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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인간 육체의 실상인용 2026. 8. 14. 11:37
아버지가 또 내게 해 준 말은 “많이 배워 높은 사람이 되었을 때 세상이 바뀌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일제시대, 공산 치하, 6.25, 4.19, 5.16 등을 거치며 세상이 여러 번 뒤집히는 것을 체험하면서 고위관리들이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내리신 결론이었다. 그래서인지 공부 열심히 하여 높은 사람이 되라는 말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재판에 휘말리며 고생을 하였지만 검사나 변호사가 되라는 말도 없었고 단 한 번도 당신의 직업인 의사가 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병원 대합실에서 노는 것을 허락하고 수많은 수술 장면들을 보여 주었을 뿐인데 “의사가 뭘 하는지 잘 보아라” 정도였지, 단 한 번도 내게 느낌 같은 것도 묻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에게 출산 장면을 보여 주거나 수술 도중 환자의 창자에서 꿈틀대는 기생충들을 보여 준 것,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내게 음독자살을 시도하여 혼수상태에 빠진 아름다운 20세 처녀의 음부에 도뇨관을 끼워 넣는 장면이나 물에 퉁퉁 불어 반쯤 썩은 시체의 배 속을 보여 준 것 등등은 좀 심했다 싶지만 아마도 인간 육체의 실상을 빨리 직시하라는 뜻이 강하였으려니 생각한다. 심지어 성병에 걸려 절단한 성기를 포르말린 병에 집어넣고 내게 구경시키며 성교육을 시킨 사람도 아버지였고, 매독균이 최장 10년 이상 잠복기를 갖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분도 아버지였다.
(…) 키스는 아름다운 사랑의 표식이라지만 키스하면서 남자에게 혀를 물려 잘린 혀를 들고 입 주변에 온통 피를 흘리며 온 창녀도 있었다.
아버지는 나이 어린 나에게 이러한 인간의 짓거리들을 직·간접적으로 모조리 보여 주었다. 돌이켜 보면 이런 모든 것들을 초등학교 시절에 보면서 나는 삶의 더러운 실상과 인간의 사랑과 증오마저도 조금은 엿보았던 것 같다. 벽에 난 구멍을 통해 옆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제로 엿보았던 주인공이 바로 그런 내용을 상상하여 소설로 발표한 소설가에게 “당신의 소설은 실상과 다르다”고 면박을 주는 앙리 바르뷔스의 소설 〈지옥〉은 그래서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세이노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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