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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세기의 윤리 - 니체, 오르테가, 카뮈 (우치다 타츠루)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0. 4. 10. 18:18

    출처: http://blog.tatsuru.com/2020/03/02_1756.html

     

     

    <페스트>가 갑자기 매상고를 올리고 있는 터라(2020년 코로나19 유행 시점임 - 역주), 슈에이샤(集英社)의 이토(伊藤)씨가 카뮈론의 옛 원고를 인터넷에 올리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 왔다고는 해도, 이게 정말이지 그대로 올렸다가는 흡족할 만한 퀄리티가 아니다. 이런 때에 하드디스크 구석에서 ‘이런 것’이 나왔다. 아마 1995년쯤 대학 릴레이 강의의 일부로써 ‘20세기의 윤리’라고 3회 정도 담당했던 적이 있어서 이때 만든 노트다. 이게 대학 논문집에는 실렸지만 단행본으로 활자화되지는 않았지 싶다. 카뮈론 부분은 뒤에 손봐서 <망설임의 윤리학>이라는 논문을 통해 같은 이름의 논집에 수록되어 있다. 전반부의 ‘윤리에 대한 사상적 개론’은 학생을 염두에 두고 써서 꽤 읽기 쉽다.

     

     

    1 윤리 없는 시대의 윤리

     

    고베의 초등학생 살인 사건 뒤, 어떤 토크쇼에서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거죠?” 라고 발언한 중학생이 등장해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어쩌면 그 중학생은 그때까지 이 질문에 대해 납득할 만한 답을 해 준 어른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리라. 그만큼 이 질문은 ‘근본적’인 물음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이 마침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즉시 그를 설득할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다. 아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물음은 돌아다니는 것이 당연한 질문이라고 우리들은 생각한다. 사춘기 소년이 그것을 묻는 것은 정신의 성장에 지극히 건전한 것이다. 물론, 그 물음에는 쉽게 답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의 책임이라는 차원에서 잠정적인 해답을 짜낼 수밖에 없다. 자력으로 이 대답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회에 있어서는 일종의 ‘통과의례’에 상당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경험적으로 말해서, 그 물음에 대한 온당한 대답은 어쨌든 ‘그렇게 하기로 되어 있으니까’ 라는 것이다.

    인간 사회는 우리가 평화적으로 공존해 나가기 위해 여러 제도를 정비해 왔다. 언어나 친족제도나 화폐는 이를 위한 만들어진 장치이다. 이것이 어떤 ‘기원’으로 유래하였는가는 가설(仮説)로밖에 대답할 수 없다. 왜 인간은 분절 음성(分節音声)을 언어로 사용하는가? 왜 인간은 집단을 만들었는가? 왜 인간은 ‘물건’을 교환하는가? 이러한 질문에는 ‘그런 걸로 정해졌다’ 이외의 답을 할 수 없다.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 것이 어른의 태도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중학생의 물음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부도덕하다’고 압살하는 것에 나는 반대한다. 그것은 ‘윤리란 무엇인가?’ 라고 하는 물음에 대해 ‘그런 물음은 윤리적이지 않다’고 답하는 것과 같은 난센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라는 것은, 아마 좀 더 근원적인 윤리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의논을 진행하기에 앞서, 우선 ‘윤리’라는 술어의 뜻을 확정해 두고 싶다. 윤리란 ‘이것을 하지 말라, 그것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선악의 항목을 열거한 ‘카탈로그’가 아니다. 윤리란, 그런 ‘카탈로그’ 를 ‘그때마다 결정한 프로세스 그 자체’이다. 문법 용어를 빌리자면, 성문화된 도덕률이 ‘결정된 것’이라고 할 때, 윤리란 ‘결정함’이라는 동사형이다. 이를테면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하는 준칙 그 자체는 윤리가 아니다 (그것은 윤리를 매개로 해서 사후적으로 정률(定律)된 것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라고 자신에게 묻는 것, 그런 사고의 운동을 이 논고에서는 ‘윤리’로 부르기로 한다.

    우리들은 중대한 결정을 앞에 두고 대부분의 경우 주저하며 헤맨다. 왜냐하면 ‘해야 하는 것, 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한 망라적인 카탈로그의 결정판’이 우리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학에서 어떤 것을 진실이라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상위의, 좀 더 포괄적인 진실(‘공리’로 불리는)에 의한 근거를 대야 한다. 그러나 착함과 나쁨, 옳고 그름, 잘잘못에 대해서 만인에 보편적으로 타당한 ‘공리’인 것은 없다.

    일찍이 ‘천상의 존재’가 강림해 모든것을 온통 뒤덮는 ‘성스러운 하늘’을 형성했던 시대가 있었다. 행동 규범은 ‘신’으로부터 우리들에게 절대명령 즉 ‘계시’라는 모습으로 주어졌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석가는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달았고, 마호매트는 히라 산 동굴에서 알라의 계시를 받았다. 그들이 이해한 ‘최초의 말’은 절대적인 진실이라, 인지에 의한 의혹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이 ‘계시’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면 인간이 조우할 수 있는 모든 사례를 예측해 ‘해야만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망라적인 카탈로그를 작성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유대교의 경우, 행동규범이 ‘...할 것’ 248개, ‘...하지 말 것’ 365개, 도합 613개 조항의 망라적 계율에 의해 ‘카탈로그화’되어 있다. 물론 아무리 고대라고는 해도 613개의 조항으로 온갖 케이스를 망라할 수 있을 리가 없기에, 계율만으로 판정하기 어려운 다툼이 일어나면 랍비들이 어떠한 조문해석에 의해 끝을 보는 논의체 협의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결의론’의 전문가가 있어서, 복수의 행동규범 사이의 모순이 있는 경우 결정에 대해 의논을 이어간다.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결투에 응해야만 하는가, 살인하면 안 된다는 계율을 좇아야만 하는가’ 라는 난제에 대해서는 신학자가 생각해 준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학이 가능하려면 ‘계시’라는 진실성의 최종적인 보증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신’이 살아있는 시대에는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라는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십계명에는 확실히 ‘너는 살인하지 말지어다’ 라고 정해놓았고, 불교에서도 5계(살생, 투도偸盗, 사음邪淫, 망어妄語, 음주)의 서두에 살인을 금지를 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는 ‘계시’나 ‘계율’을 갖고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이 거의 설득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의 시대는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의 카탈로그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다. 그렇기는 하나, 그것은 윤리가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신 없는 시대, 계율 없는 시대여도 우리들이 구체적인 결단의 장에 설 때마다 착함과 나쁨, 옳고 그름,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들은 일을 키워버렸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망라적인 카탈로그가 있던 시대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모든 인간들이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카탈로그가 없는 시대에도 거의 확실히 모든 인간이 야만적일 리가 없다. 현대에 있어서 윤리란 형태가 있는 규범이 아니고, 그런 실체가 있는 규범을 희구하는 격한 욕구, 혹은 ‘규범을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는’이라는 통절한 책무의 감각이라고 하는 운동적인 모습을 지니며괴로워하고 있다. 그런 감각이 통절한 것인 한, 이 ‘윤리 없는 시대’를 ‘뛰어나게 윤리적인 시대’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 항상 가능하다고 우리들은 생각한다.

    우리들은 앞에서 현대에 있어서의 윤리란 ‘결정함’이라는 동사형이라고 썼다. 같은 얘기를 알베르 카뮈는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다.

    “나의 흥미는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지 아는 것에 있다. 더욱 엄밀하게 말해서 신도 이성도 믿지 않을 때의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 것에 있다.” (1)

    아래의 논고에서는 주로 유럽에서 일어난 윤리의 변천을 더듬어 가며 현대 윤리 문제의 시급한 주제인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해답을 제시해 볼까 한다.

     

    2 계시는 언제 그 효력을 잃었는가?

     

    신의 계율이 그 효력을 결정적인 방법으로 잃었던 것이 언제였는가, 그것이 사상사에는 분명히 새겨져 있다. 신의 죽음을 확인한 것은 프리드리히 니체이며, 그것은 1882년의 일이다.

    신은 자연사하지 않았다. 살해당한 것이다. 인간들이 ‘신’이라고 하는 윤리의 근거를 말살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과격한 말 탓에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그 사망선고는 정말로 무질서한 세계를 만들어내 세계를 혼돈에 빠트리기 위한 악의에 의해 등장했을 리 없다. 니체는 신과는 별개로, 신보다 더 견고한 기반 위에 윤리를 뿌리내리고자 한 것이다.

    ‘신은 죽었다.’ 중세 이래, 유럽의 문명을 유럽인들의 세계관, 그 일상의 판단과 경험의 모습을 결정적인 방법으로 규정한 크리스트교가 그 지배적인 영향력을 잃은 것. 이것이 현대 세계의 결정적인 초기조건이다.

    ‘우리들이 신을 죽인 것이다 – 너와 내가 말이다! 우리들은 모두 신의 살해자다!’

    니체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세계가 이제까지 소유했던 가장 신성하고도 강력한 것, 그것이 우리들의 칼로 인해 피투성이가 되어 죽은 것이다. 우리들이 뒤집어 쓴 이 피를 누가 씻어줄 것인가? 어떤 물로 우리들의 몸을 정화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속죄의 의식을, 어떤 성스러운 곡조로, 우리들은 고안해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인가? 이런 자행의 위대함이 우리들의 손에 남아있는 게 아닌가? 이것을 해야만 하는 자격이 있는 일이라면, 우리들 자신이 신이 되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2)

    단순히 ‘신은 죽었다’가 아니다. ‘우리들이 신을 죽였’기 때문에 그것은 간단한 무신론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신으로서’ ‘이제까지의 여하한 역사도 이루어내지 못한 위대한 역사’를 구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니체는 생각했다.

    니체의 주장은 두 가지의 명제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초월자’가 부정당해 공석이 된 ‘신’을 대신하는 것으로 ‘인간’ (니체는 ‘초인’이라고 부른) 이 세워져야만 한다는 것. 둘째는 신으로부터 내려온 ‘계율’을 모델로 한 고전적 ‘당위’는 모두 부정당하고 ‘초인’이 체현하는 ‘즐거운 지식’이 인간의 행동을 정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만 한다, 는 것이다.

    ‘초인’이란 무엇인가? ‘즐거운 지식’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기에 앞서, 잠시 사상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3 인간중심주의의 흐름 – 라블레, 몰리에르, 라 로슈푸코 공작

     

    이 ‘반 크리스트교(인간주의)적’인 사고방식은 니체가 발명한 것이 아니다. 중세 이래 많은 사상가가 때때로 폭력적인 탄압이나 박해를 견디며 더러 신이 명한 도덕보다 그것이 억압하려고 한 ‘인간의 본능’에서 ‘선’을 발견한 듯하다.

    그 대표적인 사상가 중 하나, 프랑소와 라블레(1490?-1553)는 <가르강튀아>(1534)에서 그가 창조한 이상의 공동체인 ‘텔렘 수도원’에 단 하나의 규율밖에는 부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너 자신이 욕구하는 것을 위해(Fais ce que voudras.)’이다.

    라블레의 낙천적인 세계관에서는 세계가 선하고 인간이 선하고 세계와 인간은 그 본성에 따른 채로 행동할 때 비로소 선한 목적으로 향하는 것이 가능하다. 라블레는 ‘선한 것으로서의 자연(physis)’과 ‘악한 것으로서의 반자연(Antiphysie)’라는 단순한 이항대립하는 동안 세계의 모든 모순을 흘려보낸다.

    라블레와 몽테뉴(1533-92)로 대표되는 인간중심주의 사상은 몰리에르(1622-1673)와 라 로슈푸코 공작(1613-1680)이 이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17세기의 역사적 경험은 이런 자연예찬의 사상에 약간의 씁쓸한 맛을 더하게 되었다. 닳고 닳은 근대인은 인간의 ‘본래적 선성’이란 관념을 라블레처럼 노골적으로 믿을 수 없다. 그들이 선한 인간본성과 악한 규약으로서의 ‘도덕’이라는 이항대립을 믿기에는 인간이 너무나 사악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인간은 조금 더 굴절된 수순을 밟아 도덕과 관련되게 된다는 새로운 의견이 등장한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도덕은 이기적인 욕망달성을 위해 공리적으로 활용되어야 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희생이나 성실이나 무사무욕이라고 불리는 ‘도덕적 행동’은 그것 자체가 가치있어 실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런 ‘비 이기적 행동’을 우회해서 이기심에 봉사하고 있으니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17세기의 인간관찰자(모럴리스트)들이 발견했다.

    몰리에르의 연극에는 순수한 위선자, 어딜 봐도 악인이라고 할 만한 단순한 등장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단순한 듯한 농부는 이기적이고 사악한 본성을 천진난만함의 겉옷에 숨기고 있다. 양의 탈을 쓴 여자는 순결을 가장한 채 마음에 드는 결혼상대를 붙잡아 둔다. 폭음을 일삼는 철저적인 현세주의자의 머슴은 미스테리어스한 주인을 두려워한다. 돈 주앙은 악행을 이어나가지만, 초인적인 용기와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알세스트는 인간 혐오자인 주제에 사교적이고 매력적인 셀리메느에 빠져 있다.

    몰리에르의 등장인물들은 누구나 ‘종잡을 수 없는’ 인간들이다. 달리 말하면 ‘외면을 봐서는 내면을 추측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그들의 외면적인 행동이 내면적인 동기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지 않고, 속에 품은 동기가 표출되는 행동으로 표현되는 사이에 억압, 굴절, 우회나 위장 등이 끼어들고 있기 때문에 내면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탓에 생기는 오해나 반목, 다름이나 입장차는 몰리에르류(流)의 소극(笑劇)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인간의 내면은 (어떤 종류의 해독장치를 사용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라는 사고방식, 혹은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인간에게는 <내면>이 있다’고 하는 근대적인 사상, 그것이 공적으로 승인받은 것이 몰리에르라는 하나의 지표이리라.

