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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조의 정치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 10. 20:56
어느 일간지로부터 설날에 실을 ‘사고 정지하고 있는 중고년 샐러리맨에게 일갈’ 이라는 제하의 원고 청탁을 받았다. 중고년 샐러리맨을 주된 고객층으로 하는 매체이므로 독자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래도 상관 없다고 기자는 말한다. 단카이 세대(일본의 1947~1949년 생 - 옮긴이)까지는 정년까지 재직하고, 퇴직금을 모조리 받으며, 유유자적한 노후 생활 설계를 노려볼 수 있으나, 현역 세대는 이제 그런 달콤한 꿈을 꿀 수 없다.
코로나로 소멸 위기에 처한 업계도 있다. 취업 형태도 상당히 바뀌었다. AI의 보급에 의한 고용 상실 또한 임박해 있다. 인구 감소에 따른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도 예측이 어렵다.
앞으로 50세를 넘겨서 실직하는 경우, 그리 간단히 재취업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고서, ‘대처할 방법이 없는 채 그대로 서 있고, 사고가 정지해 있으며, 동결되어버렸다’ 는 게 원고를 청탁한 기자의 진단이다. 이를 프랑스 어로는 ‘타조의 정치’라고 부른다. 위기를 맞아, 머리를 모래 속에 처박고 현실도피하는 것이다.
실감나는 위기로써, 우리 앞에는 기후변화, 팬데믹, 인구 감소, AI에 의한 고용 축소, 지정학적 위기... 등 여러 위험 요소들이 산적해 있다. 너무나 비참하여 화제에 올리지도 않는 것 중 하나에는 ‘기후변화에 의한 국토 소멸’ 이라는 예측이 있다. 온난화를 멈추지 않으면 해수면 상승에 따라 2050년까지 세계 12억 인구가 생활 거점을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미국의 외교 전문지 <FA 리포트>는 지난 가을 전했다.
고마쓰 사쿄의 <일본 침몰>을 살펴보면, 일본이 침몰하여 국토를 잃게 되는 것이 확실시되는 때에, 세계 각지에 어떻게 일본인의 이민 집단을 수용케 할 것인가, 이산한 일본인들은 어떻게 국민적 아이덴티티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곤란한 과제와 씨름하는 정치가나 관료의 활약이 있었다. 이 SF 소설과 그다지 다르지 않는 난문에 이미 많은 나라가 직면해 있다.
국내에 해발고도가 높은 토지가 있는 나라는 국내 이동으로 끝나지만, 이를테면 방글라데시같은 저지대 국가에는 도망갈 고지대가 없다. 이 1억 6500만 명은 어디에 가야 하는가. 난민으로서 세계에 이산하는 경우, 어떻게 국민으로서 일체감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국토가 수몰된 나라는 UN 가입국이 될 수 있는가. 외교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가.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가. 여권 발행이 가능한가... 아마, 그런 일은 생각하기도 싫을 것이라 본다.
그렇지만, 전 지구적 스케일의 인구 이동이 언젠가 일어날 것임은 피할 수 없다.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난민이다. ‘본국에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도적으로 필수다. 문전박대하는 일은 인간으로써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쨌든, 다양한 출신 사람들, 언어나 종교, 생활 습관이 다른 사람들과 일본 열도에서 공생해 나갈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할 길은 없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는 ‘이민 정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외국인 기능 실습생 제도나 입국 관리 제도를 비추어 보는 한, 현재 일본 정부의 정책에 ‘공생’을 지향할 인도적인 의지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해나 공감이 힘든 타자를 받아들여 공생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쪽에서 그만큼 시민적으로 성숙할 것이 요구된다. 하지만, 현대 일본인은 그러한 성숙에 달하여 있지 않으며, 성숙에 이르러야만 한다는 사회적 합의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일본인은 ‘타조의 정치’를 계속해 나갈 참일 것이다. 허나, 모래에 머리를 처박고 있어도, 현실의 육박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2022년 1월 26일)
(2022-12-29 12:41)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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