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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아파트 아파트인용 2026. 8. 7. 08:17
그런데 처음 갖는 집을 아파트로 하느냐 단독주택으로 하느냐엔 올케와 어머니의 의견이 대립했다. 올케는 아파트 편이었다. 첫째 난방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으니 구공탄을 가는 구질구질한 일을 면할 수 있고, 부엌 등 모든 시설이 편리하니 식모가 필요 없고, 잠그고 외출할 수 있고, 이웃과 완전히 차단된 독립성이 보장돼 있고 등등이 아파트를 편드는 이유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바로 이 독립성이라는 걸 겁내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가끔 일어나는 살인사건 같은 걸 다 이 냉정하고 철저한 독립성에 그 까닭을 두고 있었다. 어머니의 이론대로라면 이 나라에선 살인 사건은 꼭 아파트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봐야 할 판이었다.
이웃끼리 고사떡 찌는 냄새도 훌훌 넘어오고, 지짐질하는 소리도 지글지글 넘어가 서로 나누어 먹고 대소사를 서로 의논하고 도와주고 해야 사람 사는 동네라는 거였다.
올케와 나는 마주 보고 눈을 찡긋했다. 나는 올케 편이었다. 나는 이웃사촌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이 구(舊)동네가 싫었다. 도대체가 남의 집 일에 너무 관심들이 많았다. 뉘 집 아들이 일류 대학이나 일류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하면 서로 제 일처럼 신이 나고, 떨어진 집엔 심란한 얼굴로 위로를 하러 몰려가고 노인네들 생일엔 서로 청해서 먹고 노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남의 집 내막을 알아내서 풍기고 흉을 보는 데도 선수들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남편이 출퇴근할 때마다 이웃의 수다쟁이 여편네들이 왜 저렇게 신수가 멀쩡해가지고 처가살이를 할까 하며 혀를 끌끌 차고 입을 비죽대는 것을, 또 그 여편네들이 올케를 세상에도 없는 무던한 여자로 나는 그와는 정반대의 얌체로 꼽고 있는 줄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남의 속도 모르고 내가 돈이 모자라 아파트로 가려는 줄로만 알고 안쓰러워했다. 몇 년만 더 아버지 밥을 얻어먹으면 누가 뭐래겠느냐고 공연히 죄 없는 올케를 흘겨보고는, 나를 꼬이려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올케와 단짝이 되어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마땅한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계약 후 모시고 갔다. 어머니는 우선 십팔 평짜리가 너무 좁은 데 놀라서 너희가 평수를 사기당한 거 아니냐고 성화를 했다. “원 세상에, 우리집 건평이 그게 서른일곱 평인데 열몇 식구가 들끓고도 방이 몇 개나 남아돌았는데 세상에 이걸 열여덟 평이라고 젊은 것들을 속여?” 하며 분개해 마지않았다. 예전 평수하고 요새 평수하곤 다르다니까 그제서야 그건 그래, 예전 고기 한 근하고 요새 고기 한 근하곤 다르고말고 하며 알아들은 듯한 얼굴을 했다.
그럭저럭 이삿날이 가까워졌다. 어머니는 새삼 묵은 근심을 들춰내서 또 걱정을 시작했다. 두터운 콘크리트 벽으로 차단된 세대간의 그 독립성이란 게 암만 해도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혼자서 살림을 할 수 있다는 나의 독립성조차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신이 와서 살림 참견을 하자니 사위고 딸이고 그래주십사고 청하지도 않는데 자청한다는 건 자존심 문제였다.
내 아파트는 소위 계단식이라는 것으로 계단을 오르면 두 세대의 현관문이 마주 보도록 되어 있다. 어머니의 성화로 우리는 미리 앞집에 인사를 하러 갔다. 어머니는 앞집 여주인이 적어도 자기만큼은 나이가 먹었으면 하고 기대했었나 본데 나만큼 젊은 주부였다. 그래도 결혼하자 곧 딴살림을 나 팔 년째라니 나보다는 훨씬 선배였다.
어머니는 우리 애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니 매사를 좀 가르쳐주고 도와주라고 그 여자에게 신신당부했다. 어머니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나는 단박에 그 여자에게 호감이 갔다. 그 여자네 살림살이는 어찌나 알뜰하고 아기자기한지 꼭 동화 속에 나오는 방 같았다. 나는 꼭 그 여자네 방처럼 꾸미고 싶었다. 나는 꽤나 수줍어하면서 가구나 실내장식에 대해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 여자는 조금도 염려 말라고, 이 아래 상가에 가구점이랑 커튼 센터랑 없는 게 없다고 일러줬다. 아파트란 참 너희 올케 말짝으로 편한 데로구나 하며 어머니까지 좋아했다. (박완서)
아이들에게 '남의 일은 상관 말고 자기 이익만 생각해'라고 가르친 것은 기존의 일본처럼 '참견 사회'였던 곳에서는 확실히 유효한 생존전략이었다. 친족제도의 공동화, 종신고용제의 붕괴, 미혼의 증가, 저출산 문제 같은 것은 모두 '참견 사회'의 해체=자기 결정・자기 책임 시스템을 지향한 사회적 추세다.
그러나 사회는 변했다. 우리는 1960년대부터 중간적 공동체의 해체를 위해 전국적인 규모로 노력해왔고, 그런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한국 같은 경우, 1988년 올림픽 때부터 1998년 외환위기 사이 시점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 인용자)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될수록 집단에 속하지 말고 무엇보다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는 인간'이 엄청나게 사회의 다수자(majority)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사태는 반전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집단 성원에 대해 세세한 배려를 보이는 사회집단'에 속하는 개인이 원자화된 개인보다 자기 결정의 선택 폭이 넓고 개인에게 허용되는 가동 범위도 넓다는 역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집단에 속하지 않아 자기 이익을 독점할 수 있는 인간'보다 '집단에 이익을 환원하고 집단에 이익의 재분배를 맡기는 기회가 많은 인간'에게 수익의 기회가 많이 돌아가는 '하이 리스크'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도래했다'는 말은 지나친 말일지도 모른다.
그래, 아마도 '도래하는 중이다.' (우치다 타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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