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이디엇크러시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4. 4. 12:25
로마법 격언 중에 "법에 대한 무지를 변명으로 삼을 수 없다" 가 있다. 어떤 사실을 알지 못한 것은 죄를 면피할 도리가 될 수 있으나, 그 행위를 벌하는 법률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그 행위를 한 자에게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의미이다.
국회에서 행해지는 장관이나 공무원들의 답변을 듣자면, 그들이 이 법격언을 숙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이 의혹을 품을만한 행위에 대해 '그런 일이 있었다' 고 말하면 그 책임을 져야만 한다. '없었다' 고 하면, 훗날 사실이 판명되었을 적에 허위답변을 한 것이 밝혀진다. 이러한 가운데 그들이 궁여지책으로 채택한 것이 '국민이 의혹을 품을 만한 행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는 '사실의 무지' 로 하여금 변론의 여지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을 알지 못한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으니, 발뺌으로써는 유효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정치가나 관료가 변명을 반복해 농하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중대한 사실에 언제나 여러번 기억을 상실하는 인간이 과연 국정의 요직에 앉을 수 있겠는가' 라는 우려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걱정을 일소하기 위한 논리적 해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지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정치가나 관료의 직무 수행상 결격조건이 될 수 없다' 를 정부가 룰로써 공인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공인할 것도 뭣도 없이, 이 나라는 훨씬 전부터 이 새로운 규칙을 채용해 왔다. 기억을 점차 잃어버리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없으며, 사전에 인지한 질문에만 답변할 수밖에 없고, 불편한 질문에는 항상 노코멘트한다... 지금은 이러한 지적 무능이 공인으로서의 활동에 엄청난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곤란하게 할 만한 질문에는 아무것도 답변하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행동거지 그 자체가 '권력' 또는 '권력에 대한 충성심' 의 표징으로써 높이 평가받고 있다.
지적 무능이 지도자의 자질로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통치 시스템을 '이디엇크러시' 라고 부른다. '어리석은 자의 지배' 이다. 데모크러시가 과잉화되었을 때 출현하는 변이종이다.
프랑스의 청년 귀족 토크빌은 200년 전에 앤드류 잭슨 미국 대통령과 접견한 뒤, 그 인상을 이렇게 썼다. "잭슨 장군은 미국인들이 두 번이나 뽑아준 인물이지만, 성정은 포악하고 능력은 범용하며, 모든 경력을 검토해 보아도 자유로운 시민을 통치하기 위한 필수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그 무엇조차 찾을 수 없다." (<미국의 민주주의>)
그러면 어째서 시민들은 그를 통치자로 추대했는가? 그것은 지배받는 국민과 지성•덕성에 있어서 유사한 수준을 가진 지배자야말로 '뒤탈이 없다' 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범용한 통치자는 시민과 대립해야만 할 정도로 관철하고자 하는 정치적 신념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실력도 없다.
"만약 통치자와 민중의 이해가 상이한 경우, 통치자의 인격은 무의미하며 유능함은 오히려 해로울 터이다." 라고 토크빌은 논했다. 탁견이 아닐 수 없다. 확실히 19세기 초 미국에서는 범용한 통치자라고 할 지라도 그는 민중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이해할 정도만큼의 지성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일본은 더이상 데모크러시라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된 것은 아닌가. 통치자의 무능과 무지 수준이 한계를 넘어선 나머지, 통치자 자신이 이미 민중의 이해득실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일단 자신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해만을 전일적으로 꾀하는 나날만을 보내게 되었다. '이디엇크러시' 란 그런 것이다.
(2021-04-03 07:37)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http://blog.tatsuru.com/2021/04/03_0737.html'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의 이디엇크러시 (0) 2021.04.22 뒷북 치는 정치 (0) 2021.04.04 2021년 예언 (3) 2021.03.27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2> 중국어판 서문 (2) 2021.03.27 선수先手를 빼앗긴다는 것 (3) 2021.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