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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크라이나 정전협정의 조건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0. 5. 16:31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정전(停戰)이 될 가능성 여부에 대한 질문을 모 언론으로부터 받았다. 필자는 국제 정치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다. 필자의 의견은 ‘이발소 정치평론’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상관 없다는 조건으로 아래와 같은 내용을 썼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의 ‘국토 회복’은 러시아 입장에서의 ‘국토 상실’임으로 두 나라는 제로섬 게임 하에서 싸우고 있다. 전력은 서로 비등하므로 어떤 나라가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끝나는 일은 현재 시점에서 일어나지 않을 듯하다.

     

    러시아는 헌법상 영토 할양(割讓)을 인정치 않으므로 러시아 측에게 ‘정전에 이르는 영토적 양보’라는 외교 카드는 없다. 푸틴에게는 군사적 승리 말고는 자신이 벌인 ‘특별 군사 작전’의 출구가 없다. 영토적 기득권을 잃는 형식의 정전은 푸틴의 정권 기반을 위협하며, 이는 곧 실각의 리스크로 이어진다. 따라서, 푸틴은 절대 스스로 양보하지 않는다.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의 ‘굳건한 자세’로 하여금 우크라이나 국민과 서방 세계의 지지를 얻고 있다. 만약 그가 러시아와 물밑에서 협상하고 있다는 정보가 유출된다면 국민은 그에게 실망할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신인(信認)은 젤렌스키가 갖고 있는 유일한 권력 기반이다. 따라서, 젤렌스키 역시 국민의 합의를 갖춘 연후라야 양보를 시도해볼 수 있다.

     

    완전한 교착 상태이다. 만약 상황이 변한다면 그것은 양국의 지도자 둘 중 하나가 어떤 이유로(반정부 운동이나 쿠데타, 혹은 건강상의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우이다.

     

    푸틴은 자신의 지위를 노리는 정적을 거의 완전히 배제해 왔으므로 권력 핵심에 잔존해 있는 인원들은 모두 무능한 거수기들이다. 프리고진과 같은 군사의 문외한이 그 분야에 간섭하는 것과 같은 이변이 일어나는 이유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군부는 전쟁 수행으로 정신이 없고, 치안 당국은 체제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으므로 쿠데타를 일으킬 유인이 없다. 쿠데타 이외의 이유로 푸틴이 권좌에서 사라지는 경우에도, 그 후계자는 외교적 양보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지지를 잃을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젤렌스키의 지지 기반은 국민의 애국적인 기분이다. 따라서, 무언가 중대한 실책을 범했을 경우, 실각할 가능성은 푸틴보다 훨씬 높다. 젤렌스키의 후계자는, 국민과 서방 세계의 전쟁 피로 기분을 고려하여, 영토적 양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로서는 그것이 우선 ‘최상의 시나리오’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전쟁 피로 분위기와 ‘반 젤렌스키 분위기’를 부채질하기 위해 비전투원의 살해나 거짓 정보 공세를 행하고 있을 것이다(그다지 효과를 거두고 있지는 않아 보이지만).

     

    정전 협정의 또 하나의 가능성은 중재자의 등장이다. UN 안보리와 미국은 모두 전쟁의 당사자이므로 적절한 중재자가 될 수 없다. 만약 존재한다면, 그것은 시진핑이 될 것이다. 시진핑이 우크라이나에게 천문학적인 금액의 재건 지원을 약속하는 경우, 우크라이나가 ‘일단 정전을 하고, 중국의 돈을 써서 <다음 전쟁에서는 러시아에 이기는 나라> 만들기에 힘쓰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생색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이런 중재가 성공할 경우, 중국은 미국을 대신해 글로벌리더 지위에 오르게 된다. 따라서 미국은 전력을 다해 중국이 주도하는 조정(調停)을 방해할 것이다. 이변이 일어날 경우, 일본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에 대한 아무 생각도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2023-09-25 08:46)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화하는 세상>, <저잣거리의 한일론> .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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