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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 정치를 결산함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0. 31. 20:42

    일간 겐다이로부터 제목과 같은 원고 청탁을 받았다. 이제 와서 결산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해야 할 말을 썼다.


    지난 10년 간 일본의 국력은 극적으로 쇠하였다.

    경제력, 학술적 영향력 뿐만이 아니다. 언론 자유 지수, 성 평등 지수, GDP 대비 공교육 지출비 순위 등 ‘선진도’를 나타내는 거의 모든 지표에서 일본은 선진국 최 하위에 오랫동안 정위치하고 있다.

    허나, 국민에게 사활적으로 중요한 ’국력이 쇠하였다’는 사실 그 자체가 (언론 자유도가 낮기 때문에) 적절히 보도되지 않는다. 아베 시대가 남긴 가장 큰 부정적 유산은 ‘국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이 은폐되고 있는 현실’이다.

    국력은 여러 도표에서 살펴볼 수 있는 세계 랭킹에 의해 근사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1995년 세계 GDP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17.6퍼센트였는데, 현재는 5.6퍼센트이다. 1989년 세계 시가 총액 상위 50개 기업 가운데 일본 국적은 32개가 있었으나, 현재는 1개 기업이 남아있다. 경제력에서의 일본의 몰락은 현저하다. 하지만, 일본 언론은 이러한 연도별 변화와 관련해 될 수 있는 한 국민이 접근할 수 없게끔 손을 썼다. 그래서 많은 국민은 이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혹은 대수롭잖게 여긴다. 그와는 정 반대로 아베 정권 하에서 아베노믹스가 성공했고, 외교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일본은 세계 최강국이라는 ‘망상’ 가운데 거하고 있다.

    아베 시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였다(지금도 그렇다). 모든 조직은 주식회사같이 상의 하달 조직이어야만 한다. ‘선택과 집중’ 원리에 기반해, 생산력 높은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고, 생산성이 낮은 국민은 거기에 걸맞는 빈곤과 무권리 상태를 감수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법안을 만들고, 언론의 논조를 이끌어왔다.

    그 결과가 이러한 몰락이다. 허나 누구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성공’해 있다. 그것은 정권을 잡은 여당이 선거에 계속 이겨왔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는 선거를 6번이나 이겼다. 그때마다 압승했다. 이는 ‘국민의 과반수가 아베 정권이 적절한 정책을 행해 왔다고 판단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정부는 강변했다.

    분명히 주식회사라면 상층부에 전권이 위임된다. 상층부의 어젠다에 동의하는 사원이 중용되고, 반대하는 사원은 내쳐진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경영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서 곧장 시장이 정확히 판단을 내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장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비즈니스맨의 흔들림 없는 신앙이다. 사내에서 아무리 독재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경영자라고 할지라도, 수익이 감소하고 주가가 떨어지면 곧장 퇴장 명령을 받게 된다.

    나라의 경우에는 ‘국제 사회에서의 지위’가 주가에 상응할 것이다. 경제력, 지정학적 존재감, 위기 관리 능력, 문화적 영향력 등으로 국력이 표시된다. 그 점으로 말하자면 ‘일본 주식회사의 주가’는 줄곧 하락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아베 정권 하에서 경영자는 교체되지 않았다. 만약, 경영을 그르쳐서 주가가 급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자가 ‘모든 것은 성공했다’고 줄기차게 말하며, 그것을 믿고 있는 종업원들의 ‘인기 투표’로 경영자가 그 자리에 계속 머물고 있는 주식회사가 있다면(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만), 그것이 지금의 일본이다.

    일본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이 틀리는 일은 없다’고 지겹도록 말하지만, 그들이 ‘시장’이라고 이르는 것은 국제 사회에서의 평가가 아니라, 선거 결과에 대한 것이다. 선거에서 다수파를 점하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모든 정책이 옳았다는 방증이라고 그들은 입 아프게 말한다.

    하지만 선거 득표 수의 많고 적음은 정책의 옳고 그름과 상관이 없다. 망국적 정책에 국민이 갈채를 보내고, 국민의 복리를 고려한 정책에 국민이 인상을 찌푸리는 사례는 세계 역사상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고량(考量)하는 기준은 국민의 ‘기분’이 아니라 객관적인 ‘지표’가 되어야 할 터이나, 아베 정권 하에서 이 상식은 뒤집혀졌다.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 비판에 일체 양보하지 않는 것. 모든 정책은 성공하고 있다고 뻗대는 것. 그런 말들을 유권자의 20%가 (반신반의하면서도) 믿어준다면, 기권율이 50%를 넘는 선거에서 계속 이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베 정권이 최종적으로 끝장난 것은 팬데믹 정책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인간을 상대로 한다면 ‘감염병 대책에 정부는 대성공하고 있다’고 부추기면 될 터였으나, 바이러스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적절한 대책을 취하는 이외에 감염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아베 정권 하에서 정권 담당자들은 ‘성공하는 것’과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똑같은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감염을 억제할 수 있을까’보다도, ‘어떻게 하면 감염병 대책이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만을 신경썼다. 그것을 유권자들이 믿어준다면, 그 이상의 것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번 기시다 정권도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팬데믹에서도, 기후 변화에서도,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안정에 있어서도, 인구 감소에 있어서도, 범세계적인 위기에 대해서도 지난 10년 간 일본은 어느 것 하나 국제 사회에 지도력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가 없었다.

    시바 료타로는 러일 전쟁부터 패전까지의 40년 간을 ’도려내고’, 메이지 시대 일본과 전후 일본을 이음으로써 패전 뒤의 일본인을 자기혐오로부터 구출하려 하였다. 그 기법을 따른다면, 아베 정권이라는 몰락의 시대를 ‘도려내고’, 10년 전까지 시곗바늘을 되돌려서, 거기서부터 다시 해보는 수밖에 없다.

    (2022-09-01 11:20)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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