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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사태를 상상하는 것에 관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2. 20. 20:24
연초이므로 ‘2023년은 어떤 해가 될까요’ 하고 이런저런 사람들로부터 문의가 온다. 그러한 경우에는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를 말해두고 있다.
작년 연초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고 예측했던 사람은 극히 적었다. ‘우크라이나가 철저하게 저항한다’고 예측했던 사람도 더욱 적었다고 생각한다. 어째서 예측이 틀어졌는가. 양국의 경제력, 경제력, 외교력은 비교 가능하다. 그로부터 추리하여, 침공 후 수일에서 수 주간 우크라이나는 굴복하고, 지도자는 망명하며, 친러시아 괴뢰정권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은 예측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실제로 현실 변성력을 발휘한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기분’이었고, 그것은 수치적으로는 고량(考量)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예측이 여러 차례 어긋나는 것은 ‘사람의 기분’에 강한 현실 변성력이 있다는 사실을 셈에 넣기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핵무기를 쓸 것인가.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다. 우크라이나나 주변 국가들을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다. 허나, 그렇게 되고 나서, 러시아는 국제적 고립을 피하지 못하게 되고, 경제의 정체와 과학기술의 지체에 따라 어느새 선진국 대열에서도 탈락할 것이다.
푸틴이 자신의 판단 착오를 인정하고 혼자 실권할 바에야 러시아의 전 국민을 길동무로 하는 쪽을 택할 때에도 크렘린의 예스맨들은 그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그것만큼은 참아 주십시오’ 하며 만류할 것인가. 필자로서는 모르겠다. 러시아의 정권 중추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제정신’ 인지의 여부를 아직 고량(考量)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제정신’이 일정 수준 이하라면, 제 3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은 일어날 것인가. 필자로서는 모르겠다. 작년까지 중국의 국내 언론은 ‘언젠가 대만은 중국 영토가 된다’는 불손한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정부가 그러한 기분의 양성을 주도한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보고 난 뒤에는, 침략한다면, 대만 국민은 바로 굴복할 것이라는 예측에는 상당한 수정이 가해졌을 것이다. 대만이 보유하고 있는 전함이나 미사일의 수는 셀 수 있지만, 2340만 명의 대만 시민의 ‘기분’은 고량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타이베이를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대만 해협을 넘어 대륙을 쏘아보고 있는 장제스의 거대한 동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침공이 일어난 경우, 대만 시민의 ‘대륙 반격의 기분’이 어느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서 물질력으로 전환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국의 외교전문가들 가운데에는, 대만 시민은 중국의 군사적 압력 앞에 곧장 굴복할테니, 대만 지원을 위해 미군을 보내는 것은, 미중 전쟁의 위험을 높일 뿐이므로 메리트가 없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이 사람은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수도는 곧장 함락되고, 괴뢰 정권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든다. ‘인간의 기분’ 같이 불안정한 것은 외교나 안전 보장의 정책 입안을 할 때 셈에 넣지 않는다는 것을 ‘리얼리즘’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때때로 있다. 그것도 한가지 견식이 될 수 있겠으나, 자신의 예측이 그 탓에 곧잘 빗겨나가는 것에 대해 다소간 반성은 하고 있는 것인가.
대만 침공이라는 리스크의 엄청난 결단을 시진핑은 내릴까. 합리적으로 추론하면 ‘내리지 않는다’일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의 머릿속에서 어떠한 계산이 행해지고 있는가는, 푸틴의 머릿속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다. 그가 주위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일거에 높일 선택을 할 가능성은 있다.
그 경우에, 만약 재일 미군이 출동하고, 미중 전쟁이 일어난다면, 아베 정권 이래 ‘전쟁 가능 국가’가 되기 위해 착실히 기성 사실을 쌓아올렸던 보람이 있어서, 일본도 바라던 대로 전쟁 당사자가 된다. 그렇게 해서 국토가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게 되어도 ‘이렇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내 책임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일본 정부 가운데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신년 벽두부터 어두운 이야기만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최악의 사태’를 상세히 상상함으로써, 그것이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강하게 빌게 되어 ‘최악의 사태’의 도래를 막는 것은, 인간이 태고적부터 지속해온 기도의 한 종류이다. <1984> 이래로, 디스토피아 서사를 우리가 계속하고 있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2023년 1월 11일 ‘주간 금요일’)
(2023-01-13 15:58)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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