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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서문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9. 7. 22:31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타츠루입니다.
이번 문집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라는 제목입니다.
제가 편저자로 나서서 이런저런 분들에게 기고를 부탁드린 연후에 한 권의 책으로 만든다는 기획은,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전환기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저잣거리의 한일론> 등 이번이 5권째가 됩니다. 이번에는 <전환기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와 같은 취지에서, 중고등학교 학생을 상정 독자로 했습니다.
어떠한 취지의 책인지 이해시켜드리기 위해, 기고자들에게 보낸 <부탁 말씀>을 채록해 둡니다. 우선 읽어보시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타츠루입니다.
다시금 쇼분샤晶文社에서 나올 문집의 기고 의뢰를 보냅니다.
이번 주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라는 것입니다. 항상 그랬듯이 안도 아키라 씨에게 제안받았습니다.
제목을 보면 아시겠지만 중고등학생을 상정 독자로 두고, 그들 앞에 놓인 세상의 풍경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가, 그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참에, 어떠한 마음가짐을 갖고 또한 대비를 하면 좋을까에 대해 여러분의 조언과 지원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예전에도 같은 취지에서 <전환기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라는 문집을 펴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 기고를 부탁드렸을 적에, 편저자로서 ‘중고등학생을 상정 독자로 글을 쓰는 일은 즐겁습니다’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왜 즐거운가 하니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쓰면, 이야기가 근원적이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끼리는 여러 전문용어에 대해 ‘이미 이해하고 있을 터’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만, 중고등학생을 상대로 하자니 그런 수법을 쓸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 ‘이건 말이죠’ 하고 쉽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주의’도 ‘화폐’도 ‘국민국가’도 ‘일부일처제’도, 그렇게 마치 자연적인 것처럼 눈앞에 존재해서 어디를 어떻게 조작하면 작동되는가를 알고 있는 탓에, 보통 우리들이 근원적으로 사고하는 일을 면제받는 개념들에 대해서, 중고등학생을 앞에 두고 지적으로 성실하게 대응하고자 할 때는, 확실히 자신이 책임을 지고 정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타미 주조(1933~1997. 영화배우이자 감독, 에세이스트 등 - 옮긴이)가 한때 ‘야구를 전혀 모르는 여성 독자에게 야구의 재미를 설명하고자 하는’ 기고 의뢰를 받고서 흥미가 동했던 일을 에세이에 썼습니다. ‘투수와 포수는 같은 편입니다’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타미 주조는 그러한 에세이를 써서 남기지는 않았습니다만(아마 그럴 겁니다), 있다면 읽어보고 싶네요.
사르트르도 어떤 글에서 ‘화성인에게 축구의 재미를 설명한다’는 설정을, 어떤 개념에 대해 근원적으로 생각하는 자세에 빗대어 꼽았습니다. 저도 팔짱을 끼고 잠시 허공을 바라본 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대충 ‘공간은 <페어>와 <파울>로 나뉜다’ ‘공은 <살아있음>이나 <죽어있음> 둘 중 하나의 상태다’ ‘공의 의미는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가>로 결정된다’ ... 그러한 여러가지 근원적인 룰을 적어나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가운데, 구기종목이란 것은 놀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인간세계의 범 우주적인 구조를 각인시키기 위한 교화적인 장치임을 깨닫기에 이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개념을 근원적으로 설명하는 일의 공덕’이라는 것은 확실히 있다고 봅니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들의 세상은 그동안 자신이 두르고 있던 ‘외장外裝’이 떨어져나갔고, 그 뭐라 말할 수 없는 초라한 골조가 노출되었습니다.
