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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웃사이더>에 관한 개인적인 추억 그리고 소소한 감상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2. 11. 07:00

    필자가 <아웃사이더>를 손에 들게 된 것은, 1966년 가을 때 일이었다. 그때 일은 반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을 길잡이 삼아, 필자는 지적 성숙의 한 단계를 올라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얘기를 시작해보자.

     

    그때, 필자는 입시 명문 도쿄도립 히비야 고등학교의 교지편집부라는, 그렇게 제멋대로일 수가 없을 고등학생들의 집합처 같은 동아리의 1학년이었다. 선배들은 헤겔과 마르크스, 프로이트, 사르트르같은 고유명사를 마치 옆반 친구 부르듯이 예사로 입에 담았다. 필자는 게서 언급된 사람들에 관해 가까스로 인명사전 수준의 지식만 갖고 있었지, 그들의 책을 직접 읽어본 적은 없었다. 더욱이 토론을 하며 그중 한 구절을 타이밍 좋게 인용하는 지적 곡예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압도적인 지적 낙오를 어찌 극복해야 할까, 열여섯 살의 필자는 그 방도를 알지 못해 망연하였다. 어쨌든 필자의 중학교 시절 애독서는 야마다 후타로의 무협지와 프레드릭 브라운의 엽편, 그리고 <키다리 아저씨>였던 것이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중학생 치고는 꽤나 균형잡힌 독서목록이었기는 했으되, 동아리 선배들에게 '이런 책을 읽어왔습니다' 하고 커밍아웃할 수 있는 라인업은 아니었다. 구름 위를 오가는 듯한 고답적 대화를 엿들으며, 이제까지 해왔던 독서가 지적 성숙과는 정말로 거리가 있었구나 하고 필자는 깊이 탄식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필자는 (믿을 수 없겠지만) 향상심 넘치는 소년이었으므로, 어쨌든 선배들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어휘 가운데 가장 언급 빈도가 높은 '변증법'에 관해서만큼은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3학년 이토오 선배가 동아리방에서 빈둥거리고 있을 때를 기회로 삼아 보무도 당당히 질문해 보았다.

     

    "선배, <변증법>이란 무엇인가요?"

     

    이토오 선배는 빙긋이 웃으며 "응, 좋은 질문이야. 우치다 군이 캐치볼을 할 때 말야. 던졌던 공이 무심코 이웃집으로 날아가 유리가 깨져버렸어. 이제 어떻게 할거야?"

     

    필자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멍하니 서 있다가, 별안간 안색이 새파래져서, 그길로 조용히 동아리방을 나섰다. 등 뒤에서 이토오 선배가 새된 웃음소리를 내는 게 들렸다. 그때, 두번 다시 선배들 앞에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선 야나기다 겐주로의 <변증법 강의>라는 문고본을 사봤다. 변증법의 사전적인 의미는 알 수 있었으나,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어서 부득이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란 무엇인가>를 샀다. 이 또한 역부족이었다.

     

    그러니까 칠전팔기하여 그런 책들을 통독해 보아도,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역시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별안간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ー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심히 난감하다. 유럽은 가본 적도 없고, 공산주의는 소련이나 중공(이라고 당시에는 약칭하였다. 지금은 아무도 이런 말을 쓰지 않는다)의 국시라고는 들었으나, 그것이 어찌하여 유럽에서 유령이 되어 나타났는가 하는 문맥을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를 향해 이 사람들은 이렇게 분노하고 있는가, 그것을 몰랐다. '브루노 바우어'라니? '라 로크 중령'은 대체 누구지?

