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속국 민주주의론> 에필로그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 9. 20:32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타츠루입니다.

     

    시라이 사토시 씨와의 대담집 <속국 민주주의론>은 2016년에 도요 경제신보사에서 간행된 것인데요, 이번에는 아사히신문 출판부에서 문고본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6년 전에 일본의 정치 현실에 대해 논한 책이 지금까지도 리더블(readable)하다는 평가를 듣게 된 것을 참으로 기쁘게 여깁니다.

     

    대체로 정치와 시국에 대해 쓴 책의 유통기한은 길어도 거의 1년 정도입니다. 그런 책의 많은 수는 ‘세상 사람은 모르지만, 진상은 이런 것이다’라는 ‘정보통과 초보의 정보수집력의 수위차’가 주된 판매 요소가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위차’는 그다지 지속되지 않습니다. 그렇다 함은, ‘진상은 이러한 것이다’ 라는 것을 공개함으로써 ‘세상 사람은 모르지만’ 이라는 전제가 무너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있다’는 어드밴티지는 그것을 잃는 것으로밖에는 기능하지 않습니다. 역설적입니다만, 세상은 비교적 그런 것입니다. 물론 ‘남들이 모르는 것을 가장 빨리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획득하면, 본인은 그것을 생업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쓴 책이 긴 리더빌리티를 가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6년이 지난 지금도 ‘가독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이 책의 ‘읽는 보람’이란 ‘정보통과 초보의 정보수집력의 수위차’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라이 씨는 정치학자이므로, 실제로 정치가나 저널리스트들을 곧잘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이 모르는 <우리끼리만 아는 이야기>에도 저보다 훨씬 잘 통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주제로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일미 관계의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대해 직접 보고 들은 경험은 아마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아무리 시라이 씨라 할 지라도 추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한가로이 망상을 잘하는 ‘길거리 사람’이므로, 공개 정보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집에 도착하는 신문이나 잡지를 팔랑팔랑 읽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상당히 다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양태를 ‘오신트’라고 부른다는 것을 최근 신문을 통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오신트’는 Open source intelligence 의 줄임말로, 합법적으로 입수 가능한 공개 자료에만 기반해 ‘결국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추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흥미롭군요.

     

    그렇게 보니, 저는 옛날부터 ‘오신트 계열’였습니다. 십수년 전에 <거리의 중국론>이라는 책을 냈을 때, 정보기관 사람이 저를 만나러 대학까지 왔습니다. 대단히 프렌들리한 ‘청취자’였는데, 조사의 요점은 ‘당신은 중국 공산당의 내부 사정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손에 넣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예? 마이니치 신문에서 본 건데요’ 라고 답하자, 놀라며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중국 공산당의 내부 사정같은 걸 알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저에게만 살짝 가르쳐 주는 친절한 ‘정보 제공원’같은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지만, 평소처럼 신문기사를 읽고 있으면, 지금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의논되고 있고, 어떤 논쟁이나 확집(確執)이 있는가 정도는 대체로 상상이 갑니다.

     

    <거리의 중국론>은 그 뒤, 중국 출판사로부터 중국어 번역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단, ‘문화대혁명’과 ‘소수민족’에 대한 장을 삭제하고 번역하고 싶다는 제안이었으므로,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어 번역본을 내고 싶다는 제안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추측컨대, 그 책에는 중국인 독자가 ‘무지한 일본인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화를 내게 하는 것들은 그다지 쓰여져 있지 않으며, 삭제를 요청받은 두 개의 장은 ‘중국인에게는 읽히고 싶지 않은 것’ 이 쓰여져 있어서입니다. 오신트라고 얕보는 것은 금물입니다.

     

    이 책이 만일 앞으로도 계속 리더블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시라이 씨와 제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이 오로지 ‘공개 정보만을 기반으로 해서, 그 배후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추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독자에게 독해했으면 바라는 것은 우리들의 ‘지식’의 양이 아닙니다(심지어 저에게는 ‘지식’ 그 자체가 없기도 하니까요). 그게 아니라, 우리들이 어떤 식으로 ‘추리’를 했는가를 읽어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아마 시라이 씨도 같은 희망사항을 갖고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추리 소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추리 소설의 경우, ‘범인은 누구인가’ 라는 ‘진상’의 개시보다도, ‘어떻게 탐정은 이 사람이 범인이라는 점을 알았는가’ 하는 추리가 갖는 의외성에 독자는 흥미를 갖는 것이고, 작가도 그것을 위한 궁리에 천착합니다. 아마 우리들도 무의식 가운데 탐정의 행위를 연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공개 정보 가운데, 보통 사람이 그만 놓치고 마는 자세한 사실에서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을 감지합니다.

     

    ‘마음에 걸리는’ 패턴은 보통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어째서 <이런 것>이 여기에 있는가?’, 다른 하나는 ‘어째서 <이것>이 여기에 없는가?’ 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는’ 경우에는 감지하기 쉽지만, ‘있어도 좋을 법한 것이 없는’ 것은 놓치기 쉽습니다. 셜록 홈즈가 <백은호 사건>에서 범인을 찾아내는 데 활용한 수단은 ‘어째서 그날 밤에만 개가 짖지 않았는가?’ 라는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아마 시라이 씨와 제가 공통되는 ‘추리’ 경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두 사람 모두 ‘일어난 일’과 똑같은 정도의 관심을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두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어째서 일본에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았는가?’ ‘어째서 일본은 미국의 속국 신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어째서 일본인은 자력으로 일본국 헌법을 기초할 만큼의 시민적 성숙을 달성하지 못했는가?’ 등의 일련의 질문입니다. 이들은 모두 ‘일어났을 법한데도 불구하고 일어나지 않은 일’ 입니다. 두 사람 모두 그것이 신경쓰입니다. 그래서,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스토리’가 세상 사람들의 기분을 언짢게 하는 가시가 들어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저 속보적으로 ‘NEWs’를 좇는 한, 우리는 영원히 현실에 대해 ‘선수를 빼앗기게’ 됩니다. 항상 현실에 처지고 맙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좋으니 현실의 ‘선수를 잡고 싶습니다’. 그를 위해서는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어떠한 ‘문맥’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제가 ‘스토리’라고 말하는 것은, 그 역사적인 ‘문맥’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추리’를 시작해주시기를 저는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자극적인 아이디어로 노생(老生)의 머리를 활성화해 주시는 시라이 사토시 씨께 다시금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아사히문고화를 맞이해 힘을 써주신 나가타 마사시 씨, 우에보 마도카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2022년 1월 13일)

     

     

    (2022-12-29 12:39)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