    그렇다고는 하지만 몰리에르에게는 아직 라블레적인 인간중심주의의 흐름이 살아있다. 즉, 무구한 것이 ‘선’이고 인공적이며 작위적인 것이 ‘악’이라는 기본적 발상이다. 그러니 극작술상에서 ‘선’은 무지하고 충동적이며 건강한 욕망에 몸을 맡긴 젊은이들이, ‘악’은 사회의 더러움 투성이에 타산으로밖에는 행동하지 않는 어른들이 정형적으로 연기하고 있다. 그러나 무구한 것은 동시에 무지하고 무력하며, 우연의 행운이 없는 한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열어젖히는 것도, 자신의 바름을 승인받는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몰리에르는 잘 알고 있다.

     

    동시대의 모럴리스트인 라 로슈푸코는 몰리에르보다 더욱 인간에 대해 엄격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이기심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잠언을 몇 개 소개해 본다.

    ‘우리의 미덕은 대부분 위장된 악덕에 지나지 않는다.’

    ‘미덕은 허영심이 동반되지 않으면 그렇게 멀리까지 나아가지 않으리라.’

    ‘이기심은 이런저런 말을 꾸며내고, 온갖 인간을 연기해 보인다. 무사무욕한 사람마저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감사란 더 많은 은혜를 우려내기 위한 은밀한 바람이나 다름없다.’

    라 로슈푸코의 이런 찝찝한 잠언에는 공통적으로 ‘미덕의 우회구조’가 있다. 우리들이 무엇을 양보하거나, 줘 버리거나 하는 것은 한번 손을 떠남과 함께 좀 더 많은 것을 되돌려 받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의 사고방식은, 종교적인 도덕관으로부터 ‘이륙하는’ 새로운 의견을 포함하고 있다.

    만약 도덕이 공리적인 장치라고 하면, 도덕은 그때마다 사회관계에 입각해서 이기심의 달성을 위해 좀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위장’하는 것일 터다. (타인을 밀고하는 게 유리할 경우 ‘자신의 기분에 충실할 것’이 도덕적이고, 배신하는 것이 유리할 경우에는 ‘자신의 기분을 억제하는 것’이 도덕적일 것이리라.) 도덕은 끝없는 프로테우스적 변신을 이루어 결국 동일한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미덕과 악덕, 정의와 사악함을 매번 결정하는 것은 사회관계라고 하는 ‘도덕의 역사주의’가 여기서 출현한다.

     

    4 도덕의 역사주의 – 홉스, 로크

     

    선악의 관념이 각가의 사회집단의 역사적, 장소적 규정성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된다는 ‘역사주의적’도덕관은 토머스 홉스(1588-1679), 존 로크(1632-1704), 제레미 벤담(1748-1832)등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라는 말이 단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자연상태의 인간은 각자의 자기보존이라고 하는 단순한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 공리주의의 사고방식이다. 자기실현과 자기보존이라는 ‘네가 욕구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정해져 있는 ‘실정적(實定的) 권리’에 대해 언제 어떠한 장소에 있어서도 인간이 그 향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 즉 ‘자연권’ (natural right)이라고 불린다.

    이 자연권의 행사를 만인이 동시에 요구하는 경우 (라블레의 몽상과는 달리),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빼앗아 들고 자신의 욕구를 폭력적으로 타인에게 강제하게 된다. 이런 끊이지 않는 전투상태에 있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생명 재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고, 결과적으로 (한 사람만의 압도적인 강자를 빼고) 대부분의 사회성원이 소기의 자기보존, 자기실현의 바람을 충분히 이루지 못한 채 끝난다. 자연권 행사의 전면적 승인은 자연권의 행사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철학적 난제가 여기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어쨌든 직접적, 자연적 욕구를 단념하고 사회계약(social pact)에 기초해 창설된 국가에 자연권의 일부 또는 전부를 맡기는 게 결과적으로 이익을 증대하는 것이라고 공리주의자는 생각한다.

    예를 들어 로크는 자연상태로부터 사회계약에 의한 정치권력 장치로의 이행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들이 공동체를 구성해 하나의 정부에 복종할 때, 그들이 서로 인정한 가장 중요한 중추적인 목적이란, 연대해서 자신들의 사유재산을 보전하는 것이었다. 자연상태에서 사유재산을 확보하려면 거기에 너무나도 많은 점에서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자연상태에서는 공동적인 동의에 의해 정립되고, 승인되고, 수용되고, 승인받은 법률, 발생하는 여러가지 다툼을 종결하기 위한 공통의 척도로써, 여기에 기초해 정당한 청구와 부당한 청구, 정의와 불의를 판정할 수 있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 둘째로 자연상태에서는 공정한 입장에 있어서 법률에 준해 싸움을 종결하기 위한 권위를 갖추고 있다고 승인받은 판사가 없다. (…)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에 과계하는 것에 열중해 있지만 다른 이의 이해에 대해서는 꽤 냉담하다. 이것이 끝없는 불의와 무질서의 원인이다. 셋째로, 자연상태에서는 내려진 판결을 지원, 유지, 집행하는 힘을 가진 권력이 통상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죄를 범한 자여도 가능하다면 실력을 행사해서 그 자신의 부정을 찍어누르게 되리라. 범죄자의 저항은 때로 그를 벌하고자 하는 이를 도리어 위험에 처하게 하고, 때로는 그 생명을 빼앗는 일도 가능하리라.

    이런 이유로 인간들은 자연상태에서 향수했던 여러 특권을 무릅쓰고 그들 자신이 좇고 있던 더없이 잘못된 조건에 끝없이 묶여있는 일을 그만두고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방향으로 몰리게 되었다.’ (3)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무리 없이 이해 가능하다. 여기에는 라 로슈푸코와 같은 발상 패턴을 읽을 수 있다. 한마디로 ‘단기적, 직접적인 이익을 단념하는 것에 의해 좀 더 커다란 장기적, 간접적 이익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 라고 하는 ‘우회의 메커니즘’이다. 사람들은 자연권의 방만한 행사를 단념하는 대신, 사회계약이라는 합의를 기반으로 형성된 국가 권력 장치를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자신의 사유재산을 보전한다. 일시적으로 특권을 단념하는 편을 통해 결과적으로 더 유효한 특권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사회계약은 어디까지나 사유재산의 보전, 자신의 보존, 자기실현 즉 자연권의 최대한 행사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홉스에 의하면, 설령 국가주권이라고 해도 그 본의는 국민의 자연권을 보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국민은 자신들이 자연권을 충분히 향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경우 ‘저항권’ 혹은 ‘혁명권’이라는 명목에 의거해 현 체제를 다른 정치 체제로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이 이끌어낸 것이 17-18세기의 근대 시민 혁명(영국의 청교도 혁명,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 등)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며, 이런 사회 계약 이론은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 민주 국가의 헌법에서 국가의 정통성을 근거하기 위해 채용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5 도덕의 계보학으로

     

    근대의 철학자는 홉스, 로크로부터 몽테스키외, 루소, 엥겔스에 이르기까지 도덕적인 행동 준칙의 성립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자연상태에 있어서 ‘사회는 결여’되어 있고, 사회를 위해 도덕은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지극히 원시적인 모습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원시상태로부터 사회계약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사실상 도덕이 법률에 준하는 방법으로 성립했다고 하는 것이 그들의 근대적인 윤리관이다.

    그럼, 이렇게 해서 (역사학적으로도 고고학적으로도 실은 근거가 없는) ‘사회의 결여로부터 현존하는 사회로의 이행인 사회계약’이라고 하는 진화사관이 생겨난 것은 한가지 중요한 태도결정-사회질서의 기원에 대한 어떤 사고방식을 채용한 것-을 의미한다.

    ‘인간 사회는 계약으로부터 생겨났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다양한 사회제도의 기원이 바로 인간적이며 인위적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가 신의 제도나 자연의 질서의 결과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선 사회질서의 기반에 관한 오랜 관념을 거부하고, 새로운 관념을 제출하는 것이다.’ (4)

    루이 알튀세르에 의하면, 사회계약에 관한 설명에서는 사회가 인간 이외의 원리(신 또는 자연)로부터 만들어졌다고 하는 ‘낡은’가설에 반대한다. 이런 ‘낡은’ 가설은 오래된 봉건사회의 고유한 신념인 ‘인간의 본래적인 불평등성’이라는 사고방식에 근거한 것이다. 인간의 이해를 초월해 인간의 힘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신이나 자연의 섭리에 의거한 사회가 성립하는 한, 어떤 인간이 권력을 갖고 부를 독점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에게 돌아가는 ‘본래적 사회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보댕의 ‘왕권신수설’)

    여기에 대해 사회계약설은 사회적 불평들을 포함한 ‘자연’을 일종의 기만으로 치부하고, “모든 제도를 인간의 계약 위에 쌓아나간다. 이 사상은 인간에게 낡은 제도를 거부하고 새로운 제도를 세워, 필요하다면 그 제도들을 새로운 계약에 기초해 폐지하거나 개혁하는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다.” (5)

    ‘사회제도는 인간의 동의 위에 비로소 성립되었다’ 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사회제도는 인간을 뛰어넘은 원리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다’라고 하는 ‘낡은’ 사고방식을 대신했다. ‘도덕은 신(또는 자연)이 제정한 것이다’라는 ‘낡은’ 사고방식 (철학사적인 술어로 말하자면 ‘도덕의 선험주의, 절대주의’) 이 물러나고, ‘도덕은 인간이 사회계약을 통해 제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정”하는 것도 “개정”하는 것도 “폐지”하는 것도 집단의 동의가 있다면 가능하다’고 하는 ‘새로운’ 사상 (‘도덕의 경험주의’) 이 지배적으로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도덕에 관한 두 개의 이념 사이의 패권투쟁은 새로운 이념의 승리로 이어졌다’고 하는 교과서적인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사회계약설은 그것 자체가 논쟁적, 권리청구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눈 앞에 현존하는 그 제도들을 혁명하기 위한 논거로써 요청되기 때문에 그 목적은 ‘세계의 여러 민족의 제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닌, 기성의 질서를 타파하거나 생겨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채로 생겨난 질서를 정당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설의 제창자들은 “여러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질서를 쌓는 것 즉 새로운 질서를 제안해 정당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홉스나 스피노자가 말하는 것과 같이 로마 몰락이나 봉건 제법(諸法)의 출현이라는 실제 역사를 더듬는 것과는 다르다. (…)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입장으로부터 역사의 이유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고로 그들이 과학이라고 간주하는 그들의 제(諸) 원리는 그들 시대의 투쟁 속에서 축조된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제(諸)가치에 지나지 않는다.” (6)

    알튀세르의 말을 조금 더 우리들의 흥미에 동하는 말로 바꾸면 ‘사리’를 여러 행동의 기본원리로 한 공리주의 철학의 유일한 난점은 그 철학 자체가 하나의 당파적, 계급적 입장의 ‘사리’에 봉사하는 철학이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리’에 의해 행동한다는 것을 논증하려고 하는 공리주의자 자신이 ‘사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논증해야만 하는 논증의 전제로 설계한 ‘논점 선취의 허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딱히 아리스토텔레스를 거론할 필요도 없이, 특정 사회 집단에게만 선택적으로 유리한 이론을 ‘일반적으로 타당한 학지(學知)’라고 선포한다고 해도 보통은 그다지 믿을 수 없다.

    그 작업을 한 사람의 철학자가 정식화했다.

    여러 사회에 타당하며 도덕을 기초로 한 요인은 무엇인가? ‘인간을 초월한’ 원리가 아니라, 또는 ‘인간에게 존재하는’ 이기심도 아니라면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초월도 내재도 아닌 그것도 별개의 수준이 있다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으로부터 시작된 학술적 고찰을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이라고 이름지었다. 이 학(學)의 원칙은 다음 두 가지의 명제로 집약할 수 있다.

    [1] ‘도덕의 본래 문제에 관련한 것은 모든 다수의 도덕을 비교하며 시작해야 한다.’ (7) 즉, 도덕의 계보학은 ‘비교도덕학’이라는 형태를 띄게 된다.

    [2] 도덕을 신의 섭리라고 하는 선험설도, 도덕이 합리적 이기심의 성과라고 하는 공리주의도, 그 어느쪽을 인정할 수 없다. ‘모든 도덕의 본질적인 귀중함은, 그것이 오랜 시간을 걸친 구속이라는 것이다.’ (8)

    이렇게 선언한 니체에 의해 <도덕의 계보학> (Zur Genealogie der Moral, 1887)이라는 제목의 저서가 19세기 말에 등장하게 되었다. 현대의 윤리를 둘러싼 근본적인 질문은 이 책 한 권에 집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봐도 좋다. 이 책에서 니체는 그의 ‘인간 중심 주의’를 극한까지 밀고 나아가 19세기까지의 모든 도덕관을 철저하게 해부했다.

    니체는 신이나 자연의 개입을 빌리는 것도, 이기심이라고 하는 기묘한 동기에 의거하는 것도 모두 부정하고 ‘자기 자신에 의한 자기 자신의 주체적인 근거로 애초에 자기 자신의 행동의 옳고 그름을 객관적으로 판정하는 방법은 있는가’라며 19세기까지의 사상가가 묻지 않았던 무모한 문제를 설정하고 그 곤란한 질문에 정면으로 맞붙었다. 니체가 대답하려던 시도가 성공했는지 어쨌는지는 별개로 하고, 적어도 니체 이후 이 질문을 회피해서 윤리에 대해 말하는 것은 누구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6 대중사회의 도덕

     

    공리주의자들과 니체를 사이에 둔 최대의 상황적 차이는 전자가 ‘시민사회’에 대한, 니체가 ‘대중사회’에 대한 윤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니체의 기성 도덕 비판은 말하자면 ‘대중사회에 있어서 윤리적이란 것은 무엇인가’라는 그때까지의 사상가 어느 한 사람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끌어들인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류는 그때까지 ‘인류사회’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사회’란 무엇인가?