     

    책을 몇 권 읽으면 선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드높은 이상과는 정반대로, 차츰 지식이 몸에 배기는커녕,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서책, 모르는 인명 목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따름이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자기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한 조감도를 손에 넣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여러모로 수험생 마인드였다. '출제 범위'가 우선 확정되면 거기서 '~는 ~입니다' 운운하는 것을 잡아먹을 듯이 암기해나가는 일은 할 수 있었다. 슬픈 이야기지만 열여섯 살의 필자는 그런 공부법밖에는 몰랐다. 그래서 철학에 입문할 때도 그 방법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현대 철학의 출제범위'라든가 '현대 철학의 학습 지도 요령' 따위 '철학 단원은 대체로 이런 부분에서 출제됩니다' 하는 식의, 큰 틀을 잡아주는 정보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 그런 정보를 어디에 가면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같은 교지편집부 1학년이었던 M다 군이 한 편의 에세이를 써서 편집 회의에 지참해 왔다. 에세이는 1학년 전원에게 부과되는 숙제로, 그때 필자는 재즈 카페에 관한 르포를 썼다(신주쿠 DIG, 긴자 69 등의 가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저널리스틱한 필체로 취재했었다). 허나 동시에 제출된 M다 군의 레포트에는 사르트르, 카뮈, 니체, 키르케고르같은 이름이 거침없이 인용되어 있었고, 그들은 '아웃사이더'라는 공통된 경향으로 카테고라이즈되어야 온당하지 않겠냐는 내용이 쓰여져 있었다.

     

    우리들은 놀라 자빠진 나머지 말문이 막혔다. 평소 온화한 표정으로 얌전하게 있던 M다 군에게 이정도 교양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선배들도 '철학을 아는 1학년'의 갑작스런 출현에 적잖이 붉으락푸르락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필자는 생각했다. 그야 그가 평소에 화제로 올리던 소재와 에세이 내용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웃사이더'라는 말은 고등학생이 보통명사로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선명성이 강한 단어였다.

     

    필자는 머릿속에 의문부호가 찍힌 채로 하교하였다. 당시 필자의 집은 메가마선 전철이 지나다니는 연선인 시모마루코에 있었다. 다마가와 근처의 별볼일 없는 공장 지대였다. 동네에는 책방이 딱 한 곳 있었는데, 대중소설과 잡지밖에 비치되어 있지 않은 두 평 남짓한 가게에 어째서인지 귀가하던 필자의 발걸음은 옮겨졌다. 목적도 없이 서가에 꽂혀 있던 책들의 겉표지를 훑어보던 중, <아웃사이더>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필자는 벼락을 맞은 듯했다.

     

    손에 들고서 팔락팔락 살펴보니 '아웃사이더란, 사물을 널리 내다볼 수 있는 고독자인 것이다' '소경 나라에서는 눈 하나 달린 사람이 왕이다. 허나 이 왕권은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다'와 같은 시적인 단언이 올올히 아로새겨져 있었다.

     

    바로 이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했다. M다 군은 이 책을 읽었던 것이다. 필자는 흙빛 토우 같은 것이 표지에 그려진 <아웃사이더>를 부루퉁한 가게 주인한테서 낚아채듯 사 와서, 그대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집어삼키듯 읽었다. 그리고 다 읽었을 때, 필자는 깊은 만족감과 일말의 섭섭함을 느꼈다.

     

    기뻤던 점은, 이 책이 오랫동안 대망해 왔던 '현대 철학의 학습 지도 요령'(그것도 지극히 쓸만한)이었기 때문이다. 섭섭했던 점은, 아마 선배들도 이와 비슷한 '참고서'를 몰래 각자 갖고 있어서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 않고) 철학자 이름과 인용구를 그 책에서 빌려왔음에도 마치 원전을 읽은 것 같이 군 게 아닌가 하는 의혹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사실, 일 년 후 필자 자신이 신입생들에게 선배랍시고 거들먹거릴 적에, 필자는 '마치 원전을 읽은 것 같이 구는' 기술에 능숙히 통달해 있었다).

     

    이 책은 '교과서'로써 읽어야 마땅하리라. 필자는 그리 생각했다. 그러나 지극히 강한 개인적 편향이 가미된 교과서이다.

     

    편향이 가미되었다고 해도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데만큼은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야마가와 출판의 <자세히 풀어 쓴 세계사>는 유물 사관에 입각해 있는 고로, 역사 사실을 '가치 중립적으로' 기술한 세계사 교과서보다 한참 읽기 쉽고, 따라서 역사 지식을 얻는 데 효과적이지 않은가.

