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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LS에 대해서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2. 1. 19:36

    '극단 다이헨' 을 주재하고 있는 김만리 씨가 '<IMAJU>(이마주)' 라는 정기간행물을 보내오고 있다. 예전에 무대를 감상하고 김 씨와 대담을 한다는 기획이 있어서, 그에 대한 기사가 이 잡지에 게재된 것이다. 그 이래로 종종 김 씨를 뵙고 있다. 전에 만났던 것은, 작년 개풍관에서 열린 안성민 씨 판소리 공연에서였다.

    이번 <IMAJU> 2020년 겨울 호는 ALS 특집이었다.

    ALS(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이라는 병에 관해 나는 다음과 같은 두 사람을 통해 직접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은 스승으로 모시는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철학자 프란츠 로젠츠바이크다. 다른 한 명은 이 잡지 특집호에서 김 씨나 ALS 환자인 하시모토 미사오 씨 등과 좌담회에 참가한 고타니 마사아키 씨. 몇 년 전, 고타니 씨의 거주지인 교토를 샤쿠 뎃슈 선생과 '성지순례부' 활동 일환으로 찾아뵌 적이 있어서, 그때 도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고타니 씨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느낀 적이 있다.

    로젠츠바이크에 대해서 레비나스는 '두 세계 사이에서 -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의 길' 이라는 제목의 긴 전기를 썼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본다.

    "그는 34세에 진행성 연수마비와 관련한 근무력증을 겪게 되었습니다. 급격한 죽음의 공포를 느낄 만한 병이었지만, 로젠츠바이크는 병을 얻은 뒤에도 8년간 생존했습니다. 이른 시기에 전신불수가 되고 입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만, 그가 의사를 전하고 문자를 쓸 수 있도록 특별한 기계가 고안되었습니다.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미세한 움직임—그의 부인만이 그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에 의해 문자를 표시할 수 있게 되어 그의 생각을 전한 것입니다.

    그가 유다 하레비의 헤브루어 시를 번역하고, 마르틴 부버와 협력해 독일어 성경번역을 시도한 것은 와병 중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쓰여진 많은 저작물은 뒤에 한 권으로 종합되었습니다." (레비나스, <곤란한 자유>)

    로젠츠바이크의 집은 '환대의 집' 이 되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로젠츠바이크를 위해 많은 친구들이 그의 병상 아래로 찾아와,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의 나날을 풍요로운 대화로 채운 것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아직 30대 초였다. 자기 자신이 앞으로 몇 년 뒤에 이러한 병을 앓게 된다면, 투병 중에도 무언가 후세에 남길 만한 작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애초에 '작업을 시작한다' 는 기분이 들 수 있을지의 여부를 생각하고 보니, 로젠츠바이크의 정신력에 압도된 기억이 있다.

    아마 레비나스는 이 문장을 엮어나가며, 역시 자신도 로젠츠바이크처럼 살 수 있을까 자문했으리라. 즉답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레비나스는 전 생애에 걸쳐 그 질문이 자신 곁에서 떠나지 않았으리라.

    로젠츠바이크는 살아갈 힘을 깊은 유대교 신앙 그리고 새로운 철학을 선보여야만 한다는 강렬한 사명감에서 얻었다. 나에게는 둘 다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ALS를 앓게 된 뒤 남아있는 아주 조금의 신체 자원을 최대한 살려서, 무엇인가 후세에 '유익한 것' 을 남길 수 있었던 인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나에게 대단히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샤쿠 선생과 고타니 씨의 가게를 방문했을 때도, '아아, 일본에도 로젠츠바이크같은 사람이 있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선인' 이 있어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는구나 생각했다. 고타니 씨를 찾아갔더니 어쩐지 상당히 릴랙스해 보였다. 딱히 '내가 아니면 달성하기 어려운 역사적 책무' 를 완수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좀 더 평범하게,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일상생활로서 담담하게 ALS를 살고 있었다.

    그렇구나, ALS라고 하더라도 딱히 모두가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처럼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에 이르러, 왠지 굉장히 마음이 놓인 기억이 있다. 고타니 씨를 보고서 '마음이 놓였다' 고 말하는 사람은 나 말고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지만, 나는 엄청나게 구원받은 기분으로 그의 가게를 나선 기억이 있다.

    <IMAJU> 의 좌담회에서 고타니 씨가 발언하지는 않았지만, 하시모토 미사오 씨가 많이 발언했다. 하시모토 씨는 32세 때 병에 걸려, 7년 후에 인공호흡기를 장착했다. 그로부터 자신 스스로 간호 체계를 공부하며 '세계를 누비며 활동' 해, 2006년에 ALS/MND 국제 동맹 회의가 수여하는 '인도상' 을 환자로서는 처음으로 수상한 경탄할 만한 인물이다.

    하시모토 씨의 발언도 '문자판' 이라고 불리는 간호사와의 소통으로 이루어졌다. 간호사가 한 음절 정도 발음을 꼽아, 그것을 이어서 말을 만들고, 말을 이어 문장을 만드는 식이다. 아마도 로젠츠바이크가 한 것도 같은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놀라운 것은, 이 좌담회에서의 화제를 이끌어내고, 문제를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는 발언의 많은 부분이 하시모토 씨의 몫이었던 것이다. 활자화된 좌담회의 기록을 읽는 한, 그 한 음절을 꼽는 작업이 요하는 '간격' 은 가시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템포가 느껴지는 말이 오가는 듯한 인상을 읽으며 느꼈다. 아마도 실제로, 문장이 만들어지는 '간격' 을 잠자코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충분한 숙고를 위한 시간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는 현재 코로나 사태 한가운데에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나 방역지침 등으로 인해 신경이 곤두선 사람들 중에는 '코로나 따위는 그저 감기' 라고 지금도 계속해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그들 중 다수는 확진되더라도 가볍게 지나갈 정도로 자신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자신이 건강한 것은 자기노력의 성과라고 믿고 있으리라. 바이러스에 감염돼 중증이 되거나 사망하는 인간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라고 여기리라. 병에 걸린 것은 자기책임이다. 기저질환이 있는 인간이나 고령자가 젊은이보다 먼저 죽는 게 숙명이다. 결과적으로, '정말로 건강하고 강한 자' 만이 살아남는다면, 그야말로 공정함의 실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리라. 그러한 우생학적 사상을 입에 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마음 속에 꽁꽁 숨겨 둔 사람이 내 예상보다 상당히 많다는 것을 이번 팬데믹의 장기화로 알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 자기 자신이 ALS를 앓게 된다면... 이란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불치병과 싸워나가며 병상에서 '유익한 것' 을 사람들에게 선사할 수 있을지의 여부 같은 것은 아마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한 일이 없을 것이다.

    문제란, 자신의 '건강' 은 자기 노력의 성과라고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지도적 지위를 점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강하고, 건강하며, 그것을 자기 노력의 성과라고 뽐내는 사람들이 세상의 모습을 결정하는 이상, 이 사회가 '강자 기반' 으로 제도설계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이 이 사회를 너무나 숨 막히게, 살기 힘들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불치병과 투병하며 발신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늘어난다면, 딱 그만큼 이 세상에 숨구멍이 트이지 않을까 한다. 그것을 인내심 깊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

    (2021-01-28 12:29)

    출처: http://blog.tatsuru.com/2021/01/28_1229.html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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