    그것은 구성원들이 한결같은 ‘무리’를 이루어, ‘옆에 있는 사람과 같게 되는 것’을 지향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리가 어떤 방향으로 향하면 모든 이가 대세에 따라 비판도 회의도 하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향해 몰려가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립적인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무정형적(amorphous)이면서도 균질적인 masse(덩어리)를 이룬다. 니체 이전의 사상가에게는 절실한 논건이 아니었던 이러한 인간의 집합적인 존재 방식이 가져온 재난을 니체는 더없이 비관적으로 예견했다.

    ‘무리’를 이뤄 행동하는 사람들을 니체는 ‘양떼’(Herde)라고 불렀다. 양떼의 행동기준은 ‘옆사람과 같은 것을 함’ ‘대세를 따름’이라는 것이다. 양떼의 이상은 ‘모두 같게’라는 상태이다. 그것이 그들의 행동규범, ‘양떼의 도덕’이다.

    ‘지금 유럽에서의 도덕적인 것은, 양떼의 도덕이다.’ (9)

    양떼의 도덕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사회의 평준화, 등질화이다.

    ‘만인이 평등한 것’ 이야말로 양떼의 빛나는 이상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을 하나로 뭉쳐 여러 특수한 요구, 여러가지 특권이나 우선권에 대해 완강히 저항’해서 ‘다 같이 같은 감정을 느끼는 종교를 신봉하고, 무릇 느끼고, 살고, 고민하는 한 모든 것에 동정한다’. (10)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고 고통도 기쁨도 함께 나누면서 서로를 가로질러 차별화하는 윤곽을 잃고, 부정형적으로 끈적끈적한 대중 가운데 녹아들어간다. 이미 그 구성원들이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등질적인 집단을 형성한 것을 양떼들은 ‘인간에게 있어서 궁극의, 인간이 달성한 절정, 미래의 유일한 희망, 현재의 것들에 대한 위로 수단, 과거의 여러가지 죄와 잘못들로부터의 위대한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양떼의 도덕도 어떤 의미에서는 ‘공리적’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홉스나 로크가 생각했던 것 같은 공리와는 별종의 공리이다. ‘공리주의적’인 도덕관에 의하면 개인은 (자선이나 겸양이나 관용이나 금욕같은) ‘도덕적’ 행위를 하는 것에 의해 입는 단기적인 불이익과 결과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장기적인 이익을 ‘계산해서’ 행위를 결정한다. 이 이론은 행위의 결정자가 그 행위의 득실에 대해 주판을 튕길 수 있을 정도의 지적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한 사람의 판단이 집단성원의 대다수의 판단과 일치한다고 해도 그것은 집단 구성원 모두가 그와 같은 정도의 이기심과 타산성을 갖고 있다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판단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격에 의해, 개인의 책임에 의해, 주체적으로 내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리주의적 판단은 양떼에게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양떼란 (그 정의에 의하면) 주체적으로 무엇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떼의 관심은 오로지 ‘집단의 유지’ ‘집단의 존속’에 있다. 결국 무리를 이어나가는 것, 언제까지나 등질한 집단인 채로 덩어리로서 움직이는 것, 그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공리적인 판단의 결과를 때때로 전원 일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원 일치하는 것 그 자체를 자기목적화하는 것이다. 그때 하나의 ‘도착(倒錯)’이 발생한다. 양떼에 있어서는 어떤 행위가 도덕적인지 비도덕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그 행위에 내재하고 있는 도덕적 가치도 아니고, 그 행위가 행위자 본인에게 가져다 줄 이익의 많고 적음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같은가 아닌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도래한 명령에 집단적으로 굴복해 양떼화한다는 사태는 역사적으로 얼마든지 있어 왔다. 그러나, 그것과 근대의 양떼의 존재 방식은 닮은 것 같으면서도 결정적으로 다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다양한 시대의 인간 양떼들이 존재했다지만(혈족공동체, 공동단체, 부족, 민족, 국가, 교회) 그때마다 항상 소수의 명령자에 대해 무척 많은 수의 복종자가 존재했다. (…) 지금은 모든 인간이, 일종의 형식적 양심으로서의 ‘네가 해야 할 것’이라고 명하는 것에 대한 욕구를 만들며 품고 다니고 있다. 이 욕구는 만족을 요구하고, 그 형식을 어떤 내용으로 채워놓고자 한다. (…) 그것은 누구든지 명령하는-부모나 교사, 법률, 계급적 편견, 그리고 세론 등- 자가 불어넣은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11)

    단순히 강권에 의한 굴복에 의해, 동일한 행동을 강제하는 것만으로 ‘노예’(Sklave)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노예’란 강권에 굴복하는 것만이 아니라 굴복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거기서 쾌락을 발견하는 자라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강제된 사념을 자신의 내부로부터 솟아오르게 하는 자기 자신의 사념이라고 하는 시스템적인 오해 같은 것이라는 얘기다.

    니체에 따르면 이런 복종에의 욕구는 역사적 연원이 있다. 어떤 특수한 민족집단과 그것을 모태로 하는 종교가 그 멘털리티를 키우고 그것을 유럽 세계에 수입했다고 니체는 논단한다.

    ‘유대인과 함께 도덕상의 노예 봉기가 시작되었다’고 니체는 썼다.

    “유대인-타키투스나 모든 고대 세계의 사람들이 말한 바로는, <노예로서 태어난 민족>, 또는 그들 자신이 말하며 믿는 바와 같이 <선택받은 민족>- , 이 유대인이 가치의 전도라는 그 기적극을 이루어 낸 것이다. (…) 그들의 예언자들은 ‘부’와 ‘배교’와 ‘악’과 ‘포악함’과 ‘육욕’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로 뭉뚱그린고로, 마침내 ‘현세’(세계) 라는 말을 오욕의 말로 만들어 버렸다. 가치의 이러한 역전이라는 점에서 유대 민족의 의식이 있다. 이 민족으로부터 도덕에 관한 노예 봉기가 시작된 것이다.” (12)

    니체가 말한 ‘노예 봉기’란, 노예들이 지배자에 저항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 ‘노예임’이라는 ‘사실’을 ‘노예인 것이 행복하고, 승리이다. 그러니 노력해서 노예가 되어야 한다’라는 ‘당위’로 바꾸어 버린 ‘도착’을 가리킨다. ‘약자’이기 때문에 사적인 욕망의 실현가능성을 억누른 것을, 그 불능과 단념을 마치 자신의 의사에 기반한 주체적인 결단인 것처럼 행동하며 ‘약자인 것이 정통적인 삶의 방식이다’ 라고 선언한 때에 ‘가치의 전도’가 시작된다.

    “참혹한 것만이 선한 것이다. 가난함, 무력함, 천함만이 선한 것이다. 번민하는 것, 결핍된 것, 병들어 있는 것, 잔혹한 것이야말로 유일한 경건함이며, 유일한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며, 그들을 위한 유일한 지복(至福)이다.” (13)

    그러니 니체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란 유대 민족의 논리를 전면 전개한 것에 다름 없다.

    “사랑과 복음의 화신으로서의 나자렛 예수, 가난한 자, 병든 자, 죄 많은 자에게 지복과 승리를 가져다준 <구세주> - 그야말로 가장 섬뜩한, 가장 저항하기 힘든 유혹이 아니었던가. (…) 이 <구세주>, 이 이스라엘의 가짜 적대자, 사이비 해체자를 우회해서야말로 이스라엘은 그 종교적 복수욕의 최후 목표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14)

     

    7 ‘초인’ 도덕

     

    유대교, 다시 말해 크리스트교로부터 시작된 ‘노예도덕’의 근원적인 멘탈리티를 니체는 ‘원한(ressentiment)’이라고 불렀다. ‘르상티망’이란 ‘원한, 반감’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지만, 어원은 ‘반응하다’ (ressentir)라는 동사이다. ‘노예’는 자기에 선행해서, 자기보다 강대한 자기 외부의 무엇인가에 의한 ‘책동’에 대한 ‘반응함’이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리액션’이라는 것이 ‘노예’의 행동 원형이다.

    “노예도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항상 우선 하나의 저편, 하나의 외부 세계를 필요로 한다. 생리학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일반적으로 행동을 일으키기 위한 외적 자극을 필요로 한다. 노예도덕의 행동은 근본적으로 반동이다.” (15)

    ‘노예’는 ‘외부 세계’를 필요로 한다. ‘노예정신’이란 ‘외부 세계’로부터 도래한 ‘외적 자극’에 의해 끌어올려진 ‘반응’을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탄생시킨 ‘본성의 발로’ 인 것처럼 시스템적으로 착오하는 앎의 구조인 것이다. 이 논단은 폭력적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재론적 구조에 대한 깊은 통찰을 품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니체는 오늘날 라캉파(派) 정신분석 이론이 ‘나’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것과 거의 같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캉파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발생적으로 무력해서 근거가 확정되지 않은 존재로 출발한다. ‘나’는 ‘나’의 기원에 대해 엄밀히 자기언급하는 게 불가능하다. (‘나’는 ‘나의 탄생’에 주체로서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의 의미나 근거를 ‘나’ 자신이 구축한 논리나 언어로 말할 수 없다. ‘나’란, 어떤 정신분석가의 탁월한 비유를 빌리자면,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자기 자신을 공중에 매달아 놓은 것 같은 방법으로밖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근원적으로 무력한 ‘나’는 너무나 무력해서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무력을 자신의 ‘외부’에 있는 ‘나보다 강한 자’가 나의 완전한 자기인식이나 자기실현을 방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내’가 약한 게 아니라, ‘강대한 자’가 너무 강한 것이다. 그와 같이 나의 외부에 신화적으로 만든 ‘나의 완전한 자기인식과 자기실현을 억지하는 강대한 것’을 정신분석은 ‘아버지’라고 부른다. ‘아버지’는 그런 방법으로 ‘나’의 약함을 포함해 ‘나’를 통째로 정당화하고 근거를 제시하는 신화적인 기능으로써 그것을 우리들의 경우에 대해서 ‘신’이나 ‘절대정신’, ‘초월적 존재’, 또는 ‘역사를 관통하는 철의 법칙’이라고 부르고는 하는 것이다.

    이 라캉파의 설명은 그대로 니체의 ‘노예’정신의 구조에 적용할 수 있다. ‘노예’는 ‘자신이 무력하다’라고 하는 사실을 은폐해서 설명하기 위해 ‘강대한 아버지’의 환영을 외부 세계에 투사한다. 그리고 이 ‘아버지’ 가운데에서 자신의 가르침과 자신의 구제를 발견한 듯하게 된다. 그때 자신의 무력함은 단숨에 ‘아버지’에 의한 구원을 싹싹하게 기다리는 ‘새끼 양의 무구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정신분석에 대한 이러한 인간의 사고정형에 관한 설명을 학술적으로 유효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들이 이해한 바로는, 니체가 말한 ‘노예’란 인간이라는 종의 고유한 존재론적 구조인 것이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들은 모두 신경증 환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니체적인 어법으로 바꾸자면 ‘우리들은 모두 노예다’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니체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자신의 힘으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인간’의 반대편에 ‘자신을 자신의 힘으로 근거를 찾는 일이 가능한 인간’이라는 가설적 존재를 상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가능한 가설적 존재를 니체는 우선 ‘귀족’이라고 이름하였다. 여기서 니체의 사상적 갈지(之)자 걸음이 시작된다.

    ‘귀족’의 속성은 모두 ‘노예’의 반전이다. ‘귀족’이란 무엇보다 ‘외부 세계를 필요로 하는 하지 않는 자’ ‘행동을 일으키기 위해 외적 자극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인 것이다. ‘귀족’의 행동은 숙고 끝에 이끌린 것이 아니며, 외부로부터 강요받은 명령이나 계율에의 맹종도 아니다. ‘귀족’이란, 무엇보다 우선 결백하고 직접적이며 ‘자연발생적’으로 자기 자신의 진정한 ‘내부’로부터 만들어 낸 충동에 몸을 맡기고 행동하는 자인 것이다.

    “기사적, 귀족적인 가치판단의 전제를 이루는 것은 강력한 육체, 싱싱함, 풍족함, 끓어오르는 건강, 동시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조건, 다시 말해 전쟁, 모험, 수렵, 무도, 투기, 기타 일반적으로 강하고 자유롭고 쾌활한 활동을 북돋는 모든 것이다. (…) 모든 귀족도덕은 의기양양한 자기긍정으로부터 생겨난다. (…) 그것은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성장한다.” (16)

    이 귀족, 즉 기사적 존재는 ‘우리들 고귀한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 행복한 것’이라는 근원적인 자기긍정으로부터 출발한다. 무반성적인 자기긍정에 기반한 까닭에 당연하게도 귀족적, 기사적 존재는 사려깊지 않은 단순하고도 잔인한 야만이다.

    “로마의, 아랍의, 게르만의, 일본의 귀족, 호메로스의 영웅, 스칸디나비아의 해적” 이라는 역사상의 귀족적 종족은 “통틀어서 모든 족적에 <야만>의 개념을 남긴 자들” (17)

    그들은 ‘위험에 맞서’ ‘적에 맞서’ ‘무분별하게 돌진’한다. 그리고 ‘분노, 사랑, 경외, 감사, 복수의 열광적인 발산’을 통해 ‘고귀한 영혼’들은 자신의 동류를 인지하게 되리라.

