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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교, 아베 국장에 관해 등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1. 9. 22:09

    어느 인터넷 매체의 인터뷰에 응했다. 막 공개되었으므로, 조금 긴 다른 버전을 올려둔다.

     

     

    — 앞으로 아베 계(系) 우익은 어떻게 될까요?

     

    말씀하신 ‘아베 계 우익’이라는 말의 정의를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해는 됩니다. 그것이 ‘아베 신조라는 개인의 구심력이나 카리스마에 의존해 존재감을 발휘했던 정치 세력’을 뜻하는 의미라면, 그 사람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힘을 잃고, 약체화되리라 봅니다.

     

    실제로 아베 전 총리 사후, 그의 비호 아래 이제껏 ‘한 몫’ 잡아왔던 인터넷 논객들은 지금 거의 침묵 상태에 있습니다. 어떤 스탠스로 이 사건에 접근해야 좋을까에 관한 조직적인 합의형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겠지요. 애초에 아베 신조 개인이 직접 만든 네트워크이므로, 허브가 없어지면 합의형성을 위한 공간과 룰 모두 사라집니다. 대신 떠맡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약체화하여 존재감이 희박해져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민당 내에서 아베를 주축으로 하던 파벌(원문 세이와 회 - 옮긴이)도 조직적 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이와 회에는 자민당 내에서도 통일교와 유착한 의원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당분간 아무도 언론 앞에 나설 수가 없습니다. 비난의 십자포화를 각오해야 합니다. 다음 영수 자리를 노렸던 하기우다 고이치 정무조사회장도 통일교와의 친밀한 관계가 폭로되고 만 관계로 운신의 폭이 좁아졌습니다. 호소다 히로유키 전 회장은 성추문 의혹과 이번 통일교까지 한꺼번에 궁지에 몰린 탓에, 사람들 앞에 나와 ‘그럴싸한’ 말을 할 처지가 아닙니다.

     

    애초에 아베 전 총리의 당 운영 기본 방침은, 자력으로는 국회의원이 될 수 없을 정도의 무능한 인간을 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당선시켜서, 지도부에 절대로 거스르지 않는 예스맨을 뽑아 톱다운 방식의 ‘아베 일강 체제’ 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도부를 거스를 수 있을 정도의 기개와 견식이 있는 정치가를 조직적으로 배제해왔으므로, 당 내부에 이번같이 위기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가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 아베 총리를 ‘혐한’이라고 여겼던 세력은, 실은 아베 총리가 반일적 성향을 가진 한국의 단체와 친했다는 것이 판명되었으므로, ‘친한’으로조차 봐도 무리는 아니겠습니다.

     

    아베 전 총리의 한국에 대한 스탠스는 혐오단체의 감정적인 ‘혐한’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경우에는 감정적인 ‘혐한’도 ‘친한’도 아닌, 좀 더 복잡한 성질의 것입니다. 아무튼 그에게 있어서 우선시되었던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누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인간은 자국민이어도 적이고, 자신을 지원하는 인간은 다른 나라 인간이어도 제편입니다. 그런 사람을 ‘국수주의자’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 기시 노부스케 총리 때부터 한국과는 반공을 통해 협력하고 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제 먼 친척 중에 히라노 리키조(平野力三, 1898~1981)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전에는 농촌 조합의 활동가, 그 후에는 사회당 가타야마 내각의 농림대신을 지낸 정치가였습니다만, 사무실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선물인 금과 비취로 만든 장식품이 놓여 있었습니다. 사회주의자가 어째서 박 대통령과 연관이 있냐고 여쭈자 ‘너희들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란 게 있는 법이야’ 라고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반공주의 네트워크는 상당히 폭넓고, 끝을 알 수 없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는 일본의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관동군에 배치된 후에 만주국군 중위로 패전을 맞이했습니다. 대일본제국의 군인적 에토스가 상당히 깊이 내면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일본제국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일본 우익과 체질적으로 친화성이 있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한국 국민의 뿌리 깊은 반일 감정을 고려하여, 친일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언동에 대해서는 극력 자제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관해 한국 내에서는 ‘매국적’인 조약이다 하여 거센 반대 운동이 있었습니다만, 박 대통령은 강행 체결하였습니다. 아마도 조약이 체결될 경우 그 보답으로 거액의 정치 자금을 제공하겠다고 일본 측이 대통령에게 약속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한일 권력자간의 물밑 연계에 대해서 당시 일본인들은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야당이나 언론의 정보력이 약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은 일본과 한국이 복잡한 파워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흥미가 없었거나, 흥미가 없는 척했습니다.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일제 시대에는 미국에 가 있었는데, 현실의 일본인과의 교섭 경험이 없었던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이승만의 대일(對日) 정책은 굉장히 적대적, 경직적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박정희의 대일 정책은 좀 더 리얼하고도 복잡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바뀌고 난 뒤 한일 관계가 어떻게 엉켜버렸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양국의 교섭을 담당하고 있는 한 줌의 ‘흑막fixer’들을 제외하면, 일본의 일반 국민 가운데에는 거의 없었다고 봅니다. 사정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한일 양국민 모두가 한일 권력자 사이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 혐한이 된 전쟁 이후 태생 세대와는 달리, 이전 세대는 직접 한국인을 알고 지내면서 친근감도 있었던 게 아닐까요?

