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의미내성無意味耐性이 높은 사람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8. 23. 07:45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있었던 위령식에서, 스가 총리가 연설의 일부를 잘못 읽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겐바쿠(原爆;원자 폭탄)’를 ‘겐파츠(原発;원자력 발전소)’, ‘히로시마’를 ‘히로마시’라고 읽는 등 7군데를 스가 수상이 잘못 읽었다. 허나, 문제는 핵폐기를 지향하는 일본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약 120자를 건너뛴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나라는, 핵무기의 비인도성을 어느 나라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전쟁 피폭국’ ‘<핵무기 없는 세계>의 실현을 위해 노력을 착실히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 등의 문언이 포함되어 있다. 그 부분을 건너뛴 탓에, 수상의 연설은 ‘일본은 비핵 삼원칙을 견지해나가는 동시에 핵군축으로 나아가는 진행 방향과 관련해 각국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는 의미불명의 것이 되었다. 원고가 뒤죽박죽이 되고, 한 장 날려버린 것에 불과할 뿐 ‘완전히 준비상의 실수’라는 게 정부의 해명이다.
과연, 그런 건가. 하지만 우리들이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총리가 이 연설의 초고를 사전에 검토하지 않고 행사에 임했다는 의혹이다. 한 번이라도 미리 읽어두었다면, 보통 7군데를 잘못 읽는 일은 없으며 무엇보다 연설의 ‘절정’을 건너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불과 1300자에 불과한 원고다. 5분만 있으면 누구라도 읽을 수 있다. 그 수고를 아까워할 정도라면 총리는 위령식을 굉장히 가볍게 여겼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필자가 당혹스러웠던 것은, 총리가 의미를 갖추지 못한 글을 태연히 읽어나갔다는 점에 있다. 그런 일은 여간해서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문법적으로 말이 맞지 않는 문장을 읽으면 우리들은 ‘기분이 나쁘다’고 느낀다. 그러나, 총리는 거기서 머뭇거리는 일 없이, 마치 무의미하지 않은 글을 대하는 것처럼 대수롭잖게 읽어나갔다. 이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사실에서 우리들은 총리가 ‘의미 없는 말을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분명히 그런 사람은 세상에 있다. 많이 있다. 어쩌면 이미 일본인의 과반수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사람이 총리에 오를 리가 없다.
필자는 ‘의미가 없는 말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을 ‘무의미 내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무의미한 말을 낭랑하게 읽을 수 있을만치 무의미한 일에 필사적으로 땀을 흘릴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무의미 내성이 높은 사람’이다. 이는 현대 일본 사회에 있어서 일종의 ‘사회적 기능’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시험의 수재는 ‘어째서 이런 것을 외우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런 지식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는다. 회사에서 중용되는 이는 상사가 발하는 업무 명령에 대해 ‘어째서 이런 일을 해야만 하는 겁니까? 이거, 의미가 없잖습니까?’ 라고 말하지 않는 인간이다.
상의하달 조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스맨십’인데, 이것을 시험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의미한 과제를 부여하는 것이다. 상부에서 내린 정말이지 무의미한 명령이 도중에 ‘잠깐.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거지? 나는 그런 무의미한 일은 안 하겠어’라는 식의 저항과 마주치는 일 없이, 말단까지 지체 없이 하달되는 조직은 ‘완벽한 톱다운이 실현되었다’고 간주된다. 그리고, 현대 일본 사회에는 그것이 조직의 이상적인 모습인 것이다.
조직이 상명하복적으로 될수록, ‘불쉿 잡’이 늘어나는 것은 그런 탓이다. 현재 일본인은 ‘무의미한 말과 무의미한 일’이라는 ‘분쇄기’를 통해 매일 소모되고 있다. (야마가타 신문, 2021년 8월 12일)
(2021-08-16 08:19)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http://blog.tatsuru.com/2021/08/16_0819.html'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5|30 역사수정주의에 관해 (0) 2021.08.30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0) 2021.08.26 4|30 허이고주의란 무엇인가? (3) 2021.08.20 03-2|30 커피우유 찬가 (0) 2021.08.17 가르쳐주세요! 우치다 선생님 -의대생들이 묻다- (2) 2021.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