    니체는 이러한 ‘고귀한 야만인’이야말로 ‘인간’의 본래적인 존재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행위는 어떠한 외부자도 개입하지 못하는 자연발생적인 그들의 내부로부터 용솟음치며 발산하는 에너지가 구체화된 것이다. 그들의 충동은 ‘노예’의 그것과 같은 ‘내면화된 외부’가 아니라 순수한 내부를 그 연원으로 하고 있다. 그 순수성, 정직성은 그들 행위의 모든 것을 정화하고, 정당화하리라. 이렇게 해서 니체는 행위의 옳고 그름이란 그 행위가 ‘자발적인가’ ‘반응적인가’로부터 결정되어야만 한다는 극도로 특이한 윤리관에 이른다.

    ‘고귀한 인간’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것, 그것이 ‘고귀한 행위’이며 ‘선한 인간’의 내부로부터 숨김 없이 분출하는 것, 그것이 ‘도덕적인 행위’인 것이다.

    “<옳음>은 <옳은 인간> 자신이었다. 바꿔 말하면 고귀한 사람들, 강력한 사람들, 높은 사람들, 고매한 사람들이 자기들 자신 또는 자신들의 행위를 <옳다>고 느끼는, 즉 제일급의 것으로 정해서 이것을 모두 저급한 것, 비천한 것, 비속한 것, 천민적인 것과 대치시켜 놓은 것이다. (…) 상위의 지배종족이 하위의 종족, 다시 말해 <하층민>에 대해 갖고 있는 어떤 지속적이면서도 지배적인 전체감정과 근본감정, 그것이 <옳음>과 <그름>의 대립의 기원이다.” (18)

    행위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도덕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 (즉 귀족적, 기사적 존재자) 이 이룩한 것은 모두 ‘선한’것이고, ‘노예’ (즉 양떼적 존재자)가 이룩한 것은 ‘악한’것이다. 문제는 ‘누가’ 그 행위를 하는가여서 ‘악한 인간’이 있다면 ‘악한 행위’인 것이다.

    “도덕적인 가치표시는 언제나 우선 인간에 대해 속해져 있어서 그것이 파생적으로 전용된 끝에 겨우 행위에 대해 속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는 것이다. (19)

    “문제는 항상 자신이 어떤 자인가, 다른 이는 어떤 자인지 묻는 것에서 비롯한다. (…) 우리는 도덕을 강제해서 무엇보다 우선 위계의 원칙 앞에 몸을 굽히지 않으면 안 된다. (…) 이리하여 마침내 도덕에 대해 <어떤 자에게는 옳은 것이 다른 이에게도 옳은 것>이라는 말이 비도덕적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만 한다.” (20)

    이렇게 해서 행동에 관한 한 외부의 규범에 준거한 것과 내발적인 동기에 몸을 맡긴 것이라는 이분법에 의해 니체는 인간을 ‘양떼’와 ‘귀족’으로 나누고 각각이 이루어 낸 것을 ‘나쁜 행위’와 ‘좋은 행위’라고 불렀다. 행위의 도덕성 판정은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자인가’라는 형태로 세워질 수 있다.

    그렇다면 ‘고귀한 존재’란 누구인가? 여기서 니체의 윤리적 갈지자 걸음은 심해진다. 왜냐하면 니체가 ‘고귀한 존재’를 ‘당위’의 어법으로 말해버렸기 때문이다.

    “무릇 <인간>이라고 하는 모습을 고양시키는 것이 이제까지 귀족사회의 일이었다. -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리라. 이런 사회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크나큰 위계 그리고 가치 차이의 형편을 믿는 어떤 의미에서의 노예제도를 필요로 한다. 신분의 차별이 굳어져서 지배계급이 부단히 예종자나 도구를 내려다보며, 또한 부단히 쌍방간의 복종과 명령, 억압과 경원(敬遠)이 행해지는 것에서 생겨난 <거리(距離)의 격정(pathos)>이 없다면, 그 어느것보다 비밀에 가득 찬 격정도 결국 생겨나지 않으리라. 그것은 다시 말해, 영혼 그 자체의 내부에 끊임없이 새로운 거리를 확대하고자 하는 어떤 열망이며, 더욱 높은, 더욱 희소한, 더욱 요원한, 더욱 광활한, 더욱 포괄적인 상태를 형성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요컨대, 이것이야말로 (…) 끊이지 않는 <인간의 자기초극>의 열망이다.” (21)

    여기서 니체의 논리는 한눈에 봐도 위험함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앞서 니체는 귀족의 기원을 ‘의기양양한 자기긍정’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의기양양한 자기긍정’을 자기의 근거로 하는 인간이 과연 ‘자신을 고양시키는’ 향상심을 가질 수 있을까? 자신의 ‘낮음’ ‘비천함’을 자각한 자만이 ‘자신을 높이자’며 자기부정, 자기초극을 지향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니체의 ‘귀족’에 대해 최초의 정의를 받아들이는 한, ‘향상심을 갖춘 귀족’ ‘인간의 자기초극을 열망하는 귀족’이란 형용모순이다.

    같은 모순을 <짜라투스트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과연 니체는 거기서 확실히 ‘초인’을 말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그는 ‘초인이 무엇인가’가 아닌 ‘초인은 무엇이 아닌가’밖에 말하지 않았다.

    “나는 너희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노라. 인간이란 뛰어넘어야만 할 존재이니라. 너희들은 인간을 뛰어넘기 위해 무엇을 하였느뇨. (…) 인간에게 있어서 원숭이란 무엇인가. 크게 웃어 마땅한 종, 혹은 고통에 찬 치욕이도다. 초인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참으로 이런 존재가 아닐 수 없다.” (22)

    ‘초인’ 개념은 ‘인간의 초극’이라고 하는 ‘이행의 당위’라고 할 수 있다. 혹은 ‘이행의 당위’라고밖에 할 수 없다. ‘초인’이란 ‘인간을 뛰어넘을 무언가’라기보다는, ‘인간이라는 것을 고통스럽고 치욕스럽게 느끼는 감수성, 그 상태로부터 나오는 의지’인 것이다. 초인이란 ‘인간이 아닌 것’이라는 부정형으로만 말할 수 있는 기로여서 실체적인 내용을 갖고 있지 않은 ‘초월에의 긴장’이다.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여져 있는 밧줄-심연 위에 걸린 밧줄이다. (…) 인간에게 있어서 위대한 점은 그가 하나의 다리인 점에 있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있어 사랑할만한 점은, 그가 과도하며 몰락한다는 것이다.” (23)

    짜라투스트라는 결국 ‘초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말한다. 타락이 극에 달한 현대인에 대해 불을 뿜는 듯한 열변을 토한다. 그러나 ‘초인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그때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바뀌고, ‘고귀한 자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항상 ‘비천한 자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이렇듯 슬쩍 비켜나가는 일은 니체 로직의 필연이다. 니체는 ‘자기 초극’의 동기를 ‘보다 높은 것, 보다 존귀한 것을 지향하는 향상심’이 아닌 ‘보다 낮고, 보다 비천한 것에 대한 혐오’ 가운데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족성이란 높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낮고 비천하고 참혹한 것을 격하게 혐오하고 증오하며 파괴해버리려는 정열, 니체가 말한 ‘거리의 파토스’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불가사의한 결론이 나온다. 인간이 고귀한 존재, 초인을 향해 높아져 가는 추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의 혐오를 부추겨서 그를 그곳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을 열망하게 하는 꺼려지는 존재가 불가결하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귀족사회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노예제도’가 불가결했던 것과 같이 초인이 존립하기 위해서는 양떼가 불가결하다. 자신의 ‘높음’을 의식하기 위해서는 끊이지 않고 참조대상으로서의 ‘낮은 자’의 옆에 붙어 있어야만 한다. 인간을 고양시킨다고 하는 향상의 지향을 위해서는, 불가결적으로 인간의 일부를 ‘양떼’로써 선별, 특성화, 고정화할 필요가 있다.

    초인 ‘계획’에 있어서 좀 더 효율적인 체제는 어느 인종이 초역사적, 영원적인 ‘본래의 천민형’이라는 것을 체현하고 있는 경우다. 불변의 참조항, ‘높음’의 관측 정점으로써 ‘영원히 낮은 자’가 곁에 있다는 것은 자신의 ‘자기초극’에 관한 진행상황을 계측할 때 얼마나 편리한 일이겠는가! 이렇게 니체의 초인도덕은 인류 전체를 ‘인종’으로 분류해 각각의 유전적, 생득적 ‘본질’ 아래에서 그것이 귀족인종인지 양떼 인종인지를 분별한다는 암울한 작업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인간이 그 부모와 선조의 고유한 성질이나 편애를 체내에 갖고 있지 않을 리가 절대로 없다. (…) 만약 부모에 대해 약간이라도 알 수 있다면, 그 자식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4)

    “여러 유럽 또는 비 유럽의 노예계급의 자손들, 특히 모든 선(先)아리아적 주민의 자손들. 그들이야말로 인류의 퇴보를 나타내는 것이다!” (25)

    유전적으로 양떼임을 숙명으로 하고 있는 (유대인으로 대표되는) ‘선(先) 아리아 토착민’과 유전적으로 지배자임을 숙명으로 하는 ‘아리아계 정복 종족’은 머리카락, 피부색, 두개골의 길이라고 하는 생물학적인 차이에 의해 객관적으로 판별할 수 있다. 세계사란 이 비 아리아 종족과 아리아 종족 이천년래의 확고한 역사로써 이 화해 없는 투쟁은 근대에 있었던 전자의 압도적인 증식 앞에, 후자가 모든 전선에서 후퇴를 강요받는 위기적 상황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유대화, 크리스트교화, 또는 천민화하고 있다. 이런 독이 인류의 전신을 좀먹어 들어가는 것을 멈추는 일은 어려워 보인다” (26)

    이런 니체의 말은 (거의 동시기에 쓰인) 에두아르 드뤼몽의 <유대적 프랑스>에 다음과 같은 프로퍼갠더로 꼽히게 되었다.

    “유대인을 다른 인간들과는 다른 것으로 만드는 본질적 특성에 대해 무엇보다도 주의깊게,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서 우리들의 작업을 셈인과 아리아인의 민족적, 생리학적, 심리학적으로 비교하는 데에서 시작해보자. 셈인과 아리아인은 분명히 갈라진, 서로를 결정적으로 적대하는 인종임으로, 이 양자의 대립은 과거의 세계를 가득 채운 바, 장래에는 더욱 세계를 어지럽히게 될 것이다.” (27)

    니체의 초인도덕은 이런 장대한 의도조차 헛되게 ‘반 유대주의 신화’ 가운데 붕괴되어 간다. 예를 들면 본래의 의도는 인류의 진보이자 한계의 초극이었지만, 그 사상이 어떤 인간집단에게 열등하다는 ‘고유의 본질’을 부여해 그것을 ‘부정’ 할 수밖에 없는 방법으로 전략화하는 한, 그 사상에 미래는 없다. 거기서부터 귀결되는 것은 배타적인 자기중심적(egocentric) 폭력 뿐이다. 과연 니체의 텍스트는 후에 독일 국가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찬양자를 모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곤 하지만 우리들이 니체의 ‘초인도덕’으로부터 배울 만한 교훈은 결단코 적지 않다. 니체는 대중사회에 의거한 윤리의 가능성에 대해 파고들다시피 성찰해서 ‘정신의 귀족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결론을 이끌어냈던 것은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니체와 궤를 달리하는 곳은 그 후의 일이다.

    우리들이 바라고 있는 것은 ‘비속한 것’들에의 혐오나 배제에 의한 ‘척력(斥力)’을 계기로 해서 ‘거리’를 버는 듯한 상대적 ‘귀족’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과의 연을 끊은 탈속(脫俗)의 경지에서 홀로 시리어스함을 우러르는 절대적 ‘귀족’도 아니다. 세속의 진흙투성이인 채로 더욱이 정신의 귀족성을 잃지 않은 인간과 조우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이 니체 이후의 윤리에 관한 질문이다.

     

    8 대중의 반역

     

    니체의 초인도덕은 현대의 윤리에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로 윤리를 정태적인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의 카탈로그’라고 정립하지 않고 ‘지금 이곳에 관한 윤리적인 행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휴식도 끝도 없는 절망적인 ‘초월의 긴장’으로써 오로지 앞을 보며 달려나가는 것처럼 ‘운동성’으로써 구상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윤리를 만인이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선택받은 소수’만이 인수하는 책무로써 ‘귀족의 책무’(noblesse oblige)라는 관념이다.

    니체는 이렇게 썼다.

    “고귀한 자의 표징. 다시 말해, 우리들의 의무를 모든 인간에 대한 의무로 끌어내리는 일을 결코 생각하지 말 것. 자기 자신의 책임을 넘겨주는 일을 바라지 말고, 나누어 주는 일을 바라지 말 것. 자기의 특권과 그 행사를 자기의 의무 가운데 삼을 것. (…) 이런 종류의 인간은 고독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고독이 얼마나 강렬한 독을 품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28)

    의무에 대한 격한 사명감, 그것이 ‘고독한’ 소수자에게만 요구되는 것에 관한 자각. 이런 의식의 존재 의의를 가령 ‘선택’ (élection)의 의식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선택받은’ 인간은, 윤리적인 책무를 ‘모든 인간에 대한 의무’까지 확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것은 그들‘에게만’ 요구되는 의무이다. 그들에게 부여된 책무는 ‘양도 불가’이며, ‘분할 불가’이다. 이런 과대한 책무를 짊어 지고 있다는 사실이 윤리적 주체를 ‘고귀’한 자답게 한다. 이런 니체적 발상 그 자체는 이제부터 논할 오르테가나 카뮈에게도 거의 그대로 들어맞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니체와 그들의 분기점은 이런 ‘선택받음’이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특권을 향수하는 것’ 이라든가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지위를 얻는 것’, 즉 ‘노예’에 대한 ‘주인’의 지위를 요구한다고 하는 형태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뿐 아니라, 그들에게 있어 ‘선택받았다는 것’의 특권이란 다른 사람들보다도 적은 것을 받은 것,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상처 입었다는 것,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잃었다는 것이라는 ‘희생하는 순서의 우선권’이라는 모습을 띠고 있따.