     

    일본인은 만 35년 간 한반도를 영토로 하였으므로, 기시 노부스케나 박정희 세대의 경우 한반도나 만주에서 함께 일을 했었던 사람이 양국에 많이 있을 터입니다. 서민 층위라면 식민지에서의 신민들끼리로 간주하여 그들간의 친밀한 교류나 갈등을 다룬 문학작품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정치가, 관료, 군인끼리의 친밀한 교류나 적대, 갈등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가 없습니다.

     

    전쟁 이후 일본인은 자신들이 한반도에서 무엇을 했었던가에 대해 입을 다물고 만 한편, 한국은 80년대까지 군부 독재 하에 있었으므로 애초에 언론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종주국 국민과 식민지 사람 사이의 교류나 갈등이 문학의 소재가 되거나, 역사 연구 대상이 된다는 게 한국 내에 존립할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인과 일본인은 모두 제 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에 양국 사이에 어떤 얽힘이 있었던가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갖지 못한채 오늘날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한일 관계를 둘러싼 언설이 항상 거센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띠는 것은, ‘정보의 결여’가 최대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넷 우익 세대는 그러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넷 우익’ 이라고 많이들 얘기합니다만, 이 사람들은 딱히 ‘우익’같은 게 아닙니다. 말하자면 대일본제국에 막연한 향수를 느끼고 있는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 아베 전 총리는 혐한인 넷 우익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한국계인 통일교와의 관계를 은폐했다는 것입니까?

     

    아뇨, 숨기지 않았어요. 제 1차 아베 내각때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제 2차 정권부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넷 우익의 혐한 감정은 논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혐한이라면, 한국을 거점으로 하는 종교단체와 야합하여 거대한 이권을 제공한 아베 신조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근데 용납이 된다면, 넷 우익이란 ‘한국이 싫다’보다도 ‘아베가 좋다’가 우선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방금 전에 ‘아베 계 우익’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과연 그렇다고 봅니다. 요는 ‘아베 계’ 라는 겁니다. 그들은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원념을 아베에게 풀어달라고 했습니다. 원념 중 하나는 반지성주의고, 다른 하나는 종주국 미국에 대한 속국민으로서의 반미 감정입니다. 그들은 지성, 논리, 윤리 등 서구 근대 시민 사회의 기본이 되는 원리를 너무나 싫어한 나머지 사실은 미국도 싫어하지만, 그것을 곧잘 정합적인 정치적 언설로 가다듬을 수가 없습니다.

