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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과 회화미술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0. 29. 16:55
젊은 남자한테 메일로 ‘인생 상담’을 해주는 일이 늘었다. 어제는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대로라면 ‘바쁜 용무가 있소’ 하고 내치고 말지만, 생각을 고쳐먹고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젊은 불문학자인데, 연구상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한테 상담해주는 것도 참 오지랖 넓은 일이다. 그는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자신의 연구 주제나 방법을 지도 교수가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들어보니 현상학과 회화미술에 대해 쓴다고 한다. 착안점은 그리 나쁘지 않다.
현상학이라는 것은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단편에 지나지 않으며, 또한 주관적인 편향이 가해져 있으므로, 세상 그 자체가 아니다’라는 무능의 인지로부터 출발하여 세상을 재획득하려는 철학적 접근법이다. 뛰어난 미술가들도 또한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붓으로 그릴 수 있는 단편적인 이차원 표상을 통해 세상을 재구축하려 한다. 보잘 것 없고 흔들리는 기반에 처해있음에도, 거대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어엿한 노력의 방향과는 통하는 점이 있다.
후설에 의하면, 관찰자 한 사람으로서는 대상의 일면밖에는 볼 수 없다. 허나, 가상적으로 다른 시점을 세우면, 지금 보고 있는 것과는 다른 상이 보인다. 그것을 차근차근 가필해 나가면, 대상의 전모에 점근선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후설은 그것을 ‘공동 주관성’이라고 술어화하였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복수의 시점에서 보는 대상 상(像)을 동일한 화폭에 그려넣으면 대상 그 자체에 손이 닿을 수 있다고 여겨, 큐비즘 작법을 발전시켰다. <전함 포템킨>으로 알 수 있는 동시대의 영화 작가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이론’도 발상이 꽤 비슷하다.
‘동형적인 아이디어’가 복수의 분야에서 동시에 등장하는 일은 곧잘 있다. 젊은이는 역사를 멀리 내다보는 습관이 없다. 그래서 그러한 것을 가르쳐주는 것 또한 연장자의 몫이다.
(2022-09-01 11:17)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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