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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 사회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5. 12. 11:03
『진료 연구』라는 마니악한 잡지에 표제와 같은 원고를 기고했다. 맨날 하는 얘기기는 하지만, 이러한 얘기는 아무리 반복해도 부족한 것이다.
이제껏 살 만큼 살아봤지만, 일본의 국력이 이렇게까지 낮아진 시기는 과거에는 없었다. 팬데믹, 이상 기후, 우크라이나 전쟁, 인구 소멸... 과 같이 전 지구적 규모의 커다란 문제가 줄지어 있는 판국에, 일본 내부에서는, 정치와 언론의 저급화가 끝없이 진행되고, 경제는 쇠퇴 국면으로 전락하며, 국민 생활의 최후의 보루가 되는 교육과 의료도 빈사 상태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음을 가다듬고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일본의 국력에는 아직 여력이 있다. 열도에는 넉넉한 산하(山河)가 있다. 열대 몬순이라는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 넘치는 수자원을 누리고 있으며, 식물상・동물상은 다양하고, 온천 벚꽃 단풍의 명소, 신사나 사찰과 같은 관광 자원은 가는 곳마다 있으며, 식문화, 엔터테인먼트, 전통문화 등 세계 표준을 뛰어넘는 분야가 여럿 있다. ‘국력 그 자체’에는 충분한 기초 체력이 있다. 이를 국민 모두가 소중히 다루며 발전시키고, 지키며 키워나간다면, 앞으로 100년 정도는 일본을 ‘잘살고 살기 좋은 나라’로 존속시킬 수 있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그런 정온(靜穩)한 미래 청사진을 그리는 사람은, 정치인이나 공무원, 기업가 가운데에는 없다. 언론계에도 없으며, 학술 세계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눈에 띄는 것이라고 해봤자 눈에 쌍심지를 켜고서 ‘기사 회생의 리스크테이킹’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만 가득하다. 국방비를 2배로 증대시켜 ‘언제든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들려는 흥분한 사람들이 있고, 올림픽, 엑스포, 카지노, 자기부상열차 등 ‘성공하기만 하면 경제적 파급 효과가 수 조 엔’이라는 ‘입도선매’에 홀려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생산성이 없는 녀석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학자나 시사 패널이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저임금에 허덕이고, ‘불쉿 잡(Bullshit jobs)’에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고, 어두운 낯빛을 하며 직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이 있다. 어떻게 ‘좀 산다 하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이다지도 ‘궁상맞은’ 것인가. 그에 대해 생각해본다.
가난과 ‘궁상맞음’은 다르다. 우선 그 점을 밝혀 두고자 한다.
가난이라는 것은 쿨하고 리얼한 경제 상태다. 정신 상태와는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다. 따라서, 가난하면서도 마음 넉넉히 사는 것은 가능하다.
필자가 어렸을 무렵인, 세키가와 나츠오가 ‘공화적인 가난’이라고 부른 1950년대 일본 사회는 그랬다. 긴 전쟁이 끝나고, 더 이상 징병 되거나 공습을 피해 혼비백산하지 않아도 되었고, 헌병이나 비밀경찰, 밀고 등에 겁먹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어른들은 가난했음에도 마음 편히 나날의 생업에 열심이었다. 집은 다 쓰러져가고, 옷은 단벌에, 식사는 반찬 하나밖에 없었으며, 장난감은 고사하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필자로서는 참으로 유쾌한 어린이 시절이었다.