     

    아베 외교의 특징은, 표면상으로는 친미인데 속내는 반미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이래로 내려오는 ‘가풍’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걸었던 인간이 전쟁에서 패하자 옥중 전향하여 미국의 첩자가 됨으로써 정계에 복귀해 총리가 되고, 미국의 군사적 속국이 되겠다는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기시 노부스케는 미국에 대한 원한과 사의를 모두 느끼고 있었습니다. 애증이 뒤섞인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속국 노릇은 하겠지만 기회가 있다면 싹 뒤엎어버리고 싶은 거예요. 미국의 졸개 짓은 하겠지만 언젠가는 미국과 대등해지고 싶습니다. 언젠가 다시금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할 기회가 생기면 이기고 싶다... 그것이 일본 국민의 억압된 집합적 욕망인 것입니다. 정치가와 지식인 모두 그것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어요. 공언하는 즉시 일본의 시스템 내에서 순식간에 지위를 잃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일본에서는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인간밖에 ‘톱’에 오르지 않게끔 커리어패스가 설계되어 있으므로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자민당의 국가 전략은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이었습니다. 철저하게 미국에 종속하여 일단 미국의 신뢰를 얻어두는 겁니다.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라는 지위를 확고히 해나가며 ‘2호점’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그리고 미국의 굴레로부터 빠져나와 개헌하고, 핵무장하여 진실된 주권국가에 걸맞는 ‘제 2 대일본제국’으로의 회귀... 그러한 ‘결코 말 못할 시나리오’가 있었습니다.

     

    아베 신조에게 바랐던 ‘아베 계’의 기대란, 이 시나리오를 추진시켜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라면 다시 한 번 일본을 대국으로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일본을 그때처럼 대일본제국으로 회귀시켜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아베 정권을 지탱해주던 감정적 기반이었습니다. 대가족, 교육 칙어, ‘팔굉 일우’ 등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을 경험해 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대일본제국에 환상적인 동경을 품었습니다. 그것이 ‘아베 계’를 형성하는 심리적 중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것은 ‘일본을 되돌려놓자’는 발언으로 드러났습니다.

     

    ‘아름다운 나라(美しい国)’ 말이지요. 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일본은 아름다웠다’라고 하는 명제 아래에 행해진 체제, 그것을 전혀 경험해본 바가 없는 아베 신조 자신과 아베 계 우익이 환상적인 향수를 품으므로 해서 아베 체제는 구심력을 유지했습니다. 이는 이데올로기도 아니거니와, 단순한 회고 취향과도 다릅니다. 보다 환상적이고 생생하며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골치가 아파진 거예요. 아베 신조는 그 카오스적인 국민 감정을 자기 스스로 체현시킨 희유한 정치가였습니다. 그것은 아베 신조의 ‘개인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수 없다고 봅니다. 다카이치 사나에가 ‘후계자’로 언급되곤 했습니다만, 아베 신조처럼 이리저리 꼬여있는 재주를 갖지 못했습니다.

     

     

    — 그녀는 애초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습니다만, 굳이 말하자면 리버럴한 이미지를 내세웠던 (편주: 실제로 나중에 ‘리버럴즈’라는 정치 집단에 참가하게 된다) 사람이었으니까요.

     

    애초에 아베 전 총리 주위에 모여들었던 정치가들은 출세를 위해 충성된 면모를 보여왔던 것일진대, 내면에 아베만큼 깊은 고민을 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출세주의자는 똑부러지게 실현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목표가 없으므로, 국민적 인기를 얻는 다른 리더가 나오면 ‘단단한 동앗줄을 붙잡기 위해’ 간단히 노선을 전환하지 않습니까.

     

     

    — 철새 우익이 많군요.

     

    저기,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요, 이 사람들을 ‘우익’이라든가 ‘국수주의자’로 부르는 일은 삼가주시지 않겠습니까. 국내에 외국군 기지가 있는데도 반대 운동의 선두에 서지 않는 우익 따위는 전 세계를 찾아봐도 없어요. 친미 우익이란 건 일본에만 존재하는 기형적인 존재입니다.

     

     

    — 오키나와 미군 기지 주위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를 신좌익계 단체가 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동기가 딱히 ‘좌익’적인 것이라고는 저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그들이야말로 국수주의자예요. ‘외국 군대로부터 국토를 지키자’고 말하는 사람들이니까요.

     

     

    — 경박한 정치가가 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애초에 그러한 사상을 형성해온 사람들이 아니고, 출세를 위해 그런 주장을 합니다.

