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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똑같은 말만 계속 하는 이유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0. 7. 15:32

    여러분, 이 책 <시민들의 지정학 담론: G2 미국과 중국의 격돌>을 끝까지 읽어주신 점, 감사합니다.

     

    읽고 나니 어떠셨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썩 재밌는 내용이 많다고 느꼈지만, 이와 동시에 ‘똑같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점을 제 자신 교정지를 다 읽고서 실감했습니다.

     

    이 책 안에서도 똑같은 말이 반복되기도 하거니와, 심지어는 제 명의로 나온 다른 저서에 쓰여져 있는 내용이 이 책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겁니다. “근데 이 꼭지는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에서 읽었는데 말야”, “전에 시라이 씨와의 대담집에서 봤는데 말야”같은 말을 독자에게 들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이게 학술 논문이었다면 ‘중복 게재’에 해당됩니다. 금기 사항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은 연구수업 내용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일 수강생들이 발표한 내용을 갖고서 그 자리에서 제가 발언하는 것이므로, 별안간 ‘전국 최초 상연’같은 이야기를 유창하게 꺼내기는 어렵습니다. 아쉬운 대로 ‘전에 한번 했던 이야기’를 실마리로 삼아, 게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이거 전에 어디서 한 이야기이기는 하다’는 점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를 듣는 30명 정도의 수강생들 입장에서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만큼 ‘전에 딴데서 한 번 한 이야기는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는 식의 엄밀한 룰을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어에는 ‘히토쓰 바나시[一つ話]’라는 단어가 있습니다만, ‘언제든 자신만만하게 하는 똑같은 말’을 이릅니다.* 저한테는 그런 게 아무래도 몇 개씩 있습니다. 특히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조리 있게 설명할 때, 돌연 떠오른 비유라든가 구체적인 사례를 활용했더니 설명이 잘 풀렸던 ‘성공 체험’이 있으니만큼, 그런 이야기는 계속 써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 두 번째 뜻은 “여기저기 퍼나르고 싶을 만큼 진기한 이야기” - 옮긴이)

     

    예를 들어보죠. “미합중국 헌법은 상비군을 인정하지 아니한다”는 이야기를 저는 어지간히도 여러 군데에 씁니다. 이 명제가 일본의 개헌론자들-그들의 많은 수가 미국 추종을 ‘현실론’으로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에 대한 유용한 비판 포인트라고 여겨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실제로 이 논건에 대해 ‘자칭 현실주의적 논객’ 분들로부터 단 한 번도 반론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다들 마치 미국에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게 금시초문이라는 듯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고서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면 ‘역시 이 사례가 먹힌 거로군. 건드려서는 안 되는 영역이었던 셈’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는 ‘그러니 끈질기게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으로 대응’하게끔 됩니다.

     

    이게 어쩔 수 없는 겁니다. 똑같은 얘기를 줄창 반복해놓고서는 원고료를 받아먹겠다는 ‘약아빠진’ 짓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효과가 너무 좋은 예시니까 써먹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그 점을 양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내부의 연방주의자와 분리주의자의 대립에 관해서도 여러 차례 써 왔습니다. 독자에 따라서는 ‘야, 또 그 얘기냐’ 하고 이맛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뭐 그러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오늘날 미국의 국민적 분열을 분석할 적에 간과해서는 안 되는 역사적 사실인 겁니다. 뭐니 뭐니 해도 그로 인해 향후 250년에 걸친 미국 통치 원리상의 대립과 국민적 분단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금의 미국 정당정치 대립 현상을 해설할 적에, 저널리스트는 보통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에...’ 와 같은 이야기는 일단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저널리스트가 다루는 것은 ‘NEWs’이기 때문입니다. 특종감이 될 만한 신기함과 속도감이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주요한 가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라는 명제는 ‘주지의 사실’이므로, 뉴스로서의 가치가 없습니다. 가치가 전무한 것을 쓰기 위해 한정된 지면을 할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현재 이러한 정치적 대립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이야기를 쓰지 않습니다. 그냥 안 쓰기만 하면 상관 없겠습니다만, ‘NEWs’만을 읽고서 자신의 교양[literacy]을 쌓아왔던 저널리스트는 결국에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데까지 퇴화하고 맙니다.

     

    저로서도 똑같은 얘기를 몇 번씩이나 반복하는 게 즐거울 리가 없습니다. 미합중국 헌법 제 812항의 내용이나, 연방주의자 대 분리주의자의 사연을 신문 기사로 반복해 접할 수 있는 정보 환경이 애초에 일본 사회에 정비되어 있었다면, 저도 그냥 안심하고서 다른 이야기를 할 거예요. 하지만 어떤 신문을 읽어봐도, 인터넷 뉴스를 읽어봐도, 그런 얘기는 아무도 써 주지를 않는 겁니다.

     

    제가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저를 대신해 그 ‘똑같은 이야기’를 널리 퍼뜨려 줄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건 전도 활동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도사가 저 말고도 잔뜩 있다면, 제 생태적 지위를 바꿔서, 이제까지 아무도 하지 않은 이야기라도 꺼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게 소수파의 괴로운 점입니다.

     

    이상이 ‘우치다 다쓰루는 어째서 똑같은 이야기만 하는가’ 하고 독자 여러분이 궁금해하셨던 의문에 대한 제 입장 표명입니다. 이렇게 해서 <시민들의 지정학 담론> 후기를 갈음하고자 합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교정지를 통독한 뒤 처음 들었던 생각이 ‘똑같은 이야기가 많다’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것을 제외하면, ‘이 부분에 결함이 있다’는 중대한 반성 사항은 일단 지금으로서는 이 책에 없습니다. 앞으로 몇 년 뒤, 이 책에 쓰여진 내용 몇 가지와 관련해 ‘사실 관계 착오’였다는 점이 밝혀진다든지, ‘예측 범위를 크게 벗어남’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경우에는 다시금 반성의 자리를 마련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2023-09-25 08:38)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화하는 세상>, <저잣거리의 한일론> .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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