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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식 없는 세상을 살아남기 위해“ 서문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8. 21. 14:15

    곧 있으면 아사히신문출판에서 모치즈키 이소코 씨와 대담한 내용을 담은 『상식 없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가 출판된다. 이 책의 '서문'은 아래와 같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다쓰루입니다.

     

    이 책은 도쿄신문 기자인 모치즈키 이소코 씨와의 대담을 수록한 것입니다. 2025년 가을부터 2026년 초여름에 걸쳐 수 차례 행했던 대담을 활자화한 것에 가필한 글입니다.

     

    이 기간은 실로 '격동'의 시간대였습니다. 대만 관련 군사 개입 시사 발언을 시작으로 중일관계의 긴장, 베네수엘라 대통령 납치, 미일 정상 회담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보인 속국 근성, 미중 정상 회담에서 트럼프가 보인 미욱함,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격,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과 같이 정신 없이, 하루가 멀다하고 정치상황이 변화했습니다.

     

    이런 모양으로 정치적 상황의 변화가 숨가쁘게 빠른 때에는 '시국적인 서적'이 즉시 out-of-date가 되어버릴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대체 언제적 얘기를 하고 있는 거냐?'라며 웃음거리가 됩니다. '이런 얘긴 한참 예전 일이지'라고 여겨지면 서점의 매대에서 금방 치워집니다. 그러므로, 대담을 마치고, 초고가 나오고, 그것을 교정하고 있는 사이에도 속속 정치적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이 사건 때문에 책의 유통기한이 점점 줄어드는 게 아닐까' 하고 조금은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셔도 됩니다. 기우였습니다. 왜 그러느냐, 분명 교정 보는 중에도 새로운 사건이 줄지어 일어난 건 맞습니다만, 그 사건이 내포한 '문맥'에는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대담에서 둔 주안점은 숫제 '이들 사건은 어떠한 역사적 문맥 속에 생기한 것인가?' 하는 물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문맥만 야무지게 붙들고 있으면,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 한들, 그 역사적 의미라든가 인과관계는 어느정도 파악 가능합니다.

     

    역사를 통할하는 문맥은, 오늘날 세계가 '대홍수'를 향한 격류의 흐름 가운데에 있다는 점입니다.

     

    '대홍수'란,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이라는 책 내용 속에서 끌어댄 비유입니다. 자본주의의 종언을 이릅니다. 자본주의는 19세기 영국에서,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에 그의 눈앞에 생기했던 새로운 시스템이었는데, 그 탄생의 때조차 자본가들은 '홍수여, 내 뒤에 오라(Après moi, le déluge)'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을 제한 없이 수탈하는 이런 비인도적이고 뒤틀린 경제 시스템이 언제까지고 이어질 리가 없습니다. 언젠가 파탄나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은 내가 죽은 뒤에 오기를 바란다. 자본가들은 그렇게 빌었습니다. 결국, 자본주의는 탄생했던 순간부터 '말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러구러 200년에 걸쳐 연명했습니다. 말기 단계에 처했을 터인 자본주의가 200년이나 연명했던 건, 민주주의나 인권사상, 사회복지 제도와 같이 '괜한 제도'를 인간이 발명해내어 자본주의의 연명에 가담한 탓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속주의'라는 사조입니다.

     

    가속주의자들(일론 머스크라든가 피터 틸 등)이 노리는 바는, 이와 같은 '괜한 제도'를 폐절하고서, 자본주의의 종언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대홍수'의 도래를 가속하여, 한시라도 빨리 포스트 자본주의 단계로 이행하고자 한다는 '조바심'이 이데올로기로 화한 것이 가속주의(accelerationism)입니다.

     

    이 '조바심'이 드는 기분은 틀림없이, 전 세계 모든 나라의, 다양한 정치적 사건 가운데 엿볼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는 있으되, 전 세계 사람들이 '조바심'이 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존재했던 시스템을, 그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고서, 부수는 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조바심이 든 인간은 반드시 뭔가를 부숩니다. 그런 법입니다. 불안 초조해 하면서, 동시에 주의 깊고 차분하게 작품을 만들어내는 잔기술을 인간은 부릴 수 없습니다. 조바심이 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부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조바심이 나 있습니다.

     

    이 책은 그와 같은 문맥 가운데 약 1년을 똑 떼어내어, 게서 생기하는 사건을 잇는 '흐름'을 확정하려 한 시도였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connecting the dots '점을 잇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작위로 흩어져있는 것처럼 보이는 점을 이으면 명확한 그림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모치즈키 씨와의 대담에서, 그때그때 가장 긴요한 정치적 사건을 다루었으므로, 화제에 따라서는 '옛날 이야기구먼' 하는 인상을 가지는 독자도 계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점'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복수의 점들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라는 점을 이어보면, 어떤 그림이 떠오르게 됩니다. 우리는, 독자 여러분께 한 '그림'을 보여드리려 '선을 잇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여기며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서문을 끝맺으며, 이 책을 기획하고, 다망한 두 사람의 일정을 조율하며,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대화를 갈무리해 주신 아사히신문 출판사의 마쓰오 신고 씨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매번 다양한 주제를 제공하는 한편, 제 장광설에도 불구하고 깊은 인내심으로 하여 꾸준히 대화상대가 되어주신 모치즈키 이소코 씨의 고운 마음씨에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2026년 7월

    우치다 다쓰루

     

    (2026-08-11 08:27)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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