     

     

    '아웃사이더'라는 보조선을 그음으로써, 콜린 윌슨은 니체부터 도스토옙스키까지를, 니진스키부터 블레이크까지를 '한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이는 위업이라고 아니 말할 수 없다.

     

    아마 이 서적을 가장 열렬히 환영했던 것은, 본국 영국 뿐만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역시 그러했을 텐데, (열여섯이었던 필자와 같이) '철학의 출제 범위'를 확정짓고자 갈망했던 '지식인 예비군' 젊은이들이었으리라고 본다. 이 책이 1956년에 영국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는가에 관해 필자는 출판사적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으나, 아마 누구보다도 우선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지 않았을까 한다.

     

    연대기적으로 살펴보아도 그렇다. 당시 영국은 '청년 문화'의 발흥기였다. 문학과 연극 영역에서 존 오스본이나 앨런 실리토 등의 '화난 젊은이들'이 등장했다. 미국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나 버디 홀리, 척 베리의 로큰롤이 들어왔던 것도 이 시기다. 열일곱 살의 존 레논이 폴 매카트니와 만난 게 <아웃사이더>가 나온 이듬해가 되고 보면, 당대 영국 젊은이들의 기분이 어땠는지를 알 사람은 알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가치관을 좇아, 삼라만상을 디지털적인 경계선으로 양분하는 작법에 열중하였다. '곡선이냐 직선이냐' '내부자냐 외부자냐' '상업이냐 예술이냐' '록이냐 아니냐', 그렇게 상당히 난잡하면서도 상쾌감이 넘치는 일도양단이 청년 문화를 석권하려던 찰나에 콜린 윌슨이 등장한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것이, 이 청년은 어떠한 체계적 교육도 받지 않은 독학자였다. 낮에는 대영도서관에서 만 권의 서적을 읽고, 밤에는 공원에서 노숙을 했던 이 '홈리스 철학자'가 맙소사, 범용한 상아탑 서생들을 아득히 능가하여, 가공할 만한 박학다식으로 철학사를 일도양단해버린 것이다('록 스피릿'이다). 만약 필자가 그때 영국에서 막 나온 <아웃사이더> 초판본을 접했더라면, 그야말로 세상없이 열광했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소수의 장년 지식인들 또한 콜린 윌슨에게서 '영국의 지적 미래'에 관한 희망을 엿보지 않았을까 한다.

     

    어쩌면 콜린 윌슨은 '영국의 알베르 카뮈'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꿈을 꿨던 비평가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몇 개 있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가 나오기 15년 전에 카뮈는 <이방인>이라는 소설과 더불어 근현대 철학을 쾌도난마하는 철학서 <시지프 신화>를 들고 나와 프랑스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시지프 신화>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진실로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밖에 존재치 않는다. 자살이다.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그것은 철학의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는 일이다. 이 밖의 것, 세상에 세 개의 차원이 있느냐 없느냐, 정신이 아홉개의 카테고리를 갖고 있느냐 열 개의 카테고리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들은 나중 문제다. 그따위는 농지거리에 불과하다."

     

    1956년 콜린 윌슨이 <아웃사이더>로 극적인 데뷔를 이룬 바로 그 해, 알베르 카뮈는 사상 최연소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어 온 유럽의 매체를 휩쓸었다. 영국의 적지 않은 저널리스트와 비평가들이 <아웃사이더>에서 보여지는 <시지프 신화>와의 스타일적 유사함을 인정했다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실제로 독학자는 그들 특유의 '저술 기벽'이 있어서, 카뮈와 윌슨 모두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단 한 가지의 열쇠 개념(카뮈는 '부조리', 콜린 윌슨은 '아웃사이더')을 가지고서 동서고금의 문학자와 철학자가 이룩해냈던 작업을 '단 하나의 잣대'로 싹둑 분류해버리고 마는 호쾌한 수법을 이른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아웃사이더>는 카뮈의 <이방인> 영문판 번역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콜린 윌슨이 카뮈를 '롤 모델'로 따랐을 것이라는 가설은 충분히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하위 계층 출신이며, 야심과 반골정신이 흘러넘치는 가난한 젊은이였다. 그리하여 대학 교수들의 강단 철학을 자기 주먹 하나로 깨부수려 했다.

