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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정치 ー 선장이 헤매고 있는 배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5. 3. 12:23

    어느 매체가 인터뷰 제안을 해왔다. 기시다 정권의 신년도 예산 편성과 관련, ‘어째서 정권은 이렇게까지 성급하게 국방 예산 확대를 추진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아,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번 국방비 증가의 배경에 있는 것은 기시다 정권의 지지기반 약화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 가장 시급한 정치적 과제는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국내 자민당 콘크리트 지지층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미국을 철저히 추종하는 것. 일본의 장래에 대한 독자적인 비전이 그에게는 없다.
     
    이번 국방 예산 및 국방비를 GDP 대비 2%로 상향한 것 역시, 미국이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 요구하는 수준에 발맞추기 위한 것이지, 일본이 발의한 것이 아니다. 일본이 자국의 안전 보장 전략에 대해 숙고하고, 필요 경비를 산정한 결과 ‘이 숫자로 해야 한다’고 도출해낸 숫자가 아니다. 미국에게 들은 숫자를 그대로 복화술 인형처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이 이 거대한 예산 증가에 그다지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서 멍하니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안전 보장 전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일본인의 소관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안전 보장 전략은 미국이 기안한다. 일본 정부는 그것을 소극적으로 반려하거나, 무턱대고 받아들인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80년, 그것만 해 왔다. 그 점에서 일본 정부의 태도는 전후 80년 동안 일관되어 있으며, 기시다 정권은 딱히 안전 보장 정책의 ‘대전환’을 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요구에 따르며 ‘아첨하는 방식’의 정도에 정권마다 다소 차이가 있을 뿐이고, 거기에는 아날로그적인 변화밖에 없다. 따라서 국민은 아무도 놀라지 않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당내의 정권 기반이 결코 견고하지 않다. 따라서 장기 정권을 목표로 둔다면, 미국으로부터의 ‘승인’이 그 정치 권력의 생명선이 된다. 백악관으로부터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통치자’로 확인된 정권은 안정을 보장받는 한편, 조금이라도 ‘미국에 반항하는’ 낌새를 내비치면 즉각 ‘차기’로 교체되고, 정권은 단명으로 끝난다.
     
    기시다 정권은 뾰족하게 실현시키고자 하는 정책이 없다. 최우선시하는 것은 ‘정권의 연명’ 뿐이다. 이를테면, 선장이 목적지를 알지 못하는 배와도 같은 것이다. 자민-공명 연립 정권이라는 ‘배’를 가라앉지 않게 하는 것만이 목하(目下)의 급선무이고, 암초나 빙산이 눈 앞에 나타나면 필사적으로 키를 꺾어 피한다. 허나, 배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만큼은 선장 자신도 모른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다’,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한다’, ‘새로운 자본주의’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당시에는, 총리가 되면 조금이라도 이 시스템을 건드려 보려고 생각했을 것이나, 실제로 선장이 되어 보니 ‘네가 움직여도 되는 타륜(舵輪)의 각도는 여기부터 여기’라는 말을 듣고, 자신에게는 정책 선택의 자유가 거의 없다는 점을 단단히 깨달았다.
     
    이번 국방 예산의 증가도, 우선 미국의 요구가 있어서 그에 맞춰 예산이 짜여졌고, 한술 더 떠 그 예산에 맞춰 ‘중국과 북한의 위협’이라는 ‘현실’이 상정되어 있다.
     
    보통 나라에서라면 우선 현실 인식이 있고, 그에 기반해 국방 전략이 세워지며, 그에 기반해 필요 경비가 계상(計上)될 것이지만, 현재 일본은 그것이 완전히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구입을 결정한 토마호크 미사일이나, 그 전에 ‘마구잡이 구매’한 F35 전투기도, 미국 내에서는 명백히 ‘쓸모 없을 정도로 시대에 뒤처진(레거시 프로그램)’ 무기로 취급받고 있다.
     
    중국과의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미국은 AI 군비 확충에 뒤처지고 있다. 이제는 대형 고정기지나 항공모함, 전투기의 시대가 아니다. AI에 우선적으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는 군산복합체라는 거대한 압력 단체가 있어서, 그들이 국방 전략에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미국 무기 산업계에 현재 대량의 재고가 쌓여 있는 이상, 그것을 처리해야만 한다. 따라서 일본에 강매하는 것이다. 일본에 악성 재고를 떠넘기고 나서 남은 돈을 미군의 버전업에 투자한다. 그러한 ‘합리적인’ 메커니즘이다.
     
    악성 재고를 부르는 대로 사주니만큼, 미국으로서는 일본의 자민-공명 연립 정권만큼 ‘다루기 쉬운’ 정권은 없다. 따라서, 이 정권이 반영구적으로 지속되어주기를 미국이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 국민은 속국(屬國) 신분에 완전히 적응했으므로, 자국 정권이 갖춰야 할 정통성의 근거를 들 때 가장 먼저 ‘미국으로부터의 승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것이다.
     
    미국이 마음에 들어 하는 정권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일본 국민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이상, 일본인이 기시다 정권에 불만을 가질 리가 없다.
     
    따라서, 기시다 정권이 국방 증세를 추진해도, 적격청구서 제도나 신분증 제도 등으로 국민의 납세 부담을 증대시켜도, 국민은 시위나 파업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 자신이 ‘정부라는 것은, 국민의 생활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도착(倒錯)적 명제에 익숙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국, 그리고 국내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바라보며, 그들의 입장에서 수지가 맞을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다’라는 식으로 체념하고 있다. 그렇게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기권율은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20%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갖는 자민당이 선거에 계속 이길 수 있다. 실제로, 앞으로도 자민당은 선거에서 연전연승하리라. 핵심적인 자민당 지지층이 있고, 부동층의 반수가 ‘자민당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여기는 이상, 정치가 바뀔 리가 없다.
     
    문제는 ‘정치 지형이 앞으로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체념이 확산되면 국민 가운데, 이 시스템을 주권 국가가 갖춰야 할 모습으로 소생시키는 것보다도, 이 망가진 시스템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시스템에는 여러가지 ‘구멍’이 있다. 그것을 이용하면, 공권력을 사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공공재를 사재로 맞바꿈으로써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현재 일본이 희망이 없는 나라라는 것은 그들 자신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희망 없는 나라의 시스템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 결함을 이용하면 간단히 자기 이익을 늘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시스템을 복원하는 것보다도 시스템의 ‘구멍’을 활용하는 편이 낫다.
     
    그들은 시스템을 ‘해킹(hack)’한다. 썩어가는 짐승을 먹잇감으로 삼는 하이에나처럼 말이다. 그들은 이 짐승이 다시 살아나 우뚝 서는 일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빈사 상태에 빠져있는 게 그들의 이익을 최대화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이 정권 주위에 모여들어, 언론을 통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것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시스템의 안쪽에서 살아가기를 그만두고, ‘시스템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지방 이주자나 해외 이주자는 그 한 가지 발현이다. 그들 또한 더이상 이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다며 단념하고 있다. 그리고 시스템 바깥으로 ‘도망치는(run)’ 것을 선택했다.
     
    젊은 사람은 지금 양자택일 상황에 몰려있다. Hack or run. 그 선택이 지금 일본의 청년들에게 강요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시스템의 안쪽에서 버티며 시스템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보정하는’ 선택지만이 빠져 있다. (3월 29일)
     
     
    (2023-04-02 09:47)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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