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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30 꿈과도 같은 싱글 중년 생활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2. 5. 07:00

    '중년 싱글 생활 평론가' 세키가와 나쓰오에 의하면, 남자가 살아야 할 올바른 삶의 방식은 "평범하게 결혼, 그러고 나서 평범하게 이혼. 이렇게 딸만 데리고 부녀 둘이서 사는 것. 이것이 인생의 베스트 초이스"인 모양이다. (<중년 싱글 생활>에서)

    세상에나, 나는 눈치 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인생의 베스트 초이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생이 참으로 즐겁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하지만 '딸과 나'의 중년 싱글 생활이라는 것에 대한 동경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필자가 아직 이십대였을 적, 딸이 태어나기 한참 전에 이미 필자의 내면에 생겨난 듯하다.

    필자에게 '딸과 나'라는 꿈의 생활을 결정적으로 주입시켜준 것은 누군고 하니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이다.

    필자의 All Time Favorite 일본 국내 영화는 <꽁치의 맛>(1962), 두 번째는 <늦봄>(1949)이다. 필자는 이 두 작품을 '남자가 경우 바르게 늙어가는 법'에 관한 가이드맵으로써 감상했다.

    두 경우 모두 주인공(류 지슈 扮)은 상처하고 나서 아이(들)과 살아가는 중년 남자인데, 필자의 롤 모델이 되었던 것은 <늦봄>의 소미야 교수이다.

    소미야 교수는 도쿄 혼고의 대학(실제의 동경대 캠퍼스 - 옮긴이)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선생인데, 교외에서 딸 노리코(하라 세쓰코 扮)와 둘이서 즐겁게 살고 있다.

    소미야 교수는 그다지 열심히 연구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초반의 원고 집필 장면에서는 조수에게 박식을 자랑하는 한편, 어젯밤 마작에서의 점수 계산 착오에 미련이 남아, 허겁지겁 마감 직전의 원고를 내버려두고 근처 아저씨를 불러내서는 한 판 치자고 꼬시는 난감한 아저씨이다(이런 부분은 필자와 통하는 데가 있다.) 요코스카 선 열차에서 딸과 대화하던 중 그제서야 교수회의 날짜를 잊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모습을 보면, 교직원 세계 내부에서도 변변한 지위를 갖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이런 부분도 필자와 같다.)

    그러고 나서는 허물없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하잘것없는 얘기에 열중하고, 가끔 일요일에 노가쿠 악당에 가 노가쿠를 감상하는 게 유일한 지적 취미인 듯 보인다. (이 부분도 필자와 같다.)

    그런 천덕꾸러기 소미야 교수 단 하나의 고민이 딸의 혼담. 영화 <늦봄>은 숙모의 주선으로 딸의 혼담이 마무리 지어지기까지의 기복이, 1940년대의 쇼난 해안, 긴자, 가마쿠라, 교토를 배경으로 점철된, 그리 대단치 않은 영화이다.

    그런 영화에 스물 하고도 몇 먹었을 뿐인 필자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열중했던가. 이유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 영화로부터 필자가 '남자가 성숙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결정적인 지침을 받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대학 교사가 되었는데, 슬하에 딸 한명이 있고,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마을에 딸과 두 명이서 살며,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끝 모를 요설을 농하고, 쉬는 날에는 노가쿠를 보러다니는 남자가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의 여러가지 기로(굉장한 말이다)에서, 필자가 선택지로 '소미야 교수적인 것' 혹은 '오즈 야스지로적인 것'을 우선적으로 골라왔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오즈 야스지로는 평생 독신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부부 그리고 부모자식에 관한 영화만을 줄곧 찍어왔다.

    <아버지가 있었다>(1942)에서 <꽁치의 맛>(1962)까지, <셋방살이의 기록>(1947)에서 <가을 햇살>(1960)까지, 오즈가 특히 선호했던 주제는 '부모 중 한 명이 없는 가정에서, 자녀의 자립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라는 것이다. 그 주제는 어떨 때는 모성애를 축으로, 어떨 때는 지역 공동체 가운데서 빚어지는 의사적인 가족관계를 축으로, 어떤 때는 해체 위기 가정의 재건을 축으로, 어떤 때는 노년의 고독을 축으로 그려진다.

    <늦봄>은 '홀아버지 가정에서 딸이 결혼하자 부친이 혼자 남겨지는 이야기'이다. 딸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소미야 교수는, 둘도 없는 파트너이자 가장 좋은 이해자이며 사는 보람 또한 되는 딸을 잃게 된다. 그래서 '슬슬 보내야지...'라고 알고는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입만 열면 그에게 말하기를, 딸에게 적당한 배필을 짝지어주는 게 부친의 가장 큰 책무임과 동시에, 그 책무를 바르게 이행할 수 없는 부친은 무참한 노년을 맞게 될 것이라고 그를 몰아세운다.