글로벌 자본주의란 사람, 물건, 자본, 정보가 국민국가의 국경선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초고속으로 왔다갔다하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감염 확산 탓에, 디지털 정보 이외의 형상을 가진 것은 간단히 국경선을 넘을 수는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브렉시트와 ‘멕시코 장벽’에 이어,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국경선이라고 하는, 아무튼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잠시 간주해 온 정치적 환상으로서의 그 개념은 강고한 현실로서 다시금 구축되었습니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다’는 계명 위에 구축된 것입니다만, 실은 ‘마스크’ 하나조차 살 수 없을 수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필요한 물건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돈을 내서 산다’는 ‘저스트 인 타임 시스템Just In Time System’에 입각한 재고 최적화를 스마트한 경영의 이상으로 여겨온 나라는 전부 의료기구, 의약품에 대한 전략적 비축분 부족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상품’이라는 추상적 대상으로서의 물건 가운데에는 ‘정말로 필요한 것’과 ‘사실은 필요 없는 것’이 있다는 것도, 이번 팬데믹의 교훈 중 하나였습니다. 자가용이나 컴퓨터는 ‘있으면 편리한 것’이지만, ‘없으면 죽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의료자원이나 식량, 에너지는 ‘없으면 죽습니다.’ 그러한 긴요 물자를 다른 상품과 같은 위치에서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그 평범하고도 자명한 사실을 은폐해왔습니다. 사람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을 시장에서 조달하기보다는 자급하기 시작한다든지, ‘실은 필요 없는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 목숨을 갉아먹는 일을 멈추면, 자본주의는 굴러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료는 상품이라는 신빙도 무너졌습니다. 의료는 돈을 내고 사는 것이라 돈 없는 사람은 의료를 받을 수 없고, 병이 들어 고통받는다 할지라도 자신의 책임일 뿐이라는 게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식’이었습니다. 미국에는 현재 2750만 명의 무보험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증상이 발현되어도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어 중증 환자가 됩니다. 이 상황을 방치하면, 그들이 감염원이 되어 바이러스의 만연이 이어집니다. 감염병은 ‘전 주민이 균등하게 양질의 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고서는 억제할 수 없는 질병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제까지 그러한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바이러스 하나로 인해,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세상의 ‘상식’이라고 여겨지던 것들의 몇몇이 무효를 선고받았습니다. 그것이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가질 것인가를 사람들은 아직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일의 생활에 쫓겨서, 그런 근원적인 것을 생각할 틈이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중고등학생들은 앞으로 이 ‘역사적 전환점’이후의 세상을 오랫동안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유익한 지견이나 정보를 전하는 것은 연장자의 의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튼 저희 세대는 전쟁의 상흔 가운데 자랐는데, 모든 것이 와해된 패전국이 부흥해나가는 과정을 아주 가까이에서 관찰했고, 버블 시기의 부귀영화를 향유했으며, ‘잃어버린 30년’으로 국운이 쇠퇴해가는 것을 코앞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기원정사祇園精舎의 종소리’를 들은 기억이 다소나마 있는 겁니다. 그리고 역사적 격동 가운데 고각대루가 무너져내리고, 무소불위의 세력가가 무참히 몰락해가는 모습을 보는 동시에, 천지가 아무리 개변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확실한 것,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각자의 입장에서 이제까지 맛봐온 고양감이나 다행감, 환멸이나 씁쓸함은 저희의 지견에 다소의 내공과 깊이를 가져다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일부를 앞으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오랫동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소년소녀들을 위해 자그마한 ‘선물’로 주면 어떻겠느냐가 저의 제안입니다.
이번 기고자들 중에서는 제가 최연장자입니다. 기고를 부탁드린 젊은 필진 가운데에는, ‘전쟁의 상흔’도 ‘버블 시대’도 자신의 입장에서는 전혀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하는 분도 계시리라 봅니다. 걱정하시는 바는 어불성설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저건 ‘제 세대’ 이야기고, 그밖의 세대에게는 물론 각자의 시대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시대를 산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그 시대의 고유한 ‘기원정사의 종소리’를 들어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 시대든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은 잘 아시리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기고 의뢰를 받아주신 분들이 써주시는 것은, 한 명 한 명의 취급방식이 대단히 다르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야말로 제가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까지 쌓아 올려온 경험이 다르기도 하고,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예측도 다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가진 독자를 상정하고 있는가’의 설정이 다릅니다.
