한정된 자원을 복수의 개체가 나눠 갖기 위해서는 행동 패턴을 바꾸어야 합니다.
    (...)
    지금 젊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그런 방향으로 미묘하게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식으로 이런저런 개성을 가진 '다른 사람과 대체 불가능한' 사람들이 각각의 특기를 살려서 상호 지원, 상호 부조할 수 있는 느슨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느낌이 듭니다.
    이제 싹이 막 트는 중이지만 언젠가 이 사람들이 새로운 공동체의 모델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1980년대에 도쿄에 있었습니다. 그 무렵 제겐 도쿄가 세계에서 가장 싫은 도시였습니다. 도쿄라는 도시가 싫어서 거기에 살고 있는 친구 녀석들도 정말 싫어했습니다. 저도 물론 거기에 있긴 했지만요.
    1985년은 거품경제가 한창일 때였는데요, 다들 기억하고 계신지요? 그해에 고등학교 반창회가 있었습니다. 동급생들은 당시 35세였습니다. 반창회에 20명 정도 모여서 호화스러운 레스토랑에서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두 돈이 많았거든요. 한참을 주식 이야기라든지 부동산 이야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밖에 화제가 없는 겁니다. 35세의 남녀가 주식 이야기라든지 부동산 매매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 거지요.
    "우치다는 주식 안 해?"라는 말을 듣고 "나는 그런 거 안 해. 돈은 땀 흘려 벌어야 하는 거 아냐?"라고 말해서 모든 사람의 실소를 샀습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우치다는 정말로 바보구나. 거기에 돈이 떨어져 있는 게 안 보이는 거야? 그냥 쪼그려 앉아 주우면 되는데, 왜 너는 줍지 않는 거야?"
    그것이 싫다고 말해도 물론 친구들은 알 리가 없지요. "이 녀석은 말이 안 통한다" 하고 모두 저를 무시하고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의 억울함이 뼈에 사무쳐 있습니다. 지금도 원망하는 마음이 남아 있을 정도니까요(웃음). 절대 그런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거품경제 시대가 그립다"라고 말하는 바보가 있는데, 그렇게 인간들이 보기 흉했던 시대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 다시 그런 시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상 <배움엔 끝이 없다> 우치다 타츠루 저, 175~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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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을 화나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약속 하나만 해주십시오. '애엄마가 객장에 등장하면...' 같은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않기로.
    부탁드립니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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