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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인들의 고민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 5. 20:33
3년 만에 강의 여행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입국 수속이 상당히 번거로워지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한국 벗들과 해후할 수 있었다.
2박 3일 동안 두 도시에서 강연하는 하드한 스케줄이었는데, 이번에는 서울에서 인터뷰를 가진 후, 신문 기자들과의 간담회 이벤트가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젊은 여성 기자들 여섯 명과 한국 언론의 현황과 관련해 얘기했다.
어느샌가 그 자리는 기자들의 이런저런 질문에 필자가 답하는 ‘신상 상담’ 시간이 되어버렸다. 모든 질문이 흥미로웠다. 양국의 언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임을 느꼈다.
‘문해력이 낮은 독자도 알아먹을 수 있도록 쓰라’고 선배 기자로부터 지시가 내려오고, 그러면 갈수록 기사가 부박해지는데 이를 어쩌면 좋겠느냐 하는 것이 첫 질문이었다.
똑같은 말을 필자도 여러번 들었다. 어려운 어휘를 너무 많이 쓴다는 것이었다. 보통 독자들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바꿔 써 달라고 몇 번이나 들었다. 번번이 ‘싫다’고 했다.
필자 스스로 신문이나 도서를 통해 몰랐던 어휘와 반복해 마주침으로써, 그 말의 의미나 사용 방법을 이해하고, 자신의 어휘 목록에 추가해 왔다. 독자의 문해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문해력이 가장 낮은 독자에게 맞춰 쓰겠으니, 당신네들도 기사에 한자를 전부 빼버리시오’ 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대체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두 번째 질문은, 어떤 문체로 써야 독자에게 텍스트가 가닿겠느냐 하는, 역시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독자의 반론이나 이의를 선취하여, 그것을 경계하면서 쓰는 텍스트는, 설령 논리적으로 흠결이 없다 하더라도, 독자에게 가닿기가 상당히 어렵다. 독자를 ‘잠재적인 적’으로 상정하고 쓰여진 글에 독자는 흉금을 터놓지 않는다.
그보다는 독자를 믿고 ‘부탁이니 읽어 주시게’ 하고 간청할 일이다. 무릇 사람이란 어떤 말의 수신인이 자신인지 아닌지 직감적으로 판정할 수 있다. 자신이 수신인이라는 생각이 들면, 아무리 어려운 얘기라도 진지하게 읽는다.
이렇게 말하니, 기자들은 깊이 수긍해주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2022-12-12 11:20)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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