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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 미디어의 영락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2. 13. 14:30

    '슈칸 킨요비週刊金曜日' 1월 12일에 기고했던 것.

     

     

    요미우리 신문 오사카 본사와 오사카 부(府)가 홍보 활동에서 제휴 협동하겠다는 '포괄적 제휴 협정'을 맺었다. '대민 서비스 향상'과 '오사카 권역의 성장 발전'을 목표로 둔다고 읊고는 있으나, 하나의 정당이 일원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지자체와 거대 신문사가 손잡은 일은 중대한 사태임에 틀림없다.

     

    '뜻 있는 저널리스트 모임'이 즉각 항의 성명을 발표했고, 필자도 찬동자로서 거기에 가담하였다. 밝히고 싶은 핵심 사항은 항의 성명에 쓰여져 있다. 필자가 여기에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이 행위가 '신문 미디어의 종언'을 고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신문의 발행 부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일간지의 발행 부수는 2021년에 2065만 부를 기록했는데, 전년 대비 5.5% 줄어든 수치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오사카에서의 감소폭이 크다. 요미우리 신문은 2001년에 1000만 부수였는데, 20년 사이에 약 30% 감소했다. 구독층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이상, 신문 미디어가 비즈니스 모델로서 파탄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부동산을 갖고 있는 신문사는 임대 수입으로 한동안 신문을 계속 발행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저널리즘'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요미우리 신문이 오사카 부와의 제휴를 결심한 까닭은, 보도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그랬던 게 아니라, '돈이 필요해서'일 것이다.

     

    신문사도 사기업이다. 경영상의 필요로 '물주'를 찾는 행위가 문제될 게 있겠냐는 의견에도 일리는 있다. 허나 이는 일개 신문사의 재무 문제만이 아니라, 신문 미디어 전체에 대한 신뢰와도 관련이 있다. 요미우리의 행보는 신문 미디어 자체에 대해 국민이 갖고 있던 신뢰를 깊이 손상시켰다고 필자는 본다.

     

    그래도 전국에 수백 만 명의 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미디어인 이상 나름대로의 사회적 책임이 있다.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의 목탁'으로서 여론을 제시하는 일이 그렇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인 토론과 합의 형성을 위한 '대화의 장'을 제공하는 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대화와 합의 형성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비주류 매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대신 비주류적인 미디어는 '똑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인간들만 모여서 떠들겠다'는 배타적인 장소가 되어도 흠이 잡히지 않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특권을 누리는 대가로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는 일은 없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여기 '슈칸 킨요비'는 전쟁 가능 헌법론자나 미국 종속론자에게 발언 기회를 제공할 의무를 면제받지만, 언론으로서의 한정적 영향력을 그 대가로 지불해야만 한다.

     

    허나 거대 언론은 사정이 다르다. 거대 언론은 '널리 다른 의견을 청취하는 일'로 말미암아 비로소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를 달성하고 있다. 경제적 곤란을 무릅쓰더라도 언론의 다양성을 끝까지 사수함으로써 비즈니스 모델이 성립되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미디어는 단체로서 '공정 중립'할 수가 없다. '우리는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중립적 미디어입니다'라고 아무리 주장해 보았자 아무도 안 믿는다. 공정 중립이란 여러 다른 의견이 자유로이 오고가는 가운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살아남아야 하는 말'과 '도태되어야 하는 말'이 선별되는 언론의 장을 유지한다는 행위 그 자체이다. '공정 중립적 언론'이 자존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언론이 오고 가는 장소는 그 자체가 '살아남아야 할 말'과 '도태되어야 할 말'을 식별할 수 있을 만큼의 판정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일반적 신인(信認)이 미디어의 자립 여부를 결정한다. 대화의 장이 갖고 있는 심판력에 대한 신뢰가 거두어지게 되면 '공정 중립'이 거할 곳은 사라진다.

     

    공권력의 홍보 기관이 되어 연명하는 게 경영상의 합리적 행위라고 요미우리 신문은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다른 의견이 오가는 장소'로 자기매김하려는 노력을 그만 두었을 때, 미디어는 자신의 지분을 잃는다. 요미우리 신문 측에서 경영적 판단을 치명적으로 그르쳤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까지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2022-01-28 09:17)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
    년생합기도 개풍관 관장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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