    니체의 사자후로부터 30년 후의 전간기-다다의 쉬르레알리슴과 재즈 에이지와 ‘잃어버린 세대’와 볼셰비즘과 파시즘과 나치즘과 세계공황의 시대-에 대중사회의 존재 양식을 냉철하게 분석한 한 권의 책이 발간되었다. 그 책이 ‘초인도덕’과 ‘윤리 없는 시대’를 한 데 엮어 중요한 윤리적 가교를 제공해 주었다. 그 책이란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5)의 <대중의 반역>(1930)이다.

    대중사회론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대중의 반역>은 니체가 ‘양떼’라는 이름으로 매도한 사회계층 ‘대중’ (masse)이 기술의 진보와 민주주의의 승리에 의해 사회 전체를 문자 그대로 공간적으로 점유한 상황을 지극히 비관적으로 논한 책이다. 이 가운데 오르테가는 분명히 니체의 영향을 받은 대중사회론을 전개한다. 그것은 사회를 ‘대중’과 ‘엘리트’로 나눠 ‘대중’을 철저하게 비판하며 ‘선택받은 소수파’의 높은 윤리성에 인간 사회의 미래를 걸자고 구상했다. 이런 오르테가론의 스탠스는 좌익적인 지식인으로부터 ‘엘리트주의’ 혹은 ‘귀족주의’라는 유난히 강한 반감을 사고 말았다. 우리들은 오르테가의 ‘정신의 귀족주의’와 니체의 초인사상은 정말이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르테가가 <대중의 반역>에서 예언한 여러 사태-나치즘과 파시즘의 발흥, 혁명 러시아의 전체주의국가로의 변질, 유럽의 지적 정치적 몰락, 아메리카적 라이프스타일의 세계제패, 더 나아가 도래할 유럽의 통합까지 그 후 모조리 현실이 된 것을 생각하면 그 형안에 충분한 경의를 표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르테가는 대중사회의 본질을 이렇게 말했다.

    “타인과 다름은 행실이 나쁜 것이다. 대중은 모든 차이, 수월함, 개인적인 것, 자질을 타고난 것, 선택받은 자를 전부 압살했다. 모두와 다른 사람, 모두와 같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배제될 위험에 처해 있다.” (29)

    분명히 이 ‘대중’은 상호모방을 원리로 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니체의 ‘양떼’와 유사하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구조는 강압적인 지배자 (‘아버지’)를 자기의 외부에 상정해 그것을 향한 예종을 행복이라고 느끼는 ‘노예’의 그것과는 상당히 모양새가 다르다. 그렇다는 것은 ‘대중들’이 근대의 기술이 가능케 한 여러가지 물질적 편리함과, 민주정치에 의해 제공된 인권 덕에 더없이 쾌적한 생활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욕망이 착착 충족되어 감에 따라 이 욕망충족의 영위를 규제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어떤 것이라도 (설령 ‘아버지’로부터의 강압적 명령이라고 해도) 전혀 따를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분석하는 인간은 자신 이외의 여하한 권위가 그에게 친히 호소할 수 있다는 습관을 갖고 있지 않다. 지금 그대로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딱히 유세 부리는 것도 아니고, 천진난만하게 이 세상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 가운데 있는 것, 즉 의견, 욕망, 기호, 취미등을 긍정하고, 좋다고 보는 경향을 갖고 있다. (…) 대중적 인간은 그 성격 그대로 어느새 어떠한 권위에도 설득당하지 않고 자기 자신 삶의 주인이라고 느끼고 있다.” (30)

    ‘의기 양양한 자기긍정’은 니체에 의하면 ‘귀족’의 특질이었다. 오르테가는 그것을 ‘대중’의 특질로 간주한다. 니체의 ‘양떼’는 우둔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자력으로 사고할 수 있다든가, 자신의 의견을 모두가 들어야만 한다고 여기거나, 자신의 취미나 지견이 첨단이라고 굳게 믿을 만큼 뻔뻔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르테가적 ‘대중’은 방만하게도 자신을 ‘지적으로 완전하다’고 믿어버리며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채로 ‘자기폐색閉塞의 기구’ 가운데 태평하게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니체에 의하면 귀족만의 특권이었던 ‘결백한 자기긍정’이 사회 전체에 만연한 것이 대중사회이다.

    자기긍정과 자기충족인 고로, 그들은 ‘바깥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니체의 ‘귀족’은 ‘거리의 파토스’를 북돋기 위한 ‘열등자’라는 이름의 ‘타자’를 필요로 했지만, ‘대중’은 그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외부’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오늘의 평균적인 사람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일어나는 게 틀림 없는 일에 관해 줄곧 단정적인 <사상>을 갖고 있다. 이러한 바, 듣는다는 습관을 잃어버렸다. 만약 필요한 것을 모두 자신이 갖고 있다면, 남의 얘기를 들어서 어디에 써 먹겠는가?” (31)

    이제는 대중이 권력자인 것이다. 그들이 ‘판단, 판정, 결정하는 시대’인 것이다.

    자기충족과 자기폐색 가운데 있는 ‘대중’의 대척점에 오르테가는 ‘엘리트’를 대치한다. 그 특성은 자기초월성과 자기개방성이다.

    “뛰어난 인간을 평범한 인간으로부터 구별하는 것은, 뛰어난 인간은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데 반해 평범한 인간은 자신에게 무엇도 요구하지 않고 자기 방식을 뽐내는 점에 있다. (…)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봉사의 생활을 사는 자는 선택받은 인간이지 대중이 아니다. 무언가 탁월한 것에 봉사하는 것처럼 꾸려나가지 않는 삶은 그에게 있어 싱거운 것이다. (…) 고귀함은 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향한 요구와 의무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고귀한 신분은 의무를 수반한다.” (32)

    왜 ‘엘리트’가 존재해야만 하는가. 오르테가는 그 물음에 ‘야만’으로의 퇴화를 억지하기 위해서라고 간단히 대답한다.

    대중사회란 자기만족, 자기폐색이라는 행동거지의 결과, 개인이 원자화되어 집단이 모래알처럼 되는 상태이다. 이 ‘분해로의 경향’을 오르테가는 ‘야만’이라고 부른다.

    “온갖 야만적인 시대란 인간이 분산하는 시대이며 서로 분리되어 적의를 갖는 소집단이 만연하는 시대이다.” (33)

    발칸 반도나 중근동에 있어서의 민족적, 종교적인 항쟁이나 아프리카에서의 부족 분쟁 가운데 우리들은 ‘야만’의 최악을 볼 수 있다. 이것들이 민족대립이나 종교대립을 구동하고 있는 것은 ‘순수’화, ‘순혈’화, 즉 동질한 자들로만 이루어진 폐쇄적 집단으로서의 세분화라는 지향이다. 거기서는 배제, 차이화, 단절, 내부공론만이 필요하다. 거기서는, 자신과 이질적인 자와 대화를 한다든가 어떤 종의 공공성 수준을 구축한다든가 커뮤니케이션을 세워나간다든가 하는 지향이 결여되어 있다. 오르테가는 이것을 ‘야만’이라고 부른다.

    ‘문명’은 자신과 다른 자를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이는 것, 그런 타자와의 공동 생활을 영위하는 일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진 자들이 비로소 구축할 수 있다. 타자와의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은 사랑이라든가 친절함이라든가 상살력이라든가 포용력 같은 개인 레벨의 자질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공공적인 수준에 의거한 제도이다.

    “수속, 규범, 예절, 비직접적 방법, 정의, 이성! 이것들은 무엇을 위해 발명된 것이며,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성가신 것이 창조되었는가. 그것들은 <문명>이라는 단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으며, <문명>은 civis 즉 시민이라는 개념 가운데 본디의 의미를 밝힐 수 있다. 이 모든 것에 의해 도시, 공동체, 공동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 문명은 무엇보다 공동생활을 향한 의지이다.” (34)

    ‘공공생활에의 의지’를 가진 자, 그것이 시민이며 오르테가가 말한 ‘귀족’이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귀족’의 조건은 신분도 자산도 교양도 특권도 아닌, 이 ‘자신과 이질적인 타자와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한’ 능력, 대화할 수 있는 힘의 능력이다. 즉, ‘귀족’은 좀 더 소박한 의미로 말하자면 ‘사회인’이라는 것이다. 사회란 본래 귀족들로만 구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회는 귀족적인 한에 있어서의 사회이며, 그것이 비 귀족화되었을 뿐인 사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사회는 그 본질을 생각하자면 여하튼 항상 귀족적이었다는 것이다.” (35)

    이것으로 오르테가의 엘리트주의가 니체의 귀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이 밝혀졌으리라. 니체는 엘리트를 정의하기 위해 그것이 ‘무엇이 아닌가’라는 부정형을 쌓아올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엘리트의 조건이 최후에는 ‘인종’ 개념까지 왜소화되어 버렸다. 한편 오르테가는 분명히 귀족이 무엇인지를 말했다. 그것은 인간의 특수한 형태가 아닌, 인간 ‘본래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이 귀족이 되고, 시민이 되고, 공공성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생활을 살아가는 것이 ‘문명’의 이상이라고 말했다.

    니체에 비하면 오르테가의 말이 어쨌든 건전하고, 범용하고, 비 낭만적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감히 오르테가의 의견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대중사회는 그것이 어떤 테크놀로지에 의해 채워져 있는가 혹은 구성원들이 어떤 정치적 특권을 배분하고 있는가보다도 자기개방, 자기초극의 계기를 갖지 않는 한 본질적으로 ‘야만’적인 사회이다. 왜냐하면 대중이란 본질적으로 눈에 띄게 ‘정치적’인 존재방식임으로 대중사회를 표현하는 궁극의 말은 ‘나에게는 존재할 권리가 있다. 나는 옳다’로 집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귀족사회란 ‘나의 존재할 권리’ 와 ‘ 나의 옳음’을 항상 회의하는 사회인 것이다. 귀족사회는 ‘나’에게는 ‘나 이외의 것’을 우선해 존재할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 ‘나’에게는 ‘나 이외의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할 권리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 끝없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사람들에 의해 구성된 사회이다. 대단히 평범한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리가 없다’라고 어떠한 상황에도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문명인’이요, ‘사회인’이자 ‘귀족’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오르테가가 거창하게 말한 테제는, 그러나 정치적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관철하는 것이 극히 곤란한 ‘정론’이다. 이 ‘정론’을 탁상공론으로써가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정치투쟁 경험의 결론으로써 쥐어 짜내듯이 말한 사상가에 대해 다음 절에서 검토해보고자 한다. 그 사상가란 알베르 카뮈이다.

     

    9 부조리의 풍토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사상은 ‘부조리의 철학’이라고 불린다. ‘부조리’(absurde)라는 말은 니체의 ‘신은 죽었다’을 달리 표현한 말이다. 별개의 철학적인 용어로 바꿔보자면 ‘세계의 무의미성을 자각함’이라는 것이 되리라.

    우리들이 일상생활을 무반성적으로 살아갈 때 세계는 의미와 현실감으로 충만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이 불시에 갑자기 의미를 잃고, 빛이 바래고, 섬뜩하며 낯선 ‘이방’의 풍경으로써 느껴지는 것 같은 경우가 있다.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확신이 희박해지고 익숙한 사람들이 기계장치 인형 같이 보이게 된다. 우리들이 갑자기 전락하는, 이런 상태를 하이데거는 ‘세계의 적소 전체성의 붕괴’ 라든가 ‘세계의 완전한 무의미성’이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어떤 사회학자는 이것을 ‘규범상실’이라는 이름으로 그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한계상황은 곧잘 꿈이나 환상 가운데 생겨난다. 그것은 세계가 그 <정상적인> 면 외에 다른 하나의 면이 있어서 어쩌면 지금까지 정상적으로 인정해 왔던 현실의 견지를 덧없이 기만하는 것일 뿐인 것이 존재한다고 하는 집요한 의혹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 인간 존재의 한계상황은 모든 사회적 세계가 갖고 있는 내재적인 불안정함을 폭로한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모든 현실은 잠재된 <비현실>에 의해 위협당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규범질서(nomos)는 모두 규범상실(anomy)로 붕괴하는 부단한 위험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노모스는 강력하고 본질적으로 카오스의 힘에 노출되어 건립된 전당인 것이다.” (36)

    ‘이방’의 감각이란 노모스의 벽에 균열이 생겨 카오스의 노출에 직면했을 때의 공포이다. 그것은 노모스의 세계 발 밑에 깔린 카오스가 열려 끝 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이 ‘이방’ 감각 그 자체는 근대의 발명이 아니다. 같은 방식으로 세계의 취약함을 느낀 사람들이 고대에고 중세에도 존재했으리라. 그러나, 그것이 시대 전체에 씌여버려 시대 전체가 공유하는 ‘세기병’적인 기분이 만연한 것은 근대 이래의 것이다.

    ‘예정조화적인 세계의 붕괴’ 감각의 글로벌화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도시화, 산업화, 기술혁신. 전기, 무선, 영화, 자동차, 비행기라는 ‘근대적 테크놀로지’에 의한 라이프스타일의 격변. 그 테크놀로지가 낳은 전차, 전투기, 독가스라는 세계 제 1차대전에서의 효율적인 인간 말살 장치. 그리고 화폐가치의 폭락.

