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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절에 관하여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0. 29. 16:24

    ‘친절한 사람’이 되자는 마음을 먹고 있다. 그것이 사회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자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래 살아 보고 나서, 그것을 깊은 확신으로서 내면화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생애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다. 젊었을 적에는 한 번도 주변 인간들로부터 ‘우치다 군은 친절하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것은 당연했는데, 필자는 오랜 시간동안 ‘친절’이란 ‘키가 크다’ 라든가 ‘시력이 좋다’ 든가 하는 것과 같은 생득적 자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친절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 자리를 양보해주고, 먹을 것을 나눠준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친절한 사람 자신에게는 뾰족한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친절한 사람은 그저 줄 뿐이고, 아무것도 얻지 않는다. 그래서 친절하지 않은 인간이 무리함을 무릅쓰고 친절한 인간이 될 유인 동기가 없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나이를 충분히 먹어 지천명이 넘었을 무렵이었다. 그때 이런 문장을 읽었다.


    문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쓰기인 것이다. 마음 쓰기라도 말해도 자네들은 아마 모르리라. 하지만 ‘친절’이라고 말해버리면, 너무 노골적이다. 배려. 결단. 사모. 그래도 아직 모자라다. 그래서 ‘마음쓰기’인 것이다. 작가의 그러한 ‘마음 쓰기’가 독자에게 통했을 때, 문학의 영원성, 혹은 문학의 고마움, 기쁨 같은 그런 것이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자이 오사무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


    이 문장을 분명히 젊은 시절에 또한 읽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문학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마음 쓰기다’라는 얘기를, 스무 살의 필자가 이해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자이의 이 말이 뼈에 사무친다.

    이 짧은 인용을 읽는 것만으로도, 다자이가 무엇인가를 ‘단언’하기를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 쓰기’라는 키워드를 떠올렸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친절’ ‘배려’ ‘결심’ ‘사모’ 등 차례차례 단어를 바꾸어나간다. 허나 그 무엇도 충분하지 않다. 결국 이어서 ‘문학의 영원성’을 ‘문학의 고마움’ ‘기쁨’ ‘그런 것들’이라고 또다시 말을 바꾸어보는데, 이 또한 충분치 않아, 이 화제를 도중에 뚝 끊어버린다.

    하지만 이 문장 그 자체가 ‘마음쓰기’의 훌륭한 실천적 사례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것은 단언하지 않는 것, 매듭짓지 않는 것이다. 다자이는 문학을 함에 있어서 무엇인가를 단언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단언을 한 다음, 구두점을 찍고 문장을 맺어야 하긴 하는데, ‘말바꾸기’, ‘버벅거림’, ‘전언 철회前言撤回’등으로 열린 결말을 내지 않으면 안된다. 다자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다자이의 소설은 모두 그랬다. 무엇인가를 말했다가 도로 주워섬긴다. <만년>은 ‘죽고자 작정을 하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여름에 입는 삼베 옷을 건네받은 고로 곧장 ‘여름까지는 살아있는 게 낫다 생각을 한다’라고 식언한다. <앵두>는 ‘내 자식보단 양친이 소중하다, 고 믿고 싶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5-7-5보 율격으로 짜여 있음은 ‘잘 들어 두어라’ 라는 저자로부터의 메시지나 다름 없다.

    다자이는 장난하고 있는 게 아니다. 필사적인 것이다. 정직하고자 하고, 성실하며, 공정하고자 하는 인간은 문득 정신이 들고 보면 그런 식으로 말을 하게 된다. 이것이 ‘친절의 오의 奧義’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창조란 친절의 효과일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여 ‘친절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정말로 타산적인 이유의 전향인데, 남한테 ‘친절하시네요’라는 말을 듣게 된 때로부터, 말이 그저 흘러넘치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란, 친절한 사람의 이야기는 반드시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게 난점이라면 난점이지만 말이다.


    (2022-09-01 11:16)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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