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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유신회와 가속주의 사상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5. 9. 15:41
오사카에서 집권하고 있는 일본유신회(日本維新の会)가 행한 지난 15년간의 정치 결과에 대한 평가 검토를 어느 강연회에서 요청받았다. 행정, 의료, 교육 등 어느 분야를 살펴봐도 오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높은 평가를 얻지 못하고 있다. 허나 일본유신회가 받는 오사카에서의 인기는 압도적이다. 어째서 정책을 성공시키지 못하는 정당을 유권자는 계속 지지하고 있는가.
일본유신회(이하 ‘유신’ - 옮긴이) 정치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유권자가 ‘유신’ 정치의 실태를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해석을 채용한다. 오사카의 언론이 ‘유신’의 홍보기관으로 화(化)해 있으므로, 유권자는 ‘유신’ 정치가 성공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따라서 진실을 알려주면, 평가는 일변(一變)할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사카의 유권자는 오사카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낱낱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일본유신회가 집권하고 있는 오사카가 일본 전체의 미래를 선취(先取)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오사카는 사실상 ‘선두주자’인 것이다.
공무원은 줄일 수 있는 한 줄인다. 행정 지출은 삭감할 수 있는 한 삭감한다. 사회복지 제도상의 무임승차자는 일소한다. 학교 교육 측면에서는 교사들과 학생들로 하여금 상급자의 명령에 따르는 예스맨이 되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의 ‘가속주의자’들이 줄곧 주장해온 것과 몇 가지 중복되는 최신의 정치적 주장인 셈이다.
가속주의란 2010년대 미국에 등장하게 된 ‘핫’한 사상이다. 자본주의는 이미 말기에 접어들었다. 인류는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에 대비해야만 한다. 허나 ‘민주주의’, ‘인권’,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시대에 뒤처진 이데올로기가 브레이크로 작용하여, 자본주의의 모순을 은폐하고, 자본주의의 종언을 오히려 늦추고 있다. 그 브레이크를 해제하여, 자본주의를 그 한계까지 폭주시키고, 그 죽음을 재촉하며, 자본주의의 ‘바깥’으로 빠져나오고자 한다는 것이 가속주의이다.
컴퓨터로 영화를 2배속으로 보는 사람들이 다수파를 점하고 있는 시대에 걸맞는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의 옳고 그름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결과를 지금 당장 자신의 눈으로 보고자 한다는 욕망 그 자체는 필자도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의 인생은 관 뚜껑을 덮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다(蓋棺事定; 개관사정)’라든가 ‘진리는 역사를 통해 현현(顯現)한다’와 같은 사고방식은, ‘사물의 옳고 그름이 정해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며,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결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인간이 가진 유한성의 자각(自覺)에 기반하고 있다. 당연히 ‘그건 싫다’고 나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의 의미는 지금 당장 알고 싶다, 판정을 ‘후세에 맡긴다’와 같은 유장(悠長)한 태도는 참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가속주의적 경향은 지금 사회의 이런저런 영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 표준은 ~ 임에도, 일본만이 뒤처지고 있다’라든가 ‘버스를 놓치지 마라’와 같은 유형의 정형구는 정치적 입장을 막론하고 빈용(頻用)되고 있다. 기후변화, 팬데믹, 금융 위기, 원전 재가동 등의 사안에 대해 ‘조금의 망설임도 허용하지 않겠다(待ったなし)’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한 어투에 내포되어 있는 서로의 동일성에 필자는 약간의 불안함을 느낀다.
가속주의적 경향이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속도감’이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고, 들뜬 분위기를 부추기는 사람들이 세간의 이목을 모은다. 그렇게 초조함에 쫓겨 채용된 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주는지에 대한 사후적 검증에는 이제 사람들이 더이상 흥미를 표하지 않는다. 미래를 한시바삐 알고 싶다는 초조감은 필자도 이해할 수 있다. 허나, 과거를 뒤돌아보며, 실패로부터 학습하는 습관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앞에 과연 밝은 미래가 열릴 수 있겠는가?
(2023-04-16 11:01)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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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문학 학습 클래스
まった 1【待った】
① 바둑・장기・스모 등에서, 상대가 걸어온 수(手)나 타치아이(立ち合い: ① 相撲で,力士が仕切りのあとに立ち上がること。)를 기다려주는 것. 또한, 그때 발(發)하는 말.
② 전하여, 진행 중인 움직임을 멈추는 것.'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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