    유럽에서는 1918년까지 ‘연금생활자’라고 하는 하나의 사회계층이 존재했다. 시조가 지은 석조저택에 살며 선조가 사용한 가구를 사용하고 시조가 사들인 채권의 이자로 한평생 노동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 ‘고등유민高等遊民’은 유럽 문화자본의 주요한 생산자이자 소비자였다. 그와 같은 생활방식이 가능했던 것은 유럽의 주요국 화폐가치가 17세기부터 1차 세계대전 발발 때까지 거의 변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받아들인 ‘세계’의 이미지는 우리들이 지금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정적이고 견고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세기 전환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세계의 붕괴’는 박진감 있는 리얼리티와도 같았던 것이다.

    이 시기의 사상가들이 경쟁하듯이 이런 규범 상실 상태의 대상화를 철학적인 우선문제로 둔 것을 생각해 보면 자명한 것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불안’, 야스퍼스의 ‘한계상황’, 사르트르의 ‘구토’, 바타유의 ‘체험’, 레비나스의 ‘il y a’ 라고 하는 철학적인 술어는 어느 것이든 이 규범 상실 상태를 지시하고 있다. 카뮈의 ‘부조리’도 그런 경험을 기술하는 그의 오리지널한 용어법이다. 카뮈는 부조리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이방성, 그것은 세계에 <두께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나의 돌이 어디까지 서먹서먹해져서 얼마나 우리들의 이해에 저항하는가를, 얼마나 완고히 자연이, 풍경이 우리들을 부정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모든 아름다운 것의 기저에는 비인간적인 무언가가 깔려 있다. (…) 세계의 원초적 적의감이 수천년을 넘어 우리들을 향해 떠오르고 있다. 그 한 순간 우리들은 이미 세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몇 세기동안 세계에 대해 이해해 왔던 것은, 사실 우리들이 이미 세계에 적용해 온 모양이나 도안이었기 때문이다. (…) 세계는 세계 그 자체로써, 우리들의 이해를 초월하고 만다. (…) 이 세계의 두께와 낯섦, 그것이 부조리라고 하는 것이다.” (37)

    노모스의 붕괴와 카오스의 노출. 도식적으로 말하면 ‘부조리’란 규범 상실 경험 그 자체이다. 이와 같은 경험이 20세기 유럽의 철학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 사상형성의 초기조건으로써 부여되었다. 그들은 각자 이 규범 상실 경험과 어떻게 맞섰는가 하는 형태로 그들의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했다. 그리고 그들의 많은 수는 이 규범 상실 상황을 ‘교화적 계기’로써 받아들인 해결책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규범 상실 상황을 뛰어넘어야 할 과정, 변증법적인 종합에 다다르기 위한 부정적인 계기라는 식으로 생산적, 공리적으로 해석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교육적인 ‘우회’ 또는 ‘시련’으로 구상한 것이다. 시련을 잘 통과한 자는 더욱 포괄적으로 전체적인 ‘상위의 지知’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규범 상실 경험을 더욱 포괄적이고 더욱 전체적인 상위 규범의 정립으로의 과도기로 간주한 이 예정조화적인 생각을 카뮈는 ‘철학적 자살’이라고 부른다. 키르케고르, 하이데거, 후설, 셰스토프의 철학적 이론에 대해 카뮈는 엄하게 단죄를 단행했다.

    “실존 철학에 대해 말하자면, 어떤 철학도 예외 없이 나에게는 기피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묘한 논리를 통해 이성을 와해하는 부조리라는 장소, 인간들밖에 없는 닫힌 세계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을 신성화하며 그들로부터 빼앗아 간 것에 대해 희망을 거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38)

    이들 철학에 따르면 인간 이성의 좌절의 경험은 ‘인간 이성을 뛰어넘는 것’ - 그것은 ‘초월적 존재’ ‘존재’ ‘초월자’등 갖가지 이름으로 불리는-의 인지에 곧장 연결된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말하면 ‘인간 이성에 한계가 있다’라는 명제로부터 ‘인간을 뛰어넘는 초 이성이 존재한다’고 하는 명제를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할 터다. 카뮈는 이 논리적 비약을 ‘도피’, ‘굴종’, ‘휴식의 원리’라며 배척한다.

     

    “부조리가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세계 가운데서이다. 부조리라는 개념을 영원성에의 도약대로 바꿔 읽는 순간 부조리와 인간의 명석함 사이의 가교는 무너진다.” (39)

    카뮈는 ‘인간밖에 없는, 인간만의 닫힌 세계’에 나아가지 않음을 선택한다.

    “이런 부조리의 상태, 여기에서 걸음을 멈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40)

    그것은 ‘카오스의 연緣’에 곁에 붙어서, 초 이성이라거나 카오스라든가 영원성의 유혹에 저항해 현기증을 견뎌가며 왔다갔다 하는 균형상태이다.

    “부조리가 의미를 갖는 것은 밸런스 가운데 의해서 뿐이다. 부조리는 무엇보다 길항관계 가운데 있으며 이 길항관계의 어느 한 쪽의 항에 있는 것이 아니다.” (41)

    카뮈는 인간이 멈춰서야 할 영역과 그 지적 과제를 다음과 같이 한정한다.

    “나는 이 세상이 우리를 뛰어넘는 듯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그런 의미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당분간 나에게는 그것을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내 한계를 뛰어넘는 의미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나는 인간의 말로밖에 이해할 수밖에 없다. 내가 만질 수 있는 것, 내가 저항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42)

    규범 상실 상황을 그 뒤틀린 채로, 그 불균형한 채로, 그 공허함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 아노미를 도약대로써 공리적으로 이용해 더욱 안정적인 상위 레벨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닌, 규범 상실 상황 그 자체를 일상적으로 인간의 눈높이로 살아가는 것, 그것을 카뮈는 선택했다.

    “경계선까지 겨우 다다른 정신은 판단을 내려 자신의 결론을 따라야만 한다. 어떤 것은 자살하고 어떤 것은 대답한다. 그런데 나는 탐색의 순서를 역전해 지성의 모험으로부터 출발해서 매일의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43)

    “길은 지금이야말로 일상생활에 이어져 있다. 길은 다시금 익명의 <사람들> 세상에 나타난다. 그런데 인간은 이번에는 방항과 명찰明察을 갖고 거기에 돌아가는 것이다.” (44)

    이성의 극북極北까지 더듬어 도착한 카오스의 연으로부터 세계의 끝 모름을 들여다본 후 자살하는 것도 ‘도약’하는 것도 거부한 인간은 ‘원래 세계에 돌아가는’ 것과 다름 없다. 그것이 카뮈의 선택이다. 단지 그것이 ‘부조리’ 이전과 같이 무반성적인 헛된 삶을 탐하기 위해 귀환하는 것이 아니다. 노모스는 취약한 가설설치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세계를 초월하는 의미나 영원의 질서를 꿈꾸는 것은 단지 ‘영원의 자살’일 뿐이다. 이 두 가지의 명석한 단념을 갖고 부조리의 인간은 세상으로 돌아간다. 이와 같은 추론을 경유해 카뮈는 니체가 남긴 처음의 질문을 나타내 보인다.

    “상위 심급審級 없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아는 것, 그것이 우리의 관심의 전부이다. 나는 이 문제영역을 한 걸음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45)

     

    10 이방인의 윤리

     

    ‘상위 심급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의 가장 과격화된 형태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나타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가능한가?’

    사람을 죽이는 것,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자유의 궁극적 발현형식, ‘나’의 주체적 가능성에 관한 한계이다. 그리하여 상위 심급 없는 세상 속 인간의 행동 준칙을 탐구하는 카뮈가 ‘어떤 경우에 나는 타자를 죽이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불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절실한 사상적 물음으로써 받아들인 것은 필연적이다. 만약 ‘사람을 죽여도 좋은 조건’이라는 것을 실정적으로 열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신 없는 시대’에서의 정의와 윤리의 출발점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죽여도 좋을 조건’이란 것이 과연 있을 법한 것인가.

    <이방인>이라는 작품은 이 물음에 대해 카뮈가 시도한 대답이라고 우리들은 생각한다. 우리들은 아래에 있어서 신 없는 시대의 윤리를 찾는 카뮈가 악전고투한 기록으로써의 <이방인>이라는 텍스트를 읽어보고자 한다.

    이미 많은 비평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소설 속 주인공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은 ‘그것은 어떤 의미도 없다’ (Cela ne veut rien dire) ‘나는 모른다’ (Je ne sais pas) ‘무엇이 되든 같다’ (Cela m’est égal) 이다. 사물에는 갖가지 고유한 의미가 있다는 것, 어떤 사물과 다른 사물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 그런 고유한 의미나 차이를 보증하는 국외局外적, 중립적인 판정 기준이 있다는 것, 이것을 주인공은 일관되게 부정한다. 차별짓는 것의 거부, 모든 가치의 평준화, 어떤 종류의 ‘평형상태’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 ‘차이’나 ‘위계’를 무화無化하는 힘이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다는 게 우리들의 생각이다. 이 ‘무차이無差異’ (indifference)를 향하는 힘을 우리들은 우선 ‘균형의 원리’라고 이름짓기로 한다. 주인공 뫼르소를 해안에서의 살인으로 이끈 것은 이런 원리이다.

    뫼르소는 친구들(레이몽, 맷슨) 과 해안에 가서 레이몽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아라비아인 그룹과 세 번에 걸쳐 수준이 다른 폭력 행사를 경험한다. 그 모든 기회에 의해 그들은 항상 하나의 행동 준칙을 충실히 따른다. 그것은 폭력의 행사에 즈음해서는 조건의 균형을 기한다는 것이다.

    최초의 대결에서는 프랑스인 세 명과 아랍인 두 명이 조우한다. 이 사람 수의 불균형은 뫼르소를 전투요원에서 제거하는 것으로 해결된다.

    “레이몽은 말했다. <소란이 벌어질 것 같다면 맷슨, 너는 두 번째 놈을 해치워. 나는 그 녀석을 데리고 갈 테니까. 뫼르소, 너는 달리 한 사람 발견한다면, 그 녀석을 해치워.” (46)

    결과는 2대 2로 ‘평등한’ 치고받음이었다. 프랑스인들은 맨손으로 싸워 압승했지만 나이프를 꺼낸 아랍인에 의해 레이몽의 팔이 찔리고 입가가 찢어졌다.

    이 ‘불균형’의 해소를 위해 두번째의 조우전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레이몽은 나이프에 대항하기 위해 권총을 준비한다. 사람 수는 (이번에는 맷슨이 없기 때문에) 2대 2로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나이프와 권총의 살상능력 차이에 의해 ‘불균형’이 발생한다. 이 ‘불균형 시정’을 위해 임시태세에 있던 레이몽에 대해 뫼르소는 세 번에 걸쳐 ‘전투조건의 균형화’ 제안을 꺼낸다.

    처음에 뫼르소는 ‘저쪽이 아직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으니만큼, 갑자기 때리는 건 비겁하다’고 말해 격분한 레이몽에게 선제공격의 부당함이 있다는 것을 설득한다. 그러면 매도의 응수를 위해서는 쏘아도 되냐고 묻는 레이몽에게 뫼르소는 ‘나이프를 뽑는다면 쏘아도 좋아’라고 ‘정당방위’의 명분을 내건다. 그사이 긴장이 높아져서 ‘아니, 남자답게 맨손으로 해치워. 네 권총은 내가 맡지. 만약 다른 녀석이 나오거나 그 녀석이 나이프를 뽑는다면 내가 쏘겠어” (47) 라는 말에 뫼르소는 세 번째의 조건에 묶인다. 결과적으로 아랍인은 철수해서 무사히 끝나게 되었다. 첫 번째의 조우에서는 부상자가 나왔으나, 두 번째는 뫼르소의 필사적인 주선 덕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뫼르소가 신봉하는 ‘균형의 원칙’이 폭력 억지에 확실히 일정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그러나, 이걸로 끝났다면 레이몽의 부상이라고 하는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다. 이 찝찝함은 뫼르소를 해안으로 불러들인다. 뫼르소는 무의식인 채로 권총을 휴대하고 무의식인 채로 아랍인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에 접근했다. 그리고 세 번째의 조우전이 행해졌다. 뫼르소는 1대 1로 아랍인과 조우한다. 아랍인은 나이프를 꺼낸다. 두 번째의 조우에 관해 뫼르소 자신이 묶여 있었던 ‘조우’가 이때 해소되고 만다. 사람 수도 같고, 공격의 의사는 예고되어 있으며 무기는 정해졌다. ‘균형의 달성’을 바라던 힘이 뫼르소에게 총을 쏘게 만들었다. 뫼르소는 참으로 ‘균형의 원리’에 의거해 아랍인 살해를 주저 없이 저지른 것이다.

    <이방인>의 세계는 ‘균형의 원리’에 지배받고 있다고 우리들은 생각한다. 그것은 경험적으로 그것이 그들의 아는 효과적인 유일한 폭력 제어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균형만 확보되어 있다면 폭력은 면책된다. 자신의 죽음을 대가로 한다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당화된다. 이것이 ‘이방인의 이론’이다. 이것은 아직 이 시기만 따져본다면 알베르 카뮈 자신의 현실적인 행동준칙이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11 저항의 이론과 숙청의 이론

     

    몸소 죽음의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는 자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우리들은 이것을 ‘이방인의 윤리’라고 부른다. 이 윤리는 소설 세계에 국한되지 않고, 카뮈에게 있어서 정치적 상황을 향한 자신의 결의를 지지하는 근본 원리였다. 오히려 그의 레지스탕스 관여 (그것은 요컨대 ‘적을 죽이는’ 것이다) 는 그 논리적 정당화를 위한 <이방인>에서의 에크리튀르(écriture; 필자의 고유한 글쓰기 태도를 이름 – 역주) 훈련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으리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942년 <이방인>의 완성과 거의 동시기에 카뮈는 레지스탕스의 지하 출판 활동에 가담한다. <이방인>이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카뮈가 시대의 총아가 된 바로 그 시기에 카뮈는 비합법 활동에 결정적인 방식으로 참가하기 시작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주목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에 비합법 활동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었다면 납득할 수 있다. 그런 게 아니라 사태는 정 반대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이방인>의 완성을 기함과 함께 ‘정치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상’이 카뮈 가운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방인> 완성 직후, 독일 점령하에서 지하 출판된 레지스탕스 문서 <독일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 익명의 글쓴이는 이렇게 쓴다.