     

    어느샌가 정치가는 세습직이 되어버렸으니 말이지요. 국회나 지방의회 모두 할아버지 대부터 3대 의원을 지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거의 ‘가업’으로써 의원을 하고 있습니다. 뾰족하게 뭔가 실현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목표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때그때 ‘입맛에 맞는’ 슬로건에 착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통일교와 친해 두면 선거에 유리하다는 것을 아는 만큼 바로 들러붙습니다.

     

     

    — ‘통일교는 단골 손님이니까’ 하는 느낌으로 말이죠.

     

    아마 그럴 거라고 봅니다. 선조 때부터 편의를 보아준 단골 손님으로부터 ‘얼굴 좀 비춰 주시게’ 라는 말을 들으면 끊어낼 수가 없는 것이지요.

     

     

    — 통일교와 정치계의 유착은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본 내의 통일교 조직은 와해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런데 통일교는 미일한간에 펼쳐져 있는 국제 네트워크로써 미국과 한국에서는 종교활동보다도 비즈니스가 주체가 되는 그룹입니다. 일본은 ‘수금’을 위한 장소, 그저 ‘텃밭’이므로, 이곳에 통일교의 본체는 없습니다. 가령 ‘일본 지사’가 무너져도 미국과 한국의 통일교 체제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일본 지사’가 적자 부문이라고 판단되면 ‘폐점’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만큼 대대적인 보도가 있었으니만큼, 신규 신자 획득이 어렵고, 이탈자도 차츰 늘어날 것으로 보이므로 일본의 통일교는 조직적 위기를 맞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30년 전의 사쿠라다 준코 씨, 야마자키 히로코 씨도 통일교에 들어가 당시 세간이 시끄러웠습니다.

     

    그때는 가십거리였으니까요. TV, 주간지, 신문 사회면이 중심이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다릅니다. 정권과의 유착이라는 빼도 박도 못하는 정치 현안입니다. ‘이런 걸 내보내면 시청률 내려가니까 취재하지 말자’는 말은 안 나오겠지요.

     

     

    — 국회 중심부에 직격탄으로 터졌으니까요.

     

    통일교는 자민당과의 관계를 끊으면 살아남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무너졌을 때는 자민당도 공멸이라구’ 하고 협박하고 있을 거라고 봅니다. 만약 자민당이 종교법인을 박탈하고, 해산 명령 등에 동의하면, 그냥은 안 넘어간다 라는 거지요.

     

     

    — 정치가에서는 통일교와의 결별을 이야기하면 반감을 삽니다. 박살나는 정치가가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선두에 서서 종교법인을 박탈하고, 세무조사의 필요성 등의 말을 꺼내는 의원이 있다면 통일교의 노여움을 살 테지만, 아무래도 습격받는다든가 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누가 봐도 ‘이건 통일교가 꾸민 짓이다’ 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로 인해 여론의 반감이 더욱 높아지는 일은 있을지언정, 정치가, 경찰, 언론이 ‘두려우니까 이제는 통일교에서 손을 떼자’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 국장이 행해지게 되었습니다만, 외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기대했던 ‘조문 외교’는 무리겠지요. 바이든도 안 오고, 마크롱도 안 오고, 물론 푸틴이나 시진핑도 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국장보다 앞서 통일교장(葬)이 행해지니까요. ‘통일교와 조의를 공유함’ 이라는 모양새가 나오는 것은 어느 나라 정상이라도 그다지 환영할만한 얘기가 아닙니다.

     

    국장을 섣불리 제안한 기시다 씨의 실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건 직후에는 아마 아베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쾌유를 빕니다’ 하는 논조였으므로 국장으로 가자고 판단했을 겁니다만, 배후에 통일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여론이 일변했습니다. 어째서 살해당했는가, 그 문맥을 밝히지 않은 채 ‘국민적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지요.

     

    — 이런 상황이 될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겠지요.

     

    이렇게까지 반대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다면 자민당 내각장으로 그쳤겠지요. 어째서 기시다 씨가 이런 어리석은 실책을 범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아베 파를 포섭하기 위해 그랬을 겁니다만 너무 초조했습니다.

