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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예언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3. 27. 14:58
<GQ JAPAN>에 올해 예견을 썼다. 전후편 중 전편.
이럴 때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것부터 알고 싶어?' 가 헐리우드 영화의 클리셰잖아요. 우선 나쁜 소식부터 말할게요.
첫째로,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지 않습니다. 이건 모두 이미 알고 있으니 '예언' 은 아니지만요. 일본 자체도 코로나 확진자가 늘고 있습니다만, 미국은 감염자 수가 2천 5백만, 사망자 수도 40만 명을 넘었습니다. 선수단 선출도 못 하는 상황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미국 선수단이 오지 않는 도쿄 올림픽을요. 그런 걸 NBC가 방영할 리가 없습니다. 미국이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했을 때도 NBC는 중계하지 않았습니다. 선불로 치른 방영권 비용을 보험으로 커버할 수 있다면,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올림픽 중단은 조직위 내부에서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걸 아무도 자기 입으로는 말하지 않아요. 말한 인간이 샌드백이 될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IOC 내지는 WHO가 중지요청을 해 오면, 그것을 받아들여 '외압에 굴해 어쩔 수 없이' 입술을 깨물고 중단을 발표합니다. 외압의 '피해자' 인 설정이므로, 올림픽 관계자들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끝납니다. 언론도 짠 듯이 분루를 토해냅니다. 전 일본 총단결 절치부심인 겁니다. '권토중래. 다시 한 번 도쿄에서 올림픽을!' 캠페인 기획서를 이미 덴쓰*)가 써 놓았을 거예요. 이게 첫 번째 예언.
(* 電通. 일본의 거대 광고대행사. 정재계와 깊이 유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옮긴이)
두 번째 나쁜 예언은 천재지변. 감염내과 전문의 이와타 겐타로 씨와 대담했을 적에, 코로나 사태에서 가장 무서운 점이 뭡니까? 를 물어보니 자연재해와 겹치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태풍, 지진, 화산분화 등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이재민이 대피장소에 모이게 됩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수의 사람이 들어차게 됩니다. 위생상태도 안 좋고, 영양도 부실하고, 스트레스도 쌓입니다. 집단감염의 조건이 갖추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두려운 점이 자연재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재해는 언제 일어날지 예측불가입니다. 내가 염려하고 있는 것은 후지산 폭발입니다. 후지산 말인데요, 연말에 눈이 안 쌓였었죠? 산꼭대기의 맨땅이 드러났습니다. 지열 때문에 눈이 녹는다는 것 같아요. 마그마가 차올라 있는 모양입니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단계에서 대규모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 입니다만, 지금 일본 정부가 거기에 대비해 리스크헤지를 하고 있습니까? 내가 봤을 때는 전혀 아닌데요.
고마쓰 사쿄의 SF 소설 <일본 침몰> 이 요즘 읽히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그 소설에서 읽어내야 할 점은 일본이 침몰한다는 부분이 아니라, 일본이 침몰했을 때 어떻게 일본 국민을 구출할 것이며, 정치체제의 지속성을 유지할지의 궁리에 관해 관민이 합심해서 지혜를 짜내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에게는 그 정도의 지력은 있으리라는 게 이야기의 전제였어요. 지금 <일본 침몰 2021> 이 나온다 해도 읽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야, 정치가도 공무원도 학자도 모두 손 놓고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되는 것 없이 일본은 가라앉았습니다 하고 끝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부자나 권력자들은 비행기를 타고 도망갔지만, 돈이 없는 일본인은 그대로 남겨진 채 모두 익사했습니다, 끝. 그런 뻔한 얘기, 아무도 읽지 않아요.
이미 선진국에서는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습니다만, 일본은 언제가 될지 모릅니다. 연내에는 아마 가능하지 않을까... 같은 뉴스를 접해도, 놀라거나 분노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선진국 최하위' 가 일본의 정위치라는 사실에 모두 익숙해져 버렸으니까요. 정치도 행정도 선진국 최하 레벨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자신감이 낮다고 얘기들을 하지만, 실은 일본인 전체가 그런 겁니다. 자기 평가가 믿을 수 없으리만치 낮아져 있어요. 그래서 화내지 않는 겁니다. 화내지 않아요.
가공할 내각이 단 8년만에 이 정도로 국민의 자기평가를 떨어뜨렸어요. 창업은 어렵지만, 수성은 더 어려운 법입니다. 일본의 국력이 V자 반등하는 일은 당분간 없겠지요. 이것이 세 번째 나쁜 예언입니다.
좋은 예측도 있습니다. 첫번째는, 학교 교육 분야에서 온라인과 대면이 하이브리드로 병용되리라는 예측입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 늦잠 자버려서 학교 늦겠네' 하는 때나, 갑자기 열이 나서 학교에 갈 기운이 없을 때도 수업을 들을 수만 있다면, 침대에 누운 채 휴대폰이나 아이패드로 청강하게 됩니다. 선생님도 아침에 수면부족에 시달린다거나 감기기운이 있을때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집에서 수업하겠어요' 라는 식으로 파자마 위에 가이마키와 하오리(일본식 겉옷 -옮긴이) 를 입고 수업을 합니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수업이 상당히 캐주얼해져서,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배우는 입장에서도 무척 즐거워질 것 같아요.
