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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先手를 빼앗긴다는 것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3. 23. 18:25
매월 야마가타 신문에 <직언> 이라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아래는 3월 11일호에 실린 것이다.
스가 총리의 정권 운영에 매번 '뒤늦은 대응' 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 대책에도, Go To 캠페인에도, 야마다 내각홍보관의 사임에도, 정부 결정에 대한 여론의 비판은 잦아들기는커녕, 발언 취소 상황에 몰리고 만 것을 지적당하고 있다.
'선수를 빼앗김' 이라는 말은 무도에서 비롯한 것으로, 단순히 시간적인 늦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어려운 문제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다 해도 '선수를 잡았다' 고는 말하지 않는다. 우선 난문이 있어서, 거기에 무언가 해답으로 대하는 행위는 모두 '선수를 빼앗겼다' 고 말한다.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은데, 우리들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선수를 빼앗기는' 훈련을 받아오고 있다. 문제가 제시되고, 거기에 무언가 답을 내서, 정답이면 칭찬받고 틀리면 벌을 받는 학교 교육의 형식이 애초에 '선수를 빼앗기는' 연습인 것이다.
취직을 하면 이번에는 '주어진 문제를 적절히 수행하는' 방식으로 '선수를 빼앗기는' 연습이 이어진다. 우선 물음이나 과제가 주어지고, 거기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생각하는 스킴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모두 '선수를 빼앗긴' 사람이다.
어째서 우리들은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선수를 빼앗기는' 훈련을 받고 있나. 딱히 복잡한 얘기는 아니다. 문제를 내는 자, 과제를 부여하는 자가 '보스' 고, 답을 내거나 검토를 받는 자가 '부하' 이기 때문이다. '상급자에게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마인드' 를 형성하기 위해, 우리들은 어렸을 때부터 온통 '선수를 빼앗기는' 기술만을 선택적으로 주입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어느 정치가 부류(이를테면 아소 다로가 그 전형인데) 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은근슬쩍 상대가 답하기 곤란할 만한 사소한 질문을 되물어서, 마운트 자세를 취하려고 한다. 질문에 답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질문할 수 있고 또한 그 답을 심사할 수 있는 입장' 을 미리 점유한다면, '선수를 빼앗는' 궁지에 상대방을 몰아넣을 수 있다는 권력 관계의 노하우를 그들은 경험적으로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느 스포츠 경기에서, 시합 후 선수들을 세워놓고 '왜 졌는지 알겠냐?' 고 힐문한 감독을 본 적이 있다. 물론 감독은 정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이 어떤 대답을 꺼내더라도 그는 '아니다' 라고 할 테니. 그는 답변을 심사하는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누가 네 보스냐' 를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그의 질문에 정답이 있다면, '너 따위가 감독을 하고 있으니까' 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선수들은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질문에 답하고, 그 답변의 내용을 검토받는 측은 언제나 '선수를 빼앗긴다'. 그 가운데 묘수가 있으니 '어떠한 것을 질문받더라도 대답하지 않는다' 는 태도를 관철하면 '선수를 빼앗기지 않은' 채 마무리된다. 실제로 스가 총리는 관방장관 시절에 그 수법 하나만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물리치며 '철벽' 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 성공체험을 총리 자리에는 적용할 수 없다. '선수를 빼앗기지 않는' 것과 '선수를 취하는' 것은 서로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국의 리더란 '질문에 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선수를 취하는' 것이다. '애초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 이다. 코로나 감염 확대에 앞서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고, 잘못된 정책은 채용하지 않으며, 아첨 추종으로 행정을 그르치는 공무원을 중용하지 않으면 애시당초 '문제' 는 일어나지 않는다.
총리대신은 수험생도 샐러리맨도 아니다. 그가 할 일은 기자나 야당의원에게 '설명책임을 지지 않는 것' 이 아니다. 나라가 나아갈 길을 지시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국민의 사기를 북돋우는 것이다. 자신의 일이 그런 것임을 모르니 '뒷북' 소리를 듣는 것이다.
(2021-03-15 16:51)
출처: http://blog.tatsuru.com/2021/03/15_1651.html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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