    “우리들에게는 긴 우회가 필요했다. 우리들은 긴 지연이 필요했다. 그것은 진리에의 염두가 지성을 강하게, 우정에의 염두가 감정을 강하게 한 우회였다. 이 우회가 정의를 지키는가 몸소 묻는 쪽의 인간들에게 이치가 닿는다. 이 우회를 높이 내걸었다. 우리들은 그것을 굴욕으로, 침묵으로, 고통으로, 감옥으로, 처형의 아침으로, 단념으로, 이별로, 매일의 굶주림으로, 깡마른 아이들로, 그리고 무엇보다 강제된 개전改悛으로 지불했다. 이것은 순서로써 옳은 것이었다. (Cela tait dans l’ordre.)

    그렇게 말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인간을 죽일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는지 없는지, 이 세계의 폭력에 거듭해서 폭력을 덧대는 것이 우리들에게 허락되었는지 아닌지를 아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48)

    여기서 말하는 ‘긴 우회’란 독일 점령 하에 있는 프랑스인 동포의 수난 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이방인>의 완성도 담겨져 있다. 어쨌든, 희생자의 고통이 독일인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고, 프랑스인이 ‘더럽혀지지 않은 손’으로 전쟁을 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고 카뮈는 쓰고 있다. 이것은 죽음의 대칭성, 폭력의 상호성에 기반한 정의를 계량한 ‘균형의 원리’에 기반한 ‘이방인의 윤리’ 그 자체인 것이다.

    전쟁에는 <이방인>의 ‘판사’에 상당하는 상위의 심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철저적으로 ‘평등성’이 관철하는 영역이다. 그렇다고 하면 ‘이방인의 윤리’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고, 애국적 정열을 고양시키는 정치적 목적에 관하는 한, 더없이 효과적인 프로퍼갠더일 터다. 사실, 침략자에 대항하는 프랑스인의 윤리적 우위를 보증하고, 저항에 조리를 부여하는 이 텍스트는 제 2차 세계대전의 군사적 승리에 적잖은 공헌을 가져왔던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전후, 카뮈의 레지스탕스 공적에 대해 서훈의 뜻을 표했다.) 카뮈가 전후 한 때 향수했던 신화적 위신은 이 군사적 공적의 덕이었다.

    그러나 ‘피해자’는 ‘더럽혀지지 않은 손’을 가지고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하는 이 ‘균형의 원리’를 받아들이려면 논리적으로는 여러가지 ‘복수’가 정당화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방인의 윤리’는 전쟁이 프랑스의 승리 가운데 끝났을 때 심각한 난문難問에 조우하게 되었다. 그것은 ‘숙청’의 문제다.

    전후의 프랑스에는 대독對獨협력자, 전쟁책임자의 ‘숙청’이 무시무시한 폭력을 일으켰다. 프랑스 현대사의 ‘치부’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전후 숙청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공식자료가 존재하지 않으나, 수천명의 프랑스 시민이 재판 없이 처형당했다. 카뮈는 레지스탕스 활동에서의 맥락상 전쟁책임을 추구하고 균형의 회복을 요구할 입장이었다. 앙리 베로라는 우익 저널리스트가 전시戰時 대독 협력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자비를 호소한 프랑소와 모리악과 정의를 추구한 카뮈는 격한 논쟁을 전개했다.

    ‘숙청이 화제가 될 때마다 나는 정의에 대해 말하고, 모리악 씨는 자비를 말한다’라는 말로 시작한 이 논설 가운데 카뮈는 다음과 같이 엄한 선고를 기록한다.

    “내가 모리악 씨에게 말하고 싶은 바는 우리들의 나라가 죽음에 이를 두 가지 길이 있다는 것이다. (…) 그것은 증오의 길과 용서의 길이다. 나는 어느 쪽도 못지 않게 유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증오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용서가 그것보다 더 낫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사면을 말하는 것은 모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찌됐든 나에게는 용서할 권리가 없다.” (49)

    카뮈의 이 엄한 태도는 그러나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같은 달 25일 변호의 여지 없는 대독협력자였던 로베르 브라지약의 구명탄원서에 알베르 카뮈는 망설임 끝에, 서명했다. 브라지약의 구명탄원서에 서명하도록 의뢰해 온 마르셀 에이메에 대해 카뮈는 다음 날 고통스러운 동의 답장을 했다.

    “당신 탓에 저는 잠 못 드는 하룻밤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결국, 저는 당신이 요청해 온 서명을 오늘 보내게 되었습니다. (…) 저는 이제까지 계속 사형선고라는 것을 격하게 미워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어도 한 개인으로서 사형선고에 기권을 통해 가담하고자 결의한 것입니다.” (50)

    같은 대독협력자였던 뤼시앙 르바테의 감형탄원에 대해서도 카뮈는 같은 취지의 것을 썼다.

    “저는 이제까지 그와 같은 인간과 철저하게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그보다 더 강한 충동을 느낀고로 사형선고를 받은 그의 감형을 요청합니다. 한 사람의 인간을 죽이는 것보다 그에게 자신의 과오를 성찰하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더욱 시급하고 범례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고는 하나 이것이 저에게 있어서 결코 쉬운 결단은 아니었다는 점을 이해해 주십시오.” (51)

    카뮈를 사로잡은 ‘더욱 강한 충동’이란 이것 역시 ‘이방인의 윤리’ 가운데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레지스탕스에 의해 표면화되지 않았던 어떤 문제가 전후 숙청에 직면해서 전경화前景化했던 것이다.

    ‘균형의 원리’에 기초한 ‘이방인의 윤리’는 ‘상위 심급 없는 세계에 있어서 윤리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카뮈가 만들어 낸 이론적 장치였다. 레지스탕스 활동에는 ‘균형의 원리’가 관철되었다. 적의 생명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의 생명을 저금으로 내어 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독협력자의 숙청은 ‘균형의 회복’을 요청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체는 마치 별개의 것이다. 사형선고는 프랑스의 국권을 배경으로 한 ‘재판’이다. 그것은 상위심급으로부터 내려와 재정된 것이다.

    경험적으로 말해서, ‘아버지’는 누차 ‘동포’나 ‘등격자’와 같은 얼굴을 하고 등장한다. ‘아버지’는 흡사 상처 입은, 잃어버린 ‘균형의 회복’을 요구하는 것마냥 심판을 청구한다. 그렇지만 그것이야말로 속임수인 것이다.

    ‘사회는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라는 상투어를 ‘아버지’가 말할 때,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당사자’는 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란 것은 자기 자신이 상처입는 것도, 무언가를 잃는 것도 없는 ‘아버지’가 저 높은 곳에서 심판의 폭력을 내릴 때 사용하는 전략적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뫼르소는 감옥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신문은 여러번 사회에 대한 빚(une dette qui était due à la société)에 관해 말한다. 신문에 의하면 그 빚은 갚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52)

    부채와 그 정산을 끝낼 법한 상황은 등격자들 사이, ‘독일의 한 친구와 나’의 사이에서만 일어난다. 상위심급 없는 세계에서만 균형의 원리는 윤리의 근거로 삼을 만하다. ‘균형의 회복’ ‘부채의 지불’을 ‘아버지’가 바라고 있는 것은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다. 정의와 윤리의 재정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그런 의제와 싸우기 위해 카뮈는 그의 사상을 구축한 것이다.

    숙청에 직면했을 때 이 일시적인 요동침[Dutch roll]은 카뮈에게 ‘이방인의 윤리’의 취약성에 대해 한 가지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균형의 원리’만으로는 윤리의 기초를 다지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균형의 원리’에 조건을 하나 더 붙이지 않으면 윤리의 입장은 ‘동포의 얼굴을 한 아버지’ ‘수난자인 척하는 강권자’ ‘약자의 편에 서는 척하는 궤변가’에 의해 쉽게 착취받게 되리라.

    어떻게 해서 ‘상처입은 동포인 척하는 아버지’와 ‘상처입은 동포’를 판별할 것인가, 카뮈는 이 물음을 그 이후 계속 생각했다. 1940-60년대의 프랑스 좌익 지식인들이 ‘희생을 강요받은 자에게 보복의 권리가 있다’ 라고 단순한 로직에 의거한 가운데 ‘계급투쟁, 민족 해방 투쟁’에 무조건적인 연대를 약속하는 참에, 카뮈 한 사람은 보복의 응수는 증오의 증식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지적해서, 고립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그 사상적으로 더없이 불우한 시대에 카뮈 안에서는 윤리의 기초짓기에 관한 정치精緻한 이론이 숙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12 반항의 논리

     

    동서냉전, 계급투쟁, 식민지 해방 투쟁 등 여러가지 층위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패권 투쟁이 격화되던 1952년, 카뮈는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허락되는가’라는 비판적 주제를 다루는 장대한 저작인 <반항적 인간>을 간행했다. 이 책의 주제는 앞에서 대독협력자들에게 구명탄원을 고민한 카뮈의 ‘중도불완전성’이 그것이다.

    죄 지은 자를 앞에 두더라도 그것을 단죄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지의 여부가 좀체 떠오르지 않는 주체의 난감함. 정의를 명쾌한 논리로 요구한다고 해도, 이제 정의의 폭력이 집행될 때가 되면 정의가 얼마나 가열한 것인지를 견디지 못하는 약함. 그러한 카뮈의 애매한 스탠스는 우리들에게 더없이 사람으로서 성실한 것으로 비친다. 그러나, 시대는 그런 중도 불완전성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단지 자신 한 사람만을 옹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카뮈는 두 명의 가상 적과 직면해 싸웠다.

    한 쪽에는 ‘역사’라는 이름을 내걸고 자신들의 혁명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자들 (마르크스주의자, 민족해방투쟁주의자들) 이 있다. 다른 한 쪽에는 ‘모든 것을 용서하자’를 슬로건으로 ‘전적 자유’를 요구하는 자들 (쉬르레알리스트들, 이반 카라마조프적, 니체적 영웅들). 전자는 ‘역사’라는 상위 심급을 근거로 해서, 후자는 그 부재를 근거로 해서 각자 자신이 집행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려 했다. 우리들은 모두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고 하는 방법으로 폭력적 세계 가운데 관련[involve]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일은, 자신이 휘둘린 폭력과 자신이 휘두른 폭력에 대해 실현시켜야만 한 정의와 그 정의에 의해 발생하는 부정에 대해 그 수지를 냉정한 이성으로 정량하는 것이다. ‘어느쪽의 폭력이 더 폭력적인가’를 판정하는 데 있어서 적잖이 경험적으로 하나 준칙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통상 자신이 폭력 행사를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쪽이 자신들이 행사하는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는 쪽의 폭력보다 더욱 광범하고도 철저적이라는 것이다. ‘정의의 실현’이든 ‘정의의 부재’이든 어느 쪽이든 ‘인간의 범위를 넘어선 권위’ ‘상위심급으로부터의 보증’을 등에 업고 휘두르는 폭력은 고유명에 의한 사리를 위해 휘두르는 폭력보다도 압도적으로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우선적인 일은 ‘몸소 전적 자유를 서임해 내키는 대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용납치 않음’을 정치과제로써 설정하는 것이다.

    이 ‘정당성을 근거로 휘두르는 폭력의 제어’를 카뮈는 ‘반항’이라고 이름 붙였다. ‘반항’ 이란 한계를 설정하는 것, 뭐가 되었든 명목적인 ‘타자를 죽일’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극한적 자유, 다시 말해 죽일 자유는 반항의 준칙과 서로 어울릴 수 없다. 반항이란 전적 자유를 청구하지 않는다. 반대로 반항은 전적 자유를 도리어 심문한다. 반항은 참으로 무제한의 권력에 이의를 주장한다. 그것은 무제한의 자유가 있는 우월자에 의한 금지된 경계선의 침범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괄적인 자유를 청구하기는커녕, 인간 존재가 있는 곳 어디에나 자유는 나름의 한계가 있다는 것, 한계만이 이 존재의 반항의 힘 그 자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반항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52)

    ‘나의 자유’를 극한적으로 발현한다는 것은 ‘타자의 자유’의 전적 부정, 다시 말해 살인인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자유에 한계선이 있다는 것은 그것은 ‘죽여서는 안 된다’라는 ‘한계’나 다를 바 없다. 자유의 한계는 참으로 ‘너, 죽이지 말지어다’라는 ‘계율’의 형식으로 도래하는 것이다.

    이 ‘계율’은 상위의 입법자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몸소 ‘입법’권을 부여받는 듯한 존재를 카뮈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게 아니라, 그 계율은 지금 막 죽임을 당하려는 피해자의 ‘얼굴’로부터 발하기 때문이다.

    “반항자란 억압자와 얼굴을 대면하는 (dresse face à l'oppresseur) 단지 그 하나의 행동에 의해 생명을 옹호하고, 예종과 허위와 테러에 대한 전쟁에 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54)

    몸소 전적 자유의 권리를 대관[戴冠; 叙権] 한 억압자에 대해 ‘그것을 한계짓고 그것을 억지하는’ 얼굴을 비추는 자, 즉 ‘타자’로부터 계율은 도래한다.