개풍관의 '데라코야 세미나'* 도 이번에는 대면과 온라인 하이브리드입니다. 청강생은 줌 참가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개풍관까지 찾아오는 수강생은 거의 10명 이하가 되었습니다. 30명 정도가 집에서 청강합니다. 해외나 산간도서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고, 집에서 저녁을 만들며, 다림질하면서, '~하면서' 청강하는 사람도 있어요. 몸이 약한 사람, 감염위협을 경계하는 사람,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이어도 온라인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고, 발언할 수 있으며, 과제 발표도 합니다. 세미나에 참가 가능한 허들이 온라인으로 인해 한순간에 낮아졌습니다. 이건 단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도 청강할 수 있습니다.
(* 우치다 타츠루 교수가 주관하는 일반인 대상 인문학 평생교육. 개풍관이란, 고베에 위치한 합기도 도장이자 일종의 사설 학당 -옮긴이)
지금까지는 '외국인에게 학술정보를 발표한다' 는 것은 거의 자동적으로 영어를 써서 발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요, 교토세이카대학 학장 우스비 사코* 선생은 '그냥 일본어로 해 버리면 되잖아' 라고 말해서 충격받았습니다. 그런 겁니다. 일본어로 하면 되는 겁니다. 일본어로 대학 수준의 수업을 듣고 싶어하는 일본어 구사자•학습자가 세상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 Oussouby SACKO. 1966년 말리 출생. 2014년부터 일본 교육계 최초의 아프리카계 무슬림으로서 학장을 역임 중. -옮긴이)
만화, 애니메이션, 음악 등을 통해 일본 문화에 흥미를 느낀 것을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전 세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까지 유학할 만한 자금도 시간적 여유도 없습니다. 혹은 해외에 장기 체재중인데 일본어 고품질 학술 컨텐츠를 갈망하는 일본인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해외에서 간단히 수강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면 상당히 많은 수강생이 모여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일본의 학술정보를 세계에 발표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세계화'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의 언론 상황도 개선될지 모릅니다. 지금 한국이나 중국을 험담하며 욕하는 논객이 일본에 잔뜩 있습니다만, 그들은 자신들이 쓴 것을 일본인밖에는 읽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씁니다. 그래서 적당히 얼버무리며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말은 즉각 자동번역되어 영어나 중국어, 한국어로 자막이 달려 동시에 게재되고 있는데 그래도 괜찮은가 보네요. 내용에 대해 당사자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할지도 모르는데요' 라는 각오를 받아두면 어떨까요. 아마 그들의 많은 수는 '자국민 한정' 의 길을 택하겠지요. 자신의 언설에 국제 공통성이 없다는 걸 본인이 알고 있으니까요.
언설의 국제성이란 단순히 외국어로 발표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어로 해도 상관 없어요. 다만, 이때 전 세계의 어느 언어권 사람이 들어도 이해와 납득이 가능하게, 분명히 논거를 제시하고, 적절히 추론하며, 정성껏 말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국제공통성 있는 언설의 조건입니다. 그런 조건이 주어진다면, 현재 일본 매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의 상당수가 '국제 공통성 없음' 판정을 받게 되지 않겠나 합니다.
세계적으로 발신할 수 있는 환경을 정비한 덕에 이제는 국제 공통성을 갖춘 지견을 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명확히 가시화됩니다. 그것이 일본 국내의 언론을 개선하는 점에서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외국의 사례를 곧잘 아는 것처럼 행세하는 '오지랖' 유형의 지식인이 있지요. 이 사람들도 세계화에 의해 도태될 겁니다. 그들 또한 자신의 말이 논하고 있는 대상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을 전제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인은 ~이야...' 하며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그것을 중국인이 읽을 가능성이 없다는 셈속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견인데도 자못 일반적인 것처럼 허풍을 떱니다. 그런 걸 못하게 되지요.
지난 1년 간, 일본인의 컴퓨터 활용능력은 상당히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1년 전에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자유롭게 인터넷을 이용해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나만 하더라도, 온라인으로 수업하고, 회의하고, 대담하고, 인터뷰에 응하고, 술자리를 갖고...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본값이 온라인으로 된 탓에, '모두 모일 수 있는 시간과 장소' 를 조율하는 데도 수고를 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만 정해지면 멤버가 어디에 있더라도 단시간에 회의와 정보공유를 하고, 의사결정하며, 즉각 해산하는 방식이 가능해졌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왁자지껄 술을 마시며 소란을 피울 수는 없게 되었지만, 모든 일에는 어두운 면이 있는 한편 밝은 면도 있습니다. 모처럼이니 밝은 면을 찾아내도록 합시다.
한 가지 더 좋은 소식을 예언하려고 하는데, 그건 다음 호에서 뵐게요.
(2021-03-25 06:18)
출처: http://blog.tatsuru.com/2021/03/25_0618.html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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