    그 적절한 예가 <꽁치의 맛>에 나오는 '쪽박 선생'(도노 에이지로 扮)이다. 그는 중학교 한문 교사였는데, 몰락한 지금은 변두리의 더러운 국숫집 주인이 되어있다. 그가 몰락한 원인은 영화에 자세히 밝혀지지는 않지만, '일찍이 집사람을 잃었기' 때문에 '결국, 딸을 자기 편의대로 하느라고' 딸의 혼기를 늦추고 말았다는 게 부녀 불행의 원인이었다고 시사된다.
    ('쪽박 선생' 자신에 의해 밝혀지는 '딸은 아내의 대리물'이라는 설명의 방식에서 알 수 있듯이 '딸을 시집보내지 않는 부친'은 근친상간 금기를 무의식적으로 침범하고 있다. 그가 벌을 받는 것은 인류학적으로는 필연인 것이다.)

    그래서 소미야 교수와 <꽁치의 맛>의 히라야마는 소중한 가족의 일원을 감히 놓아주려는 각오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즈의 주제가 어떤 종류의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은, 바로 그 때이다.

    <늦봄>과 <꽁치의 맛>에서는 딸을 시집보내고 난 밤, 결혼식도 끝나고 친구들과의 2차도 파한 뒤 혼자 집에 돌아온 부친이 딸의 부재로 인해 새까맣게 넓어지는 '가정의 공간'을 응시하며, 결연히 '혼자 살기 위한 훈련'을 다짐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소미야 교수는 서툰 솜씨로 사과 껍질을 벗기며, <꽁치의 맛>의 히라야마는 부엌이라는(영화 내내 딸의 영역이었고, 그가 결코 발을 디디려 하지 않았다) '일상의 현장'에서 마음을 다잡으며, 물을 마신다.

    그들은 '둘도 없는 존재를 잃은 생활'의 재개를 위해 홀로 일상으로 돌아간다.

    구조주의의 고전인 블라디미르 프로프의 <민담 형태론>은 그가 채취한 모든 민화에 관해, 이야기란 '가족인 누군가가 없어지고', 그것을 회복하는 것을 추진력으로 삼아 진행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공주님이 마녀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임금님의 의뢰를 받은 용자가 공주를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하는 것과 같은 패턴이다.)

    이러한 전형적인 이야기는 많은 영화들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답습된다. '해피 엔드'란, '이야기 서두에서 사라졌던 가족 구성원의 회복'이나 다름 없다.

    '해피 엔드'의 정형성에 불만을 느낀 누벨바그와 아메리칸 뉴시네마 영화제작자들은, 가족을 갖지 않고, '잃을 것을 갖지 않은' 고독한 주인공을 즐겨 그렸다. 이 주인공들의 강함은 그의 고독함 가운데 있다. 따라서 그들이 '사랑해야만 하는 것' '잃어야만 하는 것'을 소유하게 된 순간, 그들은 '상처입기 쉬움'(vulnerability) 이라는 부정적인 각인을 받고, 차츰 그것이 주인공들의 치명상이 된다. (<네 멋대로 해라>(1960), <한밤의 암살자>(1967), <허수아비>(1973),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 등)

    이는 확실히 프로프가 말하는 이야기 유형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은 주인공'은 이제 더이상 일상의 고독을 살아가지 않는다. (왜냐면, 죽었으니까.) 주체 그 자체의 소멸에 의해 '가족의 누군가가 결여되어 있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부재를 견딘다'는 경험은 빼먹고 만다.

    오즈의 영화는 그 경험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을 향해 이야기를 수렴시켜나간다. 오즈는 '둘도 없는 것이 결여되었을지언정, 사람은 그 결여를 견뎌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 없이 들이댄 채 영화의 막을 내린다. (<늦봄>, <꽁치의 맛>, <도쿄 이야기>(1953), <가을 햇살>(1960) 등)

    이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이야기 정형하고는 조금 어긋나 있다.

    <늦봄>에 열광했을 적 필자는 아직 어렸지만, 직관적으로, 오즈 야스지로 영화로부터, 많은 이야기가 회피해 온 이 냉엄하고도 통절한 경험을 배웠다. 뿐만 아니라 그 경험이, 성숙한 정신에 입각한다면 '희망의 어법'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 만하다는 것도.

    그 후 이십여 년간, 필자는 그 '희망의 어법'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 왔다. '소미야 교수적인 것'이라고 필자가 부르는 것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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