    이 계율은 지금 막 죽임을 당하려고 하는 인간의, 그럼에도 ‘죽이려고 하는 나’를 돌아보는 눈빛으로부터 ‘자신을 방기放棄하지 않는 자, 몸을 맡기지 않는 자, 나를 직시하는 자’의 눈빛으로부터 호소, 기원, 명령이 나에게 도래하는 것이다. ‘상위 심급’이 없는데도 행동할 수 있기 위한 준칙이 있는가, 라고 카뮈는 자신에게 물었다. 이 물음에 그는 어쨌든 다음과 같은 답을 한 바 있다.

    나의 자유 앞에 걸림돌이 되는, 내 폭력의 대상이 되는 그 순간에 ‘나를 바라보는 자’를 두려워하라. 이것이 유일한 계율이다. 온갖 윤리는 이 계율에 기초해 쌓여 있는 것이리라. 이렇게 생각하면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일 수 있던 게 가능했던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균형이 달성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해안의 살인 장면 가운데, 살해당하는 아랍인의 ‘얼굴’을 호소했을 터인 윤리적 명령 ‘너 살인하지 말지어다’는 뫼르소에게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랍인의 ‘얼굴’을 마지막까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안을 걷는 뫼르소는 ‘타들어가는 대기’와 ‘그림자’라는 두 가지 차단막 탓에 아랍인의 얼굴을 그다지 직시할 수 없다. 그때 아랍인이 나이프를 꺼내 태양에 비추어 보인다.

    “그때 참으로 내 눈썹에 고여 흘러내린 땀이 뜨뜻미지근한 베일이 되어 눈썹을 덮었다. 내 눈은 이 눈물과 땀의 막으로 보이지 않았다. (Mes yeux étaient aveuglés derrière ce rideau de larmes et de sel)” (55)

    권총을 발사하기 전 뫼르소는 순간적으로 ‘맹목盲目’이 되었다. 더 정확히는 ‘맹목이 되었다’는 것에서부터 비로소 뫼르소는 아랍인을 죽일 수 있었다. 사람은 맹목이 되지 않고 타자를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를 바라보는 자를 ‘나’는 결코 죽일 수 없다. ‘이방인의 윤리’에 이런 ‘저항의 윤리’를 조건에 덧붙여서우선 카뮈로서는 윤리의 기초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13 페스트 환자 혹은 신사의 예절

     

    길게 이어온 이 논고도 슬슬 결론을 이끌어내야만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들은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라는 래디컬한 물음을 구하며 이 논고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은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너, 살인하지 말지어다.’ 이것이 절대적 계율이다. 그 계율의 정통성은 종교적인 기원으로부터 보증되는 것이 아니고, 형법이 정한 처벌의 공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계율의 절대적 정통성은 ‘내’가 참으로 폭력을 휘두르려고 하는 그 순간, ‘나’를 줄곧 바라보는 타자의 눈빛으로부터 유래한다. ‘내’가 타자를 ‘죽이자’고 하는 그 때에 ‘나’를 응시하는 그 눈빛은 단적으로 ‘나’의 폭력성, ‘나’의 에고이즘, ‘나’에게 존재하는 그 사악함을 ‘나’에게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타자의 눈빛은 ‘내’가 살고, 호흡하고, 공간을 점유하고, 태양의 빛을 받고 있는 것의 정당성을 흔든다. 내가 존재하는 것에 의해 박해받고, 권리를 빼앗기고, 공간을 점거당하고, 빛이 가로막힌 타자가 있다는 것의 ‘꺼림칙함’이 ‘내’ 안에 움튼다. ‘내’가 존재하는 것의 자명성에 대한 의혹과 불안, ‘너 살인하지 말지어다’의 계율이 우리들 가운데 불러일으키는 의식의 교란은 그런 모습을 지닌다.

    이 ‘자아 존재의 정당성 그 자체에 대한 회의’로써의 윤리의 기동起動은 <페스트>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타루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타루가 ‘페스트 환자’ (pestiféré)라고 부른 것은 ‘정의의 폭력’ 위에 구축된 사회 질서에 동의하는 자들에 관한 것이다. 그는 사형선고 위에 성립한 정의에 동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그야말로 누구도 살해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혁명 투쟁에도 동의할 수 없다. 거기서도 아직 혁명적 정의의 이름 아래에서 폭력을 무제한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의 이름으로 죄인에게 참수를 요구하는 판사도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혁명가들도 한 데 모아 ‘페스트 환자’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 가운데 페스트를 품고 있다. 이 세상에서 어느 한 사람도 그 감염을 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56)

    이렇게 해서 타루는 판사였던 아버지의 곁을 떠나 뒤이어 투신했던 혁명운동으로부터도 탈락한다.

    “내가 살인을 거절한 순간 나는 결정적으로 이 세상으로부터 추방되었던 것이다.” (57)

    타루가 최후에 다다른 것은 페스트가 은유로써가 아닌 재난으로써 경험하고 있는 도시다. 거기서 그는 그 페스트와 싸우는 한 자신도 아직 페스트에 걸리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는 출구 없는 상황에 처해 어떤 윤리적인 지각을 달성한다. 그것은 페스트란 ‘나’의 ‘외부’에 있는 싸워 해치워야 할 ‘악’이 아니라, ‘외부’에 있는 것을 상정해 거기서 ‘악’을 응축해 그것과 ‘싸우는’ 어법으로밖에는 ‘나’의 삶의 방식을 말할 수 없는 타루 자신의 ‘증상’이라는 것이다. 페스트란 자신의 바깥에 실재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나’의 불행의 설명원리로써 그런 ‘실체화된 악’을 자신 외부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사고 문법을 일컫는 점이라는 것이다. 타루는 이때 깨닫는다. ‘내’가 제어해야만 하는 최초이자 최대의 폭력은 다른 게 아니라 ‘나’ 자신이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타루는 하나의 견고하고도 아름다운 윤리의 말을 짜올리게 된다.

    “모두 자신의 안에 페스트를 키우고 있다. 누구 하나, 이 세상의 누구 하나도 페스트를 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어지간히 방심해서 무심코 타인의 얼굴 앞에 숨을 내뱉는다든가 병을 옮긴다든가 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감시해야만 한다. 자연적인 것, 그것은 병원균이다. (…) 신사란, 될 수 있는 한 아무에게나 페스트를 옮기지 않는 자, 가능한 한 긴장하고 있는 자인 것이다.” (58)

    ‘페스트’란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을 자명하다고 여기는 인간의 본성적인 에고이즘인 것이다. 자신이 존재하는 것의 정당성을 잠시도 의심하지 않는 인간, ‘자신의 외부에 있는 악과 싸우는’ 이야기 형식으로밖에 정의를 사고하지 못하는 인간. 그것이 ‘페스트 환자’다. 우리들은 존재하는 한 이미 악을 행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들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타자에게 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타루 윤리의 기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있는 힘껏 노력해서 자기 자신의 사악함을 억누르는 것, 자신을 더럽히고 있는 병을 이 이상 전염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런 눈에 띄지 않는 저항이라도 결코 쉬운 태도는 아닐 것이다. 그것을 시도해 보는 인간을 카뮈는 ‘신사’ (l'honnête homme)라고 부른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같게’ 사는 것만으로는 페스트에 가담하는 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인간이 ‘보다 인간적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짊어진 윤리적 부하를 ‘타자보다 더 많이’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이 말은 함의하고 있다. 우리들의 본성적 사악함을 정화해나가기 위해 부단한 ‘자기 초월’ (이런 말에 따라붙는 니체의 ‘초인’사상 자체와 이것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자기 초월’은 ‘초인’이나 ‘귀족’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말과 ‘신사’라는 (범용한) 말의 어감의 다름이 바르게 나타내고 있는 것과 같이 결코 같지 않다. 카뮈의 ‘신사’는 어떤 종류의 귀족적 소명을 지상에 실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장대한 기획은 그와는 관계가 없다. 아마도 ‘신사’를 일상생활 가운데 실천하기 위해서는 노모를 공경하고, 임산부에게 배려를 표하고, 한 사람을 상대로 둘이서 덤벼드는 일을 자제하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고, 문 앞에 ‘먼저 가십시오’ 라고 사람의 길을 터 주는 일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일상을 꾸려나가는 일’ 은 어떤 철저한 각오성이 지탱하고 있다. 결국 그것은 난파하는 배에서 최후의 구명 보트 최후의 좌석에 자리잡는 것, 밝은 얼굴로 ‘먼저 가십시오’라고 단언할 결의를 가지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겸양’이고, ‘예절’이고, 어떤 종류의 ‘억지부림’이다.

    그런 정도의 사어死語나 다름 없는 개념이 ‘20세기의 윤리’의 ‘최후의 말’이라는 것을 의외의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카뮈가 ‘균형의 원리’ 즉 ‘폭력의 상호성’의 윤리로부터 나와 타자의 ‘책무의 비상칭성’이라는 윤리로 이행하는 여정은 극도의 지적 긴장만을 해야만 가능하다. 그것은 니체 이전적 영역으로의 퇴행도 아니고, 범용한 상투어구의 되풀이도 아닌, 긴 시간이 걸리는 고통에 가득 찬 성찰의 결론인 것이다. 그것은 윤리에 대해 철저적인 성찰을 시험해 본 한 사람의 철학자가, 카뮈와 거의 같은 언어를 사용해 말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들은 이 논고의 최후를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말로 마무리 지을까 한다.

    “타자를 존중하는 것은, 타자에게 한 걸음 양보하는 것입니다. <먼저 가십시오>라고 길을 터주는 것입니다. 즉 신사의 예절인 것입니다. 아, 이 표현은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요. 자신보다 먼저 사람을 보내는 것. 이 대수롭잖은 신사적 예절의 반짝임이 타자의 얼굴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렇지만, 어째서 양보하는 것이 <나>이며, <당신>이 아닌 것일까요? 이것은 곤란한 질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신> 도 다시금 <나>에게 가까이 다가올 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신사의 예절, 혹은 윤리의 본질이란 그런 상칭성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59)

     

    【참고문헌】

     

    (1) Albert Camus, Interview à《Servir》,1945, in Essais, Gallimard, 1965, p.1427)
    (2) フリードリヒ・ニーチェ、『悦ばしき知識』、(ニーチェ全集、第八巻)信 夫正三訳、理想社、1962年、pp.187-189
    (3) ジョン・ロック、『政治論』、第9章、124節-127節
    (4) ルイ・アルチュセール、『政治と歴史』、西川長夫他訳、紀伊国屋書店、
    1974、p.28
    (5) 同書、p.29
    (6) 同書、p.30
    (7) ニーチェ、『善悪の彼岸』(ニーチェ全集、第10巻)、信夫正三訳、理想 社、1967年、p.142
    (8) 同書、p.144
    (9) 同書.164
    (10) ニーチェ、『道徳の系譜』、(ニーチェ全集、第10巻)、信夫正三訳、p. 165
    (11) 同書、p.158
    (12) 同書、p.155
    (13) 同書、p.32
    (14) 同書、p.34
    (15) 同書、p.37
    (16) 同書、p.31
    (17) 同書、p.42
    (18) ニーチェ、『道徳の系譜』、木場深定訳、岩波書店、1940年、p.22-23
    (19)『善悪の彼岸』、p.273
    (20) 同書、p.203
    (21) 同書、p.269
    (22) ニーチェ、『ツァラトゥストラ』、手塚富雄訳、中央公論社、1966年、 p.64
    (23) 同書、p.67
    (24)『善悪の彼岸』、p.284
    (25)『道徳の系譜』、p.359
    (26) 同書、p.351
    (27) Edouard Drumont, La France juive, Marpon & Flammarion, 1886, tome I, p.5
    (28)『善悪の彼岸』、p.293
    (29) オルテガ・イ・ガセット、『大衆の反逆』、寺田和夫訳、中央公論社、
    1971年、p.394
    (30) 同書、p.430
    (31) 同書、p.438
    (32) 同書、p.433
    (33) 同書、p.442
    (34) 同書、p.442
    (35) 同書、p.395
    (36) ピーター・L・バーガー、『聖なる天蓋-神聖世界の社会学』、薗田稔訳、 新曜社、1979年、p.35
    (37) Albert Camus, Le Mythe de Sisyphe, in Essai, Gallimard, 1965,p.108
    (38) 同書、p.122
    (39) 同書、p.12
    (40) 同書、p.128
    (41) 同書、p.124
    (42) 同書、p.136
    (43) 同書、p.117
    (44) 同書、p.137
    (45) 同書、p.143
    (46) Camus, L'étranger, in Théâtre, Récits, Nouvelles, Gallimard, 1962, p.1166
    (47) Ibid.
    (48) Camus, Lettres à un ami allemand, in Essais, p.223
    (49) Camus, Combat, 11 janvier, 1945
    (50) Olivier Todd, Albert Camus, une vie, Gallimard, 1996, p.374
    (51) Ibid., p.375
    (52) Camus, L'étranger, p.1202
    (53) Camus, L'Homme révolté, in Essais, pp.687-688)
    (54) Ibid., p.687
    (55) Ibid.
    (56) Camus, La Peste, in Théâtre, Récits, Nouvelles, p.1425
    (57) Ibid., p.1420
    (58) Ibid., p.1426
    (59) François Poirié, Emmanuel Lévinas, Essai et Entretiens, Babel,
    1996, p.108

     

    (2020-03-02 17:56)

     

     

    20世紀の倫理-ニーチェ、オルテガ、カミュ - 内田樹の研究室

    『ペスト』がいきなり売れ出したということで、集英社の伊藤さんからカミュ論の旧稿をウェブに上げたいという提案を頂いたけれど、これがとてもそのままではお目にかけられるようなクオリティではない。その時にHDの筐底から「こんなもの」が出て来た。たぶん1995年くらいに大学のリレー講義の一部で、「20世紀の倫理」というのを3回くらい担当したことがあって、その時に作ったノートである。そのあと大学の紀要に載せたのだけれど、単行本には採録されていないと思う。カミュ論の部分はのちに改稿して『ためらいの倫理学』という論文にな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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