     

    허나 <시지프 신화>와 <아웃사이더>의 유사점은 그뿐이다.

     

    우선 카뮈의 책은 유감스럽게도 '현대 철학의 학습 지도 요령'에는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용이 너무나 적다. 카뮈는 독자적 가설의 방증을 위해 다른 누군가의 말을 필요로 했을 때는, 책꽂이에서 적당한 철학서를 골라내 파라락 펼쳐 보면 진짜로 읽을만한 구절이 쓰여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만큼 자신의 직감력을 믿었던 것이다). 카뮈는 노트를 준비해가며 철학서를 쓸 유형의 작가가 아니다.

     

    하지만 콜린 윌슨은 그 반대였다. 그는 지식의 양으로 전문적 학술인을 압도하는 길을 택했다. 방법론적으로는 이게 튼실하다. 결과적으로 콜린 윌슨의 책은 인용의 보고가 되었다.

     

    '아웃사이더와 관련된' 중심적인 명제만을 다 합하면 50쪽으로 그쳤을 서적이 그 열배 분량이 된 건, 그가 실제로 많은 서적을 통틀어 대량의 인용을 행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고, 콜린 윌슨은 소설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줄거리를, 그리고 등장인물의 전기를 실로 자세하게 기술해 놓는다(복잡한 소설의 줄거리를 술술 요약하는 기술과 함께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이어붙여 입체감 있는 약력을 써내는 기술에 있어서 콜린 윌슨은 틀림없이 예외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는 아마도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들의 중요 부분을 압축하여 '발췌'한 노트를 만들어, 그것을 장서 목록 대신으로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 팽대한 발췌 작업에 들인 시간에 대한 애착이 그의 서적을 '인용의 보고'로 만들어버렸다.

     

    덕분에 <아웃사이더>는 '한 구절만 인용하면 마치 그 책을 전부 읽은 것처럼 행세할 수 있을 만큼 저자의 사상과 스타일의 정수를 함축하여 가려 뽑은 경구'로 파묻힐 정도가 되었다. 바로 그런 점이 우리들처럼 원전을 전부 읽을 정도의 여유나 끈기는 없으되 거기에 무엇이 쓰여져 있는지 알고는 싶어하는 성마른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은총이었겠나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무튼 <아웃사이더>는 1950~60년대 경 당대 최고의 독서 가이드맵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는 콜린 윌슨의 안내를 받아, 나중에는 니체를 읽고, 키르케고르를 읽고, 도스토옙스키를 읽게 되었다. 필자의 동세대 벗들 중 일부는 T.E.로렌스를 읽고, 일부는 니진스키를 읽었으며, 일부는 블레이크를 읽었다. 그들은 자신이 어째서 그러한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필자는 그들의 서가에 필히 <아웃사이더>가 꽂혀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나고, 문고판 해설을 쓰기 위해 <아웃사이더>를 다시 읽었다. 그러고 난 뒤 콜린 윌슨의 저작을 계속 추적 조사해본 결과, 그가 망라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은 좋아했지만, 그것의 분석 및 깊은 고찰 작업에는 그만큼의 정열을 보이지 않았던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고 말아버린 필자로서는, 외려 이 데뷔작의 높은 완성도에 놀랐다. 초년부터 이런 결과물을 달성해냈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하여 판매 부수적으로도, 문학사적 평가로도, 끝내 데뷔작을 뛰어넘을 수 없었던 이 다작의 작가에게 한 줌의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아웃사이더>는 <시지프 신화>가 그랬던 것과는 달리 <현대 사상의 전당>이라는 반열에 들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1950~60년대 세계 젊은이들에게 '철학도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는 가슴 뛰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한 권의 서적이 일궈낸 지성사의 족적은 후세에 길이 전해져야 마땅하지 않을까 필자는 생각한다.

     

    (2021-12-06 09:01)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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