특히 ‘미래예측’과 ‘상정독자’에 대해서는 될 수 있는 한 기고자 각자가 제각기 다르기를 저는 바라고 있습니다. 좀 멀리서 봤을 때 ‘구멍이 숭숭 뚫린 치즈’같은 것이 바람직합니다. 사이즈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 ‘구멍’이 여기저기 나 있는, 다양한 ‘빈틈’이 있는 논집이 제 이상입니다.
아마 같은 취지의 출판 기획이 다른 곳에서도 몇몇 진행되고 있으리라고 보기에, ‘이미 비슷한 걸 써버렸다’는 이유로 기고를 사양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 점은 전혀 상관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고등학생들이 ‘마음 놓고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곳’은 이 책뿐만이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많이 있는 게 좋음은 물론이니까요.
제가 드리는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중고등학생들이 될 수 있는 한 다양한 지견을 접하게 되기를 저는 바라고 있습니다. 부디 협력해주시기를 요청드리겠습니다.
분량이나 마감 등의 사항은 쇼분샤 안도 씨가 자세히 전달해드릴 것입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2020년 5월
우치다 타츠루
이상이 ‘기고 의뢰문’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 책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대충 이해하셨으리라 봅니다.
실제로 들어온 원고들을 읽어보니 기고자 여러분도 이 취지를 이해해주셔서, 각자가 ‘현재 중고등학생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제를 골라, 그에 대해 온갖 정성을 다해 논해주었습니다.
기고해 주신 여러분의 후의에 마음 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전체 내용을 통독한 제 감상은, 기고자 여러분이 ‘상당히 친척과도 같았다’는 것입니다. 보통 연장자가 중고등학생들을 상대로 뭘 쓰면, 아무래도 조금은 ‘설교조’라든가 미묘하게 ‘권위주의적’으로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상을 남기는 글은 이번 문집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그랬을까를 생각해봤습니다. 제 가설은 이렇습니다. 이번 팬데믹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난 일본 사회의 결함에 대해, 기고자 여러분은 각자의 개인적인 ‘책임’을 느끼고 있었어요. 저희들이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고, ‘이런 볼썽사나운 사회’를 후속 세대에 남기고 말았다는 겁니다. 자신들이 후속 세대를 위해 일본 사회를 좀 더 ‘제대로 된 나라’로 만들었어야만 했어요. 그 책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팬데믹으로 노정된 일본 사회의 여러가지 결함에 대해서 자신들이 이미 알게 모르게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고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한탄이 행간에 스며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상정 독자인 중고등학생들을 상대로 말해야 할 것은 우선 ‘미안해요’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제대로’된 사회를 넘겨주었어야 했는데,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일본의 어른들은 중고등학생들에게 ‘미안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독자에 대한 사죄부터 시작하는 책이란 거의 드뭅니다만, 이 책은 예외적인 한 권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이 사회를 살아갈 때 어떻게 조금이나마 자신의 사회를 살기 편한 곳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에 대한 힌트가 이 책 가운데에 들어있기를 마음을 다해 기원합니다.
2020년 10월
우치다 타츠루
(2021-08-29 08:46)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http://blog.tatsuru.com/2021/08/29_08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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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에 실린 글을 모의고사에 전재하고자 한다는 요청이 왔습니다. 물론 오케이입니다만, 실제 문제를 보니 놀랬어요. 제가 쓴 ‘서문’ 전부(이렇게나 긴데!)가 실려있었습니다. 이 글을 중고등학생들이 읽어주었으면 하고 출제자는 바란 것이겠지요. 감사드립니다. 🙇 @levinassien 오전 8:37 · 2021년 8월 29일'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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