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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키 문화의 만종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2. 15. 16:29
연이 닿게 되어, 어느 시점부터는 겨울이 되면 나가노 현 하쿠바무라에 스키를 타러 가게 되었다. 요전번 오랜만에 핫포오네 스키장에 있었는데, 사람이 상당히 적어서 놀랐다. 코로나 이전에는 외국인 스키어나 보더가 많았는데, 비행편이 끊어졌다보니 그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2년 전까지는 강사도 학생도 영어를 구사하는 스키 학교가 있었다. 리프트를 기다리고 있으려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주위에서 영어나 프랑스어가 들려오곤 했다. 리프트에 같이 탄 사람과 '어디에서 오셨나요?' '호주에서 왔습니다' 같은 대화가 오가는 것이 당연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인 스키어 인구는 점차로 고령화가 진행되어서, 실제 수효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버블 전성기, 젊은 사람들이 화려한 새 스키웨어를 걸치고 '도떼기 시장과도 같이' 복작대는 풍경을 떠올리자니 격세지감이다. 일본 내 재류 외국인들 덕분에 일본 스키장이 경제적으로 존립할 수 있는 것은 솔직히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스키 문화가 사라져가는 것에는 일말의 안타까움을 느낀다.
메이지 말기에 보병의 설상 행동 기술로써 소개된 지 100년이 넘은 스키는 유럽에서 수입해 온 문화다. 나의 동년배들은 처음 배운 독일어가 스키 용어였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Gelände, Spur, Bogen, Schi Heil... 이게 다 독일어다. 그것도 그렇거니와, 스키에는 어딘가 구제고교적(2차 대전 이전의 도쿄대 예과 -옮긴이) 인 모더니티가 곁들여져 있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다이쇼 데모크러시적' 인 것이기도 하다.
일본 근대사의 어느 시기에는 '청년' 들이 문화를 떠받치며, 그들이 (주관적으로) 양 어깨에 국운을 짊어졌던 때가 있었다. 메이지 유신으로부터 40년이 지나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비로소 제국주의 열강 반열에 끼겠다고 주장하는 극동의 소국에서 청년들의 자기도야적 노력은 국력의 향상에 직접적인 상관이 있었다. 본인들은 적잖이 그렇게 믿었다. 지금과는 시대가 다르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국운이 향상되며, 자신이 게으름피우는 대로 나라가 기운다. 그렇게 믿었던 청년들이 있었다. 양차대전 전간기의 일본은 그러한 청년의 등장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런 시대에는, 윗사람에게 알랑거리며, 지시가 떨어질 때까지 자기판단으로 움직이지 않는 '예스맨' 은 쓸모가 없다. 국난의 시대에는 그런 게 아무 소용이 없다. 필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이 될지를 누군가에게 명령받지 않아도 판단할 수 있고, 자신의 존재 의의나 가치에 대해 타인에게 평가를 요구하지 않는 자율적인 청년이다. "행동은 자신의 것. 비판은 남의 것" 이라는 가쓰 가이슈의 말이 있다만, 그러한 각오를 내면화한 청년이 '국가 수요 인재' 로 대접받던 시대였다.
구제 일고 교장으로 다이쇼 데모크러시의 주도자이기도 한 니토베 이나조는 학생들의 자치와 자율을 중히 여겼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자유를 손에 넣은 학생들은 차차 교만해지고, 교사에게 저항하며, 룰을 어기고 폭주했다. 그들을 다스리는 데에 니토베가 고육지책으로 채용했던 것이 '무사도' 였다. 아무리 무도한 언동을 일삼는 학생들이라도, 니토베가 '너희들이 그러고도 무사냐' 라고 일갈하면 숙연히 옷깃을 여몄다고 한다.
스키는 그러한 시대 청년들이 선호한 스포츠였다. 깎아지르는 코스에 첫 발을 내딛을 때의 '각오' 는 모종의 무도 수업이나 폭포 수행, 목욕 재계 등의 고행과도 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일본의 스키 문화에는 1960년대까지는 그 잔존향취가 있었다. 그것은 유럽 문화의 고상한 취향과 다이쇼 데모크러시의 자율과 무사도적 긴장이 한데 섞인, 참으로 독특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본의 스키 문화도 어쩌면 머지않아 사라진다. 우리들은 그것을 회고할 수 있는 최후의 세대가 되었다.
(2021-02-15 10:17)
출처: http://blog.tatsuru.com/2021/02/15_1017.html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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