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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지방 이주자들에게 이야기한 것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3. 15. 22:16

    한국에 있는 지방 이주자들의 단체가 가이후칸을 찾았다. 인구 감소 사회 아래 지방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에 관한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한국은 합계 특수 출생률 0.78이라는 초 저출산에 더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서울과 수도권에 살고 있는 인구 일극(一極) 집중이 진행되고 있다. 지방에서는 인구 감소 탓에 경제 활동이 약화되고, 학교나 병원의 통폐합이 시작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효과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

     

    그 역풍 가운데 지방의 재생을 목표로 하는 활동가들은, 직감에 이끌려 선택한 지방 이주라는 삶의 방식에 어떤 역사적 필연성이나 도리가 있는가 하는 근거를 찾아, 멀리 일본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들을 맞으러, 나라 현 히가시 요시노무라로 이주하여 그곳에 사설 도서관을 열고 지방의 문화 발신 거점을 만들고자 하는 아오키 신페이 군과, 효고 현 카미카와 마치에 이주하여 에도 시대부터 이어지는 화원을 계승한 노무라 슌스케 군이 자신들의 실천에 대해 보고하고, 필자가 ‘지방이주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구 감소는 앞으로 멈출 수 없다.

     

    지구 환경이 더이상 인구 부하를 견딜 수 없는 이상, 이는 문명사적 필연이다. 여기서 선택지가 두 가지 있다. 자원의 지방 분산이냐 도시로의 일극 집중이냐, 둘 중 하나다.

     

    허나, 자본주의의 연명을 위해서는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다. 지방을 인구 소멸화하고, 도시를 과밀화하면 잠시동안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다. 19세기 영국에서 행해진 ‘인클로저 운동’을 인구 감소 국면에 행하는 것이니 참으로 아슬아슬한 곡예인 셈이다. 성공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현대 경제 시스템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그에 따를 것이다.

     

    당신들은 그것을 옳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정치인, 정부, 기업, 언론 누구도 그 활동을 진지하게 지원해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은 싸워야만 한다는 얘기를 했다.

     

     

    한국의 지방에서는 행정, 의료, 교육의 통폐합이 진행되고 있고, 그것이 인구 소멸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병원이 없어지면 기초 질환이 있는 사람이나 고령자를 품고 있는 가족은 살 수 없다. 학교가 없어지면 학령기 아이들을 품은 가족은 살 수 없다. ‘인구 소멸 지역에 사는 주민에게는 행정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시민 생활을 보내고 싶다면 도시 지역으로 이사하라’는 로직을 행정 측이 구사하고, 언론이 되받아적는다. 그리고 차츰 도시에 사는 시민들도 ‘지방에 사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가 나쁜 삶의 방식이다’라는 이유로, 그러한 생활을 옳지 않다고 한다. 사정은 한국과 일본이 같다.

     

    그럼에도, 의료나 교육은 본래 약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겠는가.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해 의료가 있으며, 생활할 수 있을 만큼의 지식이나 기술을 아직 터득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 교육이 있다. 그리고 행정은 약자를 위한 제도이다.

     

    권력자나 부유층은 행정 서비스를 딱히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그들의 왕성한 활동에 간섭하지 않는 ‘야경 국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행정에게 그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하는 것들로부터 그들의 권리와 부를 지켜주는 것 이상의 업무를 기대하지 않는다.

     

    미국의 리버테리언들, 그중에서도 더욱 과격화된 ‘신 반동주의자들’은 실제로 당당히 그렇게 주장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복지 제도는 부를 부자로부터 빈자에게 이전시키는 것이니, 이러한 재산권의 침해를 즉시 폐지해야만 한다. 이것은 극론이지만, ‘강자는 세심한 행정 서비스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라는 말 자체는 그들 말대로 사실이다.

     

    행정은 본래 약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 놀란 나머지 화를 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재난 방지나 범죄 예방, 공중 위생, 사회 복지 모두 발생적으로는 자기 한 명으로는 신변의 안전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의 것이다. 필자가 어렸을 적인 1950년대 일본에서는, 소방이나 경찰의 역할을 마을 사람들이 했다. 한겨울 밤에 아버지들은 딱따기를 치면서 ‘불조심’ 이라고 외치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일요일에는 온 마을이 총동원되어 ‘시궁창 청소’를 하며 역병을 예방했다. 전쟁 직후 행정 체계가 정비되지 않은 시기에는 ‘공동’이라는 이름 하에 몸을 보호할 수가 있었다. 그 ‘공동으로 몸을 보호하는’ 작업을 제도화한 것이 행정이다.

     

    그래서 그 근본적 취지에 입각해 말하자면, 공동으로 몸을 지키는 상호 부조 네트워크에 귀속되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우선 행정에 의한 지원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의료가 치료를 요청하는 사람의 구조 신호를 수신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과 같이, 교육이 배움의 기회를 요청하는 사람의 구조 신호를 수신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과 같이, 행정은 공동체의 지원을 요청하는 사람의 구조 신호를 수신함으로써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이상, 공동체의 상호 지원을 충분히 기대할 수 없이 뒤처진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떠한 공적 기관도 대체할 수 없는 행정의 임무가 아닐까. 인구 소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소수자이기 때문에 행정 서비스를 단념해야 한다면 그것은 행정의 취지를 한참 벗어난 것이 아닐까.

     

    물론, 세상은 호락호락 순리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필자도 양지하고 있다. 행정의 자원이 유한한 이상, 비용 대비 효과라는 것도 당연히 고려해야만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인구 소멸 지역의 행정 기관을 통폐합할 때에는 ‘작은 목소리’를 수신할 기회를 저버리는 것에 대한 ‘염치’가 행정 측에 있어야 마땅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행정 측에서도, 언론의 논조에서도 그러한 ‘염치’를 거의 느낄 수 없다.

     

    확실히 ‘주민이 적으므로, 행정, 교육, 의료, 교육 기관을 둘만한 여유가 없다’는 말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허나, 실제로는 행정, 의료, 교육기관이 없어지면, 사람은 거기서 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암묵적으로 ‘지방에서는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살면 안 된다’는 수행적인 메시지를 발신하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 귀결로써 ‘사회적 약자는 공적 지원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강자의 이데올로기’에 귀착하게 된다.

     

    여러분과 같은 지방 이주자는 그 압도적 추세에 맞서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굴하지 말고 계속 싸워주십시오.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에게 그렇게 말하며 격려했다.

     

     

    (2023-03-03 16:05)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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