동네 사람들도 모두 가난했고, 그랬기에 서로 도우며 살았다. 먹을거리를 빌려주고, 전당포 이용하는 법을 일러주며, 어린 아이를 돌보아주었다. 아직 행정 체계가 충분히 기능하지 않았으므로, 방범이나 방재, 공중보건 모두 지역 사회가 협력해 뭐라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겨울밤에는 어른들이 ‘불조심’이라고 외치며 마을을 순회하고, 일요일 아침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시궁창 청소’를 했다. 아이들은 갖은 궁리를 짜내 놀이를 발명해내서, 해가 질 때까지 골목이나 신사 경내(境內)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놀았다. 가난하기는 했지만, 그런 어린이 시절이 필자에게는 절대로 불행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떤 때는, 완구든 과자든 무언가 사고 싶은 것이 생긴다. 모친에게 ‘사줘’라고 일단 말해보지만, 항상 ‘안 돼’라는 즉답을 들었다. ‘왜?’라고 물어보면 항상 ‘우리 집은 가난하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가난해?’라고 거듭 물었지만, ‘전쟁에서 졌으니까’ 라는 말로 대화는 마무리됐다. 그 이상 물어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은 아무리 어리다 해도 알 수 있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일본인은 가난하기는 했지만, ‘궁상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시기부터 일본인은 ‘궁상맞’아졌다. ‘궁상맞음’이란 경제 상태를 이르는 게 아니라, 내면의 가난을 가리키는 것이다. 타인의 부유함을 시기하는 것이 그렇고,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재산을 단단히 묵혀놓고서는 누구와도 나눠가지지 않는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공공재’로 모두가 공유하는 부(富)로부터 자신의 ‘한몫’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가로채려는 짓이 가장 ‘궁상맞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1964년 도쿄 올림픽 무렵부터 서민의 형편이 나아지면서, 사람들은 점차 ‘궁상맞게’ 되었다. 다른 이보다 빨리 고도 경제 성장의 수혜를 입어 냉장고나 TV, 자가용을 소유하게 되었던 가정은 곧잘 단독주택 주위에 담장을 둘러쳤다. 무의식간에 그랬겠지만, 동네 사람의 ‘질투 어린 시선’, ‘악의가 담긴 눈초리’를 피하려고 한 것이다. 그때까지 편하게 드나들던 이웃집의 어른들이 미묘하게 언짢은 표정을 짓게 되었다. 쌀이나 반찬을 빌려주는 일도 없어졌다. 그리고, 교외에 좀 더 나은 단독주택을 짓게 된 사람부터 차례로 지역 사회를 탈출하면서, ‘가난한 공화정’은 생각보다 맥없이 소멸했다. 푼돈 깨나 만지게 되면 사람은 ‘궁상맞’아지고, 상호 협력적인 마인드가 자취를 감추며, 공동체는 공동화(空洞化)된다는 사실을 필자는 그때 깨닫게 됐다.
필자가 10대, 20대였던 무렵 일본에서는 고도성장기가 길게 이어졌는데, 30대에 들어서자 거품 경제를 경험했다. 모두가 돈벌이에 몰두해 있던 시대였으며, 일본인이 주관적으로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부자였던 시대이다. 일본인은 맨해튼의 마천루를 사고, 헐리우드 영화를 사고, 프랑스의 샤토를 사고, 이탈리아의 와이너리를 사고, 하와이의 콘도미니엄을 사고, 골드 코스트나 코스타 델 솔에 은퇴한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별장지를 샀다.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살 수 있다고 여기며, 사람들은 다행감에 젖었다.
이 시기의 일본인은 그렇게까지 ‘궁상맞’지는 않았다. 자기 자신의 ‘파이’가 계속 증대되는 때에는, 타인에게 돌아갈 파이의 몫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 것이다. 욕망은 나날이 항진(亢進)했지만, 질투나 선망에 몸이 달아, 부유한 타자의 몰락을 바란다든지 하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필자 같이 아무런 생산성이나 사회적 유용성이 없는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에게도 상당히 윤택하게 연구비가 돌아왔다. 부동산이나 주식을 사고 파는 데 여념이 없던 비즈니스맨 친구들은, 월급만으로 검소하게 살고 있는 필자를 보고서는, ‘돈 버는 법을 모르는 놈’ 이라고 조소(嘲笑)하기는 했으되, ‘그래, 너 좋을 대로 해라. 내 돈벌이에 방해가 되지는 않으니까’ 하고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그런 속 편한 시대도 별안간 막을 내렸다. 자신에게 돌아갈 파이의 몫이 줄어들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순식간에 궁상맞아졌고, 타인의 몫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기 시작했다. ‘일도 안 하면서 많이 가져가는 녀석이 있다. 사회적 유용성에 기반해, 자원은 차등 분배되어야 한다’ 라고 하면서. 그런 식의 트집을 잡으며 일본인은 점점 궁상맞아졌다. 공무원의 기득 권익을 박탈하라든가, 생활보호 제도의 무임승차자를 용납하지 말라든가, 생산성이 없는 인간은 물러가라든가 하는 말투는, 필자가 기억하는 한, 이 시기에 비로소 처음 등장했던 것이다. 이전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도 사반세기 가까이 지났다. 지금 일본 젊은이들에게 ‘일본은 부자 나라입니까, 가난한 나라입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아마 과반수가 ‘가난한 나라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GDP는 아슬아슬하게 세계 3위이지만, 1인당 GDP는 28위(2022년). 싱가포르, 홍콩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고 있으며, 대만 한국에 추월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군사력만이 예외적으로 돌출해 높지만, 그밖의 ‘국력 지표’는 전면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평균 임금은 OECD 28개국 가운데 22위, 성평등 지수는 146개국 가운데 116위,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180개국 가운데 71위. 일본은 가난하고, 자유롭지 못하며, 살기 힘든 나라인 거다.