     

    국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고, 이케다 하야토, 사토 에이사쿠, 다나카 가쿠에이, 나카소네 야스히로, 후쿠다 다케오 등 인상 깊은 총리들을 놔두고서 ‘전후 정치사에 있어 탁월한 정치가’라는 평가를 급하게 확정하려 했습니다. 이는 무리입니다. 인물의 평가는 ‘관뚜껑을 닫아보아야 안다’는 말과 같이 기나긴 역사의 풍설을 견디고 나서 후세 역사가에 의해 판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망한 지 1주일 만에 ‘평가가 확정되었다’고 말을 하면, 이것이 기시다 쪽의 무리한 정치적 계산이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됩니다.

     

     

    — 국회에서도 증인 소환 등의 움직임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원래대로라면 국회 내에 특별 조사 위원회를 만들어야 하지만, 자민당-공명당-유신의 회가 반대를 해 위원회가 만들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특별 조사 위원회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조사를 받으면 켕기는 일이 생길 거라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유착했던 정치가에게는 이제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숨기기에 급급하고, 언론의 추궁으로부터 도망치며, ‘이슈도 결국 2달 반이면 끝난다’는 식의, 세간의 관심이 식은 뒤 다른 문제로 옮겨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국장도 ‘화제를 모으기 위한’ 전략적인 요소가 있다고 봅니다만 도리어 불씨가 되어 화를 키웠지요.

     

    그래서 지금 자민당 의원들은 오로지 대사건이나 대재난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봐요. 이를테면 자민당 외곽에서 대만의 유사 사태에 대한 언급이 급속히 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국난적 시국을 맞은 판국에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할 여유가 없다. 거국 일치 단결하여 이 위기를 헤쳐나가자’는 식의 이야기로 돌리려고 하니까 그런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필사적으로 통일교 이슈를 잠재우려고 하는 사이, 올림픽과 관련된 스캔들이 새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 통일교가 되었든, 올림픽 조직 위원회의 추문이 되었든, 검찰, 정보기관, 국세청, 언론을 억눌러 왔던 것은 아베의 ‘개인기’였으므로, 그가 사라지자 ‘걸림돌’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하기우다 정무조사위 회장도 거대 언론 상대로 ‘보도를 삼가라’고 할 정도의 압력은 행사할 수 있겠습니다만, 검찰이나 공안(공안 조사청公安調査을 이름. 영문명은 Public Security Intelligence Agency. - 옮긴이), 국세청에까지 ‘작업을 중단하라’고 압력을 행사할 정도의 힘이 없습니다.

     

     

    — 이제까지의 탈법 등을 전부 조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겠군요.

     

    공안이나 국세청도 사실은 통일교를 감시하고 사찰했을 겁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압력’이 가해져서 활동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공안조사청이나 세무서는 총리실에 보고하지 않고서 통일교 조사를 계속해 왔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프로이므로 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도쿄 올림픽의 뇌물 수수 혐의로 다카하시 하루유키 전 올림픽 조직 위원회 이사장이 체포되었습니다만, 그것은 원래 아베 전 총리 살아 생전이었다면 ‘올림픽에 접근하지 마라’는 지시가 있어서 검찰이 움직이지 않았을 사례입니다.

     

     

    — 기시다 내각은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길게 가지는 못할 거라고 봅니다. 저조한 지지율을 V자 회복시키려고 하면 코로나 대책, 대러 대중 외교, 엔저 대책, 통일교 문제 등 어느 분야가 되었든 혁혁한 성과를 거둘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부 무리겠지요.

     

    게다가 통일교 문제를 꾸물대다가 내년 4월 지방 선거를 맞는 경우, 통일교와 연관이 있었던 자민당 소속 지방 의원이 대량으로 낙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경우에 기시다 씨는 책임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황금의 3년’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만(기시다 총리 임기 첫 3년 간 대형 선거가 없다는 의미 - 옮긴이), 생각지 못한 곳에 함정이 있었습니다. 포스트 기시다는 통일교 문제에 관해 ‘결백한 사람’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데, 적당한 사람이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 가노 타로 씨 등이 적당하지 않겠습니까?