몇 년 전 미국의 잡지가 일본 대학의 쇠퇴에 관한 특집을 기획한 적이 있었다. 그 기사 가운데, 현재 일본의 대학을 어떻게 보는가와 관련해 교원 및 학생들과 인터뷰한 내용이 있는데, 이때 그들이 실제 현상과 느낌을 서술하며 사용했던 어휘는, ‘덫에 걸렸다’(trapped), ‘숨 막힌다’(suffocating), ‘옴짝달싹 못 한다’(stuck) 라는, 모두 신체적인 고통을 표현한 형용사였다. 이는 아마 현재 일본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실감(實感)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대 일본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들일수록 ‘궁상맞다’는 점이다. 부유층에 속하고, 권력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오로지 ‘공공재를 빼돌려 사유 재산으로 바꿔칠’ 권리, ‘공권력을 사적 용도로 유용(流用)할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공적인 사업에 쓰여야 할 세금을 ‘횡령’하여, 공금을 사물화(私物化)하는 일에 관민 합동으로 이렇게까지 열심이었던 적은, 필자가 아는 한 과거에는 없다.
세금을 거두고, 그 용처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공금을 사재로 바꿔치기하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양태를 형용하는 데에 ‘궁상맞다’는 어휘 이상으로 적절한 것은 없을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사회적 상승을 이룬다’는 말이 ‘보다 궁상맞아진다’를 의미하는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진짜로 그런 것이다. 현대 일본어 사전에서는, ‘권력자’란 ‘공권력을 사적으로 쓰고, 공공재를 사유화할 수 있는 사람’을 이르는 것이다. 그러한 신분이 되기를 목표로 하고서, 사람들이 날마다 이마에 땀을 흘리며 노력하고 있는 이상, 나라가 깡그리 ‘궁상맞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필자는 이제 이런 궁상 떨기에 진절머리가 난다. 가난해도 상관 없다. ‘궁상맞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렇다면 어떤 사회가 ‘궁상맞지’ 않은 것일까. 일단 필자가 패전 후의 일본에서 실제로 목도한 ‘공화적(共和的)인 마을’은 그랬다. 타인의 부유함을 시샘하지 않고, 약자를 보고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으며, 사재를 썩히지 않고 나눠 가지고, 공공재를 될 수 있는 한 넉넉히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놓고 보면 딱 그런 것들이다. 실제로 어른들이 그렇게 처신하고, 그것이 ‘평범’한 것이라고 아이들이 생각한다면, 그 사회는 이를테면 물질적으로는 가난해도, ‘궁상맞’지는 않다. 필자는 될 수 있는 한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다.
‘공공재’를 영어로는 ‘커먼(common)’이라고 한다. 원래 뜻은 ‘입회지(入會地)*・공유지’이다. 울타리가 없는 삼림이나 초원을 촌락 공동체가 공유하고, 공동 관리한다. 마을 사람은 거기서 가축을 방목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짐승을 사냥하고, 과일을 딴다. 개인이 가진 사재(私財)가 빈약한 마을 사람이라도, 넉넉한 커먼을 가진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 풍요로운 생활을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 입회지: [법률, 법학] 한 지역의 주민의 입회권을 인정한 산야(山野)・어장(漁場) 등의 지역. - 옮긴이)
유럽에는 중세 때부터 모든 나라에 ‘커먼’과 비슷한 것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은 프랑스의 ‘코뮌(commune)’인데, 이는 가톨릭의 교구(敎區)가 기본이 되는 행정 단위로, 구성원 100명 정도의 자그마한 코뮌부터 마르세유같이 구성원 100만명 되는 사이즈의 코뮌까지 여러 종류가 있음에도, 모두 행정 단위로서의 지위는 동등하다. 코뮌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고, 광장을 사이에 둔 건너편에는 시(市)청사가 있으며, 시의회가 열리고, 시장(市長)이 선출된다.
독일에는 고대부터 중세까지 ‘마르크협동체(Markgenossenschaft)’라는 것이 있었다. 토지는 부족 공동체가 공동 소유하고, 생산 방식 역시 강한 규제를 받으며, 토지의 매매는 금지되고, 수확물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내부에서 소비하며, 공동체 바깥으로의 목재, 육류, 와인 반출도 금지되었다. 토지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며, 그로 인해 수확물이 누군가의 사적 재산이 되는 일도 없고, 그 결과, 지배ー피지배라는 관계는 생겨나지 않았다. 만년의 칼 마르크스는 모범적인 ‘커뮤니즘(코뮨 主義)’ 사회를 구상하면서, 그 소재(素材)를 마르크협동체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사이토 고헤이는 논하고 있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잘 산다’라는 말은, 사재(私財)가 아니라, 공공재에 대해서만 쓰여져야 할 형용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가령 멤버 가운데 누군가가 천문학적인 부를 소유하고, 호사스러운 소비 활동을 하고 있어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커먼’이 빈약하다면, 그 집단을 ‘잘사는 공동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신분, 재산, 개인적인 능력에 상관 없이 멤버 모두가 동등하게 ‘커먼’의 증여물을 향유할 수 있을 것, 그것이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잘 산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그렇게 생각했으며,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적 재산의 증대보다도, 멤버 전원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커먼이 넉넉해지는 것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태도를 ‘커뮤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개인적인 정의이므로 일반성을 요구하지는 않겠으나, 그렇게 말해도 될 것이다.
빈부는 개인적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정말 필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내부에 얼마나 잘사는 개인이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넉넉한 커먼을 공유하고 있는가를 되짚어보는 일이다. 어떤 사회가 잘사는지 못사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자원의 절대량이 아니다. 그 집단이 소유하고 있는 부(富) 가운데 어느 정도가 ‘커먼’으로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는가이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일본 뿐만이 아니고, 지금 전 세계는 매우 가난하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8명의 자산 총액은 세계 인구 가운데 소득이 낮은 절반에 해당하는 37억 명의 자산 총액과 같다. 이를 ‘번영하는 지구촌’이라고 부르는 것에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서, 다시 한번 일본을 ‘잘 사는’ 사회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시작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딱히 GDP를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떻게 다시 한 번 ‘커먼’을 풍요롭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다.
요즘 들어, 필자의 주위에도 사재를 털어 ‘모두에게 보탬이 되는 공공의 장(場)’을 시작하고 있는 사람들이 곧잘 눈에 뜨이게 되었다. 필자 자신도 10년 정도 전에 스스로 고베에 가이후칸이라는 무예 도장을 지었다. 무도(武道) 수련 뿐만이 아니고, 노가쿠 무대로도 사용할 수 있게끔 설계를 해 두었고, 다다미 위에 좌탁을 늘어놓고 인문학 연구 수업을 한다든지, 심포지엄을 한다든지, 영화 상영회, 나니와부시, 라쿠고, 기다유부시 등의 공연도 하고 있다. 소박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일종의 ‘커먼’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그런 소박한 커먼을 일본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지금 동시다발적・자연발생적으로 손수 만들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의 활동은 딱히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귀에 들어오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주친다. 그리고, 정신이 들고 보면 상당히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이 손수 만든 ‘커뮤니즘’은 고릿적 소련이나 중국의 공산주의와 본질적인 부분에서 아주 다르다고 생각한다. 왜 그러느냐 하면, 이 새로운 ‘커뮤니스트’들은 부유층이나 사회적 강자를 향해 ‘공공을 위해 사적 재산을 공출하라. 공공을 위해 사적 권리의 제한을 받아들여라’ 라고는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우선 살을 깎는 것은 ‘바로 너’도 아니거니와 ‘그놈들’도 아니다. ‘나’이다.
그런 각오를 해야만 잘사는 사회가 태어난다. 동의해주는 사람이 아직 적지만, 필자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2023년 5월 10일 『진료연구 587호』)
(2023-05-01 14:31)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번역자 코너
'이이와케(イイワケ; 해명)'
1.
일본 돋보기. (혹은 이창Rear Window)
일단 엔데믹 시국이지요. 몇 년 전 일본은, 재난지원금 지급 업무를 사기업에 위탁했다고 합니다. 그걸 맡은 회사의 본업이라든가 관련 업종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말하자면 광고대행사라든가 인재파견업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지금 각종 공적 분야에서의 민영화라든가 하는 풍문이 많이 돌고 있는데요, 아무튼 본 텍스트에 묘사된, 일본 사회에서 공공재가 사유화된다는 것의 구체적인 작동 실례로 바로 이 재난지원금 관련을 들고자 합니다.
2.
이 텍스트가 실린 월간 <진료 연구>를 발행하는 곳은 '도쿄 보험의(保險醫) 협회'입니다. 보험의는, 말하자면 개원의, 그러니까 동네 의원 원장님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도쿄 보험의 협회'입니다만, <진료 연구> 이번 호 주제는 오롯이 <평화와 민주주의>입니다. 이 텍스트가 첫 꼭지구요, 맨 마지막 꼭지의 제목은 'Silence is not always golden'으로 되어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적 영향력(발신력)이라는 것이겠죠.
3.
한국에서도 '슈킹'이라는 말이 요즘들어 부쩍 많이 쓰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일본어로는 中抜き라고 한다는 모양입니다. 일본어를 캐노니컬하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 오버시즈 외국인(즉, 번역자) 입장에서는 금방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었습니다. 다음은 사전 편집을 하시는 분의 트윗입니다. https://twitter.com/IIMA_Hiroaki/status/1419163060086792201
4.
'꼬뮨1871'이라는 상호를 가진 문화공간 겸 카페를 발견했습니다. 이 또한 보려고 해서 본 것이 아니거니와, 찾으려고 해서 찾은 게 아닙니다. 놀랍죠.
https://www.instagram.com/commune1871_cafe/
"보시는 스폰서의 제공으로 보내드립니다. (ご覧のスポンサーの提供で送りします。)"'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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