     

    통일교과 관계가 있었던 의원이 전부 ‘총재 후보로 부적합’하게 되면 자민당은 이제 요직에 내세울 만한 카드가 없어지고 맙니다. 어딘가에 있을 회색 의원이라도 구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스즈키 에이토 씨(통일교 문제 전문가-옮긴이)나 아리타 요시후 씨(입헌민주당 소속 -옮긴이) 같은 입장에서도 ‘축전을 보냈다든가 이벤트에 등장한 정도의 얕은 관계였던 사람과, 선거 응원을 해주었다든가 신자를 비서로 보냈다든가 하는 깊은 관계가 있었던 사람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이게 언뜻 보면 친 자민당 발언처럼 들리는데요, 실제로 그렇게 했다가는 자민당 내부에 심각한 분열을 불러오게 됩니다. 회색지대에 디지털적인 ‘유죄/무죄’ 선을 그으면 그에 따라 당이 분열됩니다. 지도부로서는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민당은 ‘전원 무죄’로 밀고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교 관련 단체인 줄 몰랐다’ ‘통일교가 무엇인지 몰랐다’ 하는 ‘무지’로 억지를 부릴 참입니다. ‘이렇게 세상 물정에 어두운 국회의원이 국정을 맡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비판이 나와도 ‘무지함이 국회의원의 결격사유는 아닙니다. 실제로 어디를 둘러보나 무지한 의원이 산더미처럼 있는데, 모두 유권자 여러분께서 뽑아주시지 않았습니까’ 하고 대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지요.

     

     

    — 어디가 세를 불리겠습니까. 유신의 회는 어떻습니까.

     

    통일교 문제로 자민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더라도 그 자리를 유신이 차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카지노, 엑스포, 지역 내 코로나 대책 그 무엇 하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오사카 주민 말고는 다 압니다. 이번 기회에 당의 세력을 불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것보다는 자민당이 쪼개져서 보수 신당을 만들어질 경우, 그곳이 태풍의 눈이 되겠지요.

     

     

    — ‘부패 정치와의 결별’ 같은 것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보수 신당은 항상 ‘부패정치, 금권 정치와의 결별’을 기치로 내겁니다. 그리고 정국을 형성하고, 여론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난 뒤 몇 년이 흐르면 슬쩍 자민당으로 복귀합니다. 당의 연명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분열해보이는 것이 자민당의 주특기니까요. 지금이라면 국민민주당과 입헌민주당의 우파와 연합을 꾀해 보수 신당을 만들 경우, 다음 지선에서 압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민민주당과 입헌민주당은 장래성이 없으므로, 만약 자민당을 탈당해 나온 정치가가 있을 경우 거기에 편승하는 의원이 나올 거라고 봅니다. ‘앞날이 캄캄한 자 연합’이라 할지라도 합류하면 일시적으로는 언론의 주목을 받습니다. 이제까지 질리도록 봐왔던 광경입니다. 오가와 신당도 한순간은 제 1당이 되는 꿈을 꾸었겠지요.

     

    게다가 지금 정계 재편 게임이 시작되면, 언론의 관심은 통일교 문제에서 ‘신당’으로 급거 옮겨갑니다. 그걸 지켜보며 열기가 식기를 기다리는 것도 효과적일지 모릅니다. 정계 주변부에서 그런 ‘작당’을 꾸민 사람이 이미 있을지도 모릅니다.

     

     

    (2022-09-12 10:44)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번역 노트

     

    중간에 미국 종속을 의미하는 ‘2호점’이라는 대목이 있는데요, 원문은 暖簾分け입니다.

    이 ‘노렌 와케’란, 한 상점 등에서 오래 근속한 직원에게 그 대가로 말하자면 본점의 브랜드 가치를 이용할 권리를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밥상머리 교육에서 ‘공부를 해야 사람이 된다’고 가르치고, 일본에서는 ‘사람은 모름지기 신용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 일본에서는 물건을 싸게 파는 걸 두고 ‘벤쿄(勉; 공